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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원에 이르는 신앙 (롬 1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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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개혁자 루터는 한때 어거스틴 수도단의 일원이 되어 로마를 순례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는 빌라도 재판장의 28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는 동안 깊은 회의에 빠졌습니다.
그곳에서 돌아온 루터는 로마서 1장 17절에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기록한 말씀이 그의 심연의 깊은 곳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형식적인 사제의 옷을 벗어던지고 개혁자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 하박국도 하박국 2장 4절에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1절에도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도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믿음으로만이 영생한다는 말입니다. 그 영생은 바로 구원입니다. 성급한 결론을 내리면 구원에 이르는 신앙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Ⅰ. 신앙에 대한 개념입니다.

1) 신앙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앙망(仰望)하는 데 있습니다.
민수기 21장 8-9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 본즉 살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불순종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 뱀을 보내어 물어 죽게 했습니다. 사망의 곡성이 광야 이스라엘 진중에 가득할 때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놋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달아 세우고 물린 자마다 그것을 쳐다보면 살리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4-15절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으로서의 놋 뱀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앙망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2) 신앙이란 식음작용의 신비로운 연합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52-56절에 "이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가로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제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26-28절에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했습니다.
신앙이란 성찬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에 있습니다.

3) 신앙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5장 40절에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40절에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신앙이란 예수께 나아와서 그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20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Ⅱ.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신앙이 있습니다.

1) 역사적인 신앙은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예컨대 아그립바 왕 같은 신앙입니다.
사도행전 26장 27-28절에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신앙은 진리를 알고 찬송은 하고 있으나 순전히 합리적인 면들을 역사의 사실로 수용하는 태도입니다. 이 신앙은 성경진리에 대하여 마치 자신과 직접 관계되지 않은 먼 과거의 역사를 승인하는 것과 같이 한다는 것입니다.
찰스 하지는 이 신앙은 사색적 신앙 혹은 죽은 신앙이라고 했습니다. 이 신앙은 세속적 신앙 혹은 악한 생활과 상통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신앙은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의 죽은 신앙입니다. 마치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7장 26절에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라고 했습니다.

2) 일시적 신앙은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마태복음 13장 21절에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라고 했습니다.
이 신앙은 중생한 심정에 뿌리박지 못한 신앙입니다. 감정적으로 흥분될 수 있는 신앙입니다. 이 신앙은 생명이 지속하는 동안에 지속하다가 사망의 시간에 비로소 소시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소실은 영구한 것입니다.
(1) 외식과 유사한 신앙입니다.
이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들이 진정한 신앙인인 줄 착각합니다.
구원적 신앙과 유사함에 있어서는 역사적 신앙보다 더합니다. 역사적 신앙자들은 성경진리를 자신들에게 적용하지는 않지만 임시적 신앙자들은 진리들을 흥미 있게 받아들이고 감정적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참된 신앙보다 더 열정적이라는 점에서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2) 중생에서 오지 아니한 신앙입니다.
이들은 주로 범신론적인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끝내 여호와 하나님의 유일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결과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신앙 소유자들을 가리켜 그 속에 뿌리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이러한 사람은 신관, 기독관, 교회관, 구원관, 종말관, 내세관이 정립되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 신앙은 중생에서 출발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임시적 신앙은 감정적 생활에 바탕을 두면서 하나님의 영광보다 자신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3) 이적적 신앙은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1) 능동적 신앙입니다.
마태복음 7장 22-23절에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신앙은 하나님의 이적이 나타날 것을 확신하는 신앙입니다. 이적을 행하는 일에 구원 얻는 신앙이 필연적으로 동반하지는 않으나 가끔 동반하기도 합니다. 가룟 유다 같은 사람도 이적을 행했습니다.
능동적인 이적적 신앙이 반드시 구원 신앙을 보증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세상 끝 날에 일찍 주의 이름으로 이적을 행하였으되 주의 버림을 당하여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이 많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마 7:22-23).

