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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물매돌을 던지자 (삼상 17:4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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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합니다. “믿음은 기적을 일으킨다. 믿음으로 나가자” 히브리서 11:1-2절 말씀에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말씀을 읽었습니다.

  골리앗은 하나님의 백성을 멸망시키려는 블레셋 군대의 장군입니다. 키는 약 2m 70cm 정도 되는 거인이고, 그가 입은 갑옷의 무게는 약 57kg 정도라고 합니다. 창에 붙어 있는 날카로운 쇠붙이가 7kg 였고, 그의 갑옷은 완벽하게 골리앗을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였고, 군사 훈련을 받은 사람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다윗은 이제 10대의 어린 소년이었고, 전쟁에 경험이 없는 목동이었습니다. 그는 칼을 들어 본적도 없고 군사훈련을 받은 경험도 없으며, 물론 갑옷도 입어 본 일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싸움은 누가 이겼습니까? 다윗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되었을까요?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도 인생의 골리앗을 이기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에서 골리앗이 상징하는 것이 있습니다. 골리앗은 하나님의 군대를 공격하는 마귀요 어둠의 권세를 상징합니다. 우리를 두려움에 빠지게 하는 악한 영적 권세를 의미합니다.

  23절 말씀에 보면 골리앗을 가리켜 “싸움을 돋우는 가드 사람 골리앗”이라고 했습니다. 싸움을 돋운다는 것은 싸움을 거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전쟁의 맨 앞에서 서서 상대방의 무시하고, 비난하고, 비하하면서 상대의 심기를 건드려 상대가 분노하게 만들고, 집중력을 떨어뜨려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25절에는 모욕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모욕하고, 욕하며, 분노하게 하는 마귀를 이기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귀에게 속아 죄의 종이 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처럼 오늘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골리앗으로 표현되고 있는 마귀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면서 성도들의 마음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마음에 상처 주는 말을  마구합니다. 영혼을 공격하면서 분노를 일으키도록 만듭니다. 다른 사람의 심기를 건들면서 약을 올립니다. 상대의 속을 뒤집어 놓고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부부 싸움을 하는 것을 보면 남편이나 아내 쪽에 꼭 이런 사람들 있습니다. 말로 살살 다른 사람의 심기를 건드려서 분노하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분노를 일으키고, 싸움을 돋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평화를 만드는 피스메이커가 되어야 합니다. 행복을 만드는 해피 메어커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성임이요”(마5:9). 마귀는 싸움을 돋우는 자라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화평과 평강과 위로와 사랑과 행복을 만드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행복을 만들자. 사랑을 만들자. 위로자가 되자.” 할렐루야!

  골리앗은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24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그 앞에서 도망하였다”고 했습니다.

  사실 마귀와 귀신은 겉으로 보면 골리앗처럼 두려운 존재입니다. 성경은 마귀를 두려움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무서움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2m 70Cm의 거대한 몸과 그가 들고 있는 거대한 창과 검, 그리고 그가 입고 있는 갑옷을 보면 두려워 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씨름 선수였다가 격투기인 K1으로 옮겨간 최홍만 선수를 보면 어른이 아이처럼 보입니다. 거기에 갑옷을 입혀놓고, 칼과 창을 들고 앞으로 나가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를 치면서 나와 싸울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하면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여러분 앞에 어떤 인생의 골리앗이 있는지 모르지만 오늘 말씀을 통해 그 골리앗을 이기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한 이 골리앗의 특성을 보면 교만으로 가득찬 인간입니다. 그는 자신의 힘만을 믿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깔보며 업신여기는 육신의 사람이었습니다. 42절에서 골리앗은 자신의 적수로 나온 다윗을 보고 업신여겼다고 했습니다.

