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예배드리는 축복 (레 23:1-3)

  • 잡초 잡초
  • 256
  • 0

첨부 1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의 날이라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너
            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절기니라.

인간은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부모에게는 효하고 이웃과는 협동하여 살고 하나님께는 예배하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이 세 가지는 한 묶음의 삶입니다. 이 셋 중 하나가 깨지면 다 깨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삶들이 모두 깨지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은 부모에게 효하는 것이 깨지고 있습니다. 이웃과 협동해서 살아가야 하는데 이것도 깨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도 잊고 기피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 예배하며 살아가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래야 인간이 가장 건실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 예배생활이 없어지니까 이 세상이 이렇게 길을 잃고 협동을 잃고 부모를 버리고 서로 원수가 되어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예배생활이 세상을 건강하게 만드는 길이고 이웃과 함께 협동을 이루는 삶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인데 오늘 사람들이 이 삶을 기피하고 있습니다. 이 예배생활이 복을 받는 삶입니다.

본문에 보면 예배생활에 대해서 아주 강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의 날이라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거주하는 각처에서 지킬 여호와의 절기니라“. 구약시대에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이 제7일 안식일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신약시대에 와서는 주님이 부활하시고 성령이 강림하시는 날인 주일날로 그 개념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이 이 주일을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로 정해 놓고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예배하는 날을 주신 이유가 있습니다.

안 식

하나님은 여기서 대 원칙 하나를 세워 주셨습니다. 그것이 안식하는 일입니다. 사람은 이런 대 원칙이 없으면 불필요한 것에 목숨을 걸 위험이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일중독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은 절제력이 없습니다. 불필요한 일에 집착해서 깊이 빠져버릴 위험이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대 원칙을 세워놓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안식하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쉬고 안식하라”는 말씀입니다.

근래에 와서 큰 질병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옛날에 흔치 않던 병들이 오늘 너무 쉽게 발생합니다. 참 무서운 병들입니다. 이 질병들은 오염된 공기와 물 그리고 화학적으로 가미된 음식이나 음료수들 때문에 발생하기도 하지만 그 보다 더 큰 원인은 일중독 때문일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적당한 휴식과 쉼과 안식이 필요합니다. 낮엔 일하고 밤이면 쉬어야 합니다. 정신도 쉬고 마음도 쉬고 영도 쉬고 몸도 쉬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밤을 주셨습니다. 밤이 되면 온 천지가 어두워집니다. 그러면 자연도 쉬고 동물도 곤충도 사람도 쉬어야 합니다. 하루 24시간을 주셔서 3/1은 일하고 3/1은 정서를 위하여 살고 3/1은 잠을 자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밤이 되면 다 잠을 잡니다. 곤충도, 짐승도, 자연도, 모든 생명체들이 잠을 잡니다.

  그런데 유독 인간만은 밤이 되어도 쉬질 않습니다. 하루 종일 일하고 밤에도 늦게까지 놀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긴장을 하고 잠자리에 들어가면서도 또 생각하고 잠을 설치고 그러니까 안식을 잃고 피곤이 매일 겹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 달 일 년 10년 쌓이다 보면 홍수가 나면 가장 약한 뚝이 터져서 무너지듯이 몸에서 가장 약한 부분부터 터지는 것입니다. 폐가 약하면 폐가 터집니다. 위가 약하면 위가 터지고 심장이 약하면 심장이 터지고 어느 혈관이 약하면 그 혈관이 터져서 중풍이 되고 뇌경색이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결국 큰 병을 앓고 몸이 망가지고 목숨을 빼앗기기도 합니다. “쉬고 안식하라”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따뜻한 은혜이고 배려입니다. 그냥 쉬라하면 안 쉬니까 그것을 명령으로, 율법으로 정해서 반포하셨습니다. 알고 보면 이것은 하나님의 자상하고 깊으신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사람들은 주일도 일하고 밤에도 쉬지 않고 고민하고 몸과 마음과 정신과 영을 혹사시키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이 아주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 계명들의 속뜻을 살펴보면 모두 인간을 향한 배려 때문에 하신 말씀입니다. “먹지 말라”는 것은 모두 해로우니까 먹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해로우니 기름을 먹지 말고 나에게 제물로 바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기름을 떼어 내면 맛이 없다고 기름을 먹습니다. “피채 먹지 말라”고 하신 것도 먹으면 해로우니까 먹지 말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동물을 잡을 때 일부러 약을 올려서 피를 끓게 만들어서 죽여 그 자리에서 피를 빼서 마십니다.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합니다. 주일을 지키라고 하는데 오기로 일 합니다. 그러니 복을 받겠습니까. 그것이 불순종입니다. 어기니까 화를 당하고 낭패를 당하고 실패하는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라” 그 말은 “내가 너에게 복되게 하리라” 그 말입니다.     

