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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공동생활과 교회봉사 (롬 12: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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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본문 해설

사도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복음교리들을 상세히 풀어 전해주었습니다. 로마서 첫 장부터 저들에게 복음 들려주기를 간절히 원했다는 자신의 소망을 피력한 후, 복음이 무엇이며, 복음 교리가 무엇인지를 상세히 설명하였고, 12장에서는 이 교리를 실제 삶에 적용하여 교훈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교회를 섬기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권면하는 가운데 나온 내용입니다. 우리 신앙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 있는 신앙생활이 되려면 모든 삶이 지식의 기반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왜 그렇게 행해야만 하는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알았으면 어떻게 그 뜻대로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지식이 우리 삶의 실제적 기초가 되어 행할 때 우리의 신앙은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신자가 건강한 신앙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받고 교회의 지체가 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접붙임을 받은 신자는 몸된 교회를 위해 신실하게 봉사하는 가운데 자라나게 됩니다. 지식으로도 영적으로도 모두 어린 자였던 다메섹의 사도바울이 이러한 깊은 영적 지식들을 알려줄 만큼 원숙한 신앙인이 된 것은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그리스도와 교회를 향한 치열함 섬김의 삶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II. 교회의 존재 이유: 하나님, 세상, 교회자신

교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합니까? 교회를 위해 봉사할 만한 이유가 교회 안에 있는지를 생각해 봅시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다음의 세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교회는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높이고 경배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사명은 예배 행위를 통해서 가장 잘 표현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찬양하고, 그분의 도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기도하고, 겸손하게 그 말씀을 청종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모든 삶들은 회개하고, 올바르게 살 수 있었던 삶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며,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살 수 있는 새 힘을 공급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 자신을 위해 교회가 존재하므로 우리는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인간의 필요를 채우기 이전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을 높이는 것이 우선이기에, 그분의 뜻과 계획을 위해 우리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둘째, 교회는 세상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 3:16) 하나님은 이처럼 인간들을 사랑하사 그분 자신을 내어 주셨지만, 사람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행복이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참 행복되신 그분을 알지 못하는 것, 그분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 그분을 대항하며 사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슬픔과 고통의 궁극적인 원인입니다. 교회는 이런 자들에게 지식의 빛을 나누어 주어 하나님이 누구신지, 인간이 누구인지를 보게 해야 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참 인간답게 사는 것인지, 참으로 행복해 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향한 교회의 사명이며, 존재목적인 것입니다. 그런 지식의 밝은 빛을 받게 될 때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자신이 마땅히 사랑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발견하게 됩니다. 그분이 바로 창조주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을 창조하셨고, 우리 자신을 만드셨으며, 우리의 영혼을 지으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지식과 사랑을 나눠주는 것이 교회 존재 목적인 것입니다. 복음전파도 이 지식과 사랑을 나눠주기 위한 행위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떻게 해야 그분의 뜻에 합당한 존재가 되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알고, 그리스도께 접붙여진 사람들에게 그분의 마음을 주셔서 흩어져 있는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복음의 빛을 전해주길 원하십니다. 강원도 정선의 무교회 지역을 위한 선교 일정이 끝이 났습니다.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 그렇게 먼 오지에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인생의 참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채 죽어간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복음을 전해주지 않는다면 들을 수도 믿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역을 세상 끝 날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창조주의 사랑과 능력을 저들에게 전해주어 그분께로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빛과 사랑을 나눠주고 보여주는 자가 되어, 이 지식과 빛 아래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셋째, 교회는 우리 자신을 위해 존재합니다. 눈에 보이는 교회에는 그리스도께 접붙여진 사람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는 나오지만 아직 그리스도께 접붙여지지 않아서 예수의 몸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이 진실한 회심과 구원에 이를 때까지, 누군가가 끝까지 사랑하고 예수의 참 복음의 빛을 지속적으로 전해주며 그 사랑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섬김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 그분의 몸에 접붙여진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필요합니다. 한 번 그리스도께 접붙여 졌고 주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도 없이 신실한 신앙생활을 해나는 자는 없습니다. 몇 해 전만 해도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해나가던 자가 오늘은 부패하여 미끄러질 수 있으며,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바로 이런 자들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목적이 합쳐져 교회의 존재 목적은 드러나게 됩니다. 이는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진리의 빛과 성령의 은혜와 사랑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아직까지도 그 빛과 사랑을 경험치 못한 자들이 그리스도께 참으로 접붙여진 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적 생명이 필요합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은혜만으로 가능하며, 이를 통해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세상과 교회의 지체들을 위해 교회는 존재합니다. 교회 내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은 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그 목적에 합당한 역할과 사명이 주어졌으며, 그것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는 가운데 교회 존재 목적은 훌륭하게 구현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공동체는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게 됩니다.

