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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기 결점과 실패를 극복하라 (골 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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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결점과 실패를 극복하라 (골4:9-10)

성공하는 사람은 자기결점과 실패를 극복하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결점이 있고 실패의 경험들이 있습니다. 자기 결점과 실패로 인하여 열등의식과 패배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성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결점과 실패를 극복하고 일어서는 사람들은 반드시 성공하게 될 것입니다.

설기현 축구선수를 아시는 분들은 그의 기량과 실력이 엄청 발전한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오늘날 다시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자기 결점과 실패를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설기현의 결점은 볼 결정력의 부정확함과 드리불에 있었습니다. 골 앞에서 똥볼을 내지르기 일 수 였습니다. 드리불 돌파에 막혀서 뒤로 패스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의 모습은 달라졌습니다. 그가 소속한 구단의 감독은 선수들에게 볼을 잡으면 설기현에게 패스하라고 주문한다고 합니다. 설기현은 당당하게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는 대한민국을 세계 속에서 빛낼 새로운 선수로 주목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이 땅에서도 영향력있고 성공적인 인생들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 결점과 실패를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2006년을 성공적인 인생을 만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구월의 마지막주일입니다. 이제까지 구개월동안 어떤 인생의 길을 걸어오셨나요? 성공적이기 보다는 상실과 아픔, 실패의 경험이 더 많지 않습니까? 혹 여러분들이 실패의 길을 걸어왔더라도 다시 자기 결점과 약점으로 인한 실패를 극복할 수 있다면 앞으로의 3개월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성공적인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세 사람을 여러분에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들을 통해 자기 결점과 실패를 극복하지 못하고 힘들어 지쳐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힘과 용기와 소망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는 오네시모입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집에 있던 노예였습니다. 노예는 물건과 같은 취급을 받습니다.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오네시모는 더욱이 주인 빌레몬의 집에 큰 해를 끼치고 옥에 갇혀 옥살이하는 죄인이었습니다. 노예이며 죄인입니다. 빌레몬1:11에 “저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그의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요 저주받은 인생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무익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본문에서 오네시모를 소개하기를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라고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은 만나 후에 달라졌습니다. 변화되었습니다.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울을 만난 오네시모는 인생의 후반부를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그의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며 저주받은 인생이었습니다. 그는 결점이 많은 사람이었고 무익한 존재였습니다.  오네시모는 돈에 약했습니다. 탐욕과 거짓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꼬여있는 인격의 소유자였습니다.  노예취급을 받아야 하는 자신의 신세에 대하여 마음 깊은 곳에 억눌린 분노와 미움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만나 후에 오네시모는 자신이 가진 결점과 실패를 극복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새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자신의 결점과 실패에 눌려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성공적인 인생으로 변화되어 살게 된 것입니다.
복음 전도자 바울의 동역자가 되었을 뿐 아니라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라 일컬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전에는 모든 사람에게 무익하고 오히려 해가 되는 사람이었지만 이제는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네시모에게는 바울을 만나 것이 행운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큰 행운은 바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고 믿음 안에서 새로운 인생으로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자기의 약점과 실패를 극복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안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할 수 있습니다.
몬1:12에 “네게 저를 돌려보내노니 저는 내 심복이라.” 바울은 오네시모를 내 심복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에게 충성스러운 동역자였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심복이라는 말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순종하는 충성스러운 일군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기의 결점과 실패를 극복하고 이제는 바울의 충성스러운 심복이 되어 하나님나라 확장을 위한 복음전도자의 길을 바울과 함께 걷게 된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자기 결점과 실패를 극복하고 성공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아리스다고입니다.

