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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의 삶⑤ - 거둘 것을 위해 전력을 다해 심읍시다 (갈 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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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주간동안 우리는 성도들의 삶에 대한 성경적 지침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세상에서 성도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많은 질문을 제시합니다.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들을 생각해 보면서 우리들이 성도로서 살아가는 삶의 지침들을 몇 가지 생각해 보는 것은 매우 유익한 일이라 생각을 합니다. 첫 번째 주에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 성도들의 삶에 균형감각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두 번째 주는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라’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 성도들의 선별적 삶의 집중과 힘을 기울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 번째 주에는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서 살아가는 백성으로 우리는 힘 있고 능력 있는 은총의 백성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네 번째는 ‘전심전력하여 진보를 이루라’는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는 성도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삶속에서 최선을 다하여 우리의 진보를 이루고 노력하고 애쓰는 삶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오늘을 그 다섯 번째 말씀으로 갈라디아서 6장 7절, 8절 “심은 대로 거두리라”는 말씀을 통하여서 우리는 거둘 것이 있기 위하여 전력을 기울여 심는 이와 같은 삶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 세상에 자연의 법칙을 운행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자연의 운행 섭리의 법칙을 우리 인간들에게도 운영하시는 것을 봅니다. 자연의 법칙에는 하나님의 승리가 녹아져 있습니다. 우리도 자연에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풀과 나무는 나왔다가 쓰러지는 것처럼 우리는 인생에 나왔다 어느 날 문득 스러져 가게 됩니다. 티끌로부터 온 인생이 티끌로 돌아가는 삶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자연의 일부가 되고 자연 속에 녹아져 있는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시냇물이 흘러 바닷물로 가는 것처럼 우리도 삶의 여운을 흘러 어느 샌가 주님이 계신 천국으로 흘러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는 이 지상의 물들이 햇빛에 증발되어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듯이 주님의 은혜를 입어 주님의 은총의 나라로 가게 되는 것을 생각해봅니다. 꽃이 피면 지듯이 우리의 영화로움도 질것이고 또 다른 씨앗을 남아서 우리의 후손들에게 영화로움을 넘겨줄 것입니다. 나뭇잎이 떨어지게 되면 비 맞고 눈 맞아 썩어져서 양분이 되어서 또 다른 나무의 양분이 됨으로 또 다른 새 잎을 틔우는 것처럼 우리가 양분이 되어 다음의 세대에 훌륭한 믿음의 계승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백성으로서 자연 세계의 섭리속의 일부이며 그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는 은총의 백성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에게 심은 대로 거둔다는 자연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오늘 이와 같은 말씀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첫 번째로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이며 실제 생활 속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현실적 상황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두 가지를 가르쳐 줍니다. 한 가지는 우리가 믿음의 백성으로 기도한다면 반드시 그 기도는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로 심었으니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을 주실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내가 기도했다면 진실로 심기 위해서는 기도한 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심는 행위라는 것은 다만 입술의 언어의 기도 행위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의 언어로 우리의 생활의 언어로 우리의 행동의 언어로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온전한 심음의 역사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께 기도하면 이루어질 것을 믿기에 기도하는 것이고 또 우리가 기도하는 것은 입술뿐 아니라 기도한 대로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온전한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만약에 내일 시험을 앞둔 학생이 “하나님 내일 시험 잘 치르게 해주십시오.” 하고 시험을 잘 보기를 위해 기도했다면 그 학생은 오늘밤에 철야기도하지 말고 더욱 공부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잠을 더 자서 더욱 좋은 컨디션을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즉 우리의 기도라는 것은 입술의 언어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의 언어로 표현되어져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건강하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면 우리는 건강하기위해서 무엇인가 심어야 합니다. 규칙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필요한 만큼 음식을 섭생해야합니다. 건강하기 위해서 쉬기도 잘 해야 합니다. 건강하기 위해서 운동을 해야 합니다. 필요한 만큼 우리는 필요한 약도 먹고 우리는 마음의 평안도 가지고 또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건강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러저러한 노력을 기울일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심정으로 모든 일을 진행할 때 우리는 결코 그 응답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내게 물질의 축복을 주십시오.” 하면 우리는 정직하게 살아야합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한 헌금생활을 해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우리의 이웃을 도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물질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로서 부끄러움이 없이 하나님이 나만을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라 모든 내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나를 도구로 사용하셨다는 생각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정상적인 심음이 있어야 우리는 거둠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관계가 좋아지기를 위해서 기도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을 정성껏 대접하고 다른 사람을 명예롭게 만들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성공하는 일에 협력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높이 세우고 그 높아진 사람을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오히려 높아진 사람을 기뻐하고 격려하고 같이 좋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대접받을 수 있고 다른 사람과 좋은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고 내가 잘 되었을 때 다른 사람에게 격려받을 수 있고 내가 잘되었을 때 시기 받지 않고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축하와 존경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인간관계라는 것은 내가 먼저 좋은 인간과계를 심어놓아야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심은 것이 많아야 많이 거둘 수 있습니다.

