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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이해 (사 5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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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이해 (사 55:8-9)

나의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너희의 길은 나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임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 보다 높으니라. 

때로 자식들이 철이 없이 행동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자식들이 생각하는 것이 다르고 가는 길이 다르고 판단하는 것이 부모들의 생각과 다를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때로 서운할 때가 있고 섭섭할 때가 있습니다. 부모의 생각과 자식들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생각이 이렇게 사람의 생각과 다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과 방법과 생각이 다를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너희의 길은 나의 길과 다르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다르냐 하면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생각과 길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다”고 했습니다.

이 본문말씀은 하나님의 긍휼을 설명하면서 나온 말씀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긍휼을 어떻게 설명하고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유대인들은 하나님은 자신들만의 하나님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한 민족의 하나님이 아니고 더구나 한 사람의 하나님도 아니고 세상을 향하신 세상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사람들은 모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하나님은 세상을 향하여 주실 은혜와 축복을 선포하시고 계십니다. “오호라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오라 돈 없는 자도 나오라.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젓을 사라, ...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나니 ... 그가 너희를 영화롭게 하리라,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이 여기시리라, 이는 내 생각이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참 은혜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포로생활로 지쳐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이고 또 시야를 넓혀서 온 인류에게 누구든지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은 다 받아들이겠다는 초청의 말씀이고 다윗의 자손가운데서 장차 메시아 예수를 보내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사야 55장은 깊고 넓고 확대된 예언의 말씀으로 주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생각이 넓고 깊고 오묘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납니다. 

신앙인들은 이런 하나님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하나님에 대해서 본문에서 정의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사람의 생각과 다릅니다. 사람은 내 생각이 먼저이고, 나 위주이고, 내게 유리하게 생각하고 처신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지극히 이기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각은 우선 넓고 높고 깊습니다. 그리고 모두의 유익을 생각하십니다. 그리고 모두를 성공의 길로 안내하시려고 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너희 길과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초점 맞추는 삶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서 살아가기를 강력하게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두가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끊임없이 이 점을 요구하셨습니다. 구약성경의 핵심을 이루는 10계명도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서 살아가라고 주신 계명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모두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면 그 자체로서 복입니다. 그리고 또 실제로 복과 은혜와 은총이 주어집니다. 성경은 그 점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그 하나님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해서 안달합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탕자적인 기질이 있습니다. 새장의 새처럼, 탕자처럼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해 안달하고 하나님 곁을 떠나지 못해서 안달합니다. 성경을 보면 그렇게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신에게로 우상에게로 방종으로 하나님을 떠나서 얼마나 타락했습니까. 말도 안 되는 우상을 섬기고 자식들을 그 우상의 제물이 되게 하고 그 우상 앞에 가서 절하며 섬기는 일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사람들의 마음에는 이 탕자적인 기질이 다 있습니다. 아버지 곁을 떠나려는 기질, 하나님 곁을 떠나려는 기질이 다 있습니다. 그러면 무척이나 자유하리라는 기대를 가져보지만 탕자의 마지막 깨달음은 그래도 “아버지의 품이 가장 좋았다” 이었습니다. 그래서 탕자가 결국 집으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그때 탕자는 그동안 잃었던 모든 것을 회복하고 되찾게 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서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라고 강조하시는 이유가 그것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복이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 안에서 모두 복되게 살게 하시려고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온 힘을 모아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때 모든 힘이 하나로, 정신이 하나로, 삶의 중심이 하나로 뭉쳐지게 됩니다. 그 삶이 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벗어나면 모든 관심, 생각, 마음, 힘이 분산되게 됩니다. 모든 관심이 흩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삶이 약화되고 실패하고 고독해지고 불화가 찾아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의 원리는 뜻을 모아야 힘이 나오도록 되어있습니다. 교회는 한마음 한뜻을 이루어야 힘이 하나로 뭉치고 그 뭉쳐진 힘으로 전도하고 그 힘으로 이 세상을 복음화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화해 보십시오. 모든 힘이 분산되어서 전도도 선교도 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이것은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도 한마음 한뜻을 이루어야 그 나라를 굳건하게 지키고 발전시켜 나갈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복입니다. 신앙적으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마음과 뜻을 모아야 합니다. 그렇게 힘이 모아질 때 가장 큰 힘이 주어지고 용기가 주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그 삶 자체가 복이고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라디오도 주파수를 정확하게 맞추면 음성이 맑고 크고 분명하게 들립니다. 햇빛도 밝고 빛이 강렬할지라도 그냥 따뜻할 뿐입니다. 그런데 그 퍼져있는 빛을 렌즈로 잡아 한곳으로 모으면 그곳에서 불이 나게 됩니다. 그것이 기적입니다. 기적은 힘을 한곳으로 모아놓을 때 발생합니다. 태권도는 몸의 모든 힘을 한곳으로 모아서 사용하는 운동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혜도 한곳으로 모으면 그곳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서 한뜻을 이루고 그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초점이 흐려진 시대입니다. 모두가 불분명 합니다. 그래서 신앙의 힘도 약화되고 능력도 약화되고 기적도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초점이 분명해야 합니다.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 그림에서 중심과 초점은 예수의 모습에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그림 속에 있는 술잔에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그때 다빈치가 그 그림을 부숴버리고 다시 그렸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관심이 예수에게 집중되어야 하는데 술잔에 집중되는 것은 그 그림을 그린 의도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우찌무라 간조가 “구안록”이라는 책을 쓴 것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그 책에서 저자는 마음의 평안을 얻어 보려고 별수단을 다 써 보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우찌무라 간조가 그렇게 헤매다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날 때 드디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마음의 진정한 평안을 찾게 되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모든 관심을 하나님께로 모을 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더라는 말씀입니다.

