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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직 끝나지 않은 해방전쟁 (출 17: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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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은 해방전쟁 (출 17:8-16)

빅터 프랭클이란 심리학자가 있습니다. 이 사람이 2차 대전 때 독일군 수용소에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죽음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고통에, 고문에, 질병에 죽어갑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는 가운데 살아남는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인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왜 살아야 하는지, 그리고 지금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통의 의미를 깨닫고 살아가는 사람은 죽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수용소에서 석방된 후에 빅터 프랭클은 이러한 자기가 발견한 사실을 기초로 의미요법 즉 Logotherapy 라는 상담요법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그 의미를 발견한다면 고통을 치루어 낼 수 있는 인내를 발휘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무한한 자유가 있다할지라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지혜롭게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아무리 자기에게 놀라운 것이 주어져도 그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면 살아있는 것 같지만 죽은 자처럼 살 수밖에 없고 서서히 죽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향해서 자신들이 하는 일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고 탄식하며 저들을 위해 기도한 것을 봅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5000명을 먹이는 놀라운 사건을 경험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고 둔한 자들아 책망하셨습니다. 오늘 내 삶에 일어나는 일들의 의미, 그리고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를 우리가 발견한다면 고통과 억울함을 이길 용기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최선을 다하지만 어리석은 삶이었다고 후회하게 됩니다. 그리고 멸망과 파멸의 역사로 또다시 우리 삶은 갈수 밖에 없습니다.

이제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광복된 지 61년이나 지났습니다. 우리의 역사 속에 일어난 사건들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할 때 우리는 또 다른 고통의 역사를 맛볼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께서 왜 이것을 허락하셨는지, 그리고 이 민족의 역사 속에서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다시 한 번 돌아볼 때 우리의 삶의 자세는 달라질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이후에 첫 번째로 자신들의 힘으로 싸웠던 아말렉과의 전쟁은 하나님의 다양한 의도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이스라엘백성을 교훈하시고 또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에 영적교훈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아말렉과의 전쟁이 가지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지 함께 찾아보기를 원합니다.

첫째 이스라엘백성이 도달해야만 하는 목표를 깨닫게 하는 전쟁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탈출함으로서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노예가 아닙니다. 종살이의 두려움과 얽매임에서 벗어났습니다. 저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애굽의 위협은 존재하지 않을 정도로 바로의 군대는 멸망했고, 그들이 추적하기에는 너무나 멀리 왔습니다. 비록 광야길이지만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인도하고 있었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을 수 없는 곳에서 풍성하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일찍이 맛보지 못한 승리의 감격을 홍해에서 노래로 불러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광야생활에 부족함이 없는 풍성하고 시원한 물도 공급되고 있었습니다. 이곳이 너무 좋아서 머물고 싶은 마음도 많이 있습니다. 이 상태만 해도 너무나 만족한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들의 구원은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완성된 구원을 위해 저들이 가야할 곳이 있었습니다.

신명기 1:6-8 에 보면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산에 거한지 오래니 방향을 돌려 진행하여 아모리족속의 산지로 가고 그 근지 곳곳으로 가고 아라바와 산지와 평지와 남방과 해변과 가나안 족속의 땅과 레바논과 큰 강 유브라데까지 가라하셨나니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사 그들과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하신 땅이 너희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얻을찌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에게 구원을 허락하셔서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온전히 이루실 구원의 시작에 불과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가야만 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거할 뿐 아니라, 그 땅을 누리고 하나님의 제사장의 나라로 온전한 모습이 갖추어지는 바로 그때와 그곳이 이스라엘백성의 온전한 구원을 의미합니다.