III. 교회 자신이 섬김을 필요로 함

이러한 교회의 존재 목적에 맞춰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교회 자신이 수많은 섬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이 목적 때문에, 아무리 많은 어려움이 있다할지라도 우리는 교회를 위해 마음과 뜻을 합하여 섬기에 되고, 최고의 봉사를 하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은 더 많이 영광 받으시고, 이웃은 복음의 은혜의 혜택을 더 많이 받으며, 교회 지체들은 그러한 섬김으로 더 온전히 커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은혜는 자신만이 행복하게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교회의 이러한 사명을 위해 주신 것입니다. 은혜 받은 자는 하나님과 세상과 성도들을 섬기는 교회의 이 사명을 감당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은혜 받은 자의 눈은 교회가 진실로 필요로 하는 일들을 너무나 잘 발견합니다. 사랑의 눈으로 보면 그 필요가 눈에 잘 띄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하찮게 보이는 일이라 할지라도, 이것이 영혼들을 변화시키는 직접적인 섬김이 아닌 것처럼 여겨질지라도, 그 모든 것은 하나의 부속품처럼 연결되어 하나님의 이름을 섬기는 하나의 목적을 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번의 예배를 위해 얼마나 많은 봉사의 손길이 준비됩니까?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섬김들이 그 하나의 예배를 위해 움직입니다. 우리가 지금의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흘린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이 있었고, 그들의 기도와 헌신과 섬김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십시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고는 하지만 보이지 않는 철저한 희생을 통해 우리가 성숙할 수 있었고, 이처럼 편안한 교회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참으로 감사하고 있습니까? 역사적으로 교회는 수많은 성도들의 희생 위에 서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고, 많은 지식을 습득하였다 할지라도 교회에 대한 사랑과 섬김이 없다면 이는 진실한 것이 아닙니다. 은혜를 받았다면 반드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하여 수고하고 봉사하여야만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가 들리기 시작할 것이고, 그 사랑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수고도 없이 하나님을 열렬하게 사랑하는 자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자에게만 자신을 보여주시고, 보이지 않는 그분에 대한 사랑은 섬김을 통해 입증됩니다.