애슐리 스미스라는 여인이 “기적을 믿나요”라는 자서전을 썼습니다. 브라이언 니콜스라는 범인이 사람을 죽인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 경비경찰의 총을 뺏어서 판사와 경찰에게 총을 난사해 살해하고 도주했습니다. 그런데 이 범인이 도주하다가 애슐리 스미스라는 여인이 사는 집에 들어와 그를 인질로 잡고 7시간 동안 대치하게 됩니다. 그때 애슐리 스미스라는 여인은 순간 나는 죽었구나 하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범인에게 살려달라고 애원해 보았지만 죽일 것 같아 이 여인이 자신이 믿는 하나님께 모든 초점을 맞추고 기왕 죽을 것 이 범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죽자하고 마음을 하나님께 집중하고 그 하나님을 그 범인에게 전하고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그 마음으로 하나님을 전하기 시작했더니 이 범인이 하나님에 대해서 전적으로 전하는 그 여인의 모습을 보고 감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가면서 마음에 감동을 받더니 마침내 세상에 대한 증오와 살의로 가득한 이 범인의 마음이 풀어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7시간 만에 이 범인이 자수를 합니다. 그때 이 범인이 손들고 집을 나오면서 말하기를 “이 여인은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신 천사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이 그때 상황을 생각하며 쓴 책의 제목이 “기적을 믿나요”라는 책입니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죽으면 죽으리라” 각오하고 그 범인에게 하나님을 전하였더니 그곳에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사울 앞에서 승리한 것은 다윗이 하나님에 대한 온갖 신뢰하는 마음을 모아서 그들 앞에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울이 아주 작은 다윗에게 실패한 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모든 은혜를 모은 것과 정반대로 사울은 그 은혜를 분산시켰고 그 길에서 이탈하였고 왜곡하였기 때문입니다. 애슐리는 여인이 마음을 하나님께로 모아 농축된 신앙으로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상대에게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이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그때 성령이 그 범인의 마음을 감동시켰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곳에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관심과 생각과 뜻을 하나님께로 맞추고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질서와 조화의 하나님

이 세상은 아주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는 세상입니다. 움직이되 인간에게 아주 유익하도록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창조 때의 하나님의 생각이고 뜻이고 원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질서와 조화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점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이 움직이되 하루에도 낮과 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일 년에도 사계절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일상의 삶도 좋은 일과 궂은 일이 서로 반복되면서 찾아옵니다. 우리의 삶에 어려움만 계속 오는 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에 좋은 일만 계속되는 일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번갈아 가면서 돌아가고 이어집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실 때 생각하신 질서입니다.

