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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칠천을 남겨두신 뜻 (롬 1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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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칠천을 남겨두신 뜻
본문- 로마서 11: 1- 5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 젊은이들 30명과 우리 교역자들 해서 32명의 동유럽선교여행팀들이 열흘간 잘 다녀왔습니다. 한 주간을 여러분을 뵙지 못했는데, 무척 오래된 것 같고, 그래서 반가움도 갑절이나 더 큰 것을 느낍니다. 여러분도 보고싶었지요? 저도 보고싶었습니다.

굉장히 비행기를 타는 시간도 길어서 많이 힘들었고, 또 아침 9시에서 밤 10시- 11시까지 늦게까지 강행군을 해서 무척 육체적으로는 피곤한 여정이었지만 사역의 내용이 참으로 귀했고, 지난 번 태국에 갔을 때 김농원선교사님의 사역이 얼마나 준비되고 열정을 가졌는지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만, 이번에도 신성학선교사님 열정을 가지고 철저하게 준비하는 그런 기회가 되어져서 우리 젊은이들에게 담대함도 얻게 되었고, 선교의 용기도 보람도 얻는 시간이었습니다.

역 광장에서, 지하철역에서 또 집시마을을 찾아가서 우리가 사역하는 과정 속에서 정말로 복음을 전하는 일은 담대함을 필요로 하는 것, 그리고 용기도 필요하고, 그리고 철저하게 준비될 수록 복음의 효과가 크다고 하는 것을 새삼 느낀 그런 시간들이었습니다.

보통 옆사람에게 전도지 한 장도 잘 나누지 못 하던 사람들이 과감하게 전도지를 나누어주고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찬양하고, 모든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용기들이 생긴 것은 값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요, 은혜인 줄로 믿습니다.

이제 바라기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체코에서 그렇게 열심히 사역했던 우리 젊은이들이 돌아와서 다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 역곡역전에서 부천역전에서 우리 주변의 아파트 단지에서 과감하게 찬양을 하고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만방에 선포할 수 있는 그런 용기있는 믿음의 용사들이 정말 수많은 돈과 시간과 정성과 사랑을 통해서 얻어진 경험들이 그대로 살아 움직여지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큽니다.

저는 이제 한달에 한 번 정도 우리 젊은이들이 헝가리에서 했던 사역들을 지역에서 하기를 기대하고, 그렇게 지도자들에게 당부를 해 두었습니다. 헝가리에서만 하고 와서 잃어버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지요.

그만큼 훈련된 모습들이 우리 일상생활에서 쓰여질 때 비로소 효과가 있고, 보람이 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교회에서도 많은 후원이 있었지만, 그래도 각 선교회나 개인적으로 넘치는 후원으로 이번 일을 가능하게 하셨던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기도와 사랑이 얼마나 귀했는지 또 우리가 사역을 하는 중간 중간에 강력한 중보기도의 힘을 느끼는 기회가 되었고,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들을 은혜로 인도하신 줄로 믿습니다.

지난 7월부터 8월까지 우리 교회의 모든 부서들이 여러 모양으로 수련회, 혹은 선교여행을 통해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을 감당하면서 또 한 편으로는 우리가 여러 가지 많은 교통문제, 여러 가지 안전사고문제, 노심초사하면서 기도하였습니다만은, 조금의 어려움도 없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에 이번 여름행사를 마치게 되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제 다시금 8월의 더운 여름을 뒤로 하고, 이제 저녁이면 선선한 가을의 분위기를 느끼고, 곧 다음주면 가을이 시작이 됩니다. 가을은 이름 그대로 결실의 계절이고, 여름에 땀 흘리고 수고한 사람들만이 가을에 기쁨의 단을 거둘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리라 생각이 됩니다. 지난 여름을 피서하지 않고, 열심히 도전했던 사랑하는 성도들과 각 부서들은 이번 여름에 넉넉한 열매를 거둘 줄로 믿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칠천을 남겨두신 뜻이라고 하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시는 백성은 당연히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그들의 작은 씨족이 부족, 민족으로 번성하기까지 하나님께서 축복의 약속을 하셨고, 바다의 모래알처럼, 하늘의 별처럼 이스라엘은 번성을 했습니다.

