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서주일] 계시의 성경이 당신의 장난감입니까? (계 1:1-3)

  • 잡초 잡초
  • 288
  • 0

첨부 1


세상에는 특별계시 같은 일반계시가 있고, 일반계시 같은 특별계시가 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특별계시와 일반계시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특별계시는 성경기록 목적으로 어떤 사건을 일으켜서 기록케 해서 기록이 된 것으로 그 사건 속에는 환경도 조성되고, 장소적으로 활동적으로 움직여진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계시목적에 의한 활동영감의 감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계시목적에 의한 활동영감의 감화에 의하여 움직여진 것을 기록영감의 감화에 의해 기록이 된 것을 특별계시, 성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등용된 인물, 등용된 사건, 등용된 활동 이것은 전부 다 특별계시에 속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성경에 기록된 모든 존재 역사 이력 사건들은 다 활동영감에 의해 움직여졌다 그 말입니다. 인간 편에서 보면 제 스스로 움직인 것 같은데 활동영감에 의해서 움직여졌고, 또 움직여진 그것을 선지사도들로 기록영감의 감화를 입혀서 성경을 기록케 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성경)을 특별계시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특별계시라고 할 때 예를 들면 요한계시록이나 서한서나 다른 계시서들은 기록영감의 감화에 의해서, 또 활동영감의 감화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활동된 것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만 특별계시로만 알고 있지 그 성경의 사건들이 성경기록 목적에 의하여 움직여진 것임을 알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성경에는 성령님이 직접으로 와서 가르쳐준 것이 아닌 활동들이 많이 있는데, 특히 구약성경에 많지 않습니까? 이방군대들이 ‘야, 우리 정복하러 가자’ 하는 그런 건 하나님께서 직접 ‘쳐들어가자’ 그런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꿈으로라든지 환상, 음성 등 하나님이나 예수님이나 성령님이 직접적으로 역사한 것을 기록한 것만을 특별계시로 보고, 그렇지 않은 것은 특별계시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또 모든 성경의 내용은 성경을 기록하기 위한 활동영감의 감화에 의해 움직여진 것이 기록된 것으로 보지 않고 평상시처럼 일반적인 사건들이 죽 있었는데 성경을 기록할 때 그 여러 사건들 중에 ‘아, 요거는 교훈이 될만하구나’ 하고 좋은 교훈이 될 것만 골라서 기록하는 사람이 성령의 영감의 감화를 받아서 기록한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이것은 세상에 수많은 사건들이 있는데 설교하는 사람이 이미 있는 이 여러 사건들 중에 교훈이 될만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추려 가지고 예화로 써먹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성경이 여러 사건들 중에 교훈이 될만한 것만이 기록이 된 것이라면 결과적으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하는 논리가 돼 버리는 겁니다. 디모데 후서 3장 16절로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라고 했는데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이 말이 부정이 되는 결과가 되니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 아니다’ 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서 나귀가 발람 선지자에게 말을 한 사건이 민수기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민수기는 모세가 기록을 했는데 모세가 그 사건을 기록할 때 그 사건이 하도 희귀하기 때문에 기록한 것인가? 마귀가 말을 한다는 건 희귀한 거 아닙니까? 또 나귀 자기가 스스로 사람의 말을 말한 것이냐? 그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성령이 괜히 아무 의미없이 나귀에게 말을 하게 한 것이냐, 성경을 기록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냐? 어느 겁니까? 성경을 기록하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성경을 기록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나귀에게 그 말을 하게 한 것이니까 그 말씀을 발람이 들을 때는 당나귀의 말이지만 그 당나귀의 말도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또 한 예로 사단이 예수님에게 시험한 것이 마태복음에 기록이 돼 있는데 그 사건을 마태복음에 기록한 것은 사단이 예수님에게 시험을 했으니 그 사건이 하도 신기하기 때문에 기록한 것이냐, 아니면 성경을 기록케 하기 위해서 성령이 사단을 통해서 그렇게 하게 한 것이 기록된 것이냐?

