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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2) (마 28: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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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있는 감리교의 창설자인 요한 웨슬리 기념비에는 웨슬리가 임종시에 남긴 세 가지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째, 세계는 나의 교구다.
둘째, 하나님은 자신의 일꾼을 땅에 묻으시나 자신의 일을 계속해 나가신다.
셋째,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온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말씀보다 더 좋은 말씀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 20절에“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귀한 말씀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 속에서 언제나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에 대하여 시편 121편에 말씀하시기를“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지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편 211:3~8)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지키시되, 그 무엇도 그 누구도 해치 못하도록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 우리들을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우리들과 함께 하실까요? 우리가 무엇이기에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 지키실까요?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하나님의 창조물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3:1에“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 43:1)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들은 사탄의 유혹에 빠져 범죄하므로 영원한 멸망인 지옥의 형벌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우리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값 주고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린도전서 6:19~20)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광경을 가장 아름답게 묘사한 곳이 시편 23편입니다. 양떼를 지키는 목자의 심정으로 표현된 시입니다.“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시편 23:1-6)

양들에게는 반드시 목자가 있어야 합니다. 양은 스스로 자신을 지킬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소는 힘센 뿔이 있고, 말은 무서운 뒷발이 있고, 개는 날카로운 이빨이 있습니다. 그러나 양에게는 그러한 것이 없습니다. 양에 비유된 우리 인간이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불가항력적인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을 지키시며 도우시는 전능자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힘을 지니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한 양은 먼 것을 볼 수 있는 시력이 없습니다. 가시거리가 약 60m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양은 60m밖에는 낭떠러지가 있는지, 가시넝쿨이 있는지, 아니면 맹수기 숨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양들에게는 양을 지키며 인도하는 목자가 있어야 합니다. 인간에게는 천체를 관찰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며칠 전 신문에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어린시절 신앙생활에 대해 보도된 것이 있었습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어렸을 때 교회학교를 열심히 다녔다고 합니다. 고 박 전 대통령과 함께 구미 상모교회를 다녔던 한성도 장로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15~16까지는 주일을 거르는 법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다녔으며, 또 웅변에 재능이 있어서 칠곡, 선산지구 교회연합회에서 주최하는 웅변대회는 1등을 맡아 놓고 했다”고 했습니다. 또 “동화대회에서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너무 잘해서 입상을 하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구사범학교에 다니면서부터 교회에 잘 나오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된 후 1967년 구미상모교회당을 건축할 때, 전체 건축비 380만원 가운데 100만원을 헌금했다고 합니다. 이 금액은 당시 쌀 가격 상승 기준으로 본다면 4000만원정도 된다고 합니다. 또한 대구에 주둔하는 공병대 운전병 1명과 트럭 한대를 1개월간 파견시켜 예배당 신축에 도움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 후 1979년 5월 지미카터 미국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문한 당시 카터 대통령으로부터 예수님을 영접할 것을 권유받고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구두의 약속을 하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해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격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최근 이 교회에서 구미 성시화 운동 기도회를 인도한 김준곤(성시화 운동 총재)목사는 “박 전대통령의 평가는 역사에 맡긴다 해도 신앙적인 차원에서 볼 때 믿음을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했습니다.

국가 미래의 발전은 잘 예견하여 경재성장을 이루었지만, 자신의 미래는 전혀 예견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에게는 전지하신 하나님의 돌보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무덤에서 부활하신 전능하시며 전지하신 주님께서 약속하시기를“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20) 하셨습니다.

二. 성도의 사명이 무엇임을 밝히신 것입니다.

  본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부활하신 후 40일간 세상에 더 계시다가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20)는 말씀을 하시기전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태복음 28:19) 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실천해야 할 사명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사람에게 항상 함께 하셔서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첫째, “가라”고 하셨습니다. 어디로 가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모든 족속에게로 가라는 것입니다. 둘째, 가서 뭘 하라는 것입니까? 제자 삼으라, 세례를 주라,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여 믿게 하고, 믿는 자에게 세례를 주고, 세례 받은 자는 가르쳐 지키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 주님의 주된 관심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증거로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더불어 3년 동안이나 함께 계셨습니다. 그들과 많은 정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들을 세상에 남겨두시고 하늘나라로 가시면서 하고 싶은 말씀이 얼마나 많으셨겠습니까? 그런데 다른 말씀은 하지 않으시고 복음을 전하라는 한마디 말씀을 하셨습니다. 복음증거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며, 십자가에 못 박히신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증거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 더 시급하고 소중한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요꼬미라는 일본군은 태평양 전쟁이 끝난 사실을 모르고 총하나 어깨에 메고 괌의 깊은 산속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무려 27년 동안이나 숨어 지내면서 비행기가 땄다 내렸다 할 때마다 아직도 전쟁 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민간인과 만나게 되어 산속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가 입고 있었던 옷, 녹슨 총은 박물관에 보관해 놓았습니다. 전쟁이 끝났다는 복음을 듣지 못해 27년을 산속 동굴에서 살았습니다. 복음을 듣는 것이 이처럼 중요합니다.

