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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사람들 (시 8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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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주의 전을 사모하는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시84편은 "대관식의 시"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만군의 하나님으로 이 세상을 주도적으로 통치하신다는 내용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 위에 강림하시며,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높임을 받습니다. 대관식의 시들은 주로 이스라엘 공동체의 예배에 사용되었습니다. 시편 저자들의 강한 욕망은 여호와의 집에 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전에서 하나님께 마음껏 찬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대관식의 시들 중에 성전의 중요성과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가장 대표적인 시가 바로 시편 84편입니다.

이 시는 성전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담고 있습니다. 이 곡은 성전에서 예배드릴 때 레위 족속 찬양대원들과 함께 합창으로 올리는 찬양 곡이었습니다. 여기 시인은 예루살렘 성전 건물을 우상화 할 정도로 극찬하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높이는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를 지은 시인은 성전에 올라가고 싶어 사모하는 마음을 구구절절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짧은 시 한 편에 위대한 신앙을 다 담고 있습니다.

성전을 사모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은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 년이면 세 번 이상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야만 했습니다. 순례의 길을 떠나서 성전 예배에 참석하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은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이면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이 시를 통하여 만나는 하나님은 시인의 하나님, 곧 나의 하나님이시며,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셨습니다. 만군의 하나님이라는 말은 전쟁하시는 하나님, 군대의 하나님, 많은 무리를 거느린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나의 왕'이라고 하면 나는 그의 신하요, 종이요, 백성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성전에서 예배를 받으시고 성도들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그래서 시인은 8절에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거룩한 성전에 나아오는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 본문의 시인은 "복이 있나이다."라는 말씀을 3번 했습니다. 4절에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
나니"라고 하였고, 5절에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온의 대로가 있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 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다."는 뜻입니다. 성전을 향하여 올라가려는 마음만 먹고 있어도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12절 말씀에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전에 올라가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성장하는 교회를 연구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성장하는 교회에는 한 교회를 오래 섬기는 사람이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한 교회를 오래 섬기는 일은 말처럼 쉬운 문제가 아닙니다. 가끔 교회를 자주 옮기는 사람들을 보는데,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이유들이 많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더 잘 믿고 신앙생활을 더 잘하기 위해서 옮기기도 합니다. 아무튼 오랜 세월 동안 한 교회를 섬긴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며, 큰 축복임에 틀림없습니다.

교회의 기둥이 되는 축복은 이 세상의 어떤 축복보다 소중한 축복이고, 어떤 기쁨보다 큰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힘써 사랑해 보십시오. 이 세상에서 그만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의 고백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 과연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까?


1.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십니다(1절)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본 시편을 지은 고라 자손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이 계신 교회도 자연히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장막도 사랑했고, 그래서 그곳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해 기도하였습니다.

사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가운데 ‘고라’는 시험에 든 좋지 못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고라 자손’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고라는 악했지만 그 자손들은 훌륭했습니다. 이 고라 자손들은 하나님의 성전생활을 잘하여 특별히 축복받은 사람들이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 때에 이르러서는 이 고라 자손들이 성전의 찬양대에서 찬양을 하는 데 쓰임 받기도 하고, 성막을 옮기고 성막을 지키는 일에 쓰임 받기도 하였습니다. 고라 자손은 이렇게 하나님께 쓰임 받고 예배에도 쓰임을 받는 훌륭한 족속으로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가끔 “예수님은 좋지만 교회는 싫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보면서 교회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이 문제일 때가 더 많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내 사랑에 문제가 생길 때, 그의 눈에는 교회도 비난할 점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비난하고 공격하기 전에 오히려 교회의 약점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교회를 더 사랑하고 바른 교회를 만들기 위해 한 알의 밀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때로 교회가 잘못된 모습을 보여도 희망을 잃지 말고, 그럴수록 더욱 바른 교회의 바른 교인이 되기 위해 힘쓰며, 교회를 더욱 사모하고 교회를 위하여 더욱 기도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는 날마다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는 자가 가장 행복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2절)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시인은 주의 장막을 바라볼 때마다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성전에 올라가서 예배드리는 것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어느 때는 성전에 올라갈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을 맞아 다음으로 미루고 보니, 얼마나 섭섭하고 약이 오르고 안타까운지 모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뒤로하고 바벨론으로 끌려가 70년 간 포로 생활하던 끝에 성전을 건축하려는 열망으로 돌아왔습니다.

시인은 매년 성전에 올라가고, 절기만 되면 올라가던 성전인데 이젠 성전에 올라가는 것이 불가능하여졌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성전에 올라가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었겠습니까. 시인의 영혼은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해질 정도가 되었습니다. 쇠약해질 정도라면 다 꺼지고 소멸되고 사라질 정도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애간장이 타서 녹아질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인가요? 사람은 무엇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느냐에 따라서 그 인생이 달라지고 그 인격이 달라집니다.

