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사명을 붙잡고 일어나 걸어라! (빌 3:12-14)

  • 잡초 잡초
  • 380
  • 0

첨부 1


지난 월요일 저녁에 김진혜 집사님이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제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목사님, 최은주 집사님을 위해서 기도해 주세요"
영문도 모르는 제가 물었습니다.
"왜요?"
"최 집사님이 3개월 동안 계속해서 하혈을 하고 있대요.  병원에서는 자궁을 들어내라고 합니다.  어떻게 해요?"
아파 본 사람이 아픈 사람의 심정을 안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기도하자고 대답을 하고서는 수요일 저녁에 우 집사님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더니 상태가 생각보다 심했습니다.

그래서 목요일 저녁에 최 집사님을 교회로 불렀습니다.  두 사람이 유아실에 앉아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현재 몸의 상태를 물었습니다.  여전히 하혈은 심하게 계속되고 있었고, 허리의 통증 때문에 자리에 앉아 있기도 힘들어했습니다.

알고 보니까 지금까지 허리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통증을 참으면서 예배 시간에 피아노를 치고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사무실에서 직원들과 예배를 드리면서 허리 통증 때문에 견디지 못해서 그 자리를 빠져 나와야만 했던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신경은 날카로워졌고, 몸은 많이 축이 나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하다가 한 마디를 했습니다.
"왜,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요?  옛말에 병은 알리라고 했습니다.  내일 새벽기도시간부터 강단 앞에 나와서 기도를 받도록 하세요."

다음 날 새벽기도회 시간에 설교를 마치고 합심기도로 마무리를 하게 하고서 눈을 뜨고 보니까 최은주 집사님이 강단 앞에 나와서 무릎을 꿇고 있었습니다.  아비의 심정으로 질병이 떠나가기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한 후에 간절히 안수 축복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다음 날 토요일 새벽기도회 시간에도 동일하게 안수 축복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토요일 아침, 그러니까 어제 아침에 월삭예배를 위해서 가게에 가서 예배를 드리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하혈이 멈추었다는 것입니다.  3개월 동안 멈추지를 않았던 하혈이 멈추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제 마음이 얼마나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했는지 모릅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다가 최 집사님에게 어제 오후에 다시 확인 전화를 했습니다.

"집사님, 하혈이 완전히 멈추었지요?"
"예, 목사님.  아주 약간 비추지만 멈추었어요."
제가 그랬습니다.
"이 이야기를 내일 설교 때 해도 될까요?"
"목사님, 하세요.  하혈이 멈추었으니까 이야기하세요."
최 집사님의 하혈을 멈추고 마음에 평안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에 보면 12년 동안 하혈을 했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으면 낫겠다는 그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바로 그때에 이 여인의 병이 깨끗이 나았다고 했습니다.  이 여인의 질병을 고쳐주셨던 하나님께서는 우리 최 집사님의 모든 질병도 완전하게 고쳐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최은주 집사님에게 임하셨던 하나님의 역사가 오늘 이 자리에 앉은 여러분 모두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경험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온 몸으로 느껴보십시오.  그래서 저와 여러분 모두가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쓰임 받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보면,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별난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를 믿고 살지만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믿고 삽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땅의 종착점이 무덤인 줄 알고 슬퍼하며 삽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영생을 얻었고 부활을 믿고 행복에 겨워 삽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천국을 보고 삽니다.

그리스도인.  그들은 가치관이 다르고, 인생의 목적이 다릅니다.  사는 방법이 다르고, 종착점이 다른 참으로 별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  그들에게는 세상이 가질 수 없는 높은 자존감이 있습니다.  참으로 고상한 신분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그들의 기를 꺾을 수 없고, 세상의 환난이 그들을 낙심시킬 수 없습니다.  세상의 감옥이 그들의 자유를 결박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어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행복 선언이 있습니다.  자존감이 있습니다.  그들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오늘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된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 된 이 거룩한 자존감으로 세상을 향해 외치십시오.
"여러분, 모두 다 나와 같이 되세요"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은 한 생명을 향한 훈련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에서 드러납니다.  깊이 사랑하면 더 깊이 훈련을 시킵니다.  반면에 사랑하지 않으면 훈련도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사랑의 하나님이 그 자녀를 훈련하실 때에 때로는 전혀 이해하기 어렵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훈련을 시키신다면 이렇게 힘들어하지도 않고, 고민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내가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방법으로 나를 훈련시키십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내 생각과 판단과 이성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때에라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훈련을 꼭 참고 붙들고 나가면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깊게 신뢰해야 됩니다.  세상이 나를 버리고, 사람들이 나를 떠나도 하나님은 나를 떠나지도 아니하시고 버리지도 아니하신다는 믿음을 붙잡아야 됩니다.