성경에 보면, 아리스다고는 바울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바울을 수행하였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언제나 고백하기를 "나와 함께 하는 아리스다고"라고 하였습니다. 고난의 길을 가야하는 바울이 그의 사역을 끝내 감당하고, 위대한 복음사역을 완수할 수 있었던 그 이면에는 아리스다고와 같이 말없이 따르는 성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할 때 바울로 인하여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된 은장색 데메드리오라는 사람의 충동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알지 못한 채 분노하여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다가 원형극장에 끌고 가서 많은 곤욕을 치르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행19:29).
바울을 따라다니는 아리스다고의 앞날은 이처럼 순교자 바울과 똑같은 운명입니다.
바울을 따라다니면 그도 고난을 당하다가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아리스다고는 바울을 쫓는 일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과거에는 "이방인이었던 아리스다고..."였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우상을 섬기던 아리스다고..."였습니다. 그에게는 이방인이라는 약점과 우상을 숭배하던 사람이라는 결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리스다고는 그 약점과 결점을 극복하였습니다.
믿음의 모습으로 보면 그의 과거는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이상 실패자가 아닙니다. 약점에 붙들려 열등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연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바울을 신뢰하며 따르는 동행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마지막 죽는 자리에까지 바울과 동행하며 바울을 따랐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감사가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리스다고의 마음은 늘 구원의 감격으로 뜨거웠습니다.

사도행전 19:29절에 보면, 아리스다고는 에베소에서 바울을 도와 복음을 전하다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사도행전 20:4절에 보면, 아리스다고는 바울과 아시아까지 함께 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7:2절에 보면,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나와 함께 갇힌 자된 아리스다고" 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로 가면 에베소로, 아시아에 가면 아시아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널 때면 그 배에도 동행했고, 결국 감옥에 갇히게 됐을 때에도 바울 곁에 아리스다고도 함께 갇혀 있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아리스다고는 로마감옥에서 바울보다 먼저 순교했다고 합니다.
"나와 함께 가는 아리스다고" "나와 함께 갇혔던 아리스다고!....""나의 동역자 아리스다고...." 아리스다고는 자기의 약점과 결점을 극복하고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 영적 승리자가 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 전하기 위하여 생명을 건 바울과 함께 하며, 나도 생명을 아끼지 않겠노라 결심하는 평신도 아리스다고의 고귀한 믿음은, 바울과 함께 하는 그것만으로도 바울이 훗날에 하나님께 받을 똑같은 상급을 그도 받았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리스다고는 많은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늘 목자의 편에 있었습니다.
아리스다고는 유능한 전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울과 함께 순교했습니다.
아리스다고는 그렇게 뛰어난 일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 바울이 늘 그리워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레몬서 24절에 말하기를 "나의 동역자 아리스다고"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리스다고 처럼 늘 하나님의 일에 함께하는 사람, 아름다운 주의 길에 동역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세 번째는 마가입니다.

본래 요한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유대인이며 부유한 가정출신입니다. 좋은 믿음의 어머니, 마리아를 두었기에 신앙적으로 잘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듯 자기 집을 기도처소로 제자들에게 내어놓기까지 헌신이 많은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고 따르는 바나바를 삼촌으로 둔 사람입니다.
무엇하나 모자랄 것이 없고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약점이 있었고 그 약점은 자신의 결점이 되어 큰 실패를 경험해야만 했습니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자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친 한 청년이 있었는데 그가 마가였다고 합니다. 그는 매우 나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운 것을 경험하지 않고 자란 마가입니다. 그래서 마가의 약점은 어려운 것을 잘 견디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함께 1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 마가가 동행하게 되었는데 그는 그만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너무 전도여행이 힘들고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의 연약함과 유약한 모습은 척박한 땅을 걸어가며 전도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타직 단기선교를 갔을 때 전도특공대를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걷는 일이었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 오랜 시간 걷는 것은 전도 여행 중 가장 견디기 어려운 일입니다.
꾀가 난 저는 지나가는 트럭을 세우서 타고 갔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지나가는 트럭이라도 있지만 그 때는 오로지 걸어야만 했습니다.
마가는 1차 전도여행도중 밤빌리아 버가에서 견디지 못하고 포기하여 돌아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사건은 마가에게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며 큰 결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가는 자기의 결점과 실패를 극복했습니다. 후에 그는 베드로의 사역을 도왔고 베드로에게는 영적 아들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벧전5:13에서 베드로는 “내 아들 마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바울은 2차 전도 여행때 다시 마가를 데려가자는 바나바와의 의견대립으로 서로 갈라서기까지 마가에 대한 실망을 보여주었지만 딤후4:11에서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려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고 마가를 받아드렸고 또한 “나의 동역자”라고 몬24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는 “나와 함께 갇힌 마가”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새로워졌습니다. 저가 가지고 있었던 약점과 결점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내면속에 여전히 있는지 모르지만 그 결점을 극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지난날의 부끄러운 실패를 거울삼아 지금 그는 바울과 함께 옥에 갇히기까지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마가는 베드로를 따라 다니며 후에는 복음서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마가복음을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자기 결점과 실패를 극복하니 그는 정말 귀하고도 보배로운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떻습니까?
그 어떤 제자들보다 더욱 훌륭한 선교적 업적을 남기고 신약성경의 3분의2가 바울에 의해서 기록될 만큼 뛰어난 대사도입니다. 초대교회의 부흥을 이룩한 위대한 복음 전도자입니다. 그러나 바울도 자기 결점과 실패투성이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결점은 예수의 박해자,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사울이라는 지난날의 잘못된 삶이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육신적인 약점으로는 몸의 가시 즉 육신의 질병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안질과 간질이 있어 고통을 당해야 했습니다.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입니까? 그러나 자기의 결점과 실패에도 불구하고 이를 극복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위대한 복음전도자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약점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이 소개하는 사람들 오네시모, 아리스다고, 마가, 그리고 사도 바울까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가 결점과 실패투성이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결점과 실패를 믿음안에서 극복했습니다.
결코 자기 열등감과 자기 포기에 빠져있지 않았습니다.

