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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1) : "사랑 없으면?" (고전 12:31 -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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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성지 순례를 마친 소회>
마르코 폴로(Marco Polo)의 「동방견문록」이 서양 역사를 뒤바꾸었다는 말이 있습니다.
폴로는 1271년 겨우 나이 17세에 자기 고향 베니스를 떠나 그 당시 몽고가 지배하던
중국 원(元)나라까지 여행하다가 24년이 지난 뒤 41세가 되어서야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마르코 폴로를 통해서 유럽 사람들은 비로소 중동과 극동 아시아, 특히 중국 문명이
서구 문명 못지 않게 위대하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인천 서지방 교역자들과 더불어 10일간의 터키 성지 순례를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번 여행을 하기 전까지 저는 터키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비록 짧은 일정이긴 하지만 터키 여러 곳을 둘러보면서
일찍이 마르코 폴로가 경험했을 법한 충격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지구상에 이렇게 놀라운 문명과 유적을 간직한 나라가 있었구나!"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터키는 아시아와 유럽이 만나는 교차로였습니다.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이 한데 만나 문명의 융합을 만들어 내는 나라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노아가 방주를 만든 산과 아브라함의 고향, 하란 평야가 터키에 있었습니다.
기독교의 발상지로서 도처에 초대교회의 유적들이 널려 있는 나라이기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향 다소,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을 처음 얻은 곳이요 이방 선교의 전초기지였던 안디옥, 에베소 교회를 비롯한 소아시아 7교회가 모여 있는 곳이 또한 터키였습니다. 
어느 곳을 가든지 수천 수백 년된 문명 유적들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터키였습니다.

그런데 터키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돌아오는 순간까지
저에게는 내내 떠나지 않는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기독교가 시작된 이 나라가 어쩌다가 이슬람국가가 되어서 모든 예배당은
폐허가 되어 뒹굴 뿐 찬송 소리와 기도소리가 왜 끊어지게 되었는가 하는 물음이었습니다.

무슬림들인 터키 사람들은 자기들의 옛 왕, 즉 술탄의 왕궁에 대해서는 철저했습니다.
왕궁의 카펫트에 혹시 먼지라도 묻을까봐 신발 위에 비닐로 된 덧신을 신게 했습니다.
왕과 왕비들이 사용하던 보물들을 늘어놓은 전시관에는 사진도 못 찍게 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유적지는 대충 보관하는 둥 마는 둥 별반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천 수백 년이 훨씬 넘는 프레스코 성화를 플래시를 마음껏 터뜨리면서
사진을 찍어도 누구 하나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터키가 이슬람 나라라는 사실은 바로 이와 같이 문화 유적을
다루는 태도에 있어서 완연히 드러났습니다.
자기 조상들과 이슬람과 관계된 유적들은 철저하게 보관하되
기독교와 관련된 유산들은 대충대충 관리하는 모습이 뚜렷했습니다.
초대 교회 교인들이 예배드렸던 장소에 갈 때마다 바깥에서는
이슬람 기도 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구슬프게 울려 퍼졌습니다.
기도와 찬송 소리가 울려 퍼져야 할 그 자리에 이슬람의 기도 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가는 곳마다 경험해야 했던 것입니다.

"기독교가 시작된 기독교 문명의 발상지가 왜 이슬람 나라가 되었을까?"
저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이스탄불에 있는 아야 소피아라는
성당에 들렸을 때 처음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야 소피아는 주후 360년 경 콘스탄티누스 시대에 처음 지어진 건물이라고 합니다.
그 후 몇 차례 개축에 개축을 거듭한 끝에 현재의 건물은
주후 537년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지어졌습니다.
성전 낙성식이 있던 날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솔로몬 왕이여 내가 당신보다 더 훌륭한 성전을 지었소!"
아야 소피아 성전은 세계 4대 불가사의 성전 중에 하나로 칭송될 만큼 위대한 건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스만 터키가 이 지역을 접수하면서 소피아 성당은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로 개조가 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오늘날 아야 소피아 성당을 들어가면 기독교적인 것과 이슬람적인 것이 혼합이 되어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비극이 일어날 수 있을까?"
"전 세계 모든 기독교인들의 보물이라 할 수 있는 성전이 어떻게 모스크로 바뀔 수 있을까?"
그런데 그 이유는 바로 기독교인들 자신의 과오 때문이었습니다.

이슬람에 의해 장악된 예루살렘 성지를 회복한다는 명분으로 십자군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1204년 7월 아야 소피아 성당이 있는 현재의 이스탄불 지역이 십자군의 수중에 들어갔습니다.
이 때 십자군은 군복 위에 수놓은 십자가의 의미는 다 잊은 채
무차별적인 약탈과 방화 살인 강간 등을 서슴지 않고 자행했습니다.
십자군 군인들은 아야 소피아에 눈을 돌려 예수의 제자들과
성모 마리아의 물건이라고 여겨진 것들을 모조리 약탈해갔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을 때 썼다는 대못과 가시 면류관,
금과 은으로 장식된 십자가들을 모조리 떼어 갔습니다.
심지어 성전을 지키고 있었던 신부들을 죽이고 수녀들을 강간하기까지 했습니다.