혹시 나는 심은 것은 적은데 많은 것을 거두리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삶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이 실망되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실망이라는 것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내가 적게 심고 많이 거두려는 것입니다. 내가 적게 심어놓으니까 적게 거둘 수밖에 없는데 심기는 적게 심고 많이 거두려고 하니까 많이 거두려고 하는 그 마음에 차지 않으니 마음에 실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마음에 실망하지 말고 많이 거두려면 많이 심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적게 심었으면 적은 것을 바랄 수밖에 없으니 우리는 다시 심기일전하여 하나님 앞에 더 많은 심음의 역사를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많이 심을 뿐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심을 것인가 하는 바른 심음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심는 대로 거둔다고 했으니 우리는 성령의 역사를 위해서 심어야하고 우리는 어리석은 육신을 위하여 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바른 결실을 위해서 바른 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 어떤 것 하나 그냥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이 잘 되었는데 저사람 별 이유도 없이 잘된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의아하게 생각하는데 그럴 필요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이유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내가 몰랐을 뿐이지 그 나름대로 피나는 노력이 있거나 그 나름대로 정말 진실한 삶을 살았거나 아니면 하다못해 그의 부모님들이 정성껏 선을 베풀고 사랑을 베풀고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고 그 베푼 은덕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진실로 심는 일에 대하여 정직할 때 거두는 일에 대하여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확합니다. 심은 만큼만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내 육체의 소욕을 위해서 심고 거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쁨과 은혜를 따라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결실을 얻기 원하면서도 심지 않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라고 말씀 합니다.
때때로 우리는 분명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속아 넘어가는 것이 있습니다. 심지 않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언제나 우리는 속이려고 달려드는 사자와 같습니다. 7절 초반을 보면 스스로 속이지 말라 또 속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왜 심지 않고 거두려고 합니까? 왜 무심하게 심지 않고 거두려고 하다가 낙심하고 사단에게 넘어가는 것입니까? 우리는 자꾸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나에게 인사를 안 하지? 왜 나를 칭찬하지 않지? 왜 나에게 찾아오지 않지? 왜 내게 대접하지 않지?’ 이런 생각이 들 때는 벌써 사단이 우리들에게 들어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인도하시면 ‘내가 무엇을 해서 움직여야지 내가 수고해야지 내가 대접해야지 내가 인사해야지’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역사는 우리로 하여금 심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거두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자주 들려드리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배당에 휴지가 떨어져 있을 때 네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휴지가 떨어져 있으면 팔짝 뛰어서 지나갑니다. 어떤 사람은 휴지가 떨어져 있으면 저에게 찾아와서 “목사님 저기 휴지가 떨어져 있어요”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휴지를 슬며시 집어서 갖다 버립니다. 마지막 어떤 사람은 ‘여기에 사람들이 휴지를 잘 떨어뜨리는구나.’라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 지키고 있다가 어떤 사람이 휴지를 버리면 슬쩍 그것을 집어서 그 자리를 지키고 계속 깨끗하게 하는 유형이 있습니다. 여러분 네 가지 유형들 가운데 어떤 유형입니까? 팔짝, 혹은 와서 이르는 것, 혹은 와서 슬며시 줍는 것, 혹은 다른 사람이 어떤 실수를 할 때도 그것까지도 배려하여서 슬며시 덮어 다른 사람의 실수까지도 덮어주는 넉넉하고 여유 있는 배려의 심정, 우리는 어떤 것에 속합니까? 우리가 심는다는 것은 이와 같은 진실과 사랑과 기쁨을 심어야 합니다.

