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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탁월함의 초대 (창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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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유어 엑셀런시”란 말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각하”란 뜻으로 상대방에 대한 최고의 존칭입니다. 아무에게나 절대로 할 수 없어요. 대통령에게나 붙입니다. 물론 대통령과 국가를 대신하는 대사에게도 같은 말을 붙이기는 합니다만. 우리 평생에 그런 말을 들어볼 수 있겠어요? 부탁해서 들어볼 수는 있지만 실력까지 그렇게 될 수는 없어요.

하지만 특별한 존재가 되어 이러한 말을 듣고 대접을 받는다 해도 잠깐입니다. 대통령을 해도 우리나라는 5년 미국에서는 두 번 해서 8년입니다. 그러면 대접도 끝납니다. 평생 그 특권을 누리려면 왕이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유어 머제스티”란 말을 듣습니다. “폐하”란 뜻입니다. 이 대접을 받을 존재는 60억 인구 중에 손꼽을 정도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선택만 하면 그런 삶을 살게 된다고 합니다. 실제로 하나님 자녀로 왕이 되었으니 “폐하” 또는 “각하”란 말을 들어야 마땅합니다. 세상은 우리를 그렇게 부르지 않습니다. 신자 본인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장 말로는 못 들어도 그런 존재가 되고 그런 삶을 사는 건 할 수 있습니다. 온 우주로부터 그런 대우도 받습니다.

1. 탁월하게 만드셨다

어떻게 그렇게 되나요? 간절히 원하면 되나요? 왕이 되려면 우선 왕의 자녀로 태어나야만 하고요 왕인 아버지에게 선택이 되어야 합니다. 신자가 그런 존재입니다.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이 나를 선택해서 친 자녀로 삼고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깨닫는다면 내 생애 이보다 더 놀라운 사건은 없습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신자는 왕의 삶을 시작합니다.

아브람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살다보니 어느새 75세나 되었습니다. 누가 그를 원하겠어요? 놀랍게도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그래서 하나님을 따라갑니다.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별로 달라진 게 없어요. 돈은 좀 벌었지만 그저 보통 사람이었어요.

큰 민족 이루고 복 자체로 만들겠다고 했어요. 그러나 아브람은 이 약속에 반응을 잘 못했습니다. 기근으로 고생하다 애굽으로 피합니다. 거기서 아내를 누이라 속였다가 모두에게 창피를 당합니다. 조카의 가족과 싸우고요 그들이 노예로 잡혀가자 찾느라 전투도 해야 했습니다. 아들 낳으려고 첩을 얻은 뒤에는 가정 분란이 도무지 끊이지 않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하나님 믿는다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닙니다. 특별히 잘된 것도 없어요. 안 믿어도 이 정도는 다 삽니다. 그러다보니 별 볼일 없이 99세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예수 믿고 상당한 시간이 지났어요. 뭐 특별히 변한 게 있나요? 남들이 우리를 볼 때 탁월하다고 평가하나요? 복 많이 받았기에 우리처럼 되고 싶다고 하나요?

그런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 하라.” 어느 정도 하기도 힘든데 완전이라니요. 보통 사람들을 넘어서는 탁월한 삶을 살라는 겁니다. 그냥 하라는 게 아닙니다. 비결도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고 복이 되어라.”

믿음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 약속을 믿으면 즉시 그렇게 됩니다. 완전한 존재가 되는 겁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안 그래요. 남들이 보아도 안 그렇고요 내가 느끼기에도 안 그래요. 그러나 하나님 믿는 게 뭡니까? 그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생각하고 마음도 가지는 겁니다. 나는 완전하다고 믿는 겁니다. 이것이 탁월한 삶의 시작입니다.

아브람이 믿으니까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고쳐주십니다. “큰 아버지”가 “열국의 아버지”로 바뀝니다. 물론 얼마든지 내용상으로 다시 아브람이 될 수 있습니다. 믿음이 떨어지면 그래요. “내가 무슨 열국의 아버지람. 자식이 하나도 없는데. 실력도 없으면서.” 자신을 보면 그렇게 믿어집니다. 그러면 완전함은 없어요. 하나님을 믿어야 탁월해집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신자는 하나님에게 아브라함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아브람으로 평생 살 수도 있고요 아브라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상 신자는 둘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아브라함으로 변해갑니다. 지금도 같은 말씀은 선포되고 있어요.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대통령보다도 더 탁월한 하늘의 왕으로 살아라.”

2. 탁월함을 받아들이라

아브라함이 된 후에 아브람은 내용상 죽습니다. 아브라함이기에 매일 매일의 삶에서 하나님을 의지해 완전을 선택합니다. “내게는 완전의 생명과 능력이 주어졌다.” 이렇게 믿는 즉시 탁월함은 시작됩니다. 아브라함이 되는 겁니다. 믿고 행동하면 그 탁월함이 나타나고 경험됩니다. 그러면 아브람은 사라지고 아브라함만이 살고 점점 커지게 됩니다.

아브람은 자부심이 없습니다. 보통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긍지가 넘칩니다. 탁월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니까요. 당연히 자신을 사랑하게 됩니다. 자신에게 자부심이 없는 사람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아무렇게나 막 대우합니다. 탁월한 존재, 귀족적인 존재라면 할 수 없는 행동을 막하는 겁니다. 자기를 멸시합니다.