(2) 수동적 신앙입니다.
마태복음 8장 10-13절에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자기에게 이적을 행하여 주실 것을 확신하는 신앙입니다. 백부장의 신앙이나 마리아, 마르다에 있었던 신앙입니다(요 11:22, 28, 29, 40). 바울의 고침을 받은 루스드라의 앉은뱅이의 경우와도 같습니다.
사도행전 14장 9절에 "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라고 했습니다.
이적적 구출의 혜택을 받기는 하지만 구원적 신앙을 가지지 못한 자들도 있습니다.
실로암 못에 가서 눈을 씻어 눈을 뜨게 된 소경은 눈을 뜰 때에는 구원적 신앙을 가지지 못했으나 후에 예수님을 만나서 교훈을 받고야 이 신앙을 얻었습니다(요 9:17, 35-38).
또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고침을 받은 문둥병자 열명 중에 한 명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리스도에게 돌아와 사례했습니다(눅 17:11-19).

Ⅲ. 구원에 이르는 신앙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진정한 신앙은 구원의 주체가 삼위일체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 신앙은 중생 받은 마음에서 출발하는 신앙입니다.
칼빈은 구원적 신앙을 정의하기를 "우리에게 향한 신적 자비의 견고하고 확실한 지식이니 그 지식은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주는 약속의 진리에 기초한 것으로 성령에 의하여 우리의 마음에 계시되며 확인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찰스 하지는 구원적 신앙을 정의하기를 "그리스도의 신앙은 성경에 기록된 사실들과 교리들의 진실성을 하나님의 중언에 의해 확신함이라."고 했습니다.
벌콥은 구원적 신앙을 정의하기를 "구원적 신앙은 성령의 마음에 공작하신 결과로 복음의 진리에 대해 가지는 견고한 확신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향한 성심적 의뢰이다."라고 했습니다.

소요리 문답은 구원적 신앙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곧 구원 얻는 은혜인데 이로 말미암아 복음 중에 우리에게 주신대로 구원을 얻기 위하여 우리가 예수를 영접하는 그에게만 의지하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에 의하여 부르심을 받고 성령의 직접적 역사에 의하여 중생의 역사가 일어난 결과가 자기의 주관적 산물이 아니고 하나님 산물임을 확신하는 신앙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입니다.

1) 듣는 신앙입니다.
로마서 10장 14-15절에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듣지 못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인간의 모든 기능 중에 듣는 기능이 정상이라야 합니다. 듣지 못하면 믿음도, 의도, 화평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계시종교라고 하고 혹은 타율주의 종교라고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할 때 복음을 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2) 마음으로 믿는 신앙입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2절에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라고 했습니다. .
마음속에 예수를 영접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육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로만 가능합니다.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고 역사하는 것은 성령의 몫입니다.

3) 입으로 시인하는 신앙입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입으로 시인하는 입의 기능은 중요한 것입니다.
잠언 18장 21절에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10장 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2장 9-11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2절에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4) 전하는 신앙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 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복음 전파는 예수님의 지상명령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각인의 최대 의무이자 사명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11절에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1) 값없이 전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9장 18절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고 했습니다.

(2) 전하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고린도전서 9장 22절에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3) 빚진 자의 자세로 강한 의무감을 가지고 전해야 합니다.
로마서 1장 14-15절에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4)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해야 합니다. L
디모데후서 4장 2절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했습니다.

(5) 성령 충만함으로 전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9장 2절에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6-10절에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① 구원의식을 가르쳐야 합니다. ② 구원받은 자의 바른 교회관을 가르쳐야 합니다. ③ 구원받은 자의 사명의식을 가르쳐야 합니다. 교회가 영생운동을 놓쳐 버리니 과학이 영생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신앙이 구원에 이르는 신앙이 있고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신앙이 있다고 했습니다. 신앙의 열매는 구원입니다. 구원을 확신할 수 없는 신앙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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