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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겨자씨 속의 큰 나무 (눅 13: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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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말씀의 겨자씨는 씨중에서도 아주 작은 씨입니다. 볼펜으로 점을 찍어놓은 것 같은 아주 작은 씨앗입니다. 겨자씨는 채송화씨만한데 땅에 떨어지면 찾기 힘들 정도로 아주 작습니다. 겨자씨는 보잘것 없는 것을 나타내는 대표적 표현입니다.

겨자씨는 가장 작은 씨일지라도 그곳에서 자란 나무는 1년 또는 2년 생의 풀로서 1m에서 4m까지 자라서 나무와 같이 됩니다. 그곳에 새들이 깃들일 정도로 일년에 가장 많이 자라는 나무입니다.
그 작은 겨자씨를 보면서 큰 겨자나무를 연상하기란 그리 쉽지 않을 것입니다. 흔히 ‘저렇게 작은 씨앗이 어떻게 큰 나무가 될까?’라고 무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작은 겨자씨 속에서 큰 나무를 볼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농부들은 볍씨 하나에서 수백개의 쌀알을 꿈꾸면서 벼를 심습니다. 밤나무, 감나무도 .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남달리 똑똑한 아이도 있을 수 있고, 조금 못한 아이도 있을 수 있습니다. 정말 좋은 부모, 믿음을 가진 부모는 조금 못한 아이 속에서 가능성을 보고, 그 가능성을 키워줍니다. 겨자씨만한 존재 속에 큰 나무를 꿈꾸는 것이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할 때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시작은 미약해 보이고 별거 아닌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큰 나무가 된다는 것입니다.

1. 위대한 생각 위대한 꿈을 심으라!

모든 위대한 것은 겨자씨처럼 작은 것에서 부터 시작이 됩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도 교회적으로도 항상 꿈과 비전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위대한 일은 위대한 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솔로몬은 꿈에도 소원은 지혜였습니다. 돈도 권력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지혜를 꿈꾸었습니다. 지혜를 얻기 위해 일천번제를 드렸습니다.

솔로몬이 아니라도 본래부터 이스라엘 민족은 꿈을 가진 민족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가 누구입니까? ‘야곱’이 아닙니까? 이 야곱이라는 사람은 꿈꾸는 사람이었습니다. 형에게 쫓겨서 하란의 외삼촌 집으로 가던 길에 야곱은 엄청난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사닥다리가 하늘에서부터 땅까지 이어지면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고 하나님의 약속의 음성을 듣는 꿈을 꾸었던 사람입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도 꿈의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나 꿈 이야기를 많이 하던지 사람들이 그를 꿈쟁이라고 놀리고, 미워하고 팔아 버렸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꿈꾸는 나라입니다. 그들은 수많은 세월 동안 고난과 역경의 역사를 가진 나라이지만 꿈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나라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닙니다.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소수의 두뇌들 중의 대부분은 유대인들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유대인들의 인구는 3%(5백80만) 밖에 안되지만 유대인은 아이비리그 대학 교수의 60%, 백대 기업 소유주의 30-40%를 차지하고 있고, 역대 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유대인이 3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세계를 움직이는 실세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꿈을 가진 사람들이 역사를 움직인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역시 꿈의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주와 세상은 우리 주님의 꿈이 펼쳐지고 완성될 것입니다. 주님은 열두 사도들을 선택할 때부터 놀라운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겨자씨 깉이 보잘것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비록 갈릴리 해변에 사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요, 학문이 없는 무식자들이었지만 주님은 그들을 택하시고 그들에게 먼저 하나님 나라의 꿈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그 꿈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꿈이 생명이 있었기 때문에 그 생명은 자라나기 시작했고 결국 그 꿈은 큰 나무가 된 것입니다. 12제자들이 주님의 명령대로 흩어져 복음을 증거하다가 순교해서 죽으면서 초대교회 교부 저스틴의 말대로 “순교자의 피가 교회의 씨앗”이 되어 오늘 온 세계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미국의 로버트 슐러목사는 「불가능은 없다」는 책에서 이 세상의 위대한 일은 모두 위대한 꿈을 갖는데서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영국의 웨스트 민스터 사원의 벽에는 “하나님을 위해서 위대한 일을 계획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큰 일을 기대하고 하나님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나를 통해서 그 크신 일이 성취되도록 우리는 기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좋은 생각, 위대한 꿈을 가진 자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미국의 유명한 자동차 왕, 포드는 초등학교 과정도 다하지 못한 아주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생각이 좋았습니다. 미국이 아직 자동차가 생산되기 전 마차타를 타고 다닐 때인데, 그는 마차보다는 아주 편리한 것은 없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500불의 적은 돈으로 자동차 회사를 시작해서 마침내 큰 거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그는 꿈을 꾸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을 지라도 . . .