예 배

하나님이 두 번째 주신 은혜는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허락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만 예배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또 다른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안식일은 쉬는 날인데 그 쉼이 곧 예배하는 일입니다. 쉼은 반드시 아무 일을 하지 않는 것만 쉼이 아닙니다. 진정한 쉼은 예배를 통한 쉼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은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이 안식일은 신앙인에게는 생명을 지키듯 지켜야 하는 날입니다. 이 안식일은 평화와 평안과 직결된 날입니다. 전쟁이 일어나든가 나라가 환란을 당하든가 평안을 빼앗기면 안식일도 없어집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안식일도 없어집니다. 그리고 명절도 평안도 다 빼앗깁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백성들이 자꾸만 죄를 지으니까 하나님이 예언자를 통해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의 명절을 빼앗고 안식일을 빼앗으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 말은 안식일을 지키고 명절을 지키고 평안을 얻는 것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어진 날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나라를 빼앗기면 곧 바로 안식일이나 명절이나 평화를 빼앗기게 됩니다. 6,25때 가장 뼈아픈 날이 주일날이었습니다. 공산군이 잠시 이 땅을 점령하고 있을 때 주일날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했습니다. 공산군이 이 주일을 뺏고 지키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일제시대 때 나라를 빼앗기고 살아갈 때 주일을 지키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주일을 지키고 마음대로 예배하고 명절을 지킬 수 있는 것은 그만큼 평화가 있다는 말이고 안정된 때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이 안식일 즉 주일을 생명을 걸고 지키고 사수해야 하는 날입니다.

얼마나 좋은 날입니까. 온가족이 함께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립니다. 얼마나 평화로운 시대입니까. 그리고 함께 믿는 형제들끼리 일주일 동안 각자에게 주어진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고 주일날 다 함께 한곳으로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이 얼마나 평화로운 시대입니까. 그렇게 다 함께 모여 예배할 때 그곳에 찬양이 있고 기도가 있고 봉헌이 있고 감사가 있고 우리의 믿음이 확인되고 그때 그곳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셔서 은혜를 주시고 복을 주십니다. 그리고 일주일동안 우리들이 분주해서 만나지 못한 하나님과의 공식적인 만남을 주일날 예배를 통해서 이루는 날이 주일 예배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니 성회의 날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은 “안식일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예배를 통해서 복을 받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통해서 복을 받은 사례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아브라함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옮겨가는 곳 마다 그곳에서 제일 먼저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 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가야할 길을 계시로 안내해 주셨습니다. 그 말은 아브라함이 예배를 드리므로 은혜를 받았고 복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또 솔로몬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제일 먼저 행한 일이 하나님께 1천 번제를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얼마나 신실한 사람입니까. 그 말은 왕이 되자마자 하나님께 서원의 예배부터 드렸다는 말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솔로몬의 모습을 보시고 감탄하셨습니다. 그래서 계시 속에 나타나셔서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솔로몬이 요구한 것이 “당신의 백성을 잘 치리하고 싶습니다, 나에게 지혜를 주십시오”하고 요구했습니다. 그 요구를 받으시고 하나님이 더 감탄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때 솔로몬에게 아낌없이 다 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도록 부름 받고 지음 받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예배생활에 충실하십시오. 여러분이 예배생활에 충실할 때 하나님이 감동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준비하십시오. 혹시 압니까.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뭘 원하느냐”하고 물으셨듯이 여러분에게도 물으실지 모릅니다. 그때 “큰 집을 주십시오”하면 안 됩니다. 그때는 “주님, 주님이 저에게 오셔서 말씀하신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여기서 뭘 더 요구하겠습니까, 그냥 이대로 좋습니다”하고 말씀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더 감동하십니다. 그래야 알아서 더 주실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알아서 주시는 은혜가 최상의 은혜입니다. 이것이 예배의 생활입니다. 이 예배드리는 삶이 참 고급스러운 삶입니다. 이 예배드리는 삶이 복을 받는 삶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예배드리라고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회 복

자동차는 기름이 떨어지면 곧 바로 기름을 보충 받아야 움직일 수 있습니다. 기름이 떨어진 자동차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자동차는 움직이는데 사명이 있고 뜻이 있고 필요가 있습니다. 자동차가 효과 있게 움직이려면 때를 따라 기름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적 회복의 은혜를 공급받아야 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 회복을 이 예배를 통해서 얻게 됩니다. 이 예배를 통해서 영적으로 충족을 받습니다.

