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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약한 자도 크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고전 1:2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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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초반의 가정 주부 한분이 남편에게서 휴대폰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 문자도 보내고 하기 위해서 자녀들에게 문자보내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는 드디어 남편에게도 문자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여보! 영원히 사랑해!”
이 문자를 보내고 부인은 굉장히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이 문자를 받고 남편이 굉장히 기뻐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남편이 퇴근하여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남편이 퇴근하여 초인종을 ‘띵동’하고 누르는 것이었습니다.
부인은 남편이 과연 무슨 말을 할 것인가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얼굴은 전혀 기쁜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당신, 내한테 문자보냈나?” “네. 기뻤죠?” “기쁘기는 뭐가 기뻐. 이거 한번 봐라. 이게 뭐고.” 부인은 남편이 불쑥 내민 남편의 휴대폰을 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너무나도 선명하게 이런 문자가 적혀있었습니다.
“여보! 영원히 사망해!”
ㅁ과 ㄹ을 잘 못 써서 그만 사랑해를 사망해로 보냈던 것입니다. 사랑해로 보냈던지 사망해로 보냈던지 부인의 뜻의 남편에게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배워도 배워도 연약합니다. 제가 요즘 얼마나 기도해야 할 사람인가 하면 저희 새 아파트가 7층인데 어느날 엘레베이트를 타고 집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누가 4층을 눌러두었던가 봅니다. 그런데 보지도 않고 4층에 내려서는 문을 열려고 전자열쇠의 비밀번호를 눌렀습니다. 그런데 문이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2번, 3번 눌러도 문이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집이 맞는지 안 맞는지 확인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하지 않고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쾅쾅.’ 문을 열어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문을 계속 두드렸습니다. 한참을 두드리다 문득 문패를 보니까 7층이 아니라 4층인 것입니다. 깜짝 놀라서 혹여나 주인이 나올까봐 후다닥 위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면서 저가 느낀 것은 기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하나님이 목적하신대로 성공적으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가 약해 질때 그 약함을 잘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약해질 때가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너무 큰 약함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너무 가난하고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납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시각장애인이지만 미국에서 가장 큰 존경을 받는 강영우 박사입니다. 그분이 쓴 “어둠을 비추는 한쌍의 촛불”이라는 책에 이런 고백이 있습니다. “나의 실명은 장애가 아니라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그분은 중학교 때 축구를 하다가 공에 눈을 맞아 완전히 시각을 잃어 버렸습니다. 이 사건에 충격을 받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도 얼마 있지 않아 세상을 떠났습니다. 누나가 고등학교 학생이었는데 공부를 그만두고 동생들 먹여 살리려고 동대문 평화시장 봉제공장에 취직을 했습니다.
밤낮을 자지않고 일하다가 그만 2년만에 누나도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강영우는 시각장애인으로서 장애인 고아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 졌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연세대힉교 교육학과에 입학하게 되고, 미국을 유학을 가서 석사, 박사를 받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미국 사회에서, 아니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 약함이 오히려 그의 강함이 되었습니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약해지게 될 때 그 약함에 실망하게 됩니다. 자신을 보잘것없게 여기고 좌절하고 무너집니다. 일본의 가와바시라는 작가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늙어지면서 몸에 병이 들었습니다. 자신은 강하고 잘난 줄 알았는데 늙어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가스파이프를 입에 물고 자살을 했습니다.
인간은 본래 약한 존재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내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을 썼다고 해서 강한 인생이 아닙니다. 약한 인생일 뿐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우리를 가리켜 “우리는 질 그릇이다”라고 합니다. 연약한 인생입니다.
대통령도 질그릇이고, 어떤 유명한 사람도 질그릇입니다. 여러분! 내가 돈이 많다고 질그릇이 아니라고 착각하지 마세요. 세익스피어는 말하기를 “인간은 하나님의 걸작품중에 걸작품이면서 동시에 가장 나약한 존재이다.”
여러분, 인간의 재료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인간의 재료는 흙입니다. 인간은 돈 있다가 돈 떨어지면 야코가 떨어져서 얼마나 초라한지 모릅니다. 권력의 자리에 있다가 자리에서 물러나면 얼마나 초라한지 모릅니다. 건강하다가 건강을 잃어면 얼마나 초라한지 모릅니다.
그렇게 약한 인생이 없습니다. 여러분, 은혜로 사는 줄 아세요. 여러분 예외가 없습니다. “당신 암입니다”라고 하면 사형선고 받은 거잖아요. 고쳐본들 몇 년 더 사는 것이지 죽을 인생입니다. 병들어 보세요. 재벌이 어디 있습니까? 연약한 질그릇에 불과합니다.