십자가를 앞세운 성전(聖戰)의 군사들이 폭도로 바뀌어
온갖 만행을 저지르는 모습에 사람들은 너나 없이 치를 떨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슬람교를 믿는 오스만 터키 군대가 쳐들어 왔을 때 그 도시에 살던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며 주변의 카톨릭 국가들에게 일절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야 소피아에서 추기경을 보는 것보다 차라리 무슬림을 보는 것이 낫다."

그렇습니다.
사랑 없는 믿음만 가졌던 기독교인들 때문에 기독교는 성지를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알맹이는 다 잃어버리고 믿음의 형식만 가진 사람들 때문에
기독교의 발상지가 이슬람의 수중에 빠지게 된 것이지요!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말합니다.
아마 사랑이라는 말만큼 쉬우면서도 어려운 말은 없을 것입니다.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는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사랑에는 명사가 없고 동사만 있다고 합니다.
사랑이 무엇 무엇이라고 아무리 기가 막힌 정의를 내린다고 할지라도
직접 사랑해보지 않고서는 사랑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옳은 말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사랑에 대한 정의가 아니라 직접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입니다.

<'사랑의 송가,' 고전 13장>
저는 앞으로 3주간에 걸쳐서 고전 13장 말씀을 강해 설교하려고 합니다.
트로트의 황제로 알려진 나훈아 씨의 노래 중에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먼 훗날 당신이 나를 버리지 않겠지요
서로가 헤어지면 모두가 괴로워서
울 테니까요"

아마 40대 이상 되신 분들은 많이 들어본 유행가 가사일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은 과연 눈물의 씨앗일까요?
실패한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될망정 진짜 사랑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그 해답을 여러분들은 고전 13장에서 찾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흔히 고전 13장을 '사랑의 장,' 혹은 '사랑의 송가'라고 말합니다. 
일찍이 성경에 나오는 말씀들 중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말씀은 찾기 어렵습니다.
그리하여 고전 13장은 결혼 주례사로 흔히 인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왜 이렇게 사랑에 대해 글을 썼는가 하는 것은
이 편지가 전해진 고린도 교회의 형편을 바로 알 때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에 따르면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쓴 편지는 대략 7통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불행하게도 5통 정도는 다 소실되어서 현재는 고린도 전서와 후서, 두 통만 남았습니다.
바울은 거의 10년 이상 고린도인들과 관계를 가지면서 그 어떤 도시의 교회들보다
더 세심하고 더 자상하게 고린도 교회에 목회적 관심과 애정을 기울였습니다. 
그것은 고린도 교회가 교회로서 가질 수 있는 모든 문제점들을 다 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교회내의 파당, 성적인 타락, 결혼에 대한 윤리적 문제, 성령의 은사에 대한
문제, 예배와 성만찬에 대한 문제, 등등 수없이 많은 문제들로 골머리를 앓았던 교회였습니다. 
그리하여 고전 13장은 입으로는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진정한 기독교적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고린도 교인들을 책망하면서 참사랑의 진수를 보여주기 위해서 쓰여진 책입니다.

이제 고전 13장을 바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바로 앞에 나오는 12장과 연결해서 읽어야 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그 어느 교회보다도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있어서 언변과 지식이 뛰어 났습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영적인 은사에 있어서도 가지가지 풍성한 체험을 했습니다. 
고전 12장은 저 유명한 '몸'과 '지체'의 비유를 통하여
고린도 교인들이 경험한 여러 가지 다양한 은사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의 은사,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예언함, 영들 분별함, 각종 방언 말함, 방언들을 통역하는 은사,"
등등의 수없이 많은 은사들을 열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각종 은사들이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사랑하여 주시는
'선물'이라는 사실에서 결코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은사들을 받고서도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하여 고전 13장을 기록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사랑의 동기로 하지 않는 그 어떤 은사, 그 어떤 봉사,
그 어떤 헌신도 헛수고가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요! 

앞에서 말씀드린 십자군들이 이슬람의 손에 들어간 성지
예루살렘을 회복한다는 명목으로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투구와 군복에 거룩한 십자가를 수놓았지만 사랑은
온데 간데 없이 약탈과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시민들은 그와 같은 야만적 폭력에 사로잡힌 십자군들에게 고개를 돌렸습니다.
차라리 십자군 밑에 들어가 기독교 나라가 되는 것보다 무슬림이 되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등을 돌리고 말았습니다.

고린도 교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갖가지 은사들을 충만히 받았다고 떠벌리고 자랑했지만 참된 사랑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서로 자기 받은 은사가 최고라고 자랑할 뿐 아니라
누구에게 세례를 받았는가에 따라서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등
여러 파벌을 지어 무익한 분쟁을 일삼았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바울은
사랑이 동기가 되지 않는 일체의 은사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몸의 여러 기관들은 피가 제대로 순환되지 않고서는 제 기능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몸의 지체들은 피를 돕기 위하여 있습니다. 
심장은 피를 펌프질하고, 신장과 간장은 피를 청소하고, 폐는 피에게 산소를 제공합니다. 
그리하여 피는 결국 우리 몸의 각 기관들에게 영양분을 적절하게 공급하게 됩니다. 
우리 몸의 어떤 기관은 그것이 없어도 살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폐나 신장을 하나만 가져도 살 수 있고
비장이나 쓸개는 아예 없어도 목숨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피에 이상이 생기면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피가 모자란다든지 피가 제대로 순환이 되지 않을 때 우리 몸의 기능은 정지됩니다.