약속의 민족이요, 하나님과 함께 동행했던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이스라엘이었지만 어느 덧 이스라엘은 그런 하나님의 약속의 민족의 모습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정체성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내용은 2가지입니다. 바울사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셨는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민족을 포기하셨는가? 반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사도는 대답합니다. 그럴수 없느니라.

두가지 예로 그는 대답합니다. 하나는 자신을 예로 들어서 간증하고 있습니다. 나도 이스라엘 사람이다. 나도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는 말은 지금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하는 한 민족공동체가 하나님 눈 밖에 나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적대적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없는 그런 집단으로 지금 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을 그들은 핍박했고, 하나님 부르신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빛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그 빛을 꺼버리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무덤에 묻음으로써 그 빛이 완전히 그들은 꺼진 것으로 착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능력의 하나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어두움을 물리치시고, 사흘 만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셔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게 하신 줄로 믿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 그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죽이고, 그러한 일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하나님의 은사를, 하나님의 은총을 이제는 입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른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바울 사도는 고백합니다. 나도 이스라엘 사람이라. 나도 그러한 사람의 부류라. 그러한 고백입니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꾼으로 붙들어 쓰지 않으십니까? 나 같이 핍박에 있어서 열심을 가져서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고도 당연하게 여겼던 그런 포악했던 포행자 나 자신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도록 사도로 부르지 않았습니까?

나를 생각하면, 여러분들이 나를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셨다고 하는 것이 잘 못 되었다는 확신을 가지지 않습니까? 나도 이스라엘 사람이요, 베냐민 지파 사람이지만, 하나님께서 나를 긍휼히 여기셔서 당신의 종으로 사용하지 않습니까? 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예는 구약에 열왕기상 18장에서 19장에 나오는 엘리야 선지자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엘리야의 그 사건은 우리가 18장에서부터 19장을 보면 자세하게 소개되어져 있습니다.

엘리야가 당시의 아합임금의 폭정에 너무나도 고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외면하고 그는 곳곳마다 주의 제단을 파괴하고, 우상의 제단을 세웠습니다. 그 아합의 잘못된 삶은 그의 아내 이세벨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이세벨은 다른 나라에서 우상을 섬기던 사람의 딸이었는데, 그를 아내로 맞이하면서 이스라엘에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에 구체적으로 그리고 곳곳마다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정권을 장악한 이세벨은 왕보다도 더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면서 많은 대신들이 그 이세벨에게 아첨을 하고, 점수를 따기 위해서 저마다 이세벨이 좋아하는 신들, 신전들을 곳곳마다 세우기 시작을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종 선지자들을 붙잡은 즉시 죽였습니다. 이스라엘 땅에 하나님의 종들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 때에 궁내대신 오바댜가 백명의 하나님의 종들을 굴에다가 50명씩 나누어서 숨겨두고 그들에게 양식을 공급하면서 그들을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엘리야가 오바댜를 만났습니다. 오바댜는 엘리야가 길거리를 다니고 있는 것을 보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지금은 숨어서 지내야 할 터인데, 대로를 어떻게 활보하고 있습니까? 아니다 걱정하지 말라. 네게 부탁이 있는데, 왕에게 가서 나와 왕이 만날 것을 주선해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결국 오바댜는 엘리야의 부탁을 받고, 엘리야의 말을 왕에게 전했습니다.

엘리야와 왕이 만났습니다. 아합왕이 만나자마자 첫마디가 이런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엘리야를 가리켜서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스라엘이 특히 아합임금을 중심해서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로 온 나라를 우상숭배로 바꾸어 가고 있는 상황에서 엘리야가 너무나도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이 이스라엘 땅에 하나님이여, 수년간 이 땅에 비가 내리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기근을 명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근을 요청했을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의 간구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땅에 비를 내리시지 않았습니다. 3년동안 비를 내리지 않는 동안에 그 이스라엘 땅에 비가 오지 않음으로 인해서 말할 수 없는 식수와 비의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렇게 불편함을 겪고 있으면서 엘리야가 비가 오지 않도록 하나님께 기도했기 때문에 비가 오지 않는 것이라는 엘리야를 향한 원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를 만나자마자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가 너냐고 그렇게 반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아합왕에게 제안합니다.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을 갈멜산상에 보내서 나와 진정으로 살아계신 신이 어떤 분인가를 한 번 온 백성 앞에 증거하면 좋겠다고 제안을 했고, 아합왕이 그 제안에 응했습니다.

