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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라 (왕상 2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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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아침에는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라"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문 말씀에는 나봇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악명 높은 아합왕은 자기 왕궁 근처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을 보고는 탐을 내어서 그것을 빼앗고자 했습니다. 2절 말씀에 보면 "네 포도원이 내 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나물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합의하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냥 빼앗는 것이 아니라, 나봇이 갖고 있는 포도원보다 더 좋은 포도원을 주고, 원한다면 값을 계산해서 주겠다고 했으니까, 일종의 거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봇은 아합왕의 그 제의를 한 마디로 거절해 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3절 말씀에 기록된대로 "내 열조의 유업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찌로다." 그것이 이유였습니다.

  나봇의 이 무모한 행동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그의 상대는 절대권력을 쥐고 있는 왕이었습니다. 나봇은 왕의 명령이나 다름 없는 그 제의를 거절할 수 있는 입장이 전혀 못 되었습니다. 게다가 왕은 좋은 밭으로 바꾸거나 많은 돈을 주겠다고 하는 좋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사실, 왕이 억지로 빼앗아도 할 말이 없는 것인데, 왕의 그 좋은 제의를 거절한 나봇은 어떻게 보면 죽음을 자초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나봇은 자신이 죽음을 자초한 대로, 이세벨의 계획에 의해서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고, 그 포도원마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왕의 제의를 못 이기는 척 하고 받아 들여서 많은 돈을 받았다면, 그 돈으로 잘 먹고 잘 살고, 또 더 오래 살 수 있었겠지만, 그는 참으로 어리석어 보이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본문이 기록된 목적은 왕의 말은 반드시 잘 지키고 순종해야 한다거나, 나봇은 어리석은 사람이었으니까 나봇과 같이 살지 말라고 하는 차원에서 기록된 것은 분명히 아닐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그래도 분명히 뭔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과연, 오늘 본문 말씀은 어떤 의도에서 기록된 것일까 하고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데, 오늘 본문 말씀은 아마도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나봇이 자신의 포도원을 팔지 않고, 아합왕의 요구를 거절했던 것은 분명히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나봇이 왕의 요구를 거절하고 자기 목숨을 내어놓을 만큼 그 포도원의 가치가 그렇게도 절대적이었겠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봇에게는 자신의 포도원이 단순한 자신의 재산 이상의 의미를 가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면, 과연 나봇의 포도원은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우리가 알아볼 필요가 있는데, 나봇의 포도원은 먼저는 신앙적인 차원에서 봤을 때 의미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관계를 포도원을 비유로 들어서 설명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사야 5장 7절 말씀을 보면,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경우 예수님은, 예수님 자신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나봇의 포도원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그래서 나봇은 그 가치를 인정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합왕은 나봇의 포도원을 단순히 농사짓는 토지로만 생각해서 나물밭을 만들기 위해서 더 좋은 포도원을 주든지 값을 지불하겠다고 제의를 했지만, 나봇은 자신의 포도원을 단순히 농사짓는 땅과 같은, 그런 차원에서 거래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합왕은 세상적인 안목으로 그 가치를 평가하고 사려고 했지만, 나봇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가치를 평가하는 그런 신앙적인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봇의 포도원은 열조의 유업이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나봇이 아합왕의 요구를 거절한 직접적인 이유는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유업이기 때문에' 그는 팔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열조의 유업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찌로다."