사랑은 숨겨진 훈련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미련한 인간들은 지금 내게 나타난 고통만을 보고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어날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계십니다.  우리 어리석은 인간들은 환경을 바라보고 있지만 하나님은 장차 우리가 누리게 될 가나안 축복의 땅을 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고통을 바라보지 말고 나를 통하여 드러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십시오.  환경을 바라보면서 절망하지 말고 이것을 통하여 드러내실 하나님의 사랑과 역사하심과 축복을 기대하십시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인생의 역경은 또 다른 행복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의 삶의 고통은 기쁨을 낳기 위한 산고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무슨 일을 당하든지 자신의 인생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모두가 끝났다고 말하는 그 순간에도 우리는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면서 믿음을 붙들고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이 절망을 부르짖을 때에 우리는 희망을 노래해야 합니다.  세상이 불평하고 원망할 때에 우리는 감사와 찬양으로 입술의 제사를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만사가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마음에 평안과 기쁨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세상 사람들은 늘 안전한 것만을 원합니다.  안정된 직장, 안정된 투자, 안정된 생활, 안정된 교회.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서는 강하고 담대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풍요와 위로만이 꼭 하나님의 축복은 아닙니다.  고난이 없으면 인간은 결코 분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안정과 풍요만을 즐기려 하지만, 하나님은 더 큰 역사를 위해서 계속 분발하기를 원하십니다.  강하고 담대함으로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기를 원하십니다.

기억하십시오.  믿음의 사람은 오직 그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해야만 합니다.  불평과 원망과 분노의 민족이 역사의 주역이 된 적은 없습니다.  불평과 원망과 분노의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쓰임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혼란과 혼돈 속에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붙들어야 합니다.  역사의 완성자이신 하나님의 도우심과 역사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붙드는 자는 오늘도 주님의 권능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역사하심을 믿는 자는 오늘도 주님의 크신 권능을 눈으로 보고, 온 몸으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오늘 이 자리에, 저와 여러분에게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해서 일어나 마지막 시대에 역사의 주역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떨치고 일어나 이 땅을 정복하는 하나님의 강한 용사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권능을 붙잡고 나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기대하십시오.  토기장이가 손수 그릇을 빗어 만들어 가는 것처럼 내 가정을 축복의 가정으로 빗어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대하십시오.

아십니까?  기대가 없으면 얻을 것도 없습니다.  기대가 없으면 달려가야 할 비전도 없습니다.  기대가 없으면 그 삶에 열정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실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십시오.  믿음은 다가올 미래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관심은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것에 있습니다.  이미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가능성과 기회에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푯대를 향해서 좇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앞으로 향하여 달려가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미래에 이루어질 어떤 목표를 추구하면서 어떤 것을 향해 끊임없이 발돋움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나라든, 어느 민족이든, 어느 기업이든, 어느 개인이든 일어난 해가 있고 넘어진 해가 있습니다.
소련은 89년에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89년에 동구권의 어떤 나라는 다시 일어났습니다.

저는 이 해, 2006년이 우리 교회가 이 땅에 세워진 이래 최고의 해가 될 것을 믿습니다.  저는 금년 2006년이 우리 언양 영신교회 가족 여러분들의 생애에서 가장 축복된 해가 될 것을 믿습니다.  이 기대와 믿음을 붙잡고 일어나십시오.  일어나 내 가정을 세우고, 가문을 세우고, 민족을 세우는 주역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성공도 결코 끝이 없고 어떤 실패도 결코 최종적인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 여정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실패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와 손길이 떠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버리시고 그에게서 떠나가시니까 악신이 그를 지배하고 괴롭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더니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더니 요셉의 앞길이 잘 열렸다고 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요셉이 잘나서 앞길이 잘 열린 것이 아닙니다.  요셉이 처세술이 뛰어나서 애굽에서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에 잘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더니 그가 성공한 삶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 함께 하십시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십시오.  이 시간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을 가지십시오.  살아서 역사하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소망을 가지십시오.  바다 같은 사랑의 마음을 가지십시오.  믿음, 소망, 사랑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는 승리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인류 역사 이래로 모든 문제는 인간이 내었습니다.  인생 여정에서 만나는 모든 문제는 언제나 사람에게서 났습니다.  인간 자신이 문제를 내었고, 스스로 그 문제를 꼬이게 만들었습니다.  스스로가 만든 그 문제에 자신이 빠져서 허우적거리면서 힘들어합니다.  그리고는 길이 없다고 절망합니다.  해답이 없다고 주저앉아버립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인생 여정에서 만나는 모든 문제의 해답은 언제나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는 순간부터 문제를 만나게 되고 그 문제의 수렁에 빠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그 모든 문제는 실타래가 풀리는 것처럼 다 풀려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연단하시기를 원하시지만 사단은 언제나 우리를 시험에 빠져들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 크게 쓰시고자 연단하십니다.  우리에게 더 넘치는 복을 주시고자 연단하십니다.

그러나 사단은 절망하도록 시험에 빠지게 합니다.  사단은 인생을 포기하도록, 사명을 포기하도록 시험에 빠지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연단을 받을 때에 그것을 사단의 시험으로 내주지 말아야 합니다.  설령, 사단이 나를 시험에 빠지도록 함정을 만들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연단하신다는 믿음을 붙잡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욥의 성공했던 인생의 비결입니다.