그리고 지중해가 보이는 갈멜산에 모두가 모였는데, 바알의 선지자 450명이 모였고, 하나님을 섬기는 엘리야 혼자 거기에 모였습니다. 두 제단을 쌓아놨습니다. 돌로 수축하고, 나무로 쌓아놓고, 소를 두 마리 잡아서 각각 한 마리씩 각을 떠서 제단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엘리야가 제안합니다. 너희들이 숫자가 많으니 너희들이 먼저 너희 신에게 부르짖으라. 오전 내내 450명의 집단이 자기들의 신을 향해서 부르짖지만, 그들의 신은 응답이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자기들의 몸에 칼로 피를 내면서 분위기를 고조시키지만, 그래도 그들의 신은 응답이 없었습니다.

엘리야가 말합니다. 너희 신이 조는가보다. 좀 더 크게 불러봐라. 그렇게 조롱을 했습니다. 정오가 지나도록 응답이 없자 이제는 너희들은 그만 하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갈멜산상에 올라와서 수많은 백성들이 그 장면을 보고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백성들을 향해서 말합니다. 너희들이 어느 때까지 머뭇머뭇거리겠느냐? 하나님이 너희의 하나님이면 하나님에게로, 바알이 너희 하나님이면 바알에게로 나아가라. 그렇게 말하지만 백성들은 한 마디도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아합임금 앞에서 말 한 번 잘 못 했다가 목숨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그러한 불안한 상황, 그런 상태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고백하기를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엘리야가 자기의 무너진 제단을 수축합니다. 돌을 쌓는데, 12개의 돌로 그 제단을 쌓습니다. 야곱의 지파의 수를 따라서 12개의 돌로 쌓고,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면서 돌로 단을 쌓은 후에 단을 돌아가면서 도랑을 팠습니다.

그런 다음에 통 넷을 동원해서 거기에 물을 채워다가 이제는 물을 나무과 돌과 제물에 붓도록 요청을 했습니다. 지금 물이 귀한 시기입니다. 3년동안 가뭄이 들어서 모든 강들도 그 건조한 시냇가들도 말라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큰 통 넷을 몇 사람이 들어도 어려울 통 넷을 그것을 세 번씩이나 산 밑에 내려가서 물을 떠다가 제단에 붓기를 요청했습니다. 빈 통만 들고 내려가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여기에 물을 떠오는 것도 어려운 일이요, 내려가서 가뭄 중에 물을 구해서 가져오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일을 엘리야는 세 번이나 반복하도록 요청을 했습니다. 세 번이나 그 일을 요구했다고 하는 것은 엘리야가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제단에 온전한 헌신과 순종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펑펑 옆에서 수돗물이 쏟아지는 것을 받아서 주는 것이 아니라 산 밑으로 내려가서 가뭄에 박박 물을 긁어 담아와야 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헌신하다고 하는 것은 헌신할 만한 환경, 순종할만한 환경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을 떠오라고 하는 것이 내려가면 강의 물이 철철 넘치는 상황에서 물을 떠오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가도 구하기 어려운 물을 구해 오라고 하는 것이지요.

바로 열왕기상 18장- 19장 앞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는 통해서 사르밧과부의 집에 방문하게 하시고, 가뭄 중에서 이제 먹고 마실 것이 없어서 떡 한덩이만 먹고, 이제 어머니와 아들이 죽자라고 하는 이런 기가 막힌 상황에서 엘리야 선지자는 그 빵을 내게 먼저 가져오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헌신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순종이라고 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의 종을 통해서 명하실 때, 말씀을 통해서 명하실 때, 여러분들이 얼마나 순종의 삶을 살으셨습니까?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그렇게 철저하게 순종의 삶을 여러분은 살고 계십니까? 세상적인 말로 뺀질뺀질 거리면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지금 하나님 앞에 응답의 제단에 앞서서 순종하되, 철저하게 순종하기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물을 부어서 제물과 나무와 제단이 온통 물이 가득 차고, 그 흐른 물이 도랑에까지 가득 찼습니다.

그리고나서 하나님 앞에 손을 들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이 땅의 백성들에게 보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지금 아합과 이세벨을 통하여서 이 땅에 하나님의 제단은 무너지고, 우상의 제단이 곳곳마다 세워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금 백성들에게 어느 때까지 머뭇거리겠느냐고 요청하지만 그들은 권력이 무섭고, 세상의 유혹이 두려워서 그들은 450명의 바알의 선지자들이 부르짖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나님, 저는 혼자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살아계시면 불로 응답하셔서 이 제단에 응답하심으로 하나님이 지금도 증거하게 하옵소서.