고교시절 방과 후에 청소를 합니다. 10명 중에 두셋만 열심히 하고 나머지는 빈둥거립니다. 그러다가 선생님이 나타나면 더 열심히 하는 척 합니다. 누가 잘 될 것 같은가요? 자기 짐을 남에게 지우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빈둥거리는 건 괴로워요. 그리고 자신을 얌체로 만듭니다. 잘 안되요. 남의 짐도 지고 가는 사람은 스스로 그만큼 커지는 겁니다.

탁월한 사람은 계명대로 삽니다. 남보다 열심히 살아갑니다. 더 많은 짐을 집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일단 뱉은 말은 끝까지 지킵니다. 일터에 정시보다 일찍 갑니다. 남이 안 봐도 열심히 일하고 아프다고 핑계 대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일하는 태도도 다릅니다. 잘난 척 하려거나 자랑하려하는 게 아닙니다. 탁월한 사람으로 자신을 대하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 보면 대부분 15분쯤 늦게 나타나서 어슬렁거리고 커피 마시다가 한참 뒤에 책상에 앉습니다. 전화 잡담, 게임, 인터넷읽기 등으로 하루 대부분을 빈둥거리며 보냅니다. 그러면서도 잘 되기 바랍니다. “하나님, 나는 복 안 주세요? 왜 나만 승진 안 되나요?” 그렇게 하면서도 잘 되면 오히려 망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질서를 망가뜨리니까요.

하나님 믿어도 탁월하게 믿어야지요.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 많은 예배가 습관이 된다면 얼마나 저주스럽습니까! 기도하고 성경보고 전도하는 데 관심 없다면 어떻게 탁월한 신앙생활을 하나요? 십일조 안내면서 물질의 복은 탁월하게 받을까요? 삶을 절대로 쉽게 살려면 퇴화합니다. 힘들려고 해야 건강하고 잘됩니다.

보통 사람들처럼 해서는 탁월한 복을 못 누립니다. 이건 아브라함이 아닌 아브람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으로부터 유익을 얻지 못합니다. 먼저 자신이 아브라함처럼 탁월자가 된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자신을 존중하세요. 하늘 귀족으로 변한 자신을 인정하세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로 믿어주세요.

우리는 뛰어난 삶을 살도록 선택되어 부름 받았습니다. 전능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식들이 아닌가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게 되는 겁니다. 요셉을 보면서 사람들이 말합니다. “당신을 보니 하나님을 보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요구하십니다. “나처럼 완전하라.” 하나님이 그럴 힘과 자격을 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3. 탁월함을 실행하라

아브라함은 이 말씀대로 완전을 실행합니다. 완전하게 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자신 속에 탁월함의 능력이 부어졌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귀하게 대합니다. 그리고는 그 수준의 삶을 실천합니다. 아브람일 때는 하기 어려웠던 일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행동합니다. 은 그렇게 하면서 신기하게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개인적으로 경험합니다.

그는 우선 할례를 행했고요. 그 후에는 하나님의 사자들을 알아보고 대접합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중보기도도 하고요. 그래서 100살이 되던 해에 귀한 아들을 얻습니다. 그 후로도 그의 삶은 탁월함을 향한 도전이었습니다. 탁월함을 받아서 실천합니다. 그러면서 탁월하신 하나님을 누립니다. 손해 보는 게 아니라 너무 잘 살고 권세가 넘칩니다.

손님 대접하는 것 귀찮습니다. 중보기도 하러 오는 것 힘듭니다. 전도하러 나가는 것 쉽지 않습니다. 내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는 것 어렵습니다. 불안 물리치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아니, 사실상 보통 사람, 아브람으로는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가능합니다. 같은 좋은 일도 아브람으로 하면 제대로 할 수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양심을 버리고 쉬운 길을 택합니다. 자기 몸과 마음을 아무렇게나 방임합니다. 하나님은 게으른 것 지저분한 것 다 싫어하십니다. 질서와 절제와 훈련하는 모습을 좋아하십니다. 탁월한 사람은 남을 물건도 소중히 여깁니다. 호텔에서 타월을 하나만 쓰고 전기를 아낍니다. 직장에서도 교회에서도 내 집처럼 깨끗하고 정성스럽게 합니다.

조엘 오스틴 목사님이 회사의 중역이었던 친구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분이 다른 회사의 높은 자리로 3개월 뒤에 옮기게 되었답니다. 이쪽 회사에서는 3개월 동안 계속 일해도 좋다고 합니다. 어떻게 그 기간을 보냈을까요? 오히려 전보다 더 일찍 나와 늦게까지 회사에 머뭅니다. 마지막까지 잘 정리하는 겁니다. 신기해서 왜 그러냐고 물었답니다.

“나도 새 회사로 옮길 때까지 좀 쉬려고 했어. 어느 날 회사에서 게으름 피고 있는데 하나님이 속에서 말씀하시는거야. ‘아들아, 네가 최선을 다해 이 회사를 섬기지 않으면 새 회사에서도 잘 할 수 없단다.’ 이 회사에서 받은 것을 갚아야 함을 깨달은거야.” 그는 자신의 진정한 상사가 누군지 깨달은 것입니다. 탁월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신자는 이미 탁월한 존재입니다. 캠프파이어의 장작더미 같아요. 탁월하기로 결심하세요. 열정에 불만 붙이면 됩니다. 처음에는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아도 차츰 삶 전체가 탁월한 것이 됩니다. 열정과 꾸준함만 유지한다면 어둔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뜨거운 불길이 됩니다. 내가 먼저 탁월한 삶의 불을 붙이고 교회와 가족과 직장을 변화시켜 봅시다.
(김기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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