그러면 어떤 사건을 성경에 기록을 안 했으면 성경이 아닌데 성경에 기록을 해 놓으므로 그 사건이 성경이 된 것이냐? 성경에 기록된 것은 그 사건이 성경으로 기록되기 이전의 상태로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이요, 성경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록 전은 성경은 성경인데 미기록 성경이라 그 말입니다. 그럼에도 기록영감의 감화를 받아 기록된 66권 성경이 특별계시라고 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미기록 성경에 대해서는 성경임을 모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미기록 성경까지도 염두에 둬야 됩니다.
이 미기록 성경은 성문계시 기록완성이 되기 전까지 구전적으로 흘러 흘러 내려오는 그 시간적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서신을 서한으로 알고 받았지만 알고 보면 하나님께서는 서한이 아닌 성경을 보낸 것입니다. 즉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의 서신을 서신으로 받았지만 우리가 오늘날 와서 보니까 하나님께서 성경을 서한 식으로 해서 보낸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께서는 계시목적에 의한 활동영감의 감화였고, 기록영감에 의한 감화로 그것을 기록케 한 것이고, 이것을 오래도록 보존하기 위해서 편집을 했고, 편집한 이것을 공의회에서 성경이라고 한 겁니다. 구약과 신약으로 편집해서 성경이라고 이름을 붙였으나 사실 이렇게 되기 전부터도 성경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편집되기 전에는 서신들이 누구의 집에, 또는 어떤 동굴 속에 등등 따로 따로 묻혀져 있었지만 그러한 상태로 있을 때도 그것은 성경인 것입니다.

이런 것을 몰라서 특별계시는 지금도 나타난다고 하며 ‘계시 존속설’을 말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만 이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계시 존속설이라면 어느 것을 성경이라고 선택을 해서 성경에 추가를 할 것이며, 성경 66권을 기준으로 믿어온 사람들은 후에 추가된 성경을 따라서 믿을 수가 없으므로 구원에 미달되는 신앙을 가졌다는 말이 되고, 또한 현재 66권 성경의 부족성을 주장하는 결과가 되니 심히 그릇된 생각입니다. 계시목적에 의한 활동을 기록영감의 감화에 의해서 기록된 66권 성경만이 특별계시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간혹 교인들에게 개인적으로 꿈으로라든지 환상으로라든지 자기에게만 특별히 뭘 보여주었다고 다고 하며 그것을 가지고 ‘나는 특별계시를 받았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러나 그것은 특별계시가 아닙니다.
특별계시라고 하는 원 뜻은 하나님께서 만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고, 그 다음에 우리가 이루어 나갈 수 있는 구원도리 진리이치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나 혼자 받았기 때문에 특별계시라고 하는 그런 의미하고는 질적으로 다른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런 개념을 모르고, 이런 개념이 없는,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이룰 구원의 도리 이치가 없는 그런 것을 가지고 ‘나에게만 특별히 주었기 때문에 특별계시다’ 하는 이거는 성경의 특별계시의 원 뜻을 모르고 하는 소리입니다.

자연법을 초월한 초자연적인 역사는 인간이 볼 때는 초자연적인 것이지만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특별한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일으키신다는 의미에서 특별계시라는 용어를 쓸 수도 있습니다.
초자연적이라는 것은 일반 자연이치의 순서를 거치지 않고 되는 것으로, 예를 들면 쌀을 심었을 때 자연법칙은 씨를 심어 가지고 몇 개월 공을 들이고 햇볕도 쬐이고 비료도 주고 해서 수확을 하는 것인데 그런 순서를 거치지 않고 갑자기 순간적으로 벼가 피었다고 하면 그것을 초자연적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무슨 특별한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일을 일으키시는 것을 특별계시라는 용어를 붙일 수도 있겠으나 사실은 성경 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보여주시는 것은 특별계시가 아니고 일반계시인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것만이 특별계시입니다. 어떤 사건이 특별히 보여지는 것을 특별계시라고 이름을 붙일 수도 있으나 계시적인 면에서 볼 때 모든 삼라만상이 다 자연계시요, 일반계시이지 특별계시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특별한 것을 보여주려면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보여 줄 수 있습니다. 갑자기 맑은 하늘에 구름이 새까맣게 낄 수도 있고, 금방 안개가 끼어 가지고 밤처럼 만들어 놓을 수도 있고 한데 이것도 특이한 것이니 특별계시입니까? 특별계시가 아닌 자연계시입니다. 성경만 특별계시입니다.

