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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을의 기도 (욥 13: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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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세상에도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하나님은 어김없이 올 가을에도 아름다운 그림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고 있습니다. 콧속으로부터 폐부 깊숙이 상쾌한 공기가 들어오는 계절, 춥지도 덥지도 않은 살기 좋은 계절, 오곡이 익어가는 결실의 계, 살아온 인생을 반추해 보고 싶은 계절, 사랑과 추억을 간직한 지나간 과거를 사색하는 계절입니다. 어렵고 힘들 때 역경을 이겨낸 보람 있는 추억이 들어있는 가을 앨범 속에는 우리의 인생이 모두 담겨있습니다. 이 좋은 계절에 살고 있는 우리는 축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열매가 익듯이 가을 속에 익어가고 있습니다. 이 가을에 우리는 살아오면서 그 동안 섭섭했던 일, 오해 했던 일 있거들랑 모두 지워버리고 사랑으로 마음을 나누며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며 살아갑시다. 마음과 마음이 모여 사는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마음은 아무리 퍼주어도 줄어들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모여 사는 마음 세상에도 가을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태풍과 폭우와 폭염이 온 국민을 힘들게 하고 지나간 후 가을 하늘이 얼마나 높고 맑고 청명한지 모르겠습니다. 기도하기에 좋은 계절, 가을이 깊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을은 기도의 계절입니다. 이맘때가 되면 우리에게는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 라는 시가 떠오릅니다.“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무 가지에 다달은 까마귀와 같이”

기도의 계절, 사랑의 계절,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해 우리에게 주신 최상의 선물인 가을을 비옥한 시간으로 채워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정말 마른나무 끝에 다다른 까마귀처럼 정말 홀로 서 있는 한 사람의 주인공을 우리가 만나 보게 되는데 그는 모든 것에서부터 배반당한 듯한 사람이요, 심지어 가장 가까운 친구들도 와서 3일 동안 같이 울어 주었지만 친구마저도 자기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 슬프고 고통스런 상황을 맞이한 사람 욥입니다. 재산을 잃고 자식을 잃고 또 건강도 잃었습니다. 친구들마저 욥이 죄를 지어 그런 일을 당한다고 하면서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친구들과 오랜 논쟁을 했습니다. "아니야 그런 게 아니야 죄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야 다른 뜻이 있을 거야." "아니야 너 죄 때문에 그런 거야" 계속해서 논쟁을 주고받다가 터질 것 같은 욥은 고개를 하나님을 향해 돌리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그 부분이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는 답답한 가운데 여러 가지 생각들을 쏟아 내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면 그가 한 기도 속에 여러 가지 문제가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욥이 시험 끝난 다음에 이 기도를 다시 한다면 고쳐서 기도했을 것입니다. 사람이 급한 일을 당하면 그저 마음속에 있는 모든 생각들을 거르지 않고 그냥 그대로 하나님 앞에 쏟아 내게 됩니다. 답답한 사람은 이것저것 가릴 겨를도 없이 그렇게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가운데 얼마나 많은 기도가 하늘나라에서는 잡동사니가 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오늘 욥이 드린 기도를 생각하면서 우리의 기도를 한번 점검해 보며 이 가을에 성숙한 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욥은 이렇게 기도의 문을 엽니다.“주여! 주님의 손을 내게 대지 마옵소서. 손을 좀 대지 마옵소서.”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손으로 치며 자기를 괴롭게 한다고 생각하면서 하님께서 제발 그 손을 거두어 줄 것을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21절 말씀입니다.“곧 주의 손을 내게 대지 마옵시며 주의 위엄으로 나를 두렵게 마옵실 것이니이다.”그러나 이 기도는 성숙한 기도가 아닙니다. 주님의 손은 결단코 하나님의 자녀를 괴롭히는 손이 아니며 공연히 하나님의 자녀들을 못살게 구는 그런 심술 맞은 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더러는 이런 기도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 제게 왜 이러십니까? 왜 이렇게 저를 치십니까? 치지 마시고 이제는 손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더 이상 저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 이런 기도를 드리게 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손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서 펼치는 모든 손은 때로는 아프게도, 또는 괴롭게도 느껴지지만 사실은 그 손은 우리를 치료하는 손, 위로하는 손, 우리를 어루만지는 손, 싸매는 손, 새롭게 하는 손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손은 세상을 창조하신 손, 우리를 위로하는 손, 우리를 치료하는 손, 사망의 골짜기를 다니는 우리들을 구원하는 손, 연약한 중에 처해 있는 우리를 강건하게 다시 세워 주는 손, 잠시 동안 우리를 연단하시기도 하지만 그 연단을 통해서 바로 우리를 든든히 세우고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그런 우리 하나님의 손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버지는 잘못한 아들을 징계하게 되는데 그러나 그 징계는 자식을 죽도록 징계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 하여금 바로 세우기 위하여, 강건하게 하기 위하여, 온전한 사람을 만들기 위하여 징계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의 손을 함부로 해석해서는 곤란합니다. 하나님의 손은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깊고 온유한 섭리의 손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더러는 우리가 주님의 손을 보지 않고 손에 들려 있는 매를 볼 수 있는 위험이 있습니다. 마치 그 손이 나를 죽일 것 같은 그런 느낌으로 다가 올 때가 있습니다. 마치 그 손이 나를 버린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우리에게 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욥도 그렇게 기도를 합니다. "주여! 주의 손을 내게 대지 마옵소서."

