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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을 알게 하옵소서 (엡 1: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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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에베소서 1:16-17)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과제는 사람에 관한 것이기보다는 하나님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기에 인간의 문제가 있는 것이고 하나님을 바로 깨닫지 못하기에 인간의 고통이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모습과 사랑에 대하여 감사하면서 그들을 향한 간절한 기도의 내용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 기도는 우리 모두에게 꼭 있어야 할 것을 구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엡 1:17)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야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신 그 부르심의 소망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우리 가운데 이루시는 하나님의 기업의 영광과 풍성함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아야 우리 가운데 베푸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며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까? 욥의 친구 소발이 욥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깊은 뜻을 다 알아낼 수 있느냐? 전능하신 분의 무한하심을 다 측량할 수 있느냐?”
  소발의 이 말과 같이 인간은 하나님을 바로 알 수 없다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함, 무소부재, 하나님의 전능하심, 사랑과 심판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적이고 이지적이고 관념적인 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으로는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두려워할 수도 없으며 하나님에 대해서 많은 것을 말할지라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바로 아는 역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지식을 위한 기도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무릎 꿇고 기도할 때마다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십니까? 
  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그분이 계신 곳을 알 수만 있다면, 그분의 보좌까지 내가 이를 수만 있다면, 그분 앞에서 내 사정을 아뢰련만, 내가 정당함을 입이 닳도록 변론하련만. 그러면 그분은 무슨 말로 내게 대답하실까? 내게 어떻게 대답하실까?”(욥기 23:3-5)

  욥은 하나님의 속성과 하나님의 역사에 대하여 아는 것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가 구한 것은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셨을 때에 하나님을 직접 만난 욥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제 주장을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잿더미 위에 앉아서 회개합니다.”
  귀로 듣는 것과 하나님을 체험하여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 욥이 하나님을 귀로 듣고 아는 일반적 영역에서는 많은 말로 논쟁하기를 잘하는 욥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직접 만나고 그 앞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재 가운데서 회개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기도 가운데는 하나님을 아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 이란 말에서 ‘정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뉴마’는 ‘바람’ ‘영’ ‘성령’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는 개역성서는 프뉴마에 관사가 없다는 이유로 ‘정신’으로 번역해 놓았으나 지혜와 계시를 주시는 ‘성령’으로 번역해야 합니다. 그래서 새번역 성서에서는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아버지를 알게 하시고’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우리 인간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바로 알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의 창조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기에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로 그 사랑에 대하여 반응하며 교통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죄가 들어와 하나님과 사람을 분리시켰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했으며, 하나님과 단절시켰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외인이 되었습니다. 또한 더 이상 하나님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는 인간들의 행태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롭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1-23)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하나님의 사랑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성령께서만이 우리로 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찾게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성령께서만이 그 일을 하실 수 있으니 그 일을 하여 주십사고 기도한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과 실력을 평가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지능지수(I.Q. intelligence quotient)입니다. 지능지수가 높음으로 인간은 능력 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음은 감정지수(E.Q. emotion quotient)입니다. 이것은 인간평가를 감성에 두는 것인데 감성발달의 정도를 측정하는 지수입니다. 감성지수가 높은 사람은 감성의 폭이 넓고 풍부하며, 또한 감정을 잘 조절 할 줄도 압니다. 감성지수가 높은 사람은 주위의 사물과 사람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반응하며 창의적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즈음 부모들은 자녀들의 감성지수를 높이기 위하여 좋은 음악을 들려준다거나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고 다양한 볼거리와 경험을 위해 여행의 기회를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그 다음은 도덕지수(M.Q. morality quotient)입니다. 공동체를 유익하게 하는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말합니다. 