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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여수룬이라고 불립시다 (사 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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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너를 지으며 너를 모태에서 조성하고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 말라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풀 가운데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같이 할 것이라 혹은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께 속하였다 할 것이며 혹은 야곱의 이름으로 자칭할 것이며 혹은 자기가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손으로 기록하고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칭호하리라

여수룬이라는 말은 곧은 자, 옳은 자라는 뜻인데 하나님은 가끔 이스라엘을 이렇게 여수룬이라고 불렀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여수룬이라고 부르고 계신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여수룬이라고 부를 때는 지금까지도 사랑하셨지만 더 사랑하는 마음을 나타낼 때 이런 호칭을 쓰셨습니다. 우리도 아주 가깝고 사랑스러운 사람을 부를 때 이름을 놔두고 애칭을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제가 수원에서 목회 할 때에 청년들이 강단에 글씨를 써서 장식할 때가 있는데 도무지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제가 글씨를 써서 강단을 장식하라고 주었습니다. 담임 목사가 직접 글씨를 잘 써서 주니까 청년들이 놀라워하면서 그것을 강단에 달았습니다. 제가 그것을 잘 다는가 보려고 갔더니 남자 청년은 사다리에 올라가 글씨를 달고 여자 청년들은 밑에서 제가 온 줄도 모르고 저희들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야 이 글씨 누가 썼니 참 잘 썼다” “우형씨가 썼지” “정말? 우형씨 글씨 너무 잘 쓰시네”
제가 듣고 기가 막혀서 “뭐가 어쩌고 어째?” 하고 고함을 쳤습니다. 이놈들이 너무 놀라서 사다리에 올라간 청년은 떨어지고 나머지는 강단 뒤로 가서 숨었습니다.
목사님이라는 호칭을 놔두고 우형씨라고 부를 때는 나쁜 뜻이 아니라 가깝고 친근한 마음에서 나온 호칭이기에 웃고 지나갔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여수룬이라는 별칭으로 부르실때는 더 가깝고 더 친근할 때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스런 마음으로 이스라엘을 부르시니까 오늘 본문에도 놀라운 기적과 축복을 약속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이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딱 들어서 여러분을 향하여 거리감 없이 여수룬이라고 불림 받을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하나님께 여수룬이라고 불립시다』 라고 말씀의 제목을 정했습니다. 잘 들으시고 하나님께 여수룬으로 불릴 수 있는 좋은 일꾼과 성도들이 되셔서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꼭 받으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필요한 것을 채우시는 복을 주십니다.

나의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 말라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사 44:2-3)

