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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피가 네 머리로 (삼하 1:1-16, 롬 12:14-21, 마 10:40-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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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네 피가 네 머리로
본문 : 사무엘하1:1-16, 로마서12:14-21, 마태복음10:40-42

1. 역사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똑같은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지라도 기독교인의 관점이 다르고 유물론자들의 관점이 다릅니다. 유명한 함석헌 씨의 대표적 저작 가운데 하나인 「뜻으로 본 한국 역사」라는 책은 원래 그 제목이 「성서적 입장에서 본 한국 역사」였습니다. 비록 한국에서의 기독교 역사가 가톨릭까지 합한다고 해도 200여년 밖에 되지 않지만 그분은 성경을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우리나라의 5천년 역사를 성경적 관점에서 조명하고 해석했습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뚜렷한 역사관을 가지고 쓴 이 책은 관점을 달리하는 사람들로부터도 높이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최근에 어떤 방송사에서 “서울 1945”를 방영하면서 처음부터 많은 저항을 받고 있습니다. 그 방송사에서 시청자분들을 모시고 시청 소감을 듣는데 특히 연세 드신 어른들이 굉장하게 반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도대체 공영방송에서 대한민국의 건국 자체를 왜곡하고 부정하는 일이 있을 수나 있는 일이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어릴 때부터 철저하게 반공교육을 통하여 사상이 형성된 대부분의 기성세대들은 그런 반발에 공감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역시 입장의 차이에서 오는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대가 바뀌고 세상이 달라지면 역사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얼마 전에, 해방당시 수도경찰청장이었던 장택상 씨의 유족이 KBS 사장과 드라마 제작팀을 상대로 서울중앙지검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했습니다. 그 내용인즉 몽양 여운형 암살 배후에 경찰이 있었다고 한데 대하여 명예를 훼손당했다는 것입니다. 일단 소송이 제기된 이상 그 판단은 법에서 알아서 할 일이지만, 우리 사회가 아직도 과거사 운운하는 것은 역사 청산에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해방 후, 북한은 예외로 하더라도, 남쪽에서 나라를 세우면서 과거 친일파들, 그 가운데서도 애국자들을 몹시 괴롭혔던 그런 악질 인사들이 건국을 하는 마당에 여전히 요직들을 차지한 반면 일제에 항거해서 해방을 위하여 목숨 걸고 싸우던 애국지사들과 그 후손들은 해방된 대한민국에서도 여전히 죄인처럼 살아야 했던 것은 우리 역사의 굴절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은 그 후에도 숱한 정권 교체기를 통하여 연면히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이럴 테면 일제에 충성하던 사람이 자유당에 충성하고, 다시 민주당-공화당-민정당 등 계속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면서 집권여당에 붙어 개인의 출세 길을 지켜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기회주의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발버둥치면서 부귀공명을 누려봐야 7-80년 한 평생일 뿐입니다. 어쩌면 당사자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여론이나 역사의 심판을 받을 수도 있고, 또 다행히 생전에 그런 치욕은 면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로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도리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무엇보다 신앙에 충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살펴야 합니다. 예수께서 게쎄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은 단지 그 순간만의 기도가 아니라 우리주님의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잠시 살고 떠날 이 세상에서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유명한 독일의 순교신학자 본훼퍼는 오직 “하나님 앞에서”라는 모토로 신학을 하고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주님 보시기에 “착하고 충성된 종”일 것입니다.