욥을 보십시오.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욥의 믿음을 칭찬하십니다.  그런데 사단은 오히려 그것을 시험하는 시간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먼저 그는 가축의 상당 부분을 도적떼들에게 빼앗겼습니다.  잠시 후에는 기둥이 무너져서 그의 자녀들이 다 죽었습니다.  동시에 그의 남은 재산도 다 강탈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몸에는 심한 악창이 나서 기와조각으로 온몸을 긁어야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는 욥을 저주하고 떠나갔습니다.  이 모든 것이 48시간 안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사단은 욥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저주하도록 시험에 빠지게 했습니다.  비록 사단이 욥을 시험했지만 그러나 욥은 그것을 하나님의 연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그의 이 고백처럼 욥은 마지막에 엄청난 복을 받았습니다.  이전보다 더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하나님의 연단을 받을 때에 그것을 사단의 시험으로 내주지 마십시오.  비록 내가 사단의 시험을 받고 있을지라도 그것을 하나님의 연단으로 바꾸어서 창조적인 신앙으로 마지막 시대에 부름 받은 주님의 제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주님의 전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보다도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받으십시오.  마귀는 사람을 충동질하지만 성령은 언제나 사람을 감화 감동시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의 충동에 서두르지 말고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소멸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은 어떤 시련에도 결코 낙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십니까?  육신의 안식을 위하여 밤을 주시는 하나님은 영혼의 정화를 위하여 시련의 밤도 주십니다.  그 영혼이 좀 더 아름다운 정화가 필요하면 좀 더 큰 시련이 있을 수도 있고, 좀 더 긴 시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결국은 밤이 지나가는 것처럼 시련의 날도 지나갑니다.  중요한 것은 캄캄한 밤 길을 걸어가고 있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과 함께 하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보십시오.  아무리 험하고 캄캄한 밤길을 걸어가고 있는 아이라고 할지라도 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있으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는 아이들은 결코 환경을 문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일진대 우리가 주님 안에만 거한다고 하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인간이 당하는 고난 중에 하나님이 모르시는 것이 없고, 우리가 받는 복 중에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우상은 제물을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의 중심적인 존재는 언제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제물을 보시고 축복하시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중심을 보시고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사명을 붙들고 일어나 걸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 하십니다.  무기력한 자에게 능력을 더 하십니다.  피곤하고 곤비한 사람에게 새 힘을 공급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가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여, 일어나십시오.  사명을 붙잡고 일어나 주님께서 보여주신 한 비전을 향해 달려가십시오.  이 마지막 시대에 사명을 붙잡고 크게 떨치고 일어나 하나님의 영광을 만방으로 하여금 보게 하십시오.

지난 주간에 우리 교회가 새 성전을 계약했습니다.  이곳이 도시거래허가구역이라서 군청에서 허락이 나야만 하기 때문에 나머지 잔금은 다음 주간으로 미루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새 성전 리모델링 비용 때문에 걱정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솔직히 저도 전혀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령님께서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말씀을 전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안 된다고 하는 메뚜기 콤플렉스를 나사렛 예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으로 떨쳐내십시오.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기억하사 도우실 것입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명을 붙잡고 일어나 한 비전을 바라보면서 달려가기만 한다면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했던 놀라운 하늘의 역사를 보게 되고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인생이란 어차피 몇 안 되는 경기자와 수많은 구경꾼으로 나누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구경꾼들에게는 꿈도, 목표도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비전도 없고, 사명도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자신을 더 크게 쓰임 받고자 하는 훈련도 없습니다.  그저 관중석에 앉아서 편안하게 구경만 하면 됩니다.  참여하지 않으니까 염려도 실패도 없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구경꾼에게는 상급이 없습니다.  면류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어떠한 일에도 결코 구경꾼이 되지 마십시오.  우리 안에 있는 메뚜기 콤플렉스를 던져버리고 사명을 붙잡고 일어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을 쟁취하십시오.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지막 시대에 주님으로부터 쓰임 받는 주인공이 되십시오.  언제, 어느 곳에 있던지 항상 역사의 주인공이 되십시오.  역사의 주인공이 되라는 말은 사명을 붙잡고 일어나 주님께서 내게 주신 비전을 향하여 꾸준하게 걸어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일으키시고 주관하시는 부흥의 역사를 보기를 원합니다.  더 원합니다.  그러나 그 부흥의 역사는 그냥 일어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구경꾼에게는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명을 붙잡고 일어나 힘차게 달려가는 사람에게 부흥의 역사는 일어납니다.  그 심령에 부흥의 파도를 소망하면서 열정을 품고 주를 위하여 헌신하는 그 심령에 부흥의 역사는 일어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사명을 붙잡고 일어나 내 인생에서 멋지게 하나님께 쓰임 받는 축복의 한 때를 열어 가십시다.
새 성전을 통해서 만들어 가실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면서 우리 모두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헌신의 시간들을 만들어 가십시다.
새 성전이 이 땅을 치유하고 구원하는 방주가 되게 하십시오.
새 성전이 여러분의 축복의 방주가 되게 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가 사명을 붙잡고 일어나 주님께서 주신 한 비전을 향하여 후회 없는 멋진 시간들을 만들어 가십시다. (오주철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