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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놋뱀을 바라보라 (민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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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광야 생활은 몹시 힘겹고 지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40년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과 패배의 반복된 삶을 살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40년 광야생활이 거의 끝나가는 시점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많은 세대교체도 이루어졌습니다. 오랜 광야생활에 지치고 고달픈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돔을 돌아 가나안으로 가는 험한 여정에 마음이 상했습니다. 마음이 상하자 갑작스레 모든 것이 불평스러워 졌습니다.
상한 마음과 인내심의 부족에서 오는 원망이 주님과 모세를 향하여 터져 나왔습니다. 그들은 해묵은 불평을 다시 터트렸습니다. “우리를 이 광야에서 죽게 하려고 이집트에서 끌어낸거야.” “하나님은 왜 허구한날 이 박한 식물(만나)만 먹으라고 주시는 거야 . . . .” 음식타령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이후부터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사치 아니하고 오히려 민11장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이 “박한 식물” 만나 외에는 도무지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하였습니다.
그리고 정력이 쇠약해져 간다고 불평하면서 애굽에서 먹던 생선들, 수박과 참외, 그리고 정력식품이었던 마늘, 파, 부추 등을 생각하면서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고 메추라기 고기로 그들을 한달 간이나 먹이셨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음식 타령을 하고 나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원망하자 하나님께서 광야의 불뱀들을 보내어 그들을 물어 죽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불신앙에 대한 징벌이었습니다.

기억상실증 인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이 가까워 오자 마음이 조급해 졌고 또한 긴 여행으로 인해 지쳐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에돔이 이스라엘의 영내 통과를 거절하여 가나안으로 가는 편하고 빠른 길 대신에 척박하고 먼 홍해길로 돌아가게 되자 급기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금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고 나섰습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질병 중에 하나는 기억상실증입니다. 5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가는 일로 인해 또다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불평의 내용이 20장에서 불평하는 물이 없어서 불평하는 것과 너무 비슷합니다. 왜! 굽땅에서 편안히 살면 될 것을 이렇게 먹을 것도 없는 거친 광야로 인도하느냐하는 것입니다.
참 사람은 뻔뻔한 존재입니다 원망하다가 문제가 해결되면 잠잠하고, 또 다시 문제가 생기면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린 환자들 같이 지난번에 문제를 해결해 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잊어버리고 또 다시 원망하는 불신앙을 나타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은 늘 잊어버립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도 잊기를 잘합니다. 그러나 가끔씩 닥치는 어려움으로 인하여서는 신속히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여러분 혹 어려움 가운데 있을 지라도 우리에게 행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그 분의 놀라운 능력을 기억하시고 언제나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불뱀을 조심하라

6절을 보면 불뱀에 물려 죽은 자가 많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불뱀은 아라바광야에서 흔히 발견되는 맹독성 뱀입니다. 이 뱀에 한번 물리면 순식간에 생명을 잃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지나오면서 한번도 이 뱀에 물려 죽은 일이 없었습니다.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기적입니다. 하나님의 보호 때문입니다.

신8: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그 은혜에 감사하기는 커녕 도리어 원망하자 백성들에 대한 보호를 풀어 버리셨습니다. 그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원망하면 하나님의 보호를 풀어버리십니다.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근신하여 깨어 있어야 합니다.