도덕지수는 남과 함께 살아가는 법, 이 세상에서 행동하는 법을 보고 듣고 배워서 도덕적으로 성장해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요즈음 사회에 비리 불법을 만들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지능지수, 감성지수, 도덕지수가, 높은 사람이라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에서 인간에게 더해야 할 것은 영성지수(S.Q. spirit quotient)입니다. 이 영적지수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성에 대한 평가지수입니다. 성령의 내적 증거의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간이 지능지수가 높다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도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도덕적 능력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영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성지수가 높을수록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지혜를 짜내고 사람들의 이해를 동원하고 사람들의 천성적인 수완을 다 동원할 지라도 사람의 하나님 이해는 바른 이해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서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서로 이해하는 것은 자연적인 의미에서 같은 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음악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시인과 대화를 나누고 그 시인의 말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시적인 역량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시적인 감정이 부족하면 시인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도 주지 못합니다. 어떤 영역을 알려고 하면 그에 상응하는 역량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요구 때문에 사람이 아무리 위대한 지능과 감성과 도덕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을 아는 데, 큰 힘이 못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영적이 되지 않고는 하나님을 아는 일에 무력할 뿐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의 영, 성령 안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지 않고는 사람이 아무리 자신을 고양시키고, 자기의 이지를 아무리 위대하게 자극할 지라도 인간은 하나님을 아는 데 무력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성령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을 떠나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추상적이고 하나의 이론이며 상상일 뿐입니다. 성령만이 우리를 생명의 사람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하시도록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로 알기위해서는 겸손하게 인간의 무력함을 인정하면서 사도 바울과 같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옵소서”
  그럼 성령께서는 어떻게 하나님을 알게 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요한은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 1:18) 고 예수님을 증거 했습니다. 바울은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고후 4:6)고 증거 하면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 12:3)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이 예배의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약속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희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요 14:16-17)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4:26)
  성령은 오늘 우리 가운데 계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영으로 깨닫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삶의 사건을 깨닫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삶 가운데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 사건을 주도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와 뜻을 깨닫게 하심으로 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많은 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사건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보는 성령의 사람이 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복된 삶을 사십시오. 

  어느 비행기 조종사와 승객 셋이 비행기를 타고 비행 중이었습니다. 그 승객 중 하나는 보이 스카우트 소년이었고, 한사람은 신부였으며, 다른 한 사람은 원자력에 관한 과학자였습니다. 비행 도중 갑자기 엔진 고장이 났습니다. 조종사가 승객석으로 급히 와서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다’고 소리쳤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사람은 네 명인데, 낙하산은 세 개밖에 없었습니다. 조종사가 먼저 ‘나는 집에서 날 기다리는 가족이 있습니다. 나는 꼭 살아야만 합니다’고 말을 끝내자마자 그는 낙하산 하나를 움켜잡아 채더니 비행기 밖으로 뛰어 내렸습니다. 과학자는 펄쩍 뛰면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입니다. 만약 내가 죽는다면 세상에 큰 비극이 될 것이요’ 라며 역시 낙하산을 움켜잡고 뛰어 내렸습니다. 놀란 표정으로 신부님이 소년에게 말했습니다. ‘얘야, 나는 가족이 없단다. 나는 주님을 만날 준비가 되어있어요. 너는 아직 장래가 창창한 소년이지. 자 망설이지 말고 마지막 남은 낙하산을 취하려무나.’ 바로 그때 소년이 신부님의 말을 가로막고 ‘신부님,  보세요. 우리 둘은 다 괜찮아요.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과학자 그 사람이 낙하산을 멘 것이 아니라 제 배낭을 메고 뛰어 내렸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엔 많은 사람들이 위기와 어려움 속에 인간의 얄팍한 지성인 자기 배낭을 메고 뛰어 내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생명 있는 지식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진리와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성령의 낙하산을 매어야 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함으로 성령께서 충만하심으로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아는 성도가 되십시오. 하나님을 아는 범위가 더욱 커감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소망과 하늘의 기업과 하나님의 능력을 차지하십시오.  ‘하나님을 알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함으로 더욱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충만하심(엡3:19)을 깨닫고 누리는 인생의 삶을 사십시오. 아멘.  (김성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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