2. 오늘 사무엘 하 본문 1:1 맨 처음에 “사울이 죽은 후에”라는 말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것은 한 시대가 마감을 하게 되면서도 아직 새로운 시대는 문을 열지 못한 과도기적 혼란시기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여기 역사의 명암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용케 블레셋의 아기스에게서 벗어나므로 동족과 전쟁터에서 맞부딪치는 일은 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시글락 자기들의 터전에 돌아와 보니 그동안 아말렉 군인들이 침략해 들어와서 다윗의 거점을 완전히 초토화 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 남아있던 일행들을 모조리 포로로 끌고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이 급박한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것을 다 회복하였습니다. 개선장군이 되어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했습니다.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되었습니다. 궁지에 몰린 사울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보다 더 훌륭한 아들이었던 왕자 요나단도 역시 그 전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비참하게 최후를 마쳤습니다. 그렇게 죽이려고 했던 다윗은 살아남고, 승승장구합니다. 그 비결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결국 스스로 자기 목숨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한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은 7-80년 사는 이 세상으로 모든 것이 종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마저도 마치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잠시 잠간 후면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준비하고 계십니까? 오늘 여기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살지 않으면서 어떻게 이후에 하나님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겠습니까? 우리 찬송가539장 4절에 “바라던 천국 올라가 하나님 앞에 뵈올 때 / 구주의 의를 힘입어 어엿이 앞에 서리라”고 했습니다. 여기 “어엿이 선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 앞에 어엿이 서겠습니까? “구주의 의를 힘입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믿음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알고, 오직 한 평생 믿음만 붙잡고 산 것을 일컬어 “구주의 의를 힘입어”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정말 주님 앞에 설 때 “어엿이 서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울의 아들이요 다윗의 훌륭한 친구였던 요나단도 역시 그 전장에서 죽었습니다. 부자가 같은 날 같은 전투에서 함께 죽었지만 그러나 역사는 그들에게 대하여 엄청나게 다른 평가를 내립니다. 요나단의 죽음은 장열하다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기는 양심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다윗과 같은 충성된 일꾼을 알아볼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고자 자기에게 당연히 돌아오게 될 왕의 자리는 물론 자기 목숨도 돌아보지 않고 최선을 다해 싸우다 전사한 이스라엘의 용사였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모습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코 여러분의 시선을 현실에 고정시키지 마시기 바랍니다. “먼저 하나님”을 찾는 신앙,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나아가는 인생, 그리고 저 천성을 향하여 나아가는 순례자로서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비록 세상이 나를 제대로 알아주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나 같은 사람이 역사에 무슨 이름을 남길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였다”고 인정받고 상급 받을 수 있는 그런 복된 삶을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3. 오늘 사무엘서 본문에 보면 아까 말씀드린 기회주의자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다윗은 아직 시글락 망명지에 머물러 있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사울의 전쟁터에서 왔다는 사람이 다윗 앞에 나타났습니다. 옷은 찢어져 있었고 머리는 온통 흙투성이였습니다. 다윗이 그에게 “너는 누구며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은 아말렉 사람인데 이스라엘 진영에서 도망쳐 왔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은 우선 사울 왕과 요나단의 안부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전황부터 물었습니다. 그 아말렉 사람은 이스라엘과 사울의 군인들이 블레셋 앞에서 패전했다는 소식과 함께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의 전사 소식도 전했습니다.

다윗은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임금인 사울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다그쳐 물었습니다. 그런데 아말렉 사람은 매우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것은 전상을 입은 사울이 자기를 보고 죽여 달라고 해서 자기가 죽여주었다는 것이었습니다. 10절에 보면 “그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의 곁에 서서 죽이고 그의 머리에 있는 왕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것은 거짓말이었습니다. 사실은 사울은 자기 칼에 엎드러져 자살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아말렉 사람은 왜 이런 거짓 보고를 하였습니까? 그가 생각하기를 사울이 그토록 다윗을 죽이려고 따라다녔으니 그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 그것도 사울을 죽이는데 자신이 일조했다는 보고를 하면 이제 곧 왕이 될 다윗에게 후한 상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는 대권이 다윗에게로 넘어가게 되었으니 기회를 놓치지 말고 다윗 편에 붙어야 장래가 열릴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기회주의자의 처신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런 기회주의자의 말로와 이런 일을 접하면서 들어나는 다윗의 신앙과 인격을 봅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이 다윗은 비록 사울에게 쫓겨 다니면서도 한번도 사울을 해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는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신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처리하실 것이요 자신이 손 댈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다윗은 이 아말렉 사람에게 대노하여 결국 그를 처치했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거듭해서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그것이 그를 처치하는 이유라고 한 것입니다.

구약의 욥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동방의 의인이요, 또 막강한 힘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 욥이 어느 날 엄청난 재난을 당하여 알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랬으면 과거 은혜 입은 사람들이 어떤 모양으로든지 동정하고 도와주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했습니까? 떼거리로 찾아와서 욥을 정죄하고 저주하지 않았습니까? 이게 인심입니다. 남이 망하는 것을 보고 손뼉치고, 우리 속담처럼 “사촌이 땅 사면 배 아파하는”것이 우리들의 심리입니다. 다윗은 이런 약삭빠른 사람을 처리했습니다. 그리고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 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자업자득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 아말렉 사람은 얄팍한 처세술을 내세웠다가 자신을 망치고 말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세상에서 큰 자가 아니라, 승리자가 아니라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왕이 될 성싶었을 때는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열렬히 환영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체포당하시자 하루 밤 사이에 등을 돌렸습니다. 떼를 지어 빌라도에게 몰려 와서 “십자가에 박으라!”고 난리를 떨었습니다. 기회주의자들의 모습입니다. 진리도 정의도 없습니다. 자기 한 몸 살아남고, 출세해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 이것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게 되는 죄악과도 같은 것입니다.

다윗은 이렇게 비참하게 전장에서 죽게 된 사울과 요나단을 인하여 얼마나 슬퍼했는지 모릅니다. 너무 슬픈 나머지 “슬픈 노래”를 지어 국민들에게 부르도록 까지 했습니다. 이것이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의 모습이요, 이것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마음이요, 이것이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지녀야할 마음자세입니다.

내 이웃이 웃을 때 같이 웃어줄 수 있는 마음, 내 이웃이 울 때 같이 울어줄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저 홍포 입은 부자 집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에 눈독 들일 것이 아니라 그 대문 앞에서 고난당하는 나사로를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을 대접하는 것이요, 그 행위의 열매를 여러분이 거두게 될 믿습니다.
(김오동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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