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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나 (눅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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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저는 노회 수련회에 참석하여 목사님 사모님들과 함께 찬양하며 기도하고 좋은 음식도 많이 먹으며 참으로 유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 얼굴이 좀 건강한 모습으로 변한 것 같지 않습니까?
이번 수련회는 마검포라는 곳으로 갔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조개도 손만 넣으면 5~6씩 잡았고 특별히 저는 매년 그물을 가지고 가서 물고기와 개를 많이 잡았다는 말에 잔뜩 기대를 갖고 갔습니다.

첫날, 찬양을 하고, 함께 기도회를 은혜 가운데 마치고 드디어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저희가 50m짜리 대형 그물을 준비하여 그 그물을 잡고 양쪽에서 끌기 시작했습니다.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물고기를 잡으면 싱싱한 활어회를 먹을 수 있다는 마음에 힘을 내어 그물을 끌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그물을 모래사장까지 몰고 그물 안을 보니까 피라미들만 가득하고 먹을 만한 고기들은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실망이 되었던지 갑자기 힘이 쭉 빠졌습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좀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그물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기대를 갖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끌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허탕이었습니다. 딱 개 한 마리 잡혔습니다.

그래서 죽어도 삼세판이다 생각하고 또 그물을 가지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서 그물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억지로, 억지로 그물을 끌었는데 또 빈 그물이었습니다. 허탈하고 맥이 풀리고 실망스러웠습니다.
분명히 매년 엄청 잡았다고 했는데 올해는 한 마리도 못 잡았으니 얼마나 실망했겠습니까?
결국 무거운 그물을 들고 투덜거리면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얼마 전에는 동생이 좋아하기 때문에 식구들하고 낚시를 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집어넣으면 나오고 물 반, 고기반이라고 갔습니다. 그런데 밤을 새면서 잡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밤이 맞도록 수고하며 몇 마리라도 잡았다면 별로 힘들지 않고 재미있었을 텐데 정말 피곤하고 짜증이 났습니다. 나중에는 오기가 나서 한 번 더 던지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피라미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허탕치고 말았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베드로와 그의 형제들이 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났습니다. 그런데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지만 얻은 것이 없었습니다.
아마, 이들은 두 배를 타고 만선을 기대하면서 부픈 마음으로 고기를 잡으러 나갔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물을 내릴 때에도 그물 안에 고기가 가득 잡히겠지! 하는 기대의 마음으로 그물을 내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물을 끌어 올려보니 허탕입니다. 빈 그물뿐이었습니다.
다시 그물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이번도 허탕이었습니다. 이들의 직업이 어부입니다. 어느 시간에 어디에 그물을 내리면 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저희가 수련회 때 고기를 잡지 못한 것은 물때를 잘못 맞추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팀에는 어부출신의 사람이 있어서 2시간 전에 물때를 맞춰서 그물을 끌었더니 정말 많이 잡았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와 그의 형제들은 고기를 잡는 전문가입니다. 그런데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지만 결과는 빈 그물뿐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경험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열심히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모든 수고를 다 동원해 땀 흘려 수고하였지만 얻은 것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베드로와 그의 형제들이 얼마나 실망했겠습니까? 얼마나 상심이 컸겠습니까?

여러분 땀을 흘려 수고하면 땀을 흘린 대가가 있어야 일할 맛이 나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와야 살맛이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할 때 얼마나 실망스럽습니까? 얼마나 맥 빠집니까?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밤이 맞도록 수고합니다.
어떤 분은 한 개의 일을 따내기 위해서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저녁 늦게 까지 동분서주 뛰어다닙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만나서 명암을 돌리면서 일을 따기 위해서 수고합니다.
어떤 분은 한 개라도 더 팔기 위해서 일찍 일어나 좋은 자리 찾아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장사를 해 봅니다.
또 어떤 분은 먼 거리의 직장을 다니면서 때로는 열심히 함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다치면서 매일매일 수고합니다.
한 푼이라도 벌겠다고 밤잠을 자지 못하고 부업으로 꼬박 밤을 지셉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밤이 맞도록 수고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곳저곳에서 자존심이 꾸겨지면서 눈물겨운 수고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내가 수고한 만큼 얻지 못할 때 얼마나 실망이 큽니까?
내가 땀 흘려 수고한 만큼 잘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지만 늘 부족한 생활이 우리의 현실이 아닙니까?
하는 일이 막힙니다. 투자하지만 손해를 봅니다. 열심히 성실하게 살기위해서 수고하지만 늘 마이너스 통장만 늘어 갑니다.

그래도 내일을 또 준비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실망되었습니다. 맥이 빠졌습니다. 그러나 내일을 위해서 그물을 씻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으니 내일 또 그물을 던져봤자 허탕일거야 생각했다면 그물을 씻었겠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그물을 씻지 않고 버려두고 그냥 들어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 마음속에는 ‘그래 오늘은 허탕이지만 내일 열심히 수고하면 분명히 고기를 잡을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피곤하지만 실망스럽지만 그물을 씻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은 허탕을 쳤어도 내일은 잘 될 거야!’ 생각하고 내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오늘은 힘들었어도 내일은 나을 거야!
오늘은 마이너스 통장이지만 내일은 플러스 통장이 될 수 있을 거야!
내일에 소망을 두며 오늘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힘이 생기고 다시 뛸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스위팅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40일을 먹지 않고 살 수 있고, 3일 동안 물을 마시지 않고 살 수 있으며, 8분간 숨을 쉬지 않고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희망이 없이는 단 2초도 살 수 없다.”