아말렉의 출현은 이스라엘백성이 지금까지 누렸던 광야에서의 자유와 더불어서 더 크고 놀라운 미래가 무엇인가? 그리고 그것의 가치를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곳이 아무리 좋아도 여기에 머물 수는 없다는 것과 지금 우리가 가진 이 자유와 기쁨은 더 크고 놀라운 축복을 위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의 깨달음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전쟁을 치루고 서라도 반드시 가야만 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되새기게 해 주었습니다.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타협도 안 됩니다. 그렇다고 싸울 수 있는 준비가 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가진 자유와 놀라운 미래를 위해서 오늘 그들은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하고 싶은것 절제하고, 가고 싶은 곳 보류하고, 갖고 싶은 것 내려놓고 이제 완성된 그 구원의 희망을 무너뜨리고, 출애굽이후에 얻은 자유의 감격과 축복을 깨뜨리기 위해 쳐들어오는 적들과 싸워야만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서 얻은 구원의 감격과 기쁨은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죄와 어둠의 굴레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함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놀라운 하나님나라의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눈물도, 죽음도, 고통도 없는 의와 희락과 화평의 하나님나라백성의 축복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를 믿고 받은 이 축복은 앞으로 주어질 축복의 작은 일부분입니다. 완성된 구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을 이 큰 구원의 완성은 현재 어떤 고통의 대가가 치루어 진다할지라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크고 놀라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위협하는 적들이 우리 앞에 등장합니다. 바로 영적전쟁입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서 누리는 자유와 축복을 무너뜨립니다. 나아가서 우리에게 생명과도 바꿀 수없는 하나님나라의 축복의 희망을 깨뜨려 버리기 위해 공격해옵니다. 우리의 약점과 연약한 점을 교묘하게 파고들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버리기 위해서 끊임없이 공격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와 기쁨을 다 쓸 수 없습니다. 이 전쟁을 위해 준비해야 합니다. 여기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에 중직자 되기 위해서 정말 사모하고 열심히 봉사합니다. 그런데 그 자리가 주어지면 그것이 마치 모든 것의 마지막이었다는 듯이 중단해버립니다. 직분은 더 성실하고 겸손하게 교회를 돌보기 위한 것이라는 목표를 상실합니다. 어떤 형제자매는 학교에 혹은 직장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절히 사모합니다. 그런데 그 목표를 이루고 나면 그것이 끝입니다. 우리가 이루어지도록 간구했다면, 그곳에서 우리가 어떻게 잘 해야 할 것인가를 위해 다시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결혼이 목표가 된 부부는 반드시 부부로서 미래를 살아가는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시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61년 전에 해방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것에서 머물렀습니다. 그 결과 6.25전쟁과 더불어 한국은 건강한 목표가 없었습니다. 가난은 탈출했을지 모르지만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는 그 모양을 지금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금 울며 씨를 뿌려야 할 때입니다. 그러할 때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새로운 미래가 열려지는 것입니다. 현재에 머물 수 없고, 어떤 대가를 치루고 서라도 가야할 가치와 의미가 있기에 전쟁을 통해서 교훈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떤 목표를 이루었습니까? 그것은 새로운 시작입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거할 그곳에 가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위한 그 목표를 위해 오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다시 깨달아야 합니다.

둘째, 이스라엘백성이 하나님의 자녀로 가져야 할 올바른 가치관을 깨닫게 하는 전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많은 족속중에 특히 아말렉과의 전쟁을 치루고 저들과 상종도 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말렉은 야곱의 형 에서의 손자를 말합니다. 그 후손입니다. 그러면 이 에서의 상징이 무엇입니까? 장자가 갖는 놀라운 축복인 메시야가 그 가문과 혈통을 통해서 오시는 그 영광보다도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권리를 팔아버리는 땅에 속한 사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아말렉이라는 이름은 전쟁을 좋아한다는 뜻이며 그 이름에 따라서 해석해보면 육체의 정욕을 따라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자(벧전2:11)들입니다.