불뱀은 죄를 의미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에 한번 물리면 약이 없습니다. 죽습니다. 요10: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감사와 찬송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원망과 불평은 사탄 마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탄은 성도들로 하여금 그 입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주의 종에게 불평하게 만듭니다. 사탄은 온갖 방법을 다 써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욥은 소 떼, 양 떼 모두 다 도적맞고 불타 죽고, 자녀 10남매가 대풍에 집이 무너지면서 다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그 입으로 원망의 말이나 불평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욥기 1장 21절에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1:22)고 했습니다.
욥은 입술로 범죄 치 않았습니다. 결국 전보다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 인생도 때로는 고통과 고난이 옵니다. 자신이 원하고 바라는 대로 안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상처를 받고 과거의 축복과 사랑은 다 잊어버린 채, 현실만 보고 원망과 불평에 빠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원망과 불평은 뱀을 불러들이고 뱀은 결국 우리를 물어 죽게 만듭니다. 불신과 원망과 불평은 우리 몸에 독이 퍼지게 해 건강을 잃고 병들게 만듭니다. 기쁨을 잃고 기도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불신앙에 빠져 하나님의 축복의 반열에서 서서히 떠나게 만듭니다. 가난과 저주와 질병으로 멸망하고 죽음을 당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불평이 자꾸 나올 때는 마귀가 나를 시험하는구나하고 빨리 회개하고 주님 앞에 나가면 다시 회복될 줄 믿습니다. 불평마귀를 이겨야 합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전도하다가 점치는 귀신을 쫓아낸 것 때문에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서 매를 맞고 쇠고랑을 찼는데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기쁨으로 찬송하고 기도했더니 쇠고랑이 풀려져 나가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불평 원망하는 사람은 가정을 불행하게 만들고 교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자신도 결국 노이로제, 위장병 등에 걸리기 쉽습니다.
원망과 불평은 자신을 멍들게 할 뿐입니다. 절대로 부정적인 사람이 되지 마시고, 믿음으로 생각하고, 믿음의 말을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원망, 불평 대신에 감사, 찬송하시고 기도에 힘씁시다.
원망은 망하는 질병이다.
대개 원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막무가내로 원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길로 인하여” 마음이 상했다고 했습니다. 물론 빨리 가면 좋겠지만, 매사가 빨리 되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지름길로 가지 않고 돌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음에 상처를 받아서는 안됩니다. 원망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은 또한 “식물도 없고 물도 없다”고 원망하였습니다.
만나는 결코 박한 식물이 아니었습니다.(출16:31)에 만나의 맛은 꿀 섞은 과자 같다고 했습니다. 원망한 자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맛있는 만나를 저희 소욕대로 주셨다(시78:29)고 했습니다. ”저희가 저희 탐욕대로 식물을 구하여 저희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다“(시78:10)고 했습니다. 그들의 욕심때문입니다. 사람은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감사함으로 먹지 않으면 맛이 없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내리신 만나 때문에 살았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복주심에 감사해야 할 것인데 감사치는 않고 오히려 “박한 식물이 싫다”고 불평하였습니다. 감사하는 신앙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감사를 잃어버린 사람은 이것도 불평, 저것도 불평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어떠했습니까? 모세는 그 어떤 불평이나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음식과 물이 충분해서 그러했습니까? 모세도 백성들과 함께 배고프고, 백성들의 목마름과 똑같이 모세도 목이 바싹하게 말라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 과정을 참고 견디며 침묵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을 믿으며, 하나님의 음성이 자신에게 이르기까지 인내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같은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원망은 전염됩니다. 불평 원망 하는 사람 옆에 있으면 불평 원만의 사람이 됩니다. 어떤 사람이 두 앵무새를 각각 다른 새장에 길렀습니다. 그런데 한 마리는 노래를 배우고 한 마리는 욕을 배웠습니다. 주인은 두 마리 앵무새를 함께 두면 노래를 배우리라 생각하고 함께 새장에 두었습니다. 얼마후 주인이 문열고 들어갔더니 "주인새끼 온다" 그르더랍니다. 욕을 배우고 말았던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은 자신도 망하고 다른 사람도 망하는 못된 성질이 있습니다.