포드가 세상을 떠났을 때 디트로이트(Ditroit)에 동상이 세워졌고 비석에는 “이 사람은 꿈꾸는 사람”, 그의 부인의 비석에는 “이 사람은 믿는 사람” 그렇게 새겨져 있다는 것입니. 믿는 사람은 꿈을 가진 환상의 사람이요, 또한 환상이 있는 사람은 믿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말세에 성령이 임하시면 젊은이는 환상을 보고, 늙은이는 꿈을 꾸고, 너희 자녀들은 장래의 일을 예언하리라고(행2:17) 말씀합니다. 성령이 오시면 분명히 우리에게 환상과 꿈을 주십니다. 이시간도 성령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환상과 꿈을 심어 주실 것입니다. 성령님은 심기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가꾸십니다. 거두시기 까지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인류를 위하여 아름답고 위대한 생각, 위대한 꿈을 심는 위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천국은 성장과 변화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본문은 천국에 관한 말씀입니다. 천국은 자랍니다. 확장됩니다. 성장합니다. 내 마음에 있는 작은 천국도 성장하고 변화하는 것입니다.
“겨자씨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믿음이 말씀을 먹고 자란 결과는 주변에 유익을 주어야 합니다. 믿음 생활의 결과는 나 혼자만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로 인하여 주변에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결과로 나타나야 합니다.

사무엘의 생애를 보라. 사무엘이 자라면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은총을 받은 사람으로 자랐습니다. 예수님도 자라면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그리고 자라면서 점점 주변의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일로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세금을 빼앗아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에 함께 나누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유익을 주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을 박해하던 흉악한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의 삶이 변화되어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믿음이 자란 사람의 결과는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모습입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 속에 믿음이 있으면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작은 겨자씨도 큰 나무가 되는 것이 처음부터 큰 것이 아니었습니다. 겨자씨의 능력의 핵심은 그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은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풀들이 겨울이 되면 잎이 다 죽었다가 봄이 되면 새로운 잎이 돋아나듯 . . 생명이 그 뿌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믿음은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게 되어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선교를 하다가 그 선교지에서 죽은 이름 없는 선교사의 이야기이다. 그 선교사의 성실하고 헌신적인 봉사를 기억하던 원주민들은 그가 죽은 후 그의 무덤 앞 비문에 이렇게 써넣었다고 한다. “선교사님, 당신이 왔을 때 우리는 어둠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떠나간 지금 우리는 빛 가운데 있습니다.” 어두움에서 빛으로 변화되는 유익을 전하였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 나라의 삶입니다. 그 삶의 특성은 변화와 성장입니다. 자고 일어나면 겨자씨 나무가 자라듯 자라나야 하고, 자고 일어나면 누룩이 발효되듯 변화를 만들어내는, 성장과 변화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다섯 달란트가 열 달란트 되고 두 달란트가 네 달란트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로 변화와 성장의 삶을 살도록 십자가에 피흘려 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우리 안에서 성령께서는 지금도 우리로 성장하고 변화되도록 역사 하십니다. 또 세상속에서 성장과 변화를 만들어 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십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창대하리라는 말씀과도 같은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우리 교회의 비젼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믿음은 생명의 능력을 일으킵니다.