지금 불로 응답되지 않으면 엘리야 선지자는 칼에 맞아 죽을 상황입니다. 하나님께서 불로 응답하신 줄로 믿습니다.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과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핧은지라. 불로 응답받은 사건을 보고서 그제서야 백성들이 말합니다. 백성들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불로 응답한 역사의 현장에서야 비로소 백성들이 정신을 차리고, 어떤 세상적인 힘에 굴복해서 입을 다물고 있던 그들이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그들의 입을 열어 찬양한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나서 3년동안이나 가뭄이 들었던 그 땅에 이제는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만방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한 이후에는 이제는 더 이상 가뭄을 둘 필요가 없다고 엘리야는 판단을 했습니다.

갈멜산 꼭대기에서 자기의 사환을 두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내가 기도할 때에 저 지중해 바다 위에 구름이 뜨거든 내게 알려라. 한 번 기도하고 물어봅니다. 구름이 보이느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두 번 기도합니다. 세 번 기도합니다. 무려 일곱 번 기도하고 비로소 사환이 이야기합니다.

지중해 바다위에 손을 가릴만한 작은 구름하나가 떴습니다. 그러면 속히 일러라. 지금 큰 비가 내릴 터이니 속히 갈멜산을 내려가서 기손강을 건너가야 할 것이니라. 기손강은 작은 강이지만 그 작은 강이 범람을 하게 되는데, 범람을 하면 갈멜산을 올라왔던 백성들이 내려가지를 못하니까 빨리 내려가도록 재촉을 해라. 지금 구름은 손바닥만한 구름 하나가 떠있는데, 큰 홍수가 나리라고 엘리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손바닥만한 구름을 보고도 홍수를 말할 수 있는 믿음의 담대함이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지금 불로 응답받은 엘리야의 제단은 이제는 확신이 생긴 거예요. 한번 믿음의 확신이 생긴다면 손바닥만한 구름을 보고도 홍수를 바라보는 안목이 생긴다 그 말이예요.

여러분, 주님을 위해서 여러분이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에 일곱 번 기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일곱 번이라고 하는 것은 완전 숫자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라.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가 너를 도우시리라. 일곱 번 기도라고 하는 것은 전폭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한 두 번 기도하다가 응답이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응답하실 때까지 일곱 번까지 기도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승리입니다. 3년동안의 가뭄이 그쳤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엘리야에게 바랄 것이 없는 상황인데, 그 때에 엘리야에게 소식이 들립니다.

궁궐에서 그 소식을 기다리던 이세벨왕후가 모든 역사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엘리야의 제단에 응답하셨고, 450명의 거짓선지자들은 백성들에 의해서 모두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면서 말합니다. 내일 이 맘 때에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너를 반드시 죽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엘리야가 이 이야기를 듣고서 이 엘리야가 생명을 위하여 도망을 치기 시작을 합니다. 저 이스라엘에서 내려와서 유다땅으로 내려와 브엘세바까지 이르러서 자기의 사환과 동료들을 머물게 하고, 거기서 더 남쪽으로 내려가서 광야로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광야에 이르러서 그는 한 나무 밑에 누웠습니다. 그 나무가 유명한 로뎀나무입니다. 로뎀나무 아래 누워서 그는 이제는 하나님 앞에 구합니다. 하나님이여, 이제는 충분한 것 같습니다. 이제는 할 만큼 한 것 같습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죽기로 작정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앉아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로 작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지쳐서 로뎀나무 아래 누워서 잠이 들었습니다. 천사가 어루만지면서 일어나 먹어라 하면서 어루만집니다. 영어성경에 보면 He youched me. 그가 나를 만지셨다.

