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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라 (레 6: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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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성도들께만 묻겠습니다.
성경 66권 가운데서 ‘성경답지 않은 느낌’을 주는 성경이 있습니다. 어느 성경입니까?
그렇습니다. 아가서입니다.
아가서는 ‘연애문학’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 성경입니다.
심지어는 ‘섹스문학’이라고 혹평하는 분도 있습니다.
아가서에는 그걸 소리를 들을 요소가 충분히 있습니다.
아가서는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신부된 교회, 또는 성도의 관계를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과의 사랑을 통해 비유와 상징으로 보여주고 있는 점 때문에 성경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을 왜 여자 성도들에게만 물을까요?
지난 주일 속회 공과에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금요일에 연합속회 할 때 일부러 오늘과 똑같은 말로 물었습니다.
‘성경 66권 가운데서 성경답지 않은 느낌을 주는 성경이 있습니다. 어느 성경입니까?’
오늘 아가서라고 대답하신 분들은 그 때 공부 잘 하신 분들입니다.

이번에는 남자성도들에게 묻겠습니다.
성경 66권 가운데서 제일 복잡하고 재미없는 느낌을 주는 성경, 또는 무미건조한 느낌을 주는 성경이 있습니다.
어느 성경입니까?
그렇습니다. 레위기입니다.
‘그거 어떻게 레위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제 생각은 다릅니다.’ 하는 분들도 있겠는데 그런 분들은 십중팔구 성경통독을 안 한 분들이기 쉽습니다.
‘레위기는 재미없는 성경이다.’ 이것은 거의 공식처럼 되어 있는 사실입니다.

레위기는 제사 드리는 법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제사는 홍동백서(紅東白西: ‘붉은 과실은 동쪽, 흰 과실은 서쪽에 놓아야 한다.)이니 뭐니 하면서 대단히 복잡하지 않습니까?
‘제사, 중요하다. 제사 안 드리는 것은 불효막심한 일이다. 인륜에 어긋나는 일이다.’ 하는 사람들 가운데도 법식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동양의 제사는 조상에게 드리는 것인데 구약의 제사는 조상 정도가 아닙니다.
하늘의 하나님, 창조주이신 하나님, 오늘도 살아계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산제사입니다. 
더욱 엄숙하고 정성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레위기가 복잡하고 까다롭게 여겨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레위기에는 ‘향기’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성경 전체에 향기라는 말이 71번 나오는데 레위기에 18번 나옵니다.

레위기 1장을 여세요.
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그 다음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13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 내장과 정강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가져다가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로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그 다음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이렇게 시작해서 ③1장 17절 ④2장 2절 ⑤2장 9절 ⑥2장 12절  ⑦3장 5절 ⑧3장 16절 ⑨4장 31절, 그  다음에 오늘 본문 가운데 있는 ⑩6장 15절 ⑪6장 21절, 이어서 ⑫8:21, ⑬8: 28, ⑭16:12 ⑮17:6 ⑯17:13 ⑰23:18 계속해서 향기라는 말이 나옵니다.

레위기는 27장으로 끝나는데 거의 끝인 ⑱26장 3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희의 성읍을 황폐하게 하고 너희의 성소들을 황량하게 할 것이요 너희의(그 다음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향기로운 냄새를 내가 흠향하지 아니하고

레위기는 향기로 시작해서 향기로 끝나는 성경입니다.
어떻습니까? 레위기, 읽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까?

레위기는 향기를 강조하면서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고 있습니까?

첫째, 우리는 하나님께 정성을 다 해야 합니다.