그러나 이것은 바로 고쳐 써야 하는 기도입니다. 주님의 손이 지금 우리를 위해 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토기장이가 진흙을 이렇게 저렇게 이기고 주물러서 아름다운 토기를 만들어 내듯이 또한 그 토기를 불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여 아름다운 토기로 구어 나오게 하듯이 우리 하나님의 손은 진흙 같은 우리를 만지시고 두드리시며 불 가운데로 통과하게 하셔서 우리를 지금도 완성시켜 나가고 있는 것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대하시든지 비록 아픈 손으로 다가오시더라도 그 손은 나를 죽이는 손이 아니라 만드는 손, 온전하게 하는 손, 회복하게 하는 손, 나를 더욱더 아름답게 빚어 나가는 손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주님 손을 내게 거두어 주옵소서’라고 하는 기도는 온전치 못합니다.

주의 손을 떼지 마소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주여 내게 손을 대지 마소서’하는 대신에 ‘주여 주의 손을 떼지 마소서’지금 하나님의 손은 나로 하여금 온전하게 만들고 치료하고 회복시키고 나를 빚어 가는 과정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주님! 계속해서 저를 만들어 주시고 연단해 주옵소서. 계속해서 저를 만지셔서 온전한 모습을 가지게 해 주옵소서. 진흙과 같은 날 빚으사 주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주소서." 이런 귀한 고백이 우리 속에 있어지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지금 받는 주님의 손길이 아프게 고통스럽게 느껴지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손길은 지금 나를 치료하고 있고 나를 완성하고 있고 나를 아름답게 만들고 있습니다. 어떤 순간에도 "주여! 주님의 손을 내게 떼지 마시고 저를 만들어 주시고 온전케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시는 성숙한 기도의 주인공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침묵하지 마옵소서