여러분 제가 늘 말씀드리지요. 오른손이 하는 걸 어떻게 왼손이 모릅니까? 늘 하니까 모르는 것입니다. 선을 베풀되 늘 선을 베풀면 이것이 선인지 기억도 안 되고 모릅니다. 여러분 제가 여쭤보겠습니다. 여러분 일주일전 아침에 무엇 먹었는지 기억나세요? 여러분 닷새 전에 무엇 먹었는지 기억나세요? 아마 이것이 기억나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먹는 것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대부분 기억을 못합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매일 먹으니까요.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을 못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일주일전에 선행을 하나 했습니다. 지금 기억이 나요? 안나요? 기억이 나겠지요. 왜냐하면 어쩌다 한번 한 것이니까요. 매일 매일 선한 일을 한다면 선을 행했는지 안했는지 기억도 안 되고 이것이 선한 일이라는 개념 자체가 안 서는 것입니다. 오른손이 행해도 왼손이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가 이와 같이 심어가는 삶의 역사를 이루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자꾸 높은 사람처럼 다른 사람 지적하고 다른 사람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고 또 다른 사람에게 이러저러 한 것 지시하고 시키고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다른 사람의 허물을 덮어가고 다른 사람의 부족을 생각하면 더 기도해주고 내가 부족해서 저 사람이 저런가보다 생각하고 내 부족함을 생각하며 더 역사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의 마음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심지 않고 거두기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무심하게 있거나 그냥 심지 않고 기다리면 안 됩니다. 사단에게 넘어가는 것입니다. 더욱더 중요한 것은 승리의 감각을 터득해야 합니다.
사람은 첫 번째 논리로 승리하고 두 번째 행동으로 승리하고 세 번째 감각으로 승리합니다. 여러분 농구선수 이야기를 해볼까요? 농구를 하려면 어떻게 뛰어서 공을 어떻게 잡고 어떻게 순간에 힘을 주고 골대에 각도를 잡아서 어떻게 한다. 논리적으로 다 기본 교과서가 나와 있겠지요. 코치선생님은 계속해서 잘못된 것을 수정해야 되겠지요. 그런데 논리적으로 이루어져서 머릿속으로만 계산된 것 가지고는 안 됩니다. 어떻게 해면 잘할 수 있다는 것 누구나 논리적으로 외워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는 행동이 그것을 따라 주어야 합니다. 연습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 번째는 마지막으로 그것이 감각적으로 우리들에게 터득이 되어야 합니다. 달리는 선수들이 어떻게 머릿속에 아 내가 어떻게 던지고 내가 어떻게 계산되고 이것이 되겠습니까? 그저 순간적으로 자기가 던지는 것에 대한 감각으로 던져서 잘 던지는 사람은 던지면 계속 골인이 되는 것입니다. 야구 선수들이 그 순간에 공을 맞추어서 안타를 치는데 홈런을 치는데 어떻게 머릿속에 계산을 하겠습니까? 첫 번째는 물론 이론적인 뒷받침이 완성되어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행동으로 그것을 이루고 그것이 반복되어지면 감각으로 나도 모르게 공이 오는데 내가 치면 잘 치는 사람은 칠적마다 맞는 것이고 안치는 사람은 아무리 쳐도 안 맞는 것입니다. 우리는 승리의 감각을 터득해야 합니다. 승리의 감각을 터득하는 사람은 날마다 영적으로 승리합니다. 그러나 승리의 감각을 터득하지 못한 사람은 왜 저 사람은 승리하는데 나는 안 될까? 그것은 간단합니다. 이론적으로 이겨야하고 여러분들의 행동으로 수없는 이김의 과정을 반복해야하고 그것이 우리들에게 감각이 되어 감각적인 터득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의 전 분야에 적용되어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한번 해보니 그것이 잘 되어진 이러한 우연을 가지고는 우리의 삶이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우리 자신이 속지 않도록 정말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의 감각을 은혜의 영적인 승리의 감각을 터득할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 이와 같은 일을 이루셔야 합니다.