로버트 휴즈는 현대사회를 가리켜 “불평의 문화(Culture of Complaints)” 시대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다 불평에 빠져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30년, 50년 전보다도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고 문명과 문화의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까? 그런데도 욕심 때문에, 감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원망과 불평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은 모든 이들에게 다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물론 어떤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다 만족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경제적인 것이나 모든 면에 있어서 짜증나고 답답하고 불만스럽고 한탄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시대 속에서 떠들고 같이 몰려다니며 불만하고 한탄할 것이 아니라 이 현실에 대해서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을 바라는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학교에서도 부모님께 감사하는 학생, 선생님께 감사하는 학생이 공부를 잘합니다. 공부 못하는 학생은 부모님께도 불평하고, 선생님께도 불평하고, 학교에 대해서도 불평하고, 늘 불평이 많습니다.
사업을 함에 있어서도 실패한 사람들이 불평이 더 많습니다. 불평과 원망은 자신의 인생만 망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인생도 망칩니다. 그러나 감사는 긍정적인 믿음을 가지게 합니다. 앞으로 전진하여 성공하고 승리하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나와서 은혜 받고 감사하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불평하며 원망하는 사람은 불신앙의 사람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외과의사 다글라스 박사는 환자들의 심리상태에 대한 연구를 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은 자신의 뼈를 부식하게 만들어서 골다공증에 걸리지만, 항상 감사하고 기뻐하는 사람은 뼈가 더 단단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자세에 있는 것입니다. 가치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시37:7-9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감사하는 사람이 승리자입니다. 성공자가 됩니다. 땅을 차지합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다 실패합니다.
고집을 버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뱀에 물려 독이 퍼져 죽게 되자, 결국 그들은 뱀에 물려 죽어 가면서 모세를 찾아갔고, 모세는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비로소 회개를 했습니다. 사람들은 얻어맞아야 회개를 합니다. 그러나 뒤늦게나마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구원과 은총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대하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
회개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죄를 용서하시고, 질병에서 고쳐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회개를 통해서 복을 주십니다. 회개하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됩니다. 비록 감사치 못한 죄, 원망하고 불평한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그래서 지금 병들고 어려움을 겪으며 고통을 당하고 있다 할지라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고집을 부려서 더 깊은 죄악과 저주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나와 회개하는 성도들이 되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불평으로 퍽퍽 쓰러지는 현장에서 지도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은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높이 매달라고 명령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즉시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고 그 놋뱀을 바라보는 자는 살리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이 때 모세의 말대로 장대에 달린 놋뱀을 바라본 사람은 다 살았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원망·불평하며 땅만 쳐다본 사람은 불뱀에 물려 죽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고집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고집을 꺾어야 복을 받습니다. 고집은 교만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시골에 어떤 부인이 집안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남편과 의견 충돌이 벌어 졌습니다.
토마토를 소금에 쳐서 먹는 데 맛있느냐 아니면 설탕에 쳐서 먹는게 맜있느냐 같고 서로
언성이 높아 졌습니다. 그때 남편이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뭘안다고 그래” 그 말을 들은 아내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존심에 상쳐가 낫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고집으로 대항 하였습니다. “아 알았어요 나는 아는 것도 모르고 무식하니까 계속 입을 닥치고 있을 테니 당신이 잘 해 보세요”
그 후로 그 부인은 남편 앞에서 절대로 입을 열지 않았는데 무려 3년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남편은 입을 열지 않는 아내의 모습에 당황하여서 사과를 하면서 다시는 그렇지 않겠노라고 맹세를 하고 빌었지만 그 부인의 고집을 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남편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그래서 친구들을 찾아 다니며 매일밤 술을 먹고 아내를 비난하였습니다. 어느 겨울날 만취된 그 남편은 길거리에서 술에 취하여 동사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제야 그 아내는 죽은 남편에 시신을 붙잡고 이제 혼자 살아가야 될 자신에 인생을 생각하면서 남편을 바라보고 슬피 울면서 입을 열었습니다. “여보 미안해요” 그러나 이미 그 남편은 그 말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불뱀에 물려 뒤늦게 죄를 뉘우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대로 놋뱀을 바라본 사람들은 고침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모세의 말에 순종하고, 주의 종에게 순종하는 사람은 삽니다. 그러나 불순종한 사람들은 다 불뱀에 물려 죽게 되었습니다.

보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내 눈앞에 무엇이 있느냐,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성도들이 보아야 할 것들을 말씀합니다. 위의 것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골3:1).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하시는 이인 주님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히12:2).
늘 TV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TV의 종이 됩니다. 요즘 정서 장애아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그 원인 중에 하나가 TV시청이라는 것입니다.

놋뱀을 바라보라

모세의 말에 순종해서 놋뱀을 쳐다본 사람은 해독이 되어 살았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불순종하며 땅만 쳐다보고 원망, 불평한 사람들은 서서히 독이 퍼져서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라는 것은 하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잘 걸리는 병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불순종의 병입니다. 이 병은 눈에는 안 보이지만, 병 중에서도 아주 심각한 병입니다.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행3장을 보면, 성전 미문에 앉아있던 앉은뱅이도 지나가는 베드로와 요한을 쳐다보았다고 했습니다.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저희에게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행3:4-5)

그랬더니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행3:6-8)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놋뱀을 만들라고 하신 것은 놋뱀 자체에 무슨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들의 신앙과 순종 여부를 알려는 것입니다.
놋뱀을 바라본다고 고침받는 다는 이론은 비이성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놋뱀이 아니고 나무뱀을 바라좌라고 하셨을 지라도 순종하는 자는 나았을 것입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이성적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구속의 교리는 비이성적입니다. 예수의 피가 모든 죄를 씻는다는 것은 비이성적 입니다. 놋뱀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요3:14-15)고 했습니다.

구리뱀이 장대위에 높이 달린 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예표합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을 버리시고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 죄 구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 십자가를 바라보고 받으면 죄사함을 받습니다. 새 힘을 얻습니다. 지금도 . . . 독수리가 날개치며 하늘을 오르는 그런 피곤을 모르는 힘을 얻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모두의 죄를 다 사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 십자가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원망하여 범죄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신앙으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임경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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