상담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게 Stroke, 만지심, 어루만지심, 내가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의 눈빛을 바라보면서 그를 어루만지는 것입니다. 그게 상담 카운슬링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엘리야가 누워서 지쳐서 있는 그를 어루만지고 계십니다. 엘리야야, 일어나라. 깨워서 음식을 먹입니다. 엘리야가 음식을 먹다가 도로 잠들어 버렸습니다. 또 깨웁니다. 엘리야야 일어나라. 이 음식을 먹고, 이 식물을 먹고, 힘을 얻어라.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마다 기도하는 내용이 있지요. 하나님, 이 식물을 먹고 주의 일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그 내용은 이 장면에서 따온 내용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경의 내용을 따서 기도하는 것이 제일 좋아요. 주님이 주신 식물을 먹고, 이 식물을 마시고 영육간에 강건함을 얻게 하옵소서. 제일 바람직한 기도의 내용입니다. 엘리야를 깨워서 음식을 먹입니다.

머리 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그 떡과 물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해서 40주야를 달려서 하나님의 산 호렙산으로 갔습니다. 호렙산의 굴에 들어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엘리야가 로뎀나무에 있을 때고 그랬고, 엘리야가 지금 중요한 상황에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물어 보시는 질문은 똑같습니다. 네가 지금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네 사명의 자리는 이스라엘이 아니냐? 네가 헌신해야할 자리가 이스라엘이 아니냐? ‘아휴, 거기는 아합이 이세벨이 저를 죽이려고 하는데요? 거기는 대부분의 선지자들이 죽었고, 이제는 나만 살아있습니다. 나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거기를 갑니까?’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질문하십니다. 아무개야, 네가 왜 여기 와있느냐? 네가 지금 여기 있을 때냐? 무슨 이야기예요? 지금 네 사명의 자리가 어딘데, 지금 금요일 속회예배 시간에 가 있어야 할 네가 지금 여기 엉뚱한 곳에 있느냐 하는 이야기입니다.

요즘에 우리나라는 도박이야기 때문에 온통 난리지요. 바다이야기로 대표되는 도박, 그래서 온통 대한민국을 도박공화국이라고 그래요. 경마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데, 그는 컴퓨터를 통한 게임도박도 심각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그 도박에 빠져서 들어간 사람들이 많은지, 그 도박으로 인해서 한 해에 상상할 수 없는 돈들이 쏟아집니다. 공무원이 도박을 하다가 그걸 말리는 아내를 목졸라 죽이는 사건이 생기고, 도박을 하다가 많은 빚을 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생기고, 도박을 하다가 부부가 이혼을 하고, 도박을 하다가 가정에서 파탄이 생기고, 도박으로 인해서 온 나라가 지금 파탄에 이르렀어요. 아마 이 자리에도 도박에 여러분들이 취미삼아 어느 정도 깊이 빠져들어 있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 길거리에 큰 간판에 바다이야기, 무슨 물고기 그려놓고 그래서 바다이야기가 뭔가? 왜 엉뚱하게 이 도심지에 바다이야기가 무얼까? 해서 물었더니 그게 컴퓨터 게임장을 바다이야기라고 그런데요. 컴퓨터 안에 바다가 나오고, 뭐가 나오는데, 고기 안에 진주가 나오면 뭐가 터지고, 희안하다 생각했어요.

전국에 작년부터 동네마다 바다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더니 결국에 온 나라가 바다이야기 때문에 패가망신하게 생겼어요. 우리 성도 가운데는 바다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없어서 다행이기 합니다만은 바다이야기에 출입한 분들은 있으실 거예요.

잘못된 것이지요. 우리를 주님께서 부르십니다. 네가 왜 지금 여기 있느냐? 네가 지금 하나님의 자녀로써, 네가 지금 집사요, 권사요, 장로로써 지금 이 자리에게 있어야 되겠느냐? 지금 네 자리에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지 않느냐? 이 자리를 두고 네가 지금 어디에서 서성거리고 있느냐?

오늘도 거룩한 주일에 이 거룩한 예배의 자리가 아닌 엉뚱한 곳에서 지금 헤메고 다니시니 지금 그 사람들을 향해서 부르짖습니다. 네가 지금 어찌하여 부르짖느냐? 엘리야도 할 말이 있어요. 내가 지금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일했는데, 이제는 내가 안되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오직 나만 남았습니다. 그러니 내가 여기 밖에 더 오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합니다.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서라. 굴 앞에 나가서 섰을 때 큰 바람이 불어댑니다. 지진이 일어납니다. 불덩어리가 떨어집니다. 그러나 바람 속에도 지진 속에도 불 덩어리 속에도 주의 음성을 들리지 않았습니다. 바람이 지나가고, 지진이 지나가고, 불이 지나간 후에 조용한 상황 속에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이 하나님의 음성이 뭐예요?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합니다. 너는 이 길로 오라. 어느 길로 돌아오래요? 사명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거예요. 그 사명의 자리가 위험의 자리요, 두려움의 자리요, 위험한 자리라 할 지라도 네 사명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가지 사명을 주셨습니다. 다메섹에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왕이 되게 하고,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왕이 되게 하고,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의 후계자를 삼아라.