세 번째는 심는 대로 거둔다는 것은 일정한 시간의 경과 속에서 기대되고 또 반드시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심는 대로 거두는 것은 시간의 결과가 흘러야 합니다. 제가 늘 자주 말씀드렸습니다. 전기밥솥에 쌀 넣고 물 넣고 뚜껑을 닫고 전기스위치를 꽂았습니다. 아무리 밥뚜껑에 안수해도, 뚜껑을 열면 밥이 안 됩니다. 시간이 지나야 밥이 됩니다. 우리가 씨앗심고 그 씨앗이 빨리 자라기를 기도해서 물을 배로 주고 물을 크게 많이 주고 거기에다가 햇빛을 준다고 돋보기 가져다가 씨앗에 비쳐주고 부채로 바람을 불어준다고 해도 그것을 빨리 자라지 않습니다. 할 수 없습니다. 기다려야 합니다.

여러분 정확히 말해서 믿음이 무엇이지요? 내가 하나님께 구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응답을 주십니다. 그런데 응답을 받기까지 어떻게 과정을 지내느냐가 믿음입니다. 그 과정 가운데 속히 안 이루어져서 조급해 하고 마음 괴로워하느냐 아니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줄 믿고 내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떻게 영광을 돌리고 내가 하나님 앞에 의연한 믿음의 백성의 모습인가를 생각해서 지내는 것이 믿음의 모습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주실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일 뿐 아니라 주실 것을 믿고 그때까지 기다리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아름답게 주의 역사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그것이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심고 축복을 심었으면 우리는 일정한 시간이 경과되기를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의 인내심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이것은 또한 시간의 경과됨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믿음을 심으면 하나님의 축복이 그 후손까지도 시간의 경과에 의해 전달되는 것을 봅니다. 여러분 이런 생각이 들지요. 나는 전에 착한 일 한 것도 없고 잘한 일도 없었는데 왜 이렇게 축복을 받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그저 축복받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부모님들이 선을 베풀고 간절히 기도하고 여러분의 주변사람이 여러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수고하고 애쓴 결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되는 것 없다고 했습니다. 수고한 많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 수고의 열매들이 여러분에게 맺혀지는 것입니다. 정말 여러분들이 정말 믿음의 축복의 조상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믿음 안에서 아름답게 심으면 우리들이 당대에 거두지 못하면 그 후손에게 그 축복이 거두어 지게 되는 것을 봅니다. 다윗은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 귀한 일을 이루려고 했지만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랑하는 아들 솔로몬을 통해서 이루어져 솔로몬 대에 성전을 건축할 수 있는 축복이 이루어지는 것을 봅니다. 사실 거룩이라는 것은 한 일 없고 정말 영광스러우며 마음에 사모되는 감동과 감격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두렵고 떨리는 것이 거룩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이 우리에게는 축복을 기대하는 놀라운 말이지만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두려운 말씀입니까?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심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죄악을 심었을 때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을 심었을 때 하나님 앞에 내 최선을 다하지 못했을 때 그것이 내가 어떤 결과를 얻으며 더 나아가 내 자손에게 까지 그것이 나아가서 어려움을 끼친다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며 우리는 얼마나 두려운 마음도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축복의 조상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지요? 자 따라해 봅시다. “신앙의 명문가가 됩시다. 신앙의 명문가를 이룹시다.” 여러분은 신앙의 명문가의 조상이 되셔야 합니다. 그리고 그 축복이 자녀의 대를 이어 후손까지 이루어져 마침내 하나님께 아름다운 헌신의 자손이 대대로 대를 이어 하나님 앞에 아름답게 헌신하고 이 사회에 기여하고 공헌하는 역사를 이루셔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한 가지 행동도 조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 마음 아프게 하면 안 됩니다. 