IV. 섬김으로 입증되는 까리따스

A. 형제들 안에서 하나님을 봄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까리따스의 사랑은 섬김으로 입증되며, 이는 형제들 안에서 하나님을 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는 모두는 유리방황하던 죄인이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살아 갈 수 없었던 우리가 복음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게 되었고 삼위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일생동안 그 사랑을 몰라 방황하던 우리에게 주의 사랑이 흘러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 안에서 깊이 회개하며 그 사랑에 감격하는 것이 바로 회심입니다. 이것은 불신자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신자인 우리에게도 날마다 일어나는 일입니다. 부패함으로 인해 미끄러진 신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뜨려지나, 다른 무엇으로도 그 곤고함을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님께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깊은 회개 속에서 주님을 찾을 때 하나님의 그 사랑은 강물처럼 또 다시 밀려옵니다. 이처럼 최초 회심 시에만 그 사랑이 고마워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이뤄집니다. 이것이 은혜인 것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이 사랑은 보이지 않는 사랑입니다. 회개의 은혜를 통해 까리따스의 사랑을 주시지만, 문제는 그것을 느끼는 것은 우리 모두가 틀리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사랑의 경험은 매우 주관적입니다. 이는 회심할 때의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격렬한 모습으로 회심하였으나 쉽게 넘어지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잠잠히 회심하였으나 지속적으로 은혜 가운데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이 사랑은 섬김을 통해 입증됩니다. 사랑을 받았습니까? 진실로 그분의 사랑을 깨달았다면 고난도 슬픔도 이기고 인내하며 잘 섬길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믿고 있다면 여러분이 섬기고 있는 자리를 한번 살펴보십시오. 그분이 맡기신 일에 열매가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이 느끼고 있는 그 사랑은 사실이 아닙니다. 이 섬김은 형제들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영원히 사랑하시는 것은 우리 안에 그렇게 하실 수밖에 없는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쓰레기 같은 우리가 그렇게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 형상이 있고, 그것은 곧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영원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향한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진실한 사랑이라고 한다면, 형제들이 모여 있는 이 공동체는 사랑 덩어리가 될 것입니다. 그 형제들에게서 보이는 추함-이는 잠시 있을 것들이다. 마지막 날에는 흠도 티도 없이 완전하고 순결하게 만드실 것이다-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하나님의 형상을 보고 끝까지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온전히 그 형상을 소중하게 생각할 때에 그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허다한 허물이 있다고 할지라도 형제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그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이 생겨나고,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이 사랑으로써 빛나게 됩니다. 그렇게 희생하고 섬기는 과정을 통해서 형제가 더 온전한 사람으로 변해가며, 교회 전체의 아름다움이 증진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실 것이며, 그것을 보고 만족해하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까리따스 사랑을 가진 성도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B. 사랑과 목표의 일치
사랑하게 될 때에는 목표의 일치가 이루어집니다. 이는 진리로 말미암은 사랑의 일치입니다. 다른 것으로는 이 일치를 이룰 수 없습니다. 교회의 일치는 오직 진리와 사랑의 일치입니다. 교회를 깊이 사랑하면 자신의 생의 목표가 교회의 목표와 일치하게 됩니다. 예전엔 교회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행복을 찾아 살았던 사람인데 회개하고 그 사랑을 경험하게 되면, 교회의 목표에 내 목표를 일치시키게 됩니다. 이 사랑은 용서의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들어오게 됩니다. 일체의 감사한 마음도 없고 섬김도 없이 교회에 다니던 자들도 진리의 빛으로 그 내면을 비추이게 되면 회개하게 되며, 용서하시는 하나님 사랑을 경험하여 깨뜨려지게 됩니다. 그 때에 비로소 그 사랑이 마음속에 가득 차게 되며, 목표의 일치가 생겨나게 됩니다. 자신의 인생의 목표가 따로 있고, 그것을 위해 살다가 남는 것이 있으며 교회와 형제를 위해 조금씩 나누어주는 단계에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과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신 그 뜻이 놀랍도록 일치되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교회에 대한 소속감입니다. 이름만 교회에 속한 자가 아니라 교회의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 주님이 아파하시는 마음을 갖고 눈물과 수고와 헌신을 바치는 자만이 가지는 심정입니다. 그렇지 않은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자의 가장 확연한 표는 그리스도를 향한 진실한 사랑입니다. 수많은 상황들로 인해 늘 뜨겁게 사랑하지는 못하지만 그분 향한 사랑은 늘 흐릅니다. 또한 교회를 향한 사랑도 늘 흐릅니다.

C. 사랑과 희생의 욕구
교회를 진실로 사랑하게 된다면 사랑하고 희생하는 욕구가 생겨납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반드시 희생의 욕구를 부릅니다. 희생이 없다면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래서 희생할 수 있을 때 기뻐하고 그 기회가 차단될 때에 애석해하고 슬퍼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깊이 사랑하게 되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사랑하게 되고, 그 교회를 위해 희생할 마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희생은 결코 물리적으로 강요되는 조직적인 희생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희생은 자신을 그분께 다 드리는 인격적이고 자발적인 희생인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있다는 것이 입증되는 것입니다. (김남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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