사람은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내적 실력이 충만해야 살아가지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밥만 많이 먹는다고 살아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정신의 양식을 먹어야 하고 영적인 양식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사람이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고갈되면 살 수가 없습니다. 어린 아이도 사랑을 먹어야 삽니다. 사랑이 고갈되면 아이들도 살지를 못합니다. 부부사이에 사랑이 고갈되면 곧 바로 갈등이 발생하고 불화가 발생하고 사이가 벌어지게 됩니다. 청소년들이 사랑이 결핍되고 정서가 불안하면 곧 바로 갈등이 발생하고 방황대게 됩니다. 노인들이 가끔씩 아파트에서 자살하여 죽는 사고가 발생하는데 그것은 먹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고 사랑과 관심과 영적으로 고갈되어서 그렇습니다. 이것이 결핍되면 사람은 살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한 해 동안에 35만 명이 자살을 시도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중 10,932명이 실제로 자살해서 죽는다고 합니다. 그 자살해서 죽는 동기가 먹을 밥이 없어서가 아니고 정신적이고 영적인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안식일을 만드시고 예배를 드리도록 하셨습니다. 그 예배시간에 이 모든 영적 공간을 채우고 결핍을 충족시키고 회복시켜서 살아가도록 말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요 일곱째 날은 쉴 안식일이라”고 했습니다. 이날 온 가족이 함께 나아와 예배드릴 수 있다면 그 모든 결핍과 부족함이 다 채워지고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날을 기피합니다. 무시하고 살아갑니다. 그렇게 대 원칙을 무시하고 살아가니까 회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갈등과 불화와 사건 사고가 날마다 끊이질 않고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는 와서 예배드리고 그냥 돌아가는 시간이 아닙니다. 주일날 교회 와서 온가족이 함께 예배드릴 때 완전한 회복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정상적으로 주일날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가정이나 인생에 문제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정상적으로 온가족이 함께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를 드리는데 왜 가정에 갈등이 발생하고 영적인 결핍이 일어나고 정신적인 공허함에 시달리고 하나님이 정상적으로 예배하면 믿음의 깊이를 주시는데 왜 내일에 대한 염려 때문에 뼈가 마르도록 밤잠을 설치는 일이 발생하는가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이 예배생활을 통해서 치유의 회복도 주십니다. 갈등도 치유하시고 마음의 상처도 치유하시고 질병들도 치유하십니다. 복음서를 보면 많은 육신의 병자들, 마음과 정신적인 병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모두 고침 받고 돌아갑니다. 예수님은 고치시는 영이십니다. 이 예배생활이 이렇게 중요한 생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세상에 대 원칙 하나를 세우셨습니다. 그것이 엿새 동안은 일하고 일곱째 날은 성회의 날이니 너희는 각처에서 이 날을 지키라는 명령입니다. 즉 주일날은 하던 일을 다 놓고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드리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주일날 예배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최상의 선물이고 은혜이고 축복의 날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예배를 통해서 회복을 힘입고 또 하나님은 이 예배를 통해서 우리에게 영감을 공급하시고 안내하시고 소망을 주시고 용기의 은혜를 주십니다. 그리고 예배를 통해서 깨닫게 하시고 섭리하시고 역사하시고 눈을 열어 보고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가야할 길도 예배시간에 나에게 영감으로 알게 하십니다. 그래서 예배생활이 중요한 것입니다. 

슈바이처는 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주일날 예배드리는 동안 경건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말은 예배를 드리는 동안 나를 향하여 도전해 오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고 은혜를 입고 감동을 받고 감화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슈바이처는 그 예배를 통해서 주어진 그 은혜들, 감동들, 깨달음들이 마침내 나로 하여금 아프리카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주일날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드리는 일이 이렇게 중요하고 복된 일입니다. 이 예배를 통해서 쉼을 얻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고갈된 나의 영적 상태를 회복시키는 은혜를 입고 내가 할 일을 깨닫게 되고 내 인생의 길을 알게 되는 은혜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아브라함이 이 예배생활을 통해서 앞길을 인도받곤 했습니다. 솔로몬이 이 예배를 통해서 전무후무한 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배드리라고 강조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지음 받은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나님께 예배할 때 복을 받고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신앙인에게 가장 복된 시간은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할 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안식일과 예배라는 선물을 주셨습니다.  (이정익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