내가 마음 아파지지 않으면 내 자녀들이 마음 아파질수도 있다 이 말입니다. 다른 삶이 내게 덕을 베풀고 선을 베풀면 내가 어렵다면 그 후손까지도 그 덕을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이렇게 생각해야합니다. 하나님이 항상 내 옆에 계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고 그대로 갚아주신다고 생각 합니다. 그것이 내 마음에 실제로 느껴지지 않으면 내 옆에 내 아들과 딸들이 있다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내 모습이 그들에게 그대로 전수되고 그들에게 축복의 열매로 혹은 아픈 열매로 갈 것이다 생각하면 우리는 어떻게 지내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때를 지루하게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행복하게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행복을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 자신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행복해야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 우리 옆에 사람에게 인사합시다. “내가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행복하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 기쁨과 은혜를 누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런 말 들어보셨는지요. 세계의 대 부호 록펠러라는 사람을 여러분 아시지요? 부자가 삼대 못 간다고 하는데 이 집안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집안은 5대째 그 부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원래 록펠러라는 사람은 집이 가난해서 초등학교밖에 못나온 사람입니다. 집이 가난했지만 늘 마음 아파하면서 가르쳤습니다. 분명히 세 가지 가르친 것이 있습니다. 집이 가난해서 초등학교 밖에 못나왔지만 세 가지 가르친 것이 첫째는 주일을 잘 지켜라, 두 번째는 십일조를 잘해라, 세 번째는 주의 종을 잘 선대하라 너무나 기본적인 내용이지요. 그렇지만 믿음이 좋은 이 어머니는 그 어려운 상황에서 이 세 가지는 반드시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자라서 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았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큰 축복을 받았고 그 록펠러가 세운 교회가 곳곳에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학교도 있고 신학교도 있고 또 곳곳에 많은 재단으로부터 부여받은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을 봅니다. 축복을 심으면 축복이 우리들에게 거두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짧게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여러분 심은 대로 거둡니다. 기도하면 기도한대로 거두게 될 줄로 믿습니다. 제가 이 말씀 꼭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오늘 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정말 오늘은 비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내 논밭에 정말 비가 필요하고 내 삶에 이러저러한 비가 필요합니다.”라고 기도했으면 여러분 반드시 기도하는 아침에는 우산을 들고 나가셔야 합니다. 아무리 햇볕이 쨍쨍 나더라고 여러분 기도했으면 우산을 들고 나가셔야 그것이 믿음입니다. 비가오기를 기도했으면 하나님께서 응답주시기를 믿는다면 우산을 들고 나가야 합니다. 왜 비오기를 기도한사람이 우산을 안 들고 나갑니까? 이것은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 삶 가운데 정말 비오기를 기도한 사람은 우산 들고 나가야 합니다. 우리 믿음이라는 것은 입술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행동으로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이와 같은 믿음의 사람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믿음으로 기도하고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결실하고 내 마음속에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주의 역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이 심은 대로 거둔다는 은혜의 법칙에 따라 많은 유익한 선을 거두기 위하여 전력을 기울여 심을 수 있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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