레위기는 제물을 태우는 일에 대해서 기록하고 그 다음에 ‘이것은 여호와께 드리는 향기로운 냄새다.’라는 말을 거의 자동적으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이상합니다. 고기를 태우면 냄새가 납니다. 그 냄새는 향기로운 냄새는 아닙니다.
만일 고기가 타는데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면 갈비집에서는 환기시설을 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갈비 먹을 때 우리는 문을 닫고서 그 냄새가 못 나가도록 하면서, 향기를 맡으면서, 그 향기가 몸에 배도록 힘쓰면서 먹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레위기는 제물을 태워 드릴 때 어떻게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라는 것일까?
‘이스라엘에서는 짐승에게 특별한 사료를 먹였나?’
‘아니면 제물로 드릴 고기는 향기로운 냄새가 나도록 가공을 했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 때 정성을 다 해 드리시기 바랍니다.
어느 여성잡지에서 젊은 직장여성들을 상대로 ‘봉급을 받으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합니까?’ 물은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 가지 대답이 있었습니다.
어느 여성이 ‘은행에 가서 십일조 드릴 돈을 새 돈으로 찾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일반 잡지인데 그렇게 대답했더군요.
‘새 돈으로 찾습니다.’ 이것은 ‘정성을 다합니다.’ 하는 뜻입니다.
그 대답에서 향기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성도는 주일에 헌금할 돈을 토요일에 미리 준비합니다.
그것을 헌금봉투에 넣고 기도제목과 이름을 적습니다.
그 다음 그 봉투를 책갈피 사이에 넣고 그 책 위에 무거운 것을 올려놓습니다.
돈이 반반해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도 좋은 정성의 표현입니다.

향기로운 냄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또 순수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레위기 2장 11절을 보면 소제물을 여호와께 드릴 때는 누룩이나 꿀을 넣지 말라고 했습니다.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앞에서 헌금 이야기를 했는데 헌금만 제물입니까?
아닙니다. 나의 모든 것이 제물입니다.
이것은 「새 예배서」에 나오는 말인데 한두 번 소개해 드린 일이 있습니다.

참된 봉헌은 시간, 물질, 생명 등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산 제사의 의미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교회에서는 ‘헌금’이라는 말 대신에 ‘봉헌’ ‘봉헌기도’ ‘봉헌특송’ 이렇게 ‘봉헌’이라는 말을 사용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봉헌’은 글자 그대로 풀면 ‘받들어 바친다.’ ‘정성스럽게 바친다.’ 이런 뜻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예배 전체가 가장 귀한 봉헌입니다.
여러분,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바치기에 부족함이 없는, 향기로운 냄새가 날 수 있는 정성스럽고 순수한 것이 되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이 예배가 향기로운 냄새가 나도록 정성스럽게 드리시기 바랍니다.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해야 합니다.

어느 가구단지에서 유독 한 가구점에 손님이 많았습니다.
다른 가구점 주인이 그 비결을 알려고 주의 깊게 살펴보았습니다.
별로 다른 점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같은 재목을 쓰고, 같은 연장을 썼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 가구점 주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나나 당신이나 다른 점이 별로 없는데 유독 당신의 가구점에 손님이 많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가구점 주인의 대답을 간단했습니다.
‘네 저는 가구를 만들 때 예배드리는 심정으로 만듭니다.’
이렇게 만든 가구에서는 향기로운 냄새가 날 것입니다. 

수험생들,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으로 공부하세요. 틀림없이 원하는 학교에 합격할 것입니다.
연세가 많은 신학자 한 분이 자주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연구를 합니다.
제자 한 사람이 ‘목사님, 건강을 생각해서 이제는 좀 쉬시지요.’ 했습니다.
그 신학자는 ‘신학자가 공부하다가 죽는 것도 순교요.’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신구약 66권 주석을 쓴 박윤선(朴允善)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시편 66편을 기록한 무명의 시인은 15절에서
내가 숫양의 향기와 함께 살진 것으로 주께 번제를 드리며 수소와 염소를 드리리이다

‘나는 정성스러운 예물을 주님께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제물이 이렇게 향기로운 냄새가 될 때, 정성을 다하는 것일 때, 하나님은 그 제물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복주십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그렇게 하셨습니다.
홍수가 그치고 노아가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노아는 제일 먼저 어떤 일을 했습니까?
여러분 같으면 이런 경우에 무슨 일부터 하시겠습니까?
‘흙 다시 만져보자!’ 하시겠습니까?
‘아, 참 오래간만에 흙을 밟아보네!’ 하면서 겅중겅중 뛰시겠습니까?
노아는 제일 먼저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노아가 제사를 드리는데 창세기 8장 20절을 보세요.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를 제단에 드렸더니

정결한 제물을  드렸습니다. 정성을 기울여 깨끗한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 다음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 향기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온 우주가 질서 있게 운행되도록 하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한 주간의 첫날인 주일에 예배를 드리며 이 주일을 시작하는 것은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 제일 먼저 제사를 드린 것을 본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실 줄로 믿습니다.
정성스러운 것, 순수한 것을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 바랍니다.