갈라디아서 5:17절에 보면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라고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는 족속들을 의미합니다. 모세가 출애굽기17:9에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고 했습니다. 14절에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도무지 용납할 수없는 족속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멸망당할 민족입니다.
민수기 24장 20절에 또 아말렉을 바라보며 노래를 지어 가로되 아멜렉은 열국 중 으뜸이나 종말은 멸망에 이르리로다 라고 말씀합니다. 즉 강력한 힘과 통치력을 가지며 이 땅에서 주도권을 잡은 민족을 말합니다. 사무엘상 15:2-3 사무엘선지자가 사울왕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을 내가 추억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나님의 철저한 심판을 받을 족속을 말합니다. 사울은 이 명령을 온전히 순종하지 않을 때에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게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 아말렉과 싸우라고 하셨을까요? 아말렉의 삶의 원리는 철저하게 자기중심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철학과 삶의 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 살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마음과 생각은 그렇게 할 수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자기왕국을 만들었습니다. 인간이 중심이 되고, 인간의 정욕과 욕구가 중심이 되는 나라와 문화를 세웠습니다. 이것은 결국 강국을 이루게 되고 이들의 주장이 맞는 것처럼 보여 집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이 아말렉과 싸우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바로 그 나라로 가기위해서 가까이 해야 할 것과 멀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랑해야 할 것과 미워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폐기처분해야 할 것과 간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높이 세워야 할 것과 낮게 깔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해야 할 것이 있고 나중에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분명한 신앙의 분별력을 가지고 선택해 나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의 완성을 우리는 맛볼 수가 없습니다. 아말렉의 것은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우양과 같은 짐승일지라도 가까이 하거나 취하지 말라는 명령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의 삶속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삶의 모습과 문화는 분명히 우리가 구분하고 분별하며 싸워야 할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세상과 사탄과 우리의 정욕이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세상의 친구를 다 버릴 수 있게 된 것은 축복의 줄을 붙잡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 한 분 중에 정말 세상 적으로 너무나 잘 나가시는 분이였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사랑과 그 은혜와 주신 소망이 너무 크고 귀했습니다. 가까이 높은 분, 귀한분이 많았지만 장로 임직 하는 날을 기점으로 그분들에게 다 편지했다고 합니다. 이제 나는 죽었다. 나를 잊어달라고 말입니다. 임직 때 그런 친구들이 놀라서 다왔습니다. 그들이 조롱했습니다. 놀리기 까지 했지만 이 장로님은 끝까지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며 천국의 소망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즐거웠던 시간들을 끊어버리니까 우울증이 오게 되었습니다. 결국 약을 먹으면서도 이겨내었습니다. 어느 날 모든 것에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말씀을 더욱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취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분명히 분별하기 시작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걸음을 한 걸음 인도하여 가십니다. 완성된 구원을 위해 오늘 우리에게 전쟁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한국교회의 미래는 그렇게 밝지만은 않습니다. 이제 한국교회가 더욱 건강하게 세워지고 바른 분별력을 가지고, 말씀에 기초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기업의 문화, 직장의 문화, 교회의 투명성, 그리고 우리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우리가 분별해서 온 백성의 눈에서 눈물을 씻는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삶의 현장에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우리가 가야할 삶의 목표가 있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주님의 부탁이 있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 있기에 모든 것이 가하나 다 유익이 아님을 깨닫고 우리의 삶속에서 취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선택하며 나가야 합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은 바로 우리에게 무엇을 분별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그 백성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과 싸워야 하는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완성을 위해서 무엇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를 분명히 보여주는 전쟁입니다

셋째, 이스라엘백성이 하나님의 자녀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깨닫게 하는 전쟁입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위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르치신 것은 무엇입니까 ? 그것은 바로 기도의 원리입니다. 출17:10에 여호수아가 모세의 말대로 행하여 아말렉과 싸우고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너희들은 나가서 아말렉인들과 싸우라 그러면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꼭대기에 가리라. 그리고 11절에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라.