직장 다니다 퇴직해 보세요. 얼마나 연약한 인생인지 모릅니다. 특별히 부부가 같이 살다가 사별의 아픔을 경혐애 보세요. 짝 잃은 외기러기....얼마나 초라한지 모릅니다. 저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아내가 오래 살게 하옵소서.” 이 길만이 살길입니다. 집에서도 보약 생기면 자기만 먹지 말고 부인보고 “드시고 오래 사시옵소서.” 천지도 모르고 자기만 먹으면 안되요. 부인이 건강해지도록 해야 합니다.
노력한 일이 되지 않으면 얼마나 실망되는지 모릅니다. 환경이 그렇게 할 수도 있고, 남한테 무시당해도 그렇고, 살맛이 나지 않습니다. 별별 일로 우리 인간은 약한 존재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떤 심리학자는 95%의 인간이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강한 것 같이 폼 잡고 살지만 한순간에 자신의 약함이 드러납니다.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약한 존재이다. 어떤 사람은 공부는 잘 하는데 외모에 열등감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능력은 있는데 가문이 좋지 않아 열등감을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은 외모는 좋은데 머리가 좋지 않아서 열등감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들도 누구나 다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한 두 가지의 열등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약함을 우리가 잘 극복해 나가는 사람이 될 때 존귀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뭐라고 하느냐? 놀랍게도 성경은 약할 때 강하고,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서 이기도록 하신다고 합니다.
오늘도 주님은 그렇게 말씀합니다. 약한자를 들어서 강한자를 부끄럽게 하신다. 내가 약하지만 이런 말씀을 통해서 나도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구나 이런 확신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저는 이 말씀을 약한 자를 위로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약한 자에게 위로나 주려고 이 본문을 정해서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 진리의 말씀을 붙들 때 존귀한 자로 강한 자로 쓰임받을 줄 믿습니다.
기독교는 결단코 강한 자를 들어서 강하게 쓰지 않습니다. ‘나는 강하다. 나는 잘 났다. 나는 뭔가 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도구로 쓰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을 쓰시느냐? 여러 가지 시련과 경험을 통해서 “아! 나는 약하구나”라고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그 사람을 하나님은 강하게 만드셔서 사용하십니다.
정근모 박사, 머리가 얼마나 좋지 않습니까? 그 사람만큼 머리가 좋은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경기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하여 수석으로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대학 졸업도 하지 않고 미국으로 바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리고 23살에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런 사람도 언제 쓰임받았습니까?
그가 머리가 좋아서 쓰임받았습니까? 아닙니다. 그가 한국에 초청을 받아서 과학 기술원을 만들고 한참 잘 나갈 때 아들 진우가 급성 신장병에 걸렸습니다. 이제 죽느냐 사느냐하는 귀로에 봉착했습니다. 그 때 정근모박사는 손을 듭니다. “나는 약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공학박사도 교수 자리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게 약해지던 그 시간에 하나님이 능력을 부어주셨습니다. 그 때부터 그는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언제 쓰임을 받았습니까? 바울은 자랑할 것이 너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자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이지요, 혈통으로는 베냐민 지파 왕족입니다. 자랑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그 때 하나님은 바울을 쓰지 않았습니다. 예수를 만나고 부족함을 깨닫기 시작하는데 그 때도 하나님은 바울을 더 귀하게 쓰시려고 쓰시지 않았습니다. 육체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고린도 후서 12장 7에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체의 가시가 뭐지요? 질병입니다. 고질적인 질병을 주셨습니다. 바울이 너무 괴로워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세 번 기도했다고 합니다. “주여 내가 사도로서 복음을 위해서 일하려고 하는데 이 가시가 너무도 괴롭습니다. 뽑아 주시옵소서.” 그때 하나님의 계시의 음성이 들려왔는데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 가시로 인해서 너는 온전하여 지고 더 능력의 자리에 머물게 되고 더 존귀하고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다.”
이 때에 가시가 얼마나 유익한가. 나를 약하게 만드는 이 가시가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그 때 깨달아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게 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가시가 나를 강하게 하는구나! 약해 질때, 약함 때문에 우리는 넘어지고 쓰리지는데 하나님은 “그것이 아니다. 너를 넘어지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약함 때문에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더욱더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하여 귀하게 쓰시려고 고난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그걸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나 보다 나를 더 잘 아십니다. 우리는 몰라도 예수님은 아십니다. 사업 좀 잘돼서 돈만 좀 벌어도 자신이 잘 난 줄 압니다. 공부를 좀 잘하면 자신이 똑똑해서 그런 줄 압니다. 자신이 강한 줄 압니다. 절대로 착각하지 마세요.