성경에 비몽사몽간에 보여준 것이 있는데 그렇게 보여준 것은 시간적으로 순간적이고 임시적인데 순간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게 임시적인 것입니까, 특별계시입니까? 성경에 기록된 것은 임시적으로 순간적으로 보여줬다고 그래도 그건 전부 다 특별계시입니다. 성경에는 임시적으로 보여준 것도 있고, 순간적으로 보여준 것도 있고, 길게 보여준 것도 있고, 불신자의 행동도 있고, 마귀의 말(言)도 있고 다 있지만 그건 전부 다 특별계시입니다.
또 누가 무슨 말을 했던, 마귀가 말을 했던 당나귀가 말을 했던 그건 전부 다 특별계시입니다. 성경에 개인이 개인에게 말을 했어도 온 인간에게 필요한 구원도리의 하나님의 뜻이 담긴 말이므로 특별계시입니다. 성경에 그 때 그 지방에만 그 사건이 딱 한 번만 일어난 것도 특별계시이고, 성경에 그 때 그 사람에게만 보여준 것도 특별계시입니다.
만인의 구원도리가 거기 들어 있고, 진리이치가 거기 들어 있기 때문에 특별계시라고 그러는 겁니다. 즉 특별계시의 궁극적인 원 목적의 뜻은 우리의 영원 궁극적인 구원이 들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들어 있지 않는 것은 특별계시가 아닌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은 전부는 우리의 영원 궁극적인 그런 구원이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특별계시라 그럴 때에는 그게 들어 있는 것입니다.
지금 어떤 초자연적인 사건을 만인에게 보여준다고 해도, 병자가 나아도, 죽은 자가 살아나더라도 그건 일반계시입니다. 확실히 못을 박아두어야 합니다. 그런 것을 성경처럼 인식을 하면 안 됩니다.

자연법대로 되어지는 것은 자연계시이고, 특별히 되어지는 것은 특별계시로 알면 안 됩니다. 성경 외에는 모두 다 특별계시가 아닙니다.
성경에 자연법대로 되어지는 것도 많습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이라든지, 꽃이 피고 지는 것이라든지, 예수님께서도 ‘들의 백합화를 보라’ 한 말씀도 있고, 또 아브라함이 이사를 간다든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사를 가는 것 등이 많이 나오는데 이런 것들은 지극히 자연적이고 일반적인 것들이지만 일반계시가 아니고 성경에 기록된 것은 그것도 특별계시입니다.
해가 뜨고 지는 그게 무슨 특별계시냐? 해가 뜨고 해가 져도 거기에는 만 인간들이 깨달아야 할 구원도리 진리이치가 거기 들어 있기 때문에 특별계시입니다. 벳새다 광야에서 무리들을 앉혀놓고 설교를 하니까 해가 기울어 간다 그랬을 때 그 사건 이면에는 주님이 만나를, 생명의 떡을 오병이어로 먹이는 계시성이 거기 들어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해가 지는 것을 통해 역사가 어두워진다, 진리가 어두워진다, 시대적 어두움 이런 것이 거기 다 드러나고 있는 것인고로 특별계시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는 특별히 되어진 것도 많은데 이적 기사 등 사건이 특별나서 특별계시라고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건 속에 하나님의 뜻과 구원도리 진리이치 영적 이치가 들어 있기 때문에 특별계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만이 특별계시로 이 특별계시 속에는 만 인간에게 해당이 되는 진리이치, 우리의 이룰구원의 이치와 도리가 들어 있는 것인데 오늘날 교회는 성경대로 사상을 갖는 교회가 별로 없습니다. 진리사상을 갖는 교회가 별로 없다 그 말입니다. 보면 설교단에 부흥목적, 부흥제일주의를 가지고 갖가지 전문적인 사람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을 몰라도 할 수 있는 말들을 설교단에서 하고 있습니다. 또 안일목적으로, 안전제일주의로 가르치고 있고, 영웅쟁이 허풍쟁이를 키우는 양성소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교회와 교인들이, 특히 교회 지도자, 교역자들이 성경을 들고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있는지? 꼭 살인을 하고 우상을 만든 것만 죄입니까? 교회에서 술 먹고 담배 피운 것만 죄냐 그 말입니다. 성경을 무시한 것만 죄이고, 성경구절을 인용해 세상적 가견적 물질적 육적 임시적인 것을 향하게 한 것은 죄가 아닙니까? 목사의 말에 교인들이 꼼짝을 못하도록 이 성경구절 저 성경구절을 인용한 것은 죄가 아닙니까? 성경을 인용해서 자기 발판으로 삼은 것은 죄가 아닙니까? 66권 성경을 외워가면서 성경을 밑받침하며 말하니 계시사상적으로는 잘못됐지만 문자적으로는 잘못되지 않았으니 죄가 아닙니까? 성경을 써먹되 자기의 인격과 성품이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으로 만들어지는데 써먹어야 하는데 만들어지는 데는 써먹지 않고 어떤 종교적인 사역을 하는데 갖다 써먹고, 헌금 내는데 갖다 써먹고, 성미 쌀 많이 나오라고 써먹고 하는 것이라도 ‘하나님을 위해서’ 라는 이름만 붙이면 믿음이고 충성이지 죄가 아닙니까?
어떤 사역이나 이력이나 인간 외적인 업적을 이루는 것이 물질에 속한 것입니까, 인격에 속한 것입니까? 기독교가 세상적 물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신앙입니까? 물질적 세상적인 것이 영원히 가는 것입니까? 영원히 가지 못하는 것이 진리입니까?