이 전쟁의 승리의 원리가 어디에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먼저 기도의 능력이 승리하게 했음을 보여줍니다. 여호수아가 열심을 다할 때 승리하였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기도의 손이 올라갈 때에 하나님은 승리의 모습을 뚜렷하게 보여주심으로 기도로 싸울 때에 승리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어떤 기도입니까? 바로 중보기도입니다. 싸움은 여호수아가 합니다. 그러나 모세가 팔을 올릴 때 여호수아가 전쟁에 승리합니다. 전쟁에 승리하기위해서는 앞장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전투에 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기도하는 중보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중보기도의 능력입니다. 더 나가서 무슨 원리를 보여줍니까? 팀을 이룬 중보기도의 능력입니다. 모세가 나이가 들고 또 오랜 시간동안 팔을 들고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전쟁보다도 더 어렵고 피곤한 것이 무엇입니까?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피곤했더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대신 모세가 팔을 올릴 수 없을 만큼 피곤해졌을 때에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붙들어서 그의 기도의 손이 내려오지 않게 하였습니다. 바로 이 기도 그리고 중보기도로 승리하게 됨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우리가 또 하나 살펴보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13절에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기도할 때에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경에 칼은 말씀 곧 성령을 의미합니다. 이 영적전쟁에 있어서 너희가 성령 안에서 깨어 무시로 기도하라고 말씀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잘 사용하고 승리하기위한 힘을 줍니다. 여호수아의 칼이 적들과 싸움에서 승리하게위해서 기도의 힘이 있었습니다. 이 기도는 여호수아의 잡은 칼이 더 효율적으로 사용되게 하여서 적들을 물리친 것입니다. 기도와 말씀이 바로 승리의 원인이 됨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아말렉은 누구입니까? 자기중심적이고 하나님을 멀리하는 세력을 말합니다. 누구입니까? 그 적들 중에 가장 강력한 적이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하나님중심의 생각과 인간중심의 생각이 갈등을 일으킬 때에 우리가 이 싸움에서 승리할 길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시편 28:2에 내가 주의 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하나님을 향하여 나를 도와 주소서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 주님께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이 민족의 상황과 함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8.15해방을 온전히 이루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주신 자유와 환경을 더욱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라로 만들고 완성된 해방으로 이어지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며, 말씀을 기억하며 더 놀라운 해방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며 이일을 이루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민족이 복음 안에서 통일되도록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며 간구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함으로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과 자유가 이제는 빼앗겨버렸습니다. 더 이상 완성된 해방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때 예레미야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에레미야 33: 2-3을 보십시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하는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라고 말씀합니까? 시작하시는 분, 그것을 완성하시는 분, 이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분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4절 이하에 보면 민족을 다시 회복시키십니다. 화평을 주신다고 약속 하십니다. 포로에서 해방시키시겠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모든 복과 평강으로 축복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축복을 축복되게 하고, 구원을 구원되게 하며, 해방을 진정으로 완성시키실 그 하나님께 간구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자유와 축복이 진정한 미래를 열어가며 이 나라가 하나님께 복되게 쓰임 받는 백성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위정자들을 위해 중보기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힘을 합해 팀을 이루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영적 전쟁에 너무나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번에 비전센터 허가 나오는 과정에서 우리가 깨달은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52일 새벽기도를 마치고, 여전도회와 권사회, 새벽성가대, 새벽기도 때마다 그리고 기도하는 성도들이 기도가 합쳐질 때에 어려움 가운데서 이루어졌습니다. 무엇을 보여줍니까? 비전센터를 짓는것 보다도 우리교회 교인들이 무엇으로 교회의 역사를 이루어가며 하나님주신 축복을 현실화시키는 것이 무엇인지 원리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단지 그 원리를 위한 작은 출발점 앞에 섰습니다. 다시 우리 삶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도록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가야할 곳, 되어야 할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해방 61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이 역사의 교훈을 우리는 다시 돌아보아야 합니다. 당파싸움과 서로 격려하고 세워줄 줄 모르며 부패한 이 나라와 민족은 지배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해방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러 나가야 할 때라는 것을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무엇인가 끝장을 보아야 끝낼 것 같은 방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시 해방의 의미와 교훈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라를 위한 기도를 다시 시작합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다시 선택하며 나아갑시다. 그리고 우리가 가야할 곳에 어디인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 것인지 우리의 목표를 다시 확인하며 주께서 주시는 하나님나라의 의와 희락과 화평의 나라를 마음에 다시 새겨나가십시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우리의 젊음이 낭비되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우리의 열정이 잘못된 곳에 쓰여  지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에게 분별의 은사를 허락해 주셔서 이 시대를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사상과 문화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주님 기뻐하시는 하나님 선택을 하나하나 해가며 그 선택에 따르는 문화와 제도와 환경과 삶을 만들어가는 주님의 자녀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기도가 녹슬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의 무릎이 굳어지지 않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젊은이들이 영적인 용사가 될 뿐 아니라 자기의 주어진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주의 백성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해방을 해방 되게 할 수 있는 귀한 주님의 일꾼들로 삼아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김형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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