여러분, 다윗이 귀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는 왕이 되었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늘 “주여, 나는 부족합니다. 하나님 없이는 나는 살 수 없습니다.” 이게 다윗입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계속해서 머물러 귀하게 승리하며 살 수가 있었습니다. 고난이 오고 위기가 와도 자신이 약한 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바라보며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다 약할 때 쓰임을 받았습니다. 유럽 사회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책이 천로역정입니다. 누가 섰습니까? 존 번연이 섰습니다. 어디서 섰습니까? 감옥에서 섰습니다. 12년 동안 감옥에 있을 때, 가장 약할 때 주옥같은 작품을 쓸 수 있는 능력을 주신 줄 믿습니다. 약함을 통해서 그는 강한 자가 되엇고, 강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도구가 된 것입니다.
밀턴이 쓴 실낙원은 밀턴이 57정도의 나이에 갑자기 실명이 된 때 쓴 작품입니다. 가장 약해질 때 주님을 의지하는 그 믿음을 통해서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게 하셨습니다. 베토벤도 귀가 멀었을 때 9번 교향곡을 작곡했습니다. 약해졌을 때, 주님을 의지할 때 위대한 작품이 나온 것입니다.
에디슨도 어린 나이에 뺨을 맞아 청각을 상실 했을 때 위대한 발명가로서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1967년도 이스라엘 총리였던 골다 메이어 여사는 나이 많은 노파였습다. 또 코가 얼마나 큰지 여자치고는 너무 못 생긴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자서전에 이렇게 섰습니다. “내 얼굴이 못난 것이 다행입니다. 나는 못 낫기 때문에 기도했고, 못 낫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 약함이 그녀에게 강점이 되었습니다. 또 말합니다. “나의 약함은 이 나라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실망은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우리는 약할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약할 때 실망하지만 정말 믿음이 좋은 사람은 약할 그 때 강해집니다.
저는 링컨을 생각할 때마다 링컨이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다면 절대로 성공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나 불우한 가정이었습니다. 초등학교도 졸업할 수 없는 그런 가정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런 약함이 위대한 링컨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약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기댈 것이 없었기 때문에 오직 주만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약함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때로는 돈 많은 것이 강점이 아닐 수가 있습니다. 잘 난 것이 강점이 아닐 수가 있습니다. 재벌2세들이 그래서 좋은 사람이 안나오는 겁니다. 좋은 인물이 안나오는 겁니다 .제대로 알고 살아야 합니다. 내가 잘 나갈 때 그것을 강점으로만 생각하지 마세요. 그것이 오히려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잘 나갈 때 하나님앞에 더 엎드립니다. 더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합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사십니까? 좀 된다 싶으면 하나님을 멀리합니다. 자기가 강한 줄 압니다.
하나님은 약한 자를 들어 사용하십니다. 그 중에서도 베드로를 보십시오. 베드로를 보면 가문이 좋습니까? 대대로 내려오는 갈릴리 어부입니다. 멸시받는 어부입니다. 거기다 배우기를 많이 배웠습니까? 거기다 성격이나 좋으면 좋지....3년이나 훈련받은 베드로가 하는 말 한번 보십시오. “저것들 다 예수님 버려도 나는 버리지 않습니다.” 꼴통 아닙니까? “예수님 저것들 믿지 마세요. 저것들 다 주님이 어려움 당하면 다 도망갈 겁니다. 나만 주님 옆에 있을 겁니다.” 이런 베드로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어떻게 했습니까? 작은 계집아이가 뭐라고 하자 몇 번 부인했습니까? 3번 부인했습니다. 그런 베드로를 예수님은 사랑하셨습니다.
어떤 분은 이런 베드로를 이렇게 비유했습니다. 베드로는 화투를 치면 늘 잃을 사람이다. 왜냐하면 베드로에게 광이 들어오면 자기 얼굴에 먼저 광이 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숨기지를 못합니다. 좋아서 막 얼굴에 다 표시가 납니다. 절대로 이 사람은 이길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이런 베드로가 얼마나 귀하게 쓰임받았습니다. 바티칸 베드로 성당이 있고, 유럽의 교회를 가면 다 베드로, 베드로라고 합니다. 그런 약한 자를 주님은 들어 쓰셨습니다. 3번이나 주님을 부인한 뒤 “주님 저는 너무 부족한 사람입니다. 주님이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베드로를 들어 존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약할 때 왜 그것이 강함이 되고, 왜 약한 자를 들어 강한자를 부끄럽게 하시는지 두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인간은 약해질 때 하나님을 반드시 찾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조금만 비빌 언덕만 있어도 예수를 오래 믿은 사람도 간절함이 없습니다. 그저 일생을 적당하게 살아가는 겁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약함이 왜 은혜냐? 약함을 통해서 어떤 어려움을 통해서, 만약 여러분에게 어떤 어려운 질병이 왔다면 이렇게 신앙생활 하시겠습니까?
“집사님, 장로님, 권사님, 교회 와서 기도하십시오.” 이 소리해서 교회 와서 기도합니까? 자기 발로 찾아와서 죽기 살기로 하나님깨 메달릴 것입니다. 조금 살만하니까 하나님 없어도 살아갈 수 있을 것처럼 살아가더라는 겁니다. 그러면 안되는 겁니다. 귀하게 쓰임 받지 못합니다.