성경이 가르치는 사상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내공행이 있고, 외공행이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이건 잘 모릅니다. 우리는 성경으로 자체화 돼 가지고 내공행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을 자기 몸 밖에 써먹으면 안 된다 그 말입니다. 자기에게로 써먹어야 된다 그 말입니다. 성경의 정신과 사상으로 인격과 성품이 만들어져야 된다 그 말입니다.

‘일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어느 성경구절을 뒷받침해야 일을 성공리에 마칠까, 어느 성경구절을 밟고 가야 내가 종교계에서 출세를 하나’ 하는 이거는 죄가 아니고 성경적입니까, 죕니까? 남 두들겨 패고 도둑질도 안 하며 성경을 가지고 성공하겠다고 했어도 죄입니까? 자기 목적에 성경을 인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을 기준을 세워놓고 그 성경에 맞추어 나가야지 자기의 기준에 성경을 자꾸 꿰어 맞추는 이런 일들이 많습니다.
교회에서 어떤 성경 한 구절을 가지고 남의 입을 틀어막을 수도 있고, 자기 행동에 성경구절을 뒷받침하면 굉장히 힘이 있는 것 같지요? 그러나 이것은 성경을 무시한 죄입니다. 그러니까 그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성경을 무시한 죄를 회개해야 됩니다. 성경강의를 하면서 성경을 무시할 수도 있고, 성경을 들고 다니면서 성경을 무시하고, 성경과 상관없이 또 성경을 무시한 이런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 말입니다.
이방인들은 자기의 삶의 생에 있어서 그 척도를 성경으로 삼지를 않습니다. 인간이라는 인간을 기준 척도로 삼아 가지고 삽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성경을 척도로 삼아야 하는 이것이 정상적인 삶입니다.
성경을 무시하는 것은 역사적인 신령계를 무시한 겁니다. 성경을 가지고 성경을 무시하면 이거는 성경 남용 죄를 짓게 됩니다. 곧 성경구절을 가지고 이렇게도 써먹고 저렇게도 써먹고 뒷받침하면서 이용을 하는 죄라 그 말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가지고 성경대로 산다 하면서 영원계를 붙들지 않고 자기의 어떤 종교적 업적을 위해 성경구절을 자기 발아래에 두고 성경을 자기의 징검다리로 삼아 딛고 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게 다 죄란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교회들이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 얼마나 많은 죄를 짓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죄인 줄 모르고 이런 지적을 하는 사람을 마귀 사촌쯤으로 알고 죽이려 달려들며, 교인들에게 그런 죄를 더욱 장려하고 있는 실정이니 참으로 주님께서 직접 오셔서 치리를 하실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계시에 대한 바른 의의와 개념을 알아서 계시적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