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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장 행복한 사람(2) : 사랑을 아는 사람 (아 5: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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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중의 노래(song of song)라고 불리는 아가는 솔로몬 왕과 그의 애인 술람미 여인과의 주고받는 사랑을 노래한 것입니다. 본문말씀에는 예루살렘 여인들로부터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술람미가 대답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는 “나의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만 사람에 뛰어난다”고 하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기의 사랑하는 자를 칭송하고 자랑합니다. 술람미처럼 사랑을 알고 이것으로 즐기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1. 사랑의 가치를 아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하찮은 것으로 여김을 받습니다. 사랑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길 수 없는 행복을 즐깁니다. 이 성경의 저자 솔로몬은 사랑을 죽음보다 강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아 8:6). 사도 베드로는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하였습니다(벧전 4:8). 바울은 사랑을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였습니다(롬 13:8).

오늘날 그리스도인 중에 성경적인 지식과 믿음의 신비를 경험하고도 그의 삶속에서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두고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고전 13:1-3).

순수한 사랑은 그자체가 좋은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인간적인 사랑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가령 이성간의 애정(eros)이나 친구간의 우정(philia)또는 부모자식간의 혈연적인 사랑(stolge) 등은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런 유의 사랑은 시간과 환경에 따라 변할 수도 있고 또 그자체가 지니는 불완전성 때문에 영원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사랑(agape)은 완전하고 영원합니다.

2. 사랑의 본질인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본문 성경에 나오는 술람미는 사랑의 맛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는 이미 솔로몬과 깊은 사랑에 빠져보았으며 왕의 가마를 타고 왕궁에까지 들어가서 신방을 차리기도 하였습니다(아 2:6-7).
지금은 잠시 사이가 멀어지고 자기혼자 솔로몬을 그리워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그는 왕관보다 더 화려하고 행복하게 하는 사랑의 가치를 알고 있습니다.
여기 "예루살렘 여자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고 한 말은 지금 그토록 연모하는 자기의 심정을 토로하는 말입니다.

여기 대하여 예루살렘 여자들이 술람미에게 “여자들 중에 지극히 어여쁜 자야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너의 사랑하는 자가 남의 사랑하는 자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기에 이같이 우리에게 부탁하는가”하고 물었습니다(9절). 술람미는 “나의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만 사람에게 뛰어난다”고 대답 하였습니다. 이어서 머리부터 얼굴과 팔, 다리에 이르기까지 그 전체가 사랑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어느 것 하나 좋게 보이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에 콩깍지가 끼었다’고 하거나 ‘제정신이 아니다’고 말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향한 우리들의 마음도 그렇습니다.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이 볼 때 미쳤다고 할 만큼 그 사람에 매혹되고 거기에 온전히 빠져 있는 것이 정상입니다. 술람미가 자기의 사랑을 가리켜 “희고도 붉다”고 말한 것은 예수님에 대한 우리들의 신앙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성결의 주님을 뜻합니다.

희다는 것은 흠이 없고 깨끗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 예수님의 무죄 성결하심을 뜻합니다. 히브리서 7:26에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자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사죄 받은 성도들의 모습을 희다고 표현하였습니다. 계시록 19:8에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고 하였습니다.

2)정열적인 사랑을 뜻합니다.

붉은 색깔은 매우 뜨겁고 정열적인 내용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여기 술람미의 경우 그가 솔로몬 왕으로 부터 받은 사랑의 강도는 매우 파격적이고 열정적이었습니다. 한 나라의 제왕으로서 지존다운 권위나 체면 같은 것은 무시하고 밤이슬을 맞으며 산촌 유벽한곳까지 술람미를 찾아서 나왔다거나, 또는 그의 문밖에 서서 문을 열어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이며, 그리고 술람미와 함께 누워 왼손으로 베개하고 오른손으로 끌어안았다는 등 그의 사랑이 뜨거운 행동으로 이지고 있었습니다.

3) 희생적인 사랑입니다.

붉은 색깔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를 상징합니다. 나라에서 최고의 권세를 가진 왕이 이름 없는 평민의 한 여자를 위해 평복을 입고 왕궁을 벗어나 산길을 걸어 여인의 집에까지 찾아 나선 것을, 말할 수 없는 자기 비하(卑下)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사람의 몸으로 세상에 오셨고 또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 부터 속량해주신 대속의 사랑이야 말로 그 어디에도 비길 수 없는  최상의 사랑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3.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할 때 이는 그 어떤 대상으로 부터 받는 사랑과도 비교를 할 수 없습니다. 요한1서4;9-10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죄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술람미의 경우 그가 황공할 만큼 솔로몬왕의 사랑을 몸으로 느끼면서 황홀한 감격에 젖어있었습니다. 그것은 솔로몬이 그가 있는 곳까지 친히 찾아와 주었기 때문입니다. 아가 2:8에 “나의 사랑하는 자의 목소리로구나 보라 그가 산에서 달리고 작은 산을 빨리 넘어 오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찾아온 왕은 그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아가 4:1에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 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라고 하며 최상급의 표현으로 그를 아름답다고 인정해 주었습니다.
이런 과분한 사랑을 받은 그가 잠시 그 행복을 망각하고 솔로몬을 놓쳐버렸을 때 병이 나고 말았습니다. 아가 5:8에 “예루살렘 여자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고 하였습니다.
 
4.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사랑의 행복은 받는 자에게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어야 행복을 실감하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받는 사랑보다 주는 사랑이 더 크고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족관계에 있어서 부모는 자식을 위해서 평생 동안 주기만 합니다. 그러면서도 부모의 마음속에 그가 자식에게 사랑을 베풀기만 한다고 불행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사랑을 줄 자식이 없거나 자식이 부모의 사랑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이를 거부할 경우 낙심하고 슬퍼하게 됩니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상대가 자기의 사랑을 거부하거나 자기가 사랑을 줄 수 없을 때 불행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사랑의 행복은 주면서 느끼는 것이고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대상과 사랑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의 지수도 병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는 사람은 그 사랑을 이웃과 더불어 나누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요한1서 4:11에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룬다는 것은 우리 안에서 사랑의 행복이 완성되고 있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으로 인한 행복! 이것은 점차 가정에서 가족 간에 누리는 행복이요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공유하는 행복인 것이며 나아가 삭막한 세상에서 이웃과 사회로 번져나가는 행복의 풍요로움이 되는 것입니다. 
(손상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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