욥은 하나님 앞에서 계속해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침묵하지 마옵소서. 내가 답답합니다. 말 좀 하시옵소서." 그의 안타까운 마음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22절 말씀입니다. "그리하시고 주는 나를 부르소서. 내가 대답하리이다. 혹 나로 말씀하게 하옵시고 주는 내게 대답하옵소서!" 욥에게 있어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고통, 육체적인 고통은 참을 수가 있었는데 정말 괴로운 것은 하나님이 한 마디도 말씀하지 않으시고 침묵하는 하나님의 침묵, 이것은 정말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습니다. 왜 이런 고통을 당하는지, 왜 이런 아픔을 겪어야 되는지 그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속 시원하게 하나님과 더불어 대화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은 한 마디도 그의 귀에 들려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우리 신앙생활 중에 제일 답답할 때가 언제입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실 때, 내 문제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말씀하지 않는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하는 순간에는 얼마나 마음이 답답하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 입에서도 똑같은 말이 나옵니다. "주님 제발 침묵하지 마시고 말씀 좀 해 보세요." 그러나 그런 기도가 우리에게 나오는데 이때에 기도를 한 단계 높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야말로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고, 우리를 가장 생각하는 순간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의 표현, 때로는 깊은 침묵을 통하여 하나님의 가장 깊은 사랑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욥의 고통스러운 마음만큼이나 우리 하나님의 마음도 아프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하실 수 없는 그런 하나님의 사정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중간에 말씀하시면 도중에 효과가 떨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이 말씀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은 욥의 고통의 현장 중에 있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은행에 돈 만원을 빚졌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은행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입니다. 은행은 돈 만원에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우리가 은행에 10억을 빚졌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우리의 문제가 아니고 은행의 문제입니다. 매일 전화 걸고 난리 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이 심각한 처지에 있을 때에는 이미 그 문제는 우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그 모든 상황을 보시며 가슴 아파하시고 그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우리 곁에 오셔서 일 하시고 힘쓰시며 인도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믿어야 될 것입니다. 말씀하지 않고 침묵한다고 하나님이 나에게 관심 없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버린 것이 아닙니다. 조용히 말씀하지 않는 순간은 하나님께서 가장 열심히 그리고 확실하게 일하는 순간입니다.

"침묵하지 마옵소서”이렇게 기도하는 것을 바꾸어 "주님이 잠잠히 사랑하시는 침묵의 소리를 듣게 하옵소서. 저는 지금 주님이 일하고 계신 것을 믿고, 저를 사랑하시는 것을 믿으며 저를 돌아보고 계신 것을 믿습니다. 설명해 주지 않아도 다 알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면서 조용히 주님이 말씀하는 침묵의 소리를 듣는 믿음의 귀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침묵하셔도 우리를 향해서 사랑한다고 고백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어떤 상황 중에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욥은 자신의 발에 착고가 채워져서 꼼짝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사정을 표현합니다. "주님 나를 자유롭게 해 주시고 내 발을 자유롭게 하옵소서." 그는 지금 그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27절 말씀입니다. "내 발을 착고에 채우시며 나의 모든 길을 살피사 내 발자취를 한정하시나이다"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꽁꽁 묶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지금 질병의 사슬, 정죄의 사슬, 인간관계의 사슬, 좌절의 사슬에 묶여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하나님은 그를 묶어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더욱더 큰 은혜와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자유를 누리고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잠시 고통의 순간을 통과하게 하신 것입니다.