농아들 가운데에는 혀, 입의 구조, 기능은 완전하고 얼마든지 말을 할 수 있는데, 듣지 못하면 벙어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듣지 못해 말을 배우지 못했으니 당연히 말을 못하는 벙어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로마서 10:13~14) 라고 했습니다. 듣지 못하면 구원이 없습니다. 듣지 못한 복음을 어찌 믿으리요. 전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역사는 들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꼭 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듣도록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잘못된 견해가 있습니다. 먼저 사람의 관상을 보고 이 사람은 복음을 전해도 믿지 않을 사람이라고 자기가 먼저 진단하여 결정을 내립니다. 그러한 예측은 빗나갈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전도를 가로막으려는 사탄의 전략에 말려드는 것입니다. 용화사 절에 가려고 우리교회 앞을 지나가던 분이 전도를 받아 우리교회에 오신분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분이 지금은  세례를 받고 열심히 새벽기도에 나오고 계십니다.

듣느냐 듣지 않느냐,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은 전하는 자의 몫이 아닙니다. 에스겔서 33장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군인 나팔수가 적이 오는 것을 보고 나팔을 불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깨지 않아 그만 전쟁을 준비하지 못해 다 죽었다고 하자, 그럴 경우 나팔수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팔수가 잠이 들어 적이 올 때에 나팔을 불지 않아 멸망했다면 그 핏 값을 나팔수에게서 찾겠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복음을 전한 다음에 믿고 안 믿고는 하나님과 그 사람의 마음이고, 중요한 것은 복음을 듣지 못해서 구원받지 못했다면 그것은 입을 다문 우리들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입을 다문 그 사람에게 핏 값을 찾겠다는 것입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어떻게든 복음을 전하여 듣도록 해야 합니다. 믿고 안 믿고는 하나님의 뜻에 맡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말씀하시기를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 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디모데후서 4:1~2)하셨습니다.

또한 본문 19절에“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할 대상과 범위를 알 수 있습니다. 대상은 모든 족속입니다. 모든 족속이란 땅 끝까지 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말씀하시기를“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 1:8)하셨습니다.

복음증거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만민이 다 하나님의 창조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종차별이나, 빈부귀천의 차별이나, 남여노소의 차별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세상을 구원하시고자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은 모두 다 구원받아야 할 대상이며, 하나님의 잃은 양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자를 삼으라 하셨습니다.“제자를 삼으라”는 것은“제자를 만들라”는 말씀입니다. 가르치고 훈련시키라는 것입니다. 제자란, 스승을 배우고 본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모두가 작은 예수가 되어 죄악으로  어두워진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태복음 28:19-20)고 하셨습니다. 세례와 가르침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과정을 뜻하며, 지킴은 제자 됨의 열매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은 전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가르쳐 열두 명의 제자를 남겨 놓으시고 주님은 하늘나라로 올라 가셨습니다. 사람은 배워야 합니다. 배우되 끝없이 배워야합니다. 독일의 철학자인 칸트는“인간은 교육을 요하는 유일한 창조물이며 교육에 의해서만 인간다운 인간이 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또한 프랑스의 사상가인 파스칼은 말하기를“사람은 신과 금수와의 사이에 있다. 그러기에 교육을 요한다.”라고 했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태복음 11:28-29)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배워야합니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는 확신에 찬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튼튼한 뿌리 깊은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믿음의 사람에게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참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가르침을 받지 않은 신앙은 맹목에 빠지기 쉽고, 광신이나 미신에 치우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아무 유익이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지런히 배워야 합니다.

배우되 더 나아가 깨닫는 대로 실행해야 합니다. 배우면서 실행하지 않는 것은 열매 없는 나무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무화과나무는 곧 말라 죽고 말았습니다. 이는 열매 없는 즉 실행이 없는 자에게 하나님의 엄한 진노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배우고, 깨달아 알고 믿으며, 행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실천이 없는 믿음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야고보서 2:14-17)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배우며 실천할 때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이 말씀을 배워 실천하므로 이 세상에 본이 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고린도후서 3:2-3)

우리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편지라 하셨습니다. 먹으로 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썼고, 돌이나 종이에 쓴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썼다고 하셨습니다.

편지는 생각의 표현이며, 나와 너와의 대화양식입니다. 옛날 바벨론은 토판에 썼고, 애굽과 희랍인들은 석판이나 파피루스에 썼고, 유대인들은 가죽에 썼고, 우리들의 옛 조상들은 박달나무에 8만대장경을 썼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씀하시기를“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하셨습니다. 마음에 써있는 글이 얼굴에 나타나 뭇 사람들이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인도의 성자 썬다싱이 제자들과 전도 여행을 하면서 아무 말 없이 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상히 여긴 제자들이“왜 말없이 그냥 돌아왔습니까?”하자“말 없는 전도가 말 많은 전도보다 효과가 더 크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입술로 복음을 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어느덧 가을이 왔습니다. 오곡백과가 열매를 맺고 있습니다. 이 결실의 계절 가을에 우리들도 영혼의 열매를 맺혀야 하겠습니다. 맺히되 픙성하게 맺혀야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농부의 심정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데 누가 감히 해하겠습니까? 그에게는 승리가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복음을 전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애쓰는 성도들을 향해 말씀하시기를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1-33)하셨습니다. 힘써 복음을 전하므로 복의 근원되신 하나님께서 세상 끝 날까지 함께하시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익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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