  상대방에서 상대를 대적할 상대를 보냈다면 그 사람과 비슷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 보낸 것이 아닙니까? 상대가 되지 못한다면 왜 1:1 싸움에 내 보냈겠습니까?  자기 힘에 도취되어서 자신의 약점을 보지 못한 사람이 골리앗입니다. 교만한 사람들을 보면 강한 사람들 앞에서는 꼬리를 내리지만 자신보다 약자 앞에서 상대를 무시하고는 자신의 힘을 자랑하고, 자신이 있는 것을 자랑하는 어리석은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본문에 보면 다윗의 맏형 엘리압이 나옵니다. 그는 다윗이 형들을 위문하러 왔다가 블레셋 장군 골리앗의 오만 방자한 모습을 보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버럭 화를 내면서 말하기를 “네가 어찌 여기에 왔느냐? 들에 있는 양을 네가 내버리고 온 것은 네가 교만하기 때문이다. 나는 네 교만함과 완악한 그 못된 마음을 아니 너는 전쟁을 재미 삼아 구경하러 온 것이다”라고 다윗을 책망하고 질책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엘리압은 지금 어떤 상황입니까? 그는 지금  골리앗의 그 엄청난 위력에 완전히 압도당하여 숨도 크게 쉬지 못하면서도 자기 아랫사람인 다윗에 대하여는 아예 사람 취급도 하지 않고, 그를 인정도 하려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천국에서 누가 큰지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람들은 겸손으로 옷을 입어야 합니다. 나보다 상대를 높여 주고, 인정해 주고, 사랑해야 합니다.

  골리앗을 이기기 위해 우리는 첫째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45절에서 세상 사람들은 창과 검으로 나옵니다. 자신들의 가지고 있는 힘과 재능과 능력과 지식을 가지고 나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이 그들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힘은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 외에는 없습니다.

  둘째로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하는 오해 중에 큰 오해가 자신이 전쟁에서 승리자가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전쟁은 내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지난 주에도 보았지만, 아말렉과 여호수아가 싸움을 했습니다. 객관적으로 실재적으로 보면 아말렉과의 전쟁은 여호수아가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인 것에 불과 한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모세의 손이 끊임없이 올라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말렉 족속과 싸우셨기 때문입니다.  따라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싸우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윗처럼 믿음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다윗의 형제들이나, 사울 왕처럼 골리앗의 기세에 누려서는 안됩니다. 능히 우리들에게 승리를 주시고, 이기게 하시는 그분의 이름에 의지해서 골리앗에게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칼이나 창이나 방패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믿음의 문제입니다. 우리를 위해 하나님은 오늘도 싸우십니다.

  따라서 할 수 없다. 안된다. 불가능하다라는 말은 하면 안됩니다.  1954년에는 인간의 신체를 4분 이내에 1마일을 달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물리학적으로 그것을 극복할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보고서가 발표된 그 해에 그 보고서를 비웃듯이 로저 배니스터가 그 기록을 깨버렸고, 불과 2년 사이에 213명의 선수들이 4분 이내에 1마일을 달리는 선수들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현대는 4분에 1마일 정도는 보통 선수들이 다 할 수 있는 기록이라고 합니다. 1900년 올리픽에서 어빙 백스터라는 사람이 높이 뛰기에거 1.889m를 뛰어 세계 신기록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앞으로 2.133m인 7피트를 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 후에 포즈베리라는 선수가 나타났습니다. 포즈베리가 나오기까지 선수들은 앞으로만 달려 장대를 넘었지만, 포즈베리는 그들과 달리 등으로 넘는 방법으로 인간의 한계라고 여긴 2.133m를 뛰어 넘었습니다. 최근에는 보통 선수들이 2.4m를 넘는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자꾸 마음에 할 수 없다. 안된다. 불가능 하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 말을 받아 들이면 안됩니다. 골리앗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너희는 나를 넘을 수 없다. 이것이 너희의 한계다. 너희 중에 나를 이길 자가 없다. 너는 할 수 없다. 할 수 없다라고 떠들어 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는 전능하시다고 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가 너에게 간다고 했습니다.