오네시모는 바울과의 만남으로 자기의 결점과 실패를 극복하여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리스다고는 이방인임에도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받은 자의 감격과 은혜속에서 끝까지 바울을 따르는 삶을 살았습니다.
마가는 바나바의 사랑어린 기다림과 배려속에서 자신의 결점과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바울의 동역자로,  충성을 다하는 심복으로, 죽기까지 따르는 신실한 형제로, 함께 고난가운데 길을 걷는 동역자들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실패와 결점을 극복하고 성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헌신된 삶을 산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성공적인 삶의 척도는 우리가 무엇을 성취했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극복하였는가에 있습니다.

장 크레티앙은 1993년부터 캐나다총리를 3번이나 연임한 인물입니다.
그는 선천적으로 한쪽 귀가 먹은데다 안면 근육마비로 입이 비뚤어져 발음이 무척 어눌했습니다. 그런 그가 총리직에 도전하자 많은 사람이 비웃었습니다.
당시 선거유세 때 크레티앙은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언어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오랫동안 고통스러웠습니다. 지금도 제가 가진 언어장애로 제 생각과 의지를 전부 전하지 못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제 말에 귀 기울여 주십시오.”
그러자 누군가 소리쳤습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총리에게 언어장애가 있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점이오.”
이 말을 들은 크레아티은 단호하게 대답했습니다.
“말은 잘 못하지만 적어도 거짓말은 안합니다.”
자신의 고통을 솔직히 인정하고 굳은 신념을 자신의 결점을 극복한 크레아팅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깊은 신뢰를 주었고 그는 3번이나 총리에 당선될 수 있었습니다. 

어느덧 구월의 마지막주일이 되었습니다. 한 해를 시작할 때에 세웠던 목표와 계획들이 그대로 지켜지기 보다는 무너지고 흐려지고 흐지부지 되어버린 일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이제까지 성공적인 길을 걸어왔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실패와 절망의 길을 힘겹게 걸어온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흐려진 목표를 분명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나의 약점과 결점으로 인하여 실패의 길을 걸어왔다면 다시 나의 결점과 실패를 딛고 일어서야 하겠습니다.

이제 2006년은 3개월의 시간을 우리들에게 남겨주고 있습니다. 지난 구개월이 실패의 나날이었다 할지라도 다시 우리의 목표를 재확인하고 자신의 결점과 실패를 극복하고 나아간다면 틀림없이 성공적인 한 해의 삶을 마무리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힘내시기 바랍니다. 아직 3개월의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얼마든지 다시 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무너졌던 것들을 다시 세울 수 있습니다. 년 초에 세웠던 우리들의 영적인 목포와 삶의 모든 목표들을 다시 확인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십시오.
극복하지 못한 나의 약점과 결점들을 극복하십시오.
남겨진 삼개월동안 한번 해보십시다.  힘차게 최선을 다하여 다시 시작해 보십시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붙들어주실 것입니다.  함께해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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