갈한 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당연히 물이 아니겠습니까? 목마른 자에게는 물이 가장 필요합니다. 목마른 자에게 떡도 필요없고 고기도 필요치 않고 꼭 물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너무도 사랑하셔서 스스럼없이 별명을 부를 수 있는 성도가 되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는 복을 내려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이름 외에 별명이 있는데 이런 별명을 부를 때는 제가 기분이 좋아서 무엇을 주려고 할 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들도 하나님께 여수룬이라고 부릴 수 있는 성도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 하나님과 어떤 거리에 있는가 뒤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같은 아들에게도 이름을 부를 때와 더 가까워서 별명을 부를 수 있는 가까운 거리처럼 여러분도 그런 귀한 자리에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여러분을 여수룬아 부르시고 축복하시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에 보면 꼭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받아 승리한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사형선고를 받았는데도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병을 고쳐주시고 생명을 15년 연장해 주시는 복을 받았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억울하게 옥에 갇혔는데 하나님이 지진을 일으키셔서 감옥 문을 열어주시고 수갑과 착고가 풀어지는 기적을 주시고 간수가 굴복하고 전도되는 복을 누렸습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는 설교자가 필요하여 하나님께 간구 했더니 베드로를 보내주셔서 그 베드로로부터 말씀을 듣고 깨닫고 성령을 받고 세례를 받아 이방인인 고넬료와 그 가정이 최초로 세례를 받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께 여수룬이라고 불릴만한 하나님의 사랑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히스기야는 평생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고 어려움을 당할 때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환난 속에도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고 환난 중에 원망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하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을 구제하는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했으며 말씀을 사모하여 베드로를 하나님처럼 공경하고 엎드려 절하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이들처럼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어려울 때 기도하고 환난 중에 전도하고 말씀을 사모하고 주님의 종을 경외할 때에 바로 여수룬으로 불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살면 필요한 것을 채워주시는 복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화니 크로스비 여사는 어릴 때 가정부의 실수로 실명을 하였습니다.
불행한 삶만이 그 앞에 남아 있을 절망적인 때에도 언제나 하나님께 기도하고 언제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 감사의 마음을 아름다운 시로 표현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그가 쓴 찬송시가 무려 8000편이나 되었고 그 가운데 우리가 애창하는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저 죽어 가는 자 다 구원하고’ 같은 찬송이 크로스비 여사가 쓴 찬송입니다.
1874년 어느 날 크로스비 여사가 찬송 시 출판인에게 가야 하는데 딱 5불이 모자랐습니다. 시각장애인이니 걸어 갈 수는 없고 해서 그 자리에 엎드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 다른 찬송시를 구상하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리면서 처음 보는 낯 모르는 중년의 남자가 들어와서 자신을 만나기를 청합니다. 그 사람은 크로스비 여사의 글을 읽고 감명을 받아 마침 가까운 곳에 왔다가 가는 길에 크로스비 여사를 만나고 싶어서 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시 담화를 하고 돌아가면서 크로스비 여사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고 갔습니다. 전송을 하고 들어와 손을 펴보니 5 달라였습니다. 너무도 놀라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지은 찬송이 바로 434장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이라는 찬송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언제나 부족함 속에 살아가기에 필요한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께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들으시고 달라기에 앞서서 내가 정말 하나님이 별명을 부르실 수 있는 하나님과 가까운 자리에 들어가 있나 돌아보셔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바른 신앙생활로 하나님의 마음에 꼭 맞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여수룬아 하고 부르시고 모자란 것, 부족한 것을 채워주시니 하나님께 여수룬으로 불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기적을 이루어주시는 복을 주십니다.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사 44:3)

마른 땅에 비가 내려 잠시 적시는 일은 흔한 일입니다. 그러나 시내가 흐르는 일은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가 없습니다. 시내의 물은 하루 이틀 흐르고 끝나는 것이 아니고 계속해서 흘러야 시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일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니까 기적입니다. 이런 기적을 바로 하나님께 사랑 받고 여수룬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사람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여수룬이라고 불릴만한 성도가 되어 꼭 이런 기적을 선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여호람 왕이 모압과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모압을 제압할 수가 없어서 남쪽나라 유다왕 여호사밧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사람 좋은 여호사밧은 쾌히 승낙하고 참전했습니다. 두 나라 가지고도 자신이 없었던 여호람 왕은 에돔까지 초청해서 세나라가 모압을 치러 갔습니다. 그런데 진을 배설하고 나니 물이 없습니다. 흐르는 물도 없고 샘물도 없고 가까운 곳에서 길어 올 물도 없어서 전쟁도 못해보고 지게되었습니다. 믿음 좋은 여호사밧 왕이 하나님께 물을 만한 선지자가 없는가 묻고 엘리사가 가까이 있다는 것을 듣고는 세나라 왕이 엘리사를 찾아갔습니다. 여호람 왕은 그 유명한 아합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핍박하는 왕입니다. 그러니 엘리사가 반가워할 리가 없습니다. 문전박대를 당하게 되었는데 여호사밧 왕이 애원을 하니까 엘리사가 기도하고 물을 얻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엘리사는 돌아가서 온 군인들을 동원하여 큰 개천을 파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돌아와서 세나라 군인들을 독려하여 개천을 팠습니다. 다음날 아침 여호사밧은 장막에서 일어나자마자 먼저 하나님께 소제를 드리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장막 문을 열고 나오니 밤새 비도 오지 않고 바람도 안 불었는데 어디서부터 왔는지 물이 흘러와서 큰 저수지를 이루어 놓았습니다. 세나라 연합군은 이 놀라운 일에 사기가 올라 갈증난 목을 축이고 나가서 모압을 쳐서 파하는 승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남의 나라 전쟁에 도와주러 가서도 장막에서 기도를 쉬지 않고, 제사를 쉬지 않는 여호사밧 왕의 자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우리 하나님은 여수룬이라고 불러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마른 땅에 시내를 흐르게 하시는 기적을 내려주셨고 그로 인하여 승리의 축복을 맛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잡힐 뻔한 위기가 왔습니다. 하나님은 블레셋을 침공하게 하셔서 사울이 다윗 잡는 것을 포기하고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보통사람 같으면 운이 좋았다 하고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게 하나님이 자신을 도우시는 손길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곳 바위를 셀리하마느곳이라고 명하고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다윗의 이런 자세가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럽겠습니까? 그래서 그의 가는 길에는 언제나 기적으로 도와주셔서 작은 군대로 큰 적을 이기는 은혜를 주셨고 그가 필요한 것을 언제나 기적으로 채우시는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사밧 같이, 다윗같이 사시기 바랍니다!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 하나님께 영광 돌릴 길만 생각하고 감사하고 어려운 일 닥치면 하나님께 물어보려고 주님의 종을 찾는 자세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셔서 여수룬이라고 부르시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는 기적을 내려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 기적을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성령과 하나님의 복을 자녀들에게 주십니다.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사 44:3)