예수님은 “만일 너희가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저리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작은 믿음일지라도 그 믿음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를 보게 합니다.
예수님은 왜, 하필 겨자씨의 비유를 선택 하셨을까요? 생명력을 말씀하시려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아도 자랄 수가 있는 것은 생명 때문입니다. Life. 생명력. 그것이 중요한 거예요. 이 겨자씨가 자랄 수 있었던 가장 소중한 비밀은 바로 생명력입니다.

복음의 생명력. 복음이란 뭘까요? 복음이란 예수그리스도 자신이십니다. 예수가 Good news. 예수가 복음이십니다. 예수가 생명이시고 예수가 능력이십니다. 예수만 붙들고 있으면 모든 것을 다 얻은 것입니다. 그 속에 모든 소망,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8-20)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가서 모든 족속으로 네 제자를 삼으라. 세계 모든 곳을 바꾸어라!! 예수를 붙들고 사는 자에게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이미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믿기만 하면 됩니다. 믿고 사용하면 됩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신다’. 이것이 소망입니다. 이것이 힘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보십시오. 처음 12명의 제자들 그 중에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된 사람이 있었습니까? 박사 출신들이 있습니까? 어부출신이요, 세리출신이요, 정말 인간적인 면으로 어느 것 하나 자랑할 것 없는 사람들 12명을 데리고 천국복음을 증거하셨습니다. 그 복음의 역사가 2천년이 지난 지금은 예수 믿고 천국 간 사람들이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알 길이 없지만 그 당시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리라고 생각을 하였겠습니까?

미국에서 성공한 사람 100사람을 조사해 보았더니 학력이나 어떤 다른 조건보다도 꿈을 가진 사람임을 밝혀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잘나가는 사람들 보면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지만 학력이나 경력이나 모든 면에서 별로 뛰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믿음은 꿈을 만들어 냅니다. 믿음은 소망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그 꿈과 소망은 결국 이루어집니다. 히11장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믿음이라는 것은 바라는 대로 되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성공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속적인 성공관과 기독교의 성공관은 다릅니다. 세속적인 성공관은 내가 열심히 살아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성공관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축복하시면, 내가 잘 되면 내가 그 축복으로 이웃을 섬기리라. 이것이 기독교의 성공관입니다.
과거에는 “야, 이놈아 공부 좀 해라 배워서 남 주니?”라고 말했습니다. 공부하면 자기에게 이롭다는 말씀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돈 버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남 주려고 . . .지식을 얻어서 그 지식으로 자기가 치부하고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얻어진 지식으로 겸허하게 인류를 섬기기 위해서, 우리의 이웃들을 섬기기 위해서, 역사를 섬기고, 시대를 섬기고, 민족을 섬기고 남주기 위해서 배우는것입니다.
‘배워서 남주나?’ 배워서 남주는 것이 기독교 성공관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벌어서 남주나?’벌어서 남주는 것이 기독교 성공관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벌어야 합니다.

미국에는 디즈니랜드라는 유명한 공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월트 디즈니(Walt Disney)라는 사람이 돈을 모으기 위해서 이 공원을 계획한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어린이들에게 좋은 꿈을 심어주고, 노인들에게 즐거운 안식처를 제공할 수 있을까 하는 좋은 생각에서 그러한 아름다운 공원을 설계하고 오늘에 와서는 엄청난 거부가 되었으며, 매년 5 천만불씩 자선사업에 돈을 쓰고 있습니다. 생각의 씨가 중요한 것입니다. 돈을 벌어 보겠다는 발상과 그 돈으로 선한 일을 위해 쓰기 위해 돈을 벌겠다는 생각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겨자씨 속에서 큰 나무를 보는 믿음의 사람, 하나님의 복을 받고 하나님을 위해 크게 쓰임받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임경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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