이 세상에는 계속되는 오르막이 없고 계속되는 내리막도 없습니다. 괴로운 일과 눈물겨운 일 그리고 감사한 일과 즐거운 일이 서로 엇갈리면서 찾아옵니다. 우리 인생에는 우리들이 기대하는 복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고 싫고 멀리하고 싶은 화도 장애도 어려움도 함께 찾아옵니다. 누구에게는 복만 오고 누구에게는 고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궁전에도 남모르는 눈물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두막집에도 남들이 알지 못하는 웃음이 있고 행복이 있고 기쁨이 있습니다. 복은 쌍으로 겹쳐서 오지 않고 화는 홀로 가볍게 오지 않습니다. 복이 올 때 쌍 겹으로 겹쳐서 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리고 화는 혼자 왔다가 빨리 가주면 또 얼마나 좋습니까. 이 둘은 서로 번갈아 가며 우리에게 오고 가고 그러면서 우리의 인생이 만들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가끔 볼 때 복은 잠간 왔다 가고 화는 와서 오래있다 가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것도 생각의 차이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복을 너무 좋아하니까 빨리 왔다 가는 것처럼 보인 것뿐일 것이고 화는 빨리 가기를 기다리다 보니까 빨리 안 가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이와 같은 조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그 화와 재앙 그리고 고난 그 너머에는 합동해서 유익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복과 만복 그 넘어 에도 합동해서 유익하게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손길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이고 경륜이고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은 지극히 오묘하도록 질서를 존중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적의 하나님

하나님은 기적의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을 보면 기적의 내용들이 참 많이 나옵니다. 그러기에 성경이 성경인 것입니다. 성경에 기적이나 초자연적인 내용이 없으면 성경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역사나 섭리 그리고 기적이 일어날 때는 아무 때나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그 때가 언제냐 하면 반드시 “사람의 희망이 끊어진 자리”에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홍해사건을 보십시오. 뒤에는 군대가 있고 앞에는 홍해바다가 넘실거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습니다. 그때가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입니다. 그때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광야에서 60만 명이 흩어져 있습니다. 하늘은 메말라 있습니다. 그곳에 60만 명이 널려 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먹을 것이 없습니다. 먹을 것이 있어도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불가능한 환경입니다. 그런데 그때 먹을 것이 하늘에서 내렸습니다. 하나님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먹을 것이 주어졌습니다. 또 만나를 먹었는데 이제는 목이 마릅니다. 앞뒤 어디를 보아도 메마른 들판일 뿐 그 어디에도 물이 없습니다. 넓은 사막에서 물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반석에서 물을 내서 마시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누가 마른하늘에서 만나가 내릴 줄 상상이나 했으며 누가 바위 속에서 물이 나올 줄 상상이나 했습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또 골고다를 보십시오. 골고다는 죽음의 자리이고 저주의 자리입니다. 골고다는 온갖 세상의 질시와 악의와 배반과 저주와 해골만 있는 사형집행 장소 입니다. 예수가 그곳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었을 때 사람들은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그때 죽은 예수가 무덤 속에서 다시 살아나리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부활을 통해서 그 흉악한 사형집행 장소를 소망이 넘치는 장소로 만드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하나님은 “나의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너희의 길은 나의 길과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만큼 다르냐 하면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알고 고백하는 사람만이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고 그 길을 갈수 있고 그 앞에 순종하고 무릎을 꿇을 수가 있습니다.  (이정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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