기름을 붓는 사명을 엘리야에게 허락하여 주십니다. 저 북쪽 다메섹 왕을 세우고, 아합왕을 세우고, 이제는 이스라엘 새로운 왕 예후를 세우도록 그렇게 사명을 주셨어요. 사명을 주시면서 돌아가는 그 엘리야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7000명이나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순결한 백성을 남겨두었느니라.

우리는 나 밖에 남은 사람이 없다고 안달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7000명이야. 7000명이라는 말이 뭐예요? 네가 함께 일하기에는 넉넉할 만큼 당신의 동역자들을 남겨 두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북한에는 종교의 자유가 없지요? 자유가 없는 것뿐만 아니라 지금 수십만의 많은 종교의 자유를 사모했던 사람들이 지금 정치 형무소에 주어져 있습니다. 모퉁이돌선교회는 북한을 전문적으로 선교하는 기관인데, 지금도 끊임없이 북한을 방문하는 조선족들이나 중국인들을 통해서 성경을 보따리에 넣어서 성경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외형적으로 칠곡교회나 평양에 있는 봉수교회는 외형적으로는 교회의 모양을 가졌고, 외형적으로는 교회의 모습을 갖췄지만 저는 그것이 정상적인 교회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지난 주에는 러시아 정교회가 세워져서 러시아정교회도 이제 평양에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러시아 정교회도 3명의 사제를 평양에서 보냈지만 그들도 순전한 공산주의자들이 가서 교육을 받아서, 사제흉내만 낼 뿐이예요.

그들에게는 예수가 그리스도가 아니예요. 그들에게는 예수가 메시아가 아니예요. 예수가 구세주가 아니요, 예수가 우리의 구원자가 아니예요. 그들의 구원자는 김정일이요, 그들의 메시아는 김정일이예요.

그러나 북한에도 김정일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000명의 순결한 백성들이 남겨져 있을 줄로 믿습니다. 앞으로 통일이 되고 나면 북한에서 순교의 신앙을 가졌던 사람들의 간증들이 다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만은, 분명한 것은 아합시대에도 엘리야가 남아놓은 자가 나 하나라고, 이제는 모든 선지자들이 목숨을 잃었노라고 생각을 하지만 오바댜는 100명의 선지자를 굴에 숨겨두고, 그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7000명의 순결한 주의 백성들을 남겨두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의 일을 하는데, 하나님 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선교회, 우리 속회 나 밖에 없어요라고 생각하면서 주님의 일을 회피하고, 사명지에서 멀어지려고 하는 사람들이 안 계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니라. 너를 위해서 너의 동역자로 7000명이나 너와 함께 일할 동역자들을 남겨 놓았노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시대에 남겨진 순결한 백성 7000명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땅이 아무리 도박으로 들끓고, 이 땅이 아무리 부정부패로 들끓고 아무리 이 나라 이 민족이 육체의 정욕으로 치닫는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순결한 백성 7000명이 남아 있는 한 이 민족 이 나라는 아직도 희망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아직도 이 나라를 사랑하시고, 아직도 이 민족을 사랑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깨어 각성하며 눈물로 회개하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명의 자리로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 이 땅을 회복하시고, 이 땅을 고치실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참으로 혼돈한 이 시대에, 엘리야와 아합의 시대와 같은 때에 그 아합의 핍박과 우상숭배에 엘리야가 고통을 받고, 호렙산까지 내려왔으나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내가 이 곳에 있느냐며 다시금 사명을 주시고, 다시금 사명의 자리로 돌아가기를 원하시며 그에게 7000명의 순결한 백성들을 남겨두고 동역자로 남으셨던 것처럼 오늘 이 시대에 도박으로 횡행하고, 물질적인 타락으로, 윤리적인 타락으로 횡행하는 시대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순결한 백성들을 남겨두셔서 이 민족을 버리지 아니 하시고, 이 나라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사랑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이 시대에 우리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대에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황요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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