절망은 희망의 또 다른 이름

여러분이 절망하게 될 때 무엇 때문에 절망하고 있는가를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절망에서 예외 될 사람은 없으며 절망의 영향권 안에서 벗어나 절망의 사각지대에 숨을 자가 없습니다. 인간은 이래도 절망하고 저래도 절망합니다. 가난해서 절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자들도 절망합니다. 불치병 때문에 절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한 자들도 절망합니다. 결혼 못해서 절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한 사람도 절망합니다. 신용불량자라서 절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용 우량자들도 절망합니다. 가을이라 절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봄에도 절망했었습니다. 내 맘대로 안 되어 절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맘대로 잘 될 때도 절망했습니다. 인생의 모순 때문입니다.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풍요지수나 지식지수가 높아질수록 절망지수 또한 높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절망 앞에서는 영웅도, 위인도, 하나님의 사람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사람은, 나보다 더 힘들고, 더 가난하고, 더 실패하고, 더 아픈 사람을 보며 용기를 얻습니다. 베드로를 보며 엉터리 같은 내 자신의 영성과 인격에 안도의 숨을 내쉽니다. 엘리야를 보며 우리와 같은 연약한 질그릇이었음에 한숨을 돌립니다. 만일에 하나님의 사람 가운데 본래부터 훌륭하고 완전한 사람뿐이었다면 아마도 성경은 우리에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여러 가지 절망을 만나게 됩니다. 굳이 무엇 때문이 아니더라도 그냥 사는 게 힘이 듭니다. 그냥 믿는 게 힘이 듭니다.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될지에 대한 중압감이 구름이 비되어 내리듯 우리의 심장을 압박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예외일 수 없으며 위인이라고 다르지 않으며 기도의 거인이라도 봐주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의 절망은 삶의 모든 가능성과 미래에 대하여 희망의 여지가 없는 것 때문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그 어떤 사람의 변화에 대한 기대가 어긋나는 것 때문일 수 있습니다. 보통 깊은 산중에서 길을 잃으면 무조건 산 정상으로 올라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산위에 올라가면 길이 보인다는 뜻이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어디가 정상인지 분별하기 힘들 때 극심한 절망에 도달하게 됩니다. 모든 문제의 정상에는 궁극적 해결자이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요즈음, 예수 믿다 절망하고, 기도하다 절망하고, 사람으로 인하여 절망하고, 교회로 인하여 절망하고 가난으로 인하여 절망한 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절망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절망의 회복은 누구에게나 경험되는 것은 아닙니다. 절망의 회복을 갈망하십시오. 절망은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 되게 하는 자원입니다. 절망 중에 있는 엘리야에게 천사를 급파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은 지금도 절망 중에 있는 교회, 가정, 성도들을 신속히 희망으로 회복시키시기를 소원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렇게나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드렸던 모든 기도를 이 가을에 새롭게 고쳐 보시기 바랍니다. "주의 손을 대지 마시옵소서" 이런 기도를 "주여, 주의 손을 내게서 떼지 마옵소서. 계속해서 저를 만드시고 빚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 고통의 순간 "주여 침묵하지 마옵소서"라는 기도 대신에 "주여 침묵의 소리를 듣게 하옵소서. 주님 깨닫게 하옵소서"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묶여 있는 모든 것을 보면서 "주여 풀어 주옵소서" 라는 기도 대신에 "주여 오히려 더 묶어 주옵소서. 은혜의 줄로 사랑의 줄로 내 발을 묶어서 반석 위에 세우시고 사슴의 발같이 나를 만들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성숙한 기도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는 나무의 뿌리와 같은 것이고, 또한 새의 날개와 같은 것입니다. 깊은 기도를 통해 영혼의 뿌리로부터 자양분을 공급받고, 그리고 영혼의 날개를 펼쳐 자유로이 창공을 날 수 있습니다. 또한 골프를 치려면 값비싼 골프채가 필요하지만, 기도에는 아무런 도구가 필요하지 않으며 테니스를 치려면 파트너가 필요하지만, 기도는 파트너 없이 혼자 할 수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어디서든 가뿐하게 할 수 있고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이 기도입니다.

가을에 내게 물어볼 것은 무엇인가

가을을 선물로 받아 살아가는 우리가 인생의 가을을 맞으면 물어볼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얼른 대답하기 위해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기쁘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가족에게 부끄러움이 없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반갑게 대답하기 위해 나는 지금 좋은 가족의 일원이 되도록 내 할 일을 다 하면서 가족을 사랑하고 부모님께 순종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이웃과 사회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힘주어 대답하기 위해 지금 이웃에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좋은 사회인으로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랑스럽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내 마음의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좋은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겠습니다.

주여,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올 가을에는 조건 없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 믿음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하나님께로 향하는 기도하는 모든 이들이 가을 하늘이 파랗다는 것을 함께 공유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며 산다는 것은 눈과 마음과 귀를 열게 합니다. 부정적인 시각을 긍정의 시각으로 어두운 마음을 밝고 환한 마음으로 얕은 귀를 심혈의 귀로 열어 주며 한번쯤 더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고 삶의 한 부분으로 점차 꽉 채워져 갑니다. 작은 교회에서 일어난 작은 기도의 불꽃들이 큰 불덩이 이루어 이 땅의 황무함과 삭막함 속으로 번져 갔으면 좋겠습니다. 이 일에 쓰임 받을 수 있음에, 더 없이 행복한 가을의 길목입니다. 누구에게나 풍성한 가을되기를 구하면서. 가을이 깊어가는 길목에서 다음 주간에 시작하는 가을부흥사경회를 통해 깊은 기도를 통해 은혜를 체험하면서 쓸쓸한 가을을 뜨거운 가슴의 영성 깊은 우리 영암의 성도들과 함께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주여, 이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사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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