둘째, 우리 자신이 향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우리를 부르는 이름이 많이 있습니다.
우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 이름은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제일 먼저 들었습니다(행11:26).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빛과 소금이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여기 언제나 우리에게 도전을 주고 또 반성하게 하는 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3-16) 

산상보훈의 말씀입니다.
사신이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20절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그와 함께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2장 14절에서 16절까지를 보세요.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그 다음에 어떤 말씀이 나옵니까?)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우리가 내는 향기는 복음의 향기입니다.
이 향기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냄새가 됩니다.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심판의 냄새가 됩니다.
복음을 듣지 못해서 구원 받지 못한 사람과 복음을 듣고서도 믿지 않아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은 그 심판의 정도가 다를 것입니다.

아까 참된 봉헌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했는데 한 걸음 더 나가서 나 자신을 향기로운 제물로 주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에베소서 5장 2절은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부른 찬송가 353장은 1절에서
내 주 예수 주신 은혜 한 없건만 
내 주 앞에 이 적은 것 다 드리니
주 예수여 내 정성을 받으소서

이렇게 정성을 드리는 것으로 출발합니다.

끝 절인 5절에 이르러서는
주 날 위해 그 귀하신 몸 버리사
이 내 몸을 피값으로 사셨으니
내 생명도 주님께 바칩니다.

이렇게 자신의 생명을 제물로 삼아 주님께 드리겠다고 결말을 맺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아주 잘 하는 사람을 ‘구단’이라고 합니다.
바둑 구단, 유도 구단, 검도 구단, 정치 구단, 그리고 목회 구단….
신앙에도 구단이 있을 수 있겠는데 신앙 구단은 어떤 사람일까요?
순교자들, 두말할 것 없이 신앙 구단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알기 쉽게 말해서 세상을 떠날 때, 감사한 마음으로 웃으면서 주변의 사람들에게 전도하면서 숨을 거두는 성도, 역시 신앙 구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들은 재미없다고 하는 레위기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성도는 신앙 삼 단이나 사 단쯤 되는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위기에서 향내를 맡으면서, 향내에 이끌려서 레위기를 잘 읽으면서 자신을 향내 나는 제물로 드리는 성도, 신앙 육 단이나 칠 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신앙의 고단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벌은 같은 벌인데 주인에게는 꿀을 줍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독침을 줍니다.
어느 양봉을 하시는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벌은 아무나 쏘는 줄 알았는데 양봉을 하면서 보니까 그렇지 않은 것 같더라. 주인인 나는 잘 쏘지 않는 것 같더라. 그래서 나는 꿀 따는 작업을 할 때 망을 쓰지 않고 한다. 나에게 꿀을 주는 벌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고 또 미안한 느낌도 가지고 있고, 이런 것이 합해서 사랑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벌을 대하기 때문인 것 같더라.’

여러분, 상대방을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대해서 우리의 향기가,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그들에게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교회는 향기를 내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전도사님이 교회를 개척 설립하면서 이름을 예향교회라고 했습니다.
예향교회, 무슨 뜻이겠습니까?
‘예수님의 향기를 내는 교회’ 이런 뜻입니다.
‘예수님의 향기를 내면 사람들이 저절로 몰려온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교회 이름을 그렇게 정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전도를 위해 하반기 119 새 생명 큰 잔치를 준비하면서 오늘 선포순서를 갖습니다.
여러분, ‘또 해?’ 해서는 안 됩니다.
‘이번에는 더 멋있게 해야지!’ 해야 됩니다.
‘이번에는 반드시 한 가정을 구원에 이르도록 해야지!’ 해야 됩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런 마음을 갖기 바랍니다.