요즈음 많은 사람들은 “내 영혼이 돈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라고 고백합니다. 사람들이 싸우는 이유를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 가지 고상한 핑계와 변명과 이유를 대지만 거의 돈 문제 때문입니다. 돈 문제가 걸리면 부모, 형제, 친구도 다 소용없고, 서로를 비난하고 싸웁니다. 그런데 교인들 중에도 돈을 사모하여 쇠약해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돈을 벌려고 하고, 교인들은 하나님의 힘을 빌어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의 차이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 바뀌어야 합니다. 보다 소중한 것을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시편 기자처럼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해졌다”고 할 정도로 교회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교회로 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사모하는 모습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는 순간이 예배 시간입니다. 교회를 사모하는 자는 결코 예배 시간에 늦지 않습니다. 교회를 사모하는 자들은 예배 시간에 일찍 와서 기도로 예배를 준비하고,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예배를 드립니다. 교회를 사모하고,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교회 안에서 열심히 섬기는 그가 바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삶의 중심 터전으로 삼는 자가 행복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3절)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이 고라 자손은 어느 날 주의 제단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처마 밑에 참새의 둥지가 있고, 제비의 보금자리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참새 가족과 제비 가족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저게 행복이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라라는 사람은 레위의 증손으로 이스할의 아들이었습니다. 고라와 모세는 사촌 형제간이었습니다. 고라는 오만 불손하고 명예욕이 커서 르우벤 자손인 다단이라는 사람과 아비람, 그리고 온이라는 사람과 당을 짓고 이스라엘 총회에서 선출한 250명의 지도자들과 함께 모세와 아론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이유인즉 모세가 백성들의 총회 위에 군림하며, 분수에 지나치게 활동하고 스스로 높이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고라는 모세를 반역하면서 모세와 아론을 잡으려고 대적하고 제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때 모세는 하나님 앞에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한 사람이 범죄 하였거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나이까?"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령을 내리기를 "모든 백성에게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에서 떠나라고 하라"고 하셨습니다. 모세가 회중에게 외쳤습니다. "이 악인들의 장막에서 떠나고 그들의 물건을 아무 것도 만지지 말라. 그들의 모든 죄 중에서 너희도 멸망할까 두려워하노라" 온 무리가 그들을 떠나고,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방을 떠나고, 다단과 아비람은 그들의 처자와 유아들과 함께 나와서 자기 장막 문에 섰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심판하시는 말씀을 외치자마자 땅이 갈라지면서 그들을 집어 삼켰습니다. 사실 고라는 하나님의 거룩한 제사장직을 원하였던 사람입니다. 고라 자손은 이 때 고라와 함께 죽지 않고 계속 남아 하나님의 성전에서 봉사할 수 있었습니다.

고라 자손들은 그의 조상 고라와는 달랐습니다. 그의 조상 고라는 성전 제사장직을 원하였지만, 자손들은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말씀 한 절만 가지고도 은혜가 되었습니다. 성전에서 가장 주인공은 제사장 같아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고 보니 성전에서 문지기로 있으면 어떻습니까? 내 하나님의 집, 하나님의 성전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서 봉사하여도 그는 감사 찬송이 우러나오고 감격이 넘치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종을 치면 어떻고, 화장실 청소하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성전에서 은혜를 받고 위로부터 주시는 힘을 얻어 살아야 이 세상을 힘 있게 살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일은 좋은 교회를 만나서 그곳에 내 둥지를 틀고, 내 보금자리로 삼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집은 내 육신의 보금자리지만 교회는 내 영혼의 보금자리기 때문입니다. 그 보금자리가 없으면 사람의 영혼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우리 영혼의 보금자리는 육신의 보금자리보다 더 중요합니다. 내가 안식하고, 섬기고, 내 삶의 터전으로 삼을 교회가 있고, 그 교회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일처럼 행복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를 삶의 터전의 중심으로 삼고 살아가는 그가 진정 행복한 사람입니다.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 저희가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4절).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 중심적으로 살고자 하는 자에게 누구보다 더 관심을 기울여 주시고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콜게이트 비누와 치약으로 잘 알려져 있는 콜게이트(Colgate)는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16살 때 뉴욕으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났습니다. 그때 집안의 아는 선장 아저씨를 만나 돈 벌러 간다는 말을 했을 때, 그 아저씨는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뉴욕에서 가장 으뜸가는 비누 제조업자가 되어라. 단, 착한 사람이 되고, 정량의 비누를 만들고, 네 마음을 그리스도께 드려라. 그리고 꼭 십일조를 드려라. 그렇게 하면 분명히 번창할 것이다.” 콜게이트는 그대로 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종업원으로 일하다가, 후에 동업자가 되고, 나중에는 회사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후에 그는 10의 5조까지 드리는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복을 내려 주십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교회는 없습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교회를 이루어 가는 데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주의 몸 된 교회를 이루어 가시며, 또한 우리에게 복을 내려 주십니다.

이 세상에서 성전을 가장 사모한 사람은 어린 예수님이셨을 것입니다. 12살 때에 성전에 올라왔는데, 부모님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데도, 예수님은 성전 마당에 남아 여러 율법 교사들과 하나님의 말씀을 토론하는 것이 더욱 좋았습니다.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고 했습니다. 이 때 우리 주님은 정말 귀한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였나이까?" 이 말은 내 아버지의 일을 하여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내가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주일이 나를 지켜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안식일이란 하나님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를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예배 그 이후가 중요합니다. 11-12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세상에 나가면서 하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도록 정직하게 행하며 또 하나님만을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이제 부르려는 찬송가 246장은 미국에서 불려 진 찬송 중에 가장 오래된 것으로 남북 전쟁 직후에 쓰여 진 드와이트 목사님의 시에 곡을 붙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나라와 주님이 계신 성전과 주님이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천성과 같습니다. 마침내 하늘의 영광과 베풀어주신 축복이 진리와 함께 영원히 시온에 넘칠 것입니다.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성수주일 하시고 성전을 사모하고 성전에서 봉사하고, 성전에 큰 힘을 얻으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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