요즘 한국교회에 강한 도전을 하는 릭 워렌 목사님을 잘 아실 것입니다. 얼마 전에 서울 순복음 교회에서 집회를 했는데 십 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해서 도전을 받았습니다. 미국 사회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위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릭 워렌 목사님이 어떻게 그런 위대한 목사님이 되었느냐? 그에게는 희귀한 간질병이 있었습니다. 미국에 그런 고질적인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약 16만명이 있다고 합니다. 어떤 병이냐 하면 아드레날린이 몸에서 나오는데 이것이 몸을 이롭게 하지 못하고 온 몸을 괴롭혀 시력을 가물거리게 하고 심하면 쓰러지기도 합니다. 이 병은 릭 워렌에게 있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릭 워렌의 직업이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아드레날린은 보통 사람들에게 이로운 것이지만 릭 워렌 목사님에게 독과 같았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었는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아드레날린이 붐비되어 고통을 줄 때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손가락 두 개를 걸고 있는 기분이다.”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이런 말을 했겠습니까? 그런 분이, 목사가 될 수 없는 분이 목사가 되었습니다.
한 편의 설교를 하려면 죽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설교할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의 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 이 설교가 마지막 설교가 될 지도 모릅니다. 이 고통을 이기고 설교를 마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얼마나 기도하는지 그렇게 자신의 약함 때문에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니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여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가 된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 깨달아야 합니다. 어떻게 신앙생활 하고 있습니까? 조금 살만 하면 하나님을 찾지도 않습니다. 약함을 통하여 하나님을 찾고 찾고 기도하여 하나님의 능력의 능력을 받아 강한 사람으로 능력의 사람으로 쓰임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둘째, 약할 때 우리 인생이 겸손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약할 때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가장 싫어하십니다. 교만한 자는 물리치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좋아하십니다. 왜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에게 고난을 주십니까? 겸손케 하시려고.
약해지면 겸손해집니다. 병이 들면 마귀도 천사가 된다고 합니다. 고난이 오니까 겸손해집니다. 여러분 이게 중요한 겁니다. 병드니까 겸손해지잖아요. ‘나는 부족합니다. 나는 약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섬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겸손이 뭡니까? 내 부족을 아는 것이 겸손입니다. 우리가 약해질 때 더욱더 주님을 의지하게 되고 배우려 하고 더욱더 낮은 자리에서 섬기려고 합니다. 약할 때 그 약함을 통하여 하나님은 우리의 강점을 살려주십니다. 약함을 통하여 겸손해 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똑똑한 사람도 일을 그러치면 얼마나 겸손해 지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인기가 있고 건강이 있고 재물이 있고 권력이 있을 때 자만하지 마세요. 인생은 질 그릇이 라는 것, 약한 사람이라는 것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살아가다가 어려운 일 만날 때 약해지지 말고 이 약함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더 많이 기도하고 더 겸손해 짐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강하게 쓰임받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예배드리는 태도를 보면 위에서 다 보입니다. 저 사람이 정말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인가?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는 사람인가?
캐나다에 가면 그 비옥한 땅에 나무들이 이렇게 쏟아 있습니다. 관광안내원이 이런 말을 한다고 합니다. “저렇게 나무가 좋지만 강한 바람이 불면 많은 나무들이 쓰러집니다.” 겉은 화려하고 멋진데 왜 그렇게 됩니까? 뿌리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겉은 번지르한데 바람이 불면 다 넘어진다는 것입니다. 왜? 뿌리가 없기 때문에...
그러나 환경이 열악한 가운데 자라난 나무들은 겉은 별 모양이 없지만 매미호가 불어와도 넘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뿌리가 깊기 때문입니다. 그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보려고 뿌리가 얼마나 깊이 멀리 뻗어 있는지 어느 누구도 흔들 수가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강하게 됩니까? 내가 열악한 환경에 있을 때 우리 삶의 뿌리를 어디에 둡니까? 하나님께 둡니다. “하나님 나는 약합니다. 주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을 향하여 뿌리가 뻗어나갑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붙드시고 강하게 하셔서 귀하고 존귀하게 사용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람이 불면 넘어가는 그런 인생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금년 남은 4개월 뿐만 아니라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과연 약할 때 넘어지고 쓰러지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 약함을 통하여 나의 약함을 인정하고 주님을 더 의지하고 주님을 더 가까이 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손에 강하게 붙들려 귀하고 복되게 쓰임받는 사람인가?
우리 교회 성도들은 약함을 통하여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고 주님을 더 의지하고 주님을 더 가까이 하여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강하여져서 귀하고 복되게 쓰임받기를 축원드립니다. (최낙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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