그 음식점의 음식이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 멀리서도 찾아갑니다.
좋은 난은 깊은 산속에 있어도 그 향 때문에 사람들이 저절로 찾아온다고 합니다.
교회가 향기를 내는 곳이 되면 사람들은 벌과 나비처럼 모여듭니다.
반대로 악취를 내는 곳이 되면 사람들은 피해 갑니다.

교회가 향기를 내는 곳이 되기 위해서는 교회 안에 아름다운 교제가 있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4장 18절의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바울 사도가 감옥에 있을 때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 사도를 위해 물질을 마련해서 에바브로디도 편에 보냈습니다.
이것은 참 아름다운 교제입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2장 1절에서 “성령의 무슨 교제”라는 말을 썼는데 이것은 성령이 인도하시는 교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이 보내준 선물을, 확대하면 이런 아름다운 교제를,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교제가 있는 교회는 향기를 내는 교회입니다.
분쟁이 있고 갈등이 있는 교회는 악취가 나는 교회입니다.

공자를 모시는 성균관에서는 때가 되면 제사를 드립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 텔레비전이 없을 때 이야기인데 방송국에서 그 제사를 중계하도록 했습니다. 중계를 맡은 아나운서가  책도 보고 그런데 밝은 사람에게 물어도 보고 열심히 준비를 했습니다.
그래도 형식이 워낙 복잡해서 중계하는데 아주 힘이 들었습니다.
중계석이 제사상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무엇인가 좋지 않은 냄새가 났습니다.
중계가 끝난 다음에 제사상을 돌아보고서 그런 냄새가 왜 나는지 알았습니다.
제사장에 차려놓은 과일이 앞에서 보기에는 탐스럽고 좋은 것들이었는데 뒤쪽에는 썩어가는 것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방송국으로 돌아온 아나운서는 동료들에게 ‘나는 조선왕조가 왜 망했는지 오늘 구체적으로 알게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복잡한 형식의 제사를 늘 드려야 하고 겉으로는 정성을 기울인 것 같지만 속은 그 모양이니 나라가 제대로 지탱되겠느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교회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됩니다.
형식만 복잡하고, 제도만 복잡하고, 교리와 장정만 따지고, 안에서는 썩는 냄새가 나서는 안 됩니다.

유대인들의 제사는 복잡했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할 때 제사에 대해 번역할 때는 정육점 주인인 유대인들을 찾아가서 물어서 확인하면서 번역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번역하기 어려웠다는 것입니다.
유대의 제사는 대부분 동물을 잡아서 제물로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 정육점 주인들은 그런데 익숙해서 그들의 도움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제사의 종류도 많았습니다.

짐승을 태워서 제물로 드리는 번제, 곡물을 제물로 드리는 소제, 하나님과 언약의 백성 사이에 화목을 위해 동물을 희생해서 드리는 화목제, -화목제에는 감사제, 서원제, 낙헌제, 세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죄를 속하기 위해 동물을 희생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속죄제, 하나님이나 남에 대해 과실로 손해를 입혔을 때 그것을 배상함으로써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드리는 속건제, 제사 드릴 때 제물을 높이 들었다 내려놓는 거제, 제물을 흔들어 드리는 요제, 불로 드린 화제….

레위기에는 이 제사들을 드리는 법이 다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레위기가 복잡한 것입니다.

복잡한 것, 다 기억하시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의 제물이 향기로운 냄새가 나도록 해야 한다는 것 한 가지를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남자 속회 공과 9월의 주제가 성도의 교제입니다.
9월이 성도의 교제가 살아나는 달이 되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교회에서 향기가 진하고 강하게 풍기게 되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21절은 끝부분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라” 단정적으로 명령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정성스러운 것이 되어 향기로운 냄새가 나게 하십시오.
여러분 자신이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십시오.
이 예배가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예배가 되게 하십시오,
우리의 교회가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십시오.

그렇게 해서 그리스도의 향기로서 사명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자신을 향기로운 제물로 하나님께 드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관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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