  나봇이 내세웠던 "열조의 유업"은 그에게 있어서 가문의 정통성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옛날부터 유대인들은 열조로부터 이어지는 신앙과 전통을 매우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이어지는 언약과 축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은 그의 아들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고, 열 두 지파에 이르는 후손들에게 그대로 적용되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야곱은 아버지 이삭이 빌어주는 축복을 받기 위해서 에서를 제치고 자신이 복을 받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유대인의 전통에 비추어 볼 때, 나봇이 가지고 있던, 열조에게서 물려받은 그 포도원은 하나님의 축복을 상속하게 되는, 포도원 이상의 깊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봇이 자신의 목숨을 걸면서까지 포도원을 지키려고 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봇은 열조의 유업을 왕에게 주는 것은 하나님의 법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토지를 사고 파는 일에 대해서 율법으로 규정을 했습니다. 레위기 25장 23절 말씀을 보면,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25절 말씀에는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사고 팔 수가 없는 것이고, 너무 가난해서 돈이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땅을 팔게 되었으면 가까운 친척이 그 땅을 사서 그 땅을 돌려주라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봇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그는 그의 포도원을 지키는 일에 가치를 부여하고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포도원을 지켜내고자 했던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에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나름대로 규정을 해놓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좋은 집에서 사는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두고, 좋은 집에서 살기 위해서 열심히 저축을 하고 그의 전 인생을 주택 마련에 다 쏟아 붓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저축을 하고 미래를 다져나가기 보다는 인생을 즐기면서 사는 데에 가치를 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집은 전세집에서 살더라도, 차는 외제차를 타고 다녀야 하고, 저축을 하기보다는 하루 하루를 즐겁게 즐기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나봇은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자신의 포도원에 큰 가치를 두고, 자기의 인생을 걸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전에는 세상적인 그의 화려한 이력에 가치를 부여하고 살았지만, 그가 하나님을 만나고 난 후에는, 자신의 그 화려한 이력에 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오직 복음을 전하는 것에만 가치를 부여했습니다. 그래서, 복음 전하는 데에 별 필요 없는, 그전에는 그렇게도 중요하게 여기던 자신의 화려한 이력들은 배설물처럼 그냥 버려 버렸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겁니다. 그리고, 그 가치 있는 것으로 인해서 행복에 도취되고 기쁨을 누립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과연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고 있는가? 나는 나의 목숨을 걸고 지킬만한 가치 있는 것을 붙들고 있는가?"라고 하는,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그들이 가치 있게 여기는 그것에 나도 가치를 부여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인이라는 나의 신분에 맞는 것에 가치를 부여하며 살 것인지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들마다 자신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은 충분히 다를 수 있습니다. 저마다 다르게 가치 있다고 선택된 것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사람의 것은 잘못 되었고, 어떤 사람의 것만 옳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저마다 가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우리가 가치 있게 여기는 것에 대해서 적어도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달라야 옳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치를 두는 것에 대해서 우리도 똑같이 가치를 부여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구별되지 못한 삶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 우리가 가치를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생각하고, 정말 가치 있는 일에 가치를 부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땅끝에서 주님께 드릴 열매들을 가득 안고 주님을 만나는 데에 두었습니다. "땅끝에서"라는 찬양을 부르면서 이것이 내 인생에서 내가 붙들어야 할 비전과 목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고, 땅끝에서 주님께 드릴 열매들을 가득 안고 주님을 만나는 데에 목회의 길을 가는 것이 유익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저는 그것을 위해서 거기에 가치를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생각할 때에 제게 있어서 가치 있는 일이고, 이것이 결코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거나, 모든 사람이 제가 가진 것과 똑같은 가치를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생각하기에 정말 내 삶 전체를 드려서, 내 삶과 바꾸어도 아깝지 않을만한 그런 가치를 갖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나봇이 자신의 포도원에 자신의 모든 가치를 걸었다는 것이 온전하게 잘한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 수 있는 그 가치를 붙들고 살았기 때문에, 그는 행복한 사람이었고, 그는 인생을 헛되게 산 것이 아니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아침에 나는 정말 무슨 일에 가치를 두고, 나는 정말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를 한 번 점검해 보고 정말 내 인생의 전부를 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을 붙들고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날의 시대는 예전에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온 것들이 가치 있게 여겨 지지 못하고, 그 가치가 전도되어져서, 가치 없는 것은 가치 있게 여기고, 가치 있는 것은 하잘 것 없는 것으로 여기는, 그런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 역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일에 가치를 부여하고, 정말 우리가 목숨을 걸고 지켜내야 할 가치 있는 것은 지켜내지 못하고 헛된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목숨을 걸만한 어떤 가치 있는 것도 발견하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고 한다면, 우리는 세상을 잘못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봇처럼, 정말 신앙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일에 우리가 가치를 부여하고, 그 가치 있는 목표를 바라보면서 인생을 보다 값지고 귀하게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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