  내 능력으로 안되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안되는 방법을 찾지 말고 할 수 있고, 가능하고 될 수 있는 방법을 우리는 찾아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골리앗을 넘어갈 수 있고, 우리의 산을 믿음으로 옮기며, 여리고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조들이 어떻게 홍해를 건넜으며, 어떻게 요단강을 건너 여리성을 점령하였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들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습니까? 그러면, 도전을 해야 합니다. 다윗이 도전한 것은 세상의 방법으로 도전한 것이 아닙니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한다면 너무나도 억울하지 않습니까? 세상은 창과 칼과 단창과 방패와 갑옷으로 무장하고 완벽해 보여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당할 수가 없습니다.

  셋째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믿음을 가지고 나가는 사람들은 물매 돌을 준비해서 어느 물맷돌을 사용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다윗은 신중하게 물맷돌 다섯 개를 준비했습니다. 그 중에서 한 방에 그를 무너뜨릴 수 있는 물매 돌을 물매에 놓고 돌려 그의 이마를 향해 던졌습니다.

  다윗은 평소에 그 물맷돌을 사용해서 사자와 곰을 잡았기 때문에 그 무기가 자기에게 가장 알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생의 승리는 특별한 것을 준비해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평소에 사용하고 손에 익인 물건을 사용해야 합니다.

  모세는 자신이 사용하던 지팡이로 기적과 표적을 일으키고, 홍해를 갈랐으며, 반석에서 물이 나게 했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거인을 쓰러 뜨리기 위해 우리는 단 한개의 돌을 준비해서는 안됩니다. 몇 개의 돌을 준비하고, 그 중에 가장 적절한 돌을 골라 사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왜 골리앗을 쓰려뜨려야 하는가?라는 목적이라는 돌을 물매 주머니에 넣을 둘 필요가 있습니다. 때로는 그를 쓰러 뜨리기 위해서는 얼마의 비용이 필요한가?라는 비용이라는 돌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 여러분은 어떤 방향으로 돌을 던져서 그를 쓰러뜨릴 수 있을까?라는 방법에 대한 돌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의 돌에 우선 순위를 매기고, 순서에 따라 그 돌을 사용하는 우선순위를 조정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돌들 중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가장 강력한 돌을 선택하여, 최선을 다해 힘껏 믿음의 돌을 골리앗에게 던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서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는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겠다고 하자 형 엘리압과 아비나답과 삼마는 그를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형제들을 설득해야 했고, 형 엘리압은 그를 교만한 자, 마음이 완악한 자라고까지 비난했고, 다윗은 가장 그를 믿어 주고 함께 해야할 핏줄인 형제들의 반대의 산을 넘어야 했습니다.

  그가 사울 왕 앞에 섯을 때 그는 골리앗으로 인해 크게 실망하고 낙심하고 낙담으로 좌절하고 있는 사울 왕의 마음을 바꿔야 했습니다. 사울은 다윗에게 말하기를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을리니 너는 소녀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사울 왕 조차 다윗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어떤 방법으로 그를 이길 것인지에 대해 많은 시간 동안 설명을 해야 했고, 사자와 곰을 죽이 이야기와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믿음의 간증을 오랜 시간 그 앞에서 고백해야 했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형들의 비난과 사울 왕과 그의 신하들의 불신을 극복할 수 있었던 오직 하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금 돕고 계시다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분명히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도 그 짐승의 하나같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4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을 알게 하겠고”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전쟁은 내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손을 들어 기도할 때 여호수아가 이기는 것 같아도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말렉과 싸우신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우리들의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 앞에 있는 골리앗은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돌을 던지기만 하면 쓰러지게 되어 있습니다. 골리앗이 힘이 센 것 같아도 결코 아닙니다. 마귀는 속빈 강정과 같습니다. 겉으로보면 커 보이고, 겉으로 보면 힘이 센 것 같아도 믿음의 사람의 기도와 적극적인 도전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이제 믿음을 가지고 도전해야 합니다. 돌을 준비하고, 믿음으로 던져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골리앗은 무너집니다. “인생의 골리앗은 무너진다. 골리앗은 쓰러진다 믿음의 물매돌을 던지자” 할렐루야! (한용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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