어느 날 카네기가 한 사무실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무실 중앙에는 별로 멋없는 그림 하나가 걸려 있었습니다.
커다란 나룻배 한 척이 모래 위에 놓여 있은 그림이었습니다. 썰물 때이었기에 모래 위에 덩그렇게 놓여있는 모습은 처량하고 절망적인 인상까지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 밑에는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카네기는 그 사무실 책임자에게 이런 곳에 왜 저런 그림을 걸어 놓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눈을 지긋하게 감더니 과거를 회상하며 말하였습니다.
“네 저는 세일즈맨이었습니다. 제가 젊은 시절 말할 수 없는 괴로움 속에 허덕이던 때에 세상 모두가 저를 방해하는 것으로만 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어떤 분을 우연히 찾아갔는데 그곳에서 절망적인 저의 가슴을 찡하게 하는 한 그림을 보았습니다. 그때 그 그림은 저에게도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는 확신을 갖게 했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여 그 사무실 책임자에게 농담조로 부탁을 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세상을 떠나실 때가 되신다면 저 그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런데 얼마 후 저에게 그 그림이 와서 이렇게 걸어 놓은 것입니다. 이 그림이야말로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반드시 밀물 때가옵니다. 지금은 덩그렇게 놓여 있는 것 같지만 밀물이 오면 다시 바다로 나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허탕 쳤다고 좌절하지 맙시다. 오늘 빈 그물이라고 포기하지 맙시다. 내일 밀물이 밀려 올 것입니다. 내일 우리에게 만선의 기쁨이 찾아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그물을 씻으며 내일을 준비해야 합니다. 

실망과 낙심 속에서 내일을 준비하던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에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지만 얻은 것이 없어 실망할 때, 그때가 주님을 만날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인생의 밤중에 주님을 만났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다 간증을 많은 사람들로 듣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나 아무것도 못 얻었었을 때에 다시 그물을 던져봤자 또 허탕일 때가 많습니다. 오히려 더 깊은 낙심과 좌절 가운데 빠지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그 때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때 기도하면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매여 달림을 주님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

오늘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지만 허탕인 인생들에게 주님은 찾아오십니다. 오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빈 그물을 씻고 있는 우리에게 주님은 찾아오십니다.
“주님 오시옵소서.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기도하면서 주님께 나가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여러분 베드로가 안 해보았겠습니까? 고기가 잡히는 곳을 누가 더 잘 압니까? 베드로는 어부입니다. 그래서 고기가 잡히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고기를 잡는 것에 있어서는 경험으로 보다 지식적인면에서 보나 베드로와 예수님은 상대가 안됩니다.

또한 상식에 맞지 않는 지시입니다. 왜냐하면 고기가 잡히는 시기는 밤입니다. 그런데 밤에 잡지 못한 고기가 낮에 잡힐 리가 없습니다. 또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야하는데 고기가 있는 곳이 있는데 깊은 곳에는 고기가 없다는 것이 일반 상식입니다.

또 지금 돌아와서 그물을 씻고 있습니다. 귀찮습니다. 다시 그물을 던진다는 것은 또 수고하고 땀을 흘려야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뭐라고 대답합니까?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눅 5:5)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자기의 경험보다, 자기의 지식보다,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그물을 내렸습니다. 베드로는 먼저 순종하고 생각한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이것저것 따지고 순종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먼저 순종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에 말씀을 보면 “그리한즉” “순종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여러분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가 잡았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저희도 둘째 날에는 많이 잡았습니다. 개가 50마리 정도, 그리고 좀 큰 고기들을 많이 잡아서 그 자리에서 회쳐서 먹었습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신이 났는지 모릅니다. 더 깊은 데로 나갔는데도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개에게 물렸는데 너무 아프다는 것보다는 기뻤다고 합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이렇게 두 배 가득 잡았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을 받는 비결은 첫째도 순종, 둘째도 순종, 셋째도 순종입니다.
그래서 오늘 주보에 보시면 “순종은 우리의 의무라기보다는 우리의 특권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유익을 되는 것만을 명령하시기 때문이다.”라는 왓슨의 말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을 받는 비결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상식에 안 맞아도 무조건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 경험과 내 지식과 안 맞아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좀 귀찮고 힘들어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을 받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1장 19절에서 말씀합니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사 1:19)
그렇습니다. 우리가 즐겨 하나님께 순종하면 땅의 아름아운 소산을 먹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 앞에 무조건 순종하십시오. 무식하게 순종하십시오.
여러분이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지만 얻은 것이 없는 삶에서 내 배에 가득 채우는 것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배를 불러 그 배에까지 가득 채우는 역사가 있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러나 만선의 축복보다 더욱 중요한 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따른 복이요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베드로와 그의 형제들이 만선되어 돌아왔습니다. 사람들은 잡힌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도 놀랐습니다. 요한도 놀랐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그랬더니 베드로가 어떻게 했습니까?
11절을 읽겠습니다.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눅 5:11)

두 배가 가득 잡은 고기를 어떻게 했을까요?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았다는 말씀을 보면 고기 뿐 아니라 배까지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궁극적인 사명은 무엇입니까?
밤새도록 수고하여 돈을 많이 버는 것입니까? 밤새도록 수고하여 출세하는 것입니까?
밤이 맞도록 수고하여 잘 먹고 잘사는 것입니까?

그 다음은?
어떤 사람에게 소원을 물어 보았습니다.
돈을 많이 벌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돈을 번 다음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물었습니다.
명예를 얻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다음은 어떤 소원이냐고 또 물었습니다.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은?
자식들 시집보내고 장가보내고 그 다음은? 노후에 부부가
그 다음은? 죽겠죠? 그 다음은? 하나님께 심판을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예수님을 좇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삶의 목표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기쁨이요, 삶의 이유인 것입니다.
(이덕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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