1) 하나님의 신인 성령을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성령은 보혜사이시고 진리의 영이십니다. 우리를 보호해 주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끼치시는 분이기 때문에 보혜사이시고 진리의 영이시므로 우리를 진리 안에 살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 성령의 도우심으로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실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4:26)

우리의 삶에 어려움이 오면 우리는 당황하고 낙심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여수룬으로 살면 하나님의 성령을 주시고 그 하나님의 성령이 나를 도와 말씀이 생각나고 환난을 극복하는 방법을 성령께서 가르쳐주시니 얼마나 놀라운 축복이겠습니까?

2) 하나님의 복을 후손에게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풀 가운데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같이 할 것이라 혹은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께 속하였다 할 것이며 혹은 야곱의 이름으로 자칭할 것이며 혹은 자기가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손으로 기록하고 이스라엘의 이름으로 칭호하리라 (사44:3-5)

야곱은 복 받을 수 없는 사람인데 장자의 복을 받았고 흰양 속에서 야곱의 재산이 되는 얼룩무늬 양을 무한대로 생기게 하는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이 복을 주셨는지 “나는 야곱의 복을 받았다” 스스로 칭하는 복을 여수룬으로 불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도 여수룬으로 불림 받아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 힘찬 삶을 살고 승리의 복을 누리고 나의 사랑하는 아들 딸도 시냇가의 버들처럼 크고 영화로워지는 복을 받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하나님께 여수룬이라고 부르시는 애칭을 받는 성도들이 꼭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국교회의 훌륭한 목사님 가운데 김창인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분의 아버지가 4형제 가운데 셋째 아들인데 유일하게 예수를 잘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 믿는 일로 인해 안 믿는 아버지와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았습니다. 특히 아버지는 예수를 믿으면 제사를 안 지나니까 나를 위해 제사도 안 지내 나를 박대할 놈이라고 유난히 미워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들들에게 재산을 상속할 때에 큰 아들에게는 집과 돈과 논을 물려주고 둘째에는 논과 돈을 물려주고 막내에게는 밭과 돈을 물려주고는 셋째에게는 애비 제사도 안 지낼 놈에게 줄 이유가 없다고 단돈 5원을 유산으로 주어서 빈손으로 분가해 나왔습니다. 동생도 재산과 밭을 물려받는데 예수 믿는다는 이유로 빈손으로 쫓겨나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고 억울하고 낙심되었겠습니까? 그런데 이제는 가족 눈치 안보고 마음대로 신앙 생활할 수 있고 마음대로 찬송할 수 있는 것이 너무도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그래서 없는 중에도 항상 감사함으로 일하고 열심히 신앙생활하며 교회와 주님의 종을 받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이 신실한 일꾼을 사랑하시고 여수룬으로 부르시고 그 가정을 축복하였습니다. 그래서 재산을 많이 물려받은 다른 형제들보다 더 부유하게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것으로 하나님의 축복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자녀들 대에 가서는 더 큰 차이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목사와 박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한국교회의 별과 같은 김창인목사님 같은 아들을 주시는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녀가 시냇가의 버들같이 되는 축복인데 하나님이 여수룬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받는 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여수룬이라는 애칭으로 부르실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을 받는 축복과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는 기적과 성령의 도우심과, 여러분의 자녀들이 야곱 같은 복을 받았다고 담대하게 간증할 수 있는 복을 꼭 받으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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