그렇다면 사랑은 우리 몸의 피와 같다 할 것입니다.
피 없는 우리의 몸이 아무 것도 아니듯이 사랑 없는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랑 없으면 아무 소용없다네>
여러분, 이제 본문 1-3절을 보십시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먼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사랑 없으면 울리는 징이나 요란한 꽹과리가 되고 맙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방언과 지식을 아주 귀하에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랑에 바탕을 두지 않는 방언이라고 한다면
아무리 천사 같은 말을 한다고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예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랑 없으면 그 자체로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사도 바울 자신도 예언을 높게 쳤으며(고전 14: 1-25 참조), 예언은 참 소중한
은사이기는 하지만 사랑의 동기 없이 예언에만 사로잡힌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또한 능력 있는 믿음은 기독교인의 기본입니다. 
믿음이 있어야지만 놀라운 기적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으면 태산을 옮길 수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사랑의 동기 없이 믿음의 능력만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믿음으로 갖가지 기적을 일으킨다고 할지라도 사랑 없으면 소용없습니다.

또한 가난한 이들을 돕는 구제 사역이나 심지어 자기 몸을
불살라 순교하는 행위는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닙니다. 
아주 특별한 은혜를 입은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요!
바울은 이 모든 행위들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동기가 문제입니다!
행위 자체는 좋은데 동기가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보통 큰 문제가 아닙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천사의 말로 방언합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예언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까? 
그리하여 우주의 비밀과 세계의 신비에 대한 탁월한 지식을 가졌습니까?
태산을 옮길 만치 놀라운 능력을 가져올 믿음을 소유했습니까?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구제 사업에 열심을 냅니까? 
자기 몸을 불살라 심지어 순교의 각오까지 되어 있습니까? 

그러나 그래서 어떻다는 말입니까? 
영어로 "So what?"
아무리 신비한 은사를 많이 받고 아무리 고상한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So what?" 그래서 어떻다는 말입니까? 
아무리 지식이 탁월해서 우주의 신비를 꿰뚫고 있을지라도,
"So what?" 그래서 어떻다는 말입니까?
아무리 능력을 많이 받아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린다고 할지라도,
"So what?" 그래서 도대체 어떻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궁극적으로 사랑이 뒷받침되지 않는 그 어떠한 행위도
아무 의미가 없고 허무하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이 동기가 되지 않는 그 어떤 신앙과 봉사와 헌신행위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건강한 인간관계는 네 가지 Τ로 시작되는 요소들이 구비되어야만 한다고 합니다. 
즉 'Τime,' 시간과 'Τouching,' '접촉'과 'Τalking,' 대화와 'Τrust,' 신뢰입니다. 
그런데 어떤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보통 맞벌이 부부가 하루에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평균 4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맞벌이 부부가 자녀들과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하루에 겨우 30초 정도라고 합니다.

사랑이 기반이 되지 않는 가정, 제 아무리 부유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시간을 바치고 자주 접촉하고 자주 대화하고 함께 신뢰해서
사랑의 기초가 든든하지 않는 가정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미국에 있는 남가주의 집들은 견고한 바위 밑에 수십 피트
철근 볼트로 고정해야지만 지진에도 견딜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랑의 볼트로 고정된 가정만이 온갖 지진을 견디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이고 사회도 마찬가지이고 나라와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 떠나가면 그 때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기독교 문명의 발상지인 터키가 겪었던 일들이 한국 땅에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불교 국가였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기독교가 급격하게 성장하니
마치 이 나라가 기독교 국가가 된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까?
미래에 또 어떤 다른 종교가 기독교를 대신할지 알 수 없습니다.
언제 그렇게 되겠습니까?
사랑의 동기는 잃어버리고 입으로만 외치고 형식적인 신앙만 있을 때 그렇게 될 것입니다!

<사랑차 한 잔을 끓이며>
어떤 책을 읽어보니까 '사랑차 조리법'이 있습니다.
1. 불평과 화는 뿌리를 잘라내고 잘게 다진다.
2. 교만과 자존심은 속을 빼낸 후 깨끗이 씻어 말린다.
3. 짜증은 껍질을 벗기고 송송 썰어 넓은 마음으로 절여둔다.
4. 실망과 미움은 씨를 잘 빼낸 후 용서를 푼 물에 데친다.
5. 위의 모든 재료를 주전자에 담고 인내와
기도를 첨가하여 쓴맛이 없어질 때까지 충분히 달인다. 
6. 기쁨과 감사로 잘 젓고, 미소 몇 개를 예쁘게 띄운 후,
깨끗한 믿음의 잔에 부어서 따뜻할 때 마신다.

오늘도 이 아름다운 아침에 향기로운 사랑차 한 잔을 끓여서 서로 대접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김흥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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