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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마 3: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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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례는 하나님께서 분부하신 명령이며 그리스도인들이  받을 위대한 복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세례를 받으셨고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분부하신 후 공생애를 마치셨습니다.
세례 요한으로부터 사도 바울에  이르기까지 신약의 위대한 지도자들은 이 성스러운 예식에 참예했고 제자들에게 가르치며  실천하였습니다.
세례는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내적 신앙의 외적인 고백이며 하나님께서는 세례를 통하여 우리가 자기의 백성 됨을 인 처 주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 안에서 옛사람의 죽음과 새로운 생명의 태어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롬6:3-7)

  그러므로 세례증서는 나의 옛사람의 부고장이며 새로운  세계의 시민등록증과 같고, 세례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결혼증서와 같습니다.
  베드로는 노아 홍수에서 구원을 받은  것을 세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 뿐이니 겨우 여덟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벧전3:20-22)고 했습니다.

홍수는 죄악된 세상을 심판하는 것이었지만 새로운 생명으로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이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은 영혼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결단의 표이며 하나님 편에서는 자기의 백성이라는 인침이요 증표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받은  세례가 애굽에서 구원을 받은 사건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고전10:1-5)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아 홍해를 건너 약속의 땅으로 인도를 받은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이 세례를 받음은 세상에서 나와 구원받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신약의 세례는 광야의 소리 요한으로 부터 시작 되고 있습니다.
“그 때에 세례 요한이 이르러 유대 광야에서 전파하여 가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였으니 저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하였느니라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이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 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마3:1-10) 고 했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세례와 그리스도께서 베푸실 세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3:1-12).

요한의 세례는 강력한 회개의 명령이 전제되어 있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의  길을 예비함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베푸실 세례는 성령과 불 즉 구원하실 생명과 죄에 대한 심판의 능력이 담겨진 세례를 베푸실 분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명하심에는 하늘나라 건설에 그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8-20)고 했습니다.
세례 받는 것과 제자를 삼는 것은 불과분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에 있어서 세례는 중요한 위치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먼저 세례 요한에게 나아가셔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하셨을 때 세례 요한은 놀라서 자신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받아야만 할  터인데 어떻게 예수님이 저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하시느냐고 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요한에게 하신 말씀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으로 오신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인간이 받아야 할 세례가 필요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의 사적 생애를 마감하고 메시야 직무를 수행하는 공생애로 들어가기 위하여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더욱이 예수의 받으신 세례는 모든 죄인을 대신한 고난입니다.

사실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적 메시지에 따르면 예수님은 고난받는 종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요한은 세례를 베푼 후 즉시 예수를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이라 불렀고, 예수님 자신도 자신의 대속적 고난을 세례로 표현했습니다(눅 12:50).
  세례는 죄와 욕심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과 말씀에 대하여 살겠다는 뜻으로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언약의 예식입니다. 예수님은 죄와 욕심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과 말씀에 대하여는 언제나 사는 사람이 되라는 교훈을 주시기 위하여 세례를 받으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신의  방식과 생각대로 살아 자신의 의와 뜻을 이루면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방식과 방법대로 행하여 하나님의 의와 뜻을 이루면서 사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그와 같이 말씀하신 것이며 또한 세례를  받으신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 살지 아니하고 자신의 욕심과 뜻대로 살려고 하는 죄악 된 본능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에게만 나타나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에게도 아주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중요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매우 중히 여겼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바리새인들은 그 율법대로 살려고 얼마나 애를 쓰고 노력을 하였는지 모릅니다. 저들은 말씀과 율법을 중히 여겨 손목에도 시계처럼 말씀을 적어 차고 다녔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띠에 적어 머리에 띠고 다니기도 하고 집안 문설주에도 말씀을 적어 놓고 그곳을 들고 날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였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기 위하여 안식일 지키는 규례와 법을 600여 가지나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저들이 얼마나 말씀과 율법을 중히 여기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구원의 복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를 롬10:1-3절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니라.(롬 10:1-3)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었으나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부족함으로  결국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 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를 이루려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세우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를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께 열심이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저들은 자신의 구원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교회에 대하여 열심인 사람도 구원받지 못하고 복을 받지 못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매우 중요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라고 하는 단어와 '자기의 의'라고  하는 단어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회에 대하여 얼마나 열심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누구의 의를 이루려고 그토록 힘쓰고 애 쓰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그가 하나님과 교회에 대하여 열심이라고 하여도 그 목적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고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의 의를 이루고 나타내기  위함이라면 그는 하나님의  구원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마7:21-23절 말씀 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주의 이름을 부른 사람뿐만 아니라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까지 쫓아낸 사람까지도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인지 모릅니다.
왜 저들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도 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까지도 쫓아내면서 살았는데도 구원을 얻지 못하였을까요?

그 이유는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 자기의 자랑과 영광을 위하여 그와 같은 일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의'를 위함이냐 아니면 '자기의 의를 드러내기 위함'이냐 하는 것입니다.
  구원을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철저한 자기 부인과  부정입니다. 우리는 철저한 자기 부인과 부정을 통하여 철저한 하나님 시인과 긍정에 이를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세례는 바로 이와 같은 철저한 자기 부인과 부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죄와 욕심에 대하여는 죽고 의와 하나님께 대하여 살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기겠다는 것입니다. (롬16:11)

자기 의를 드러내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드러내려고 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것은 구원을 위하여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우리가 평생을 예수를 믿어도 그처럼 열심히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여도 '그 어디나 하늘나라'라고 간증할 구원의 감격이 없는 까닭은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모든 일에 중심과 목적에 자신이 살아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의를 이루려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하나님의 의를  이루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례의 본래 의미가 하나님의  의를 이룸에 있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었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의 문이 열렸습니다.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있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예수 그리스도가 닦아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하늘의 문이 열려서 하늘이 우리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하여 각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행2:37-39).
세례는 위대한 대관식의 자리입니다. 옛날 헷 족속은 왕의 대관식을 성대하게 가졌습니다. 부왕이 아들에게 왕관을 물려줄 때 찬란한  금관을 손수 아들에게 씌워주고 주위에 모여 있는 문무백관들과 백성들이 다 듣도록 큰  소리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선언을 한다고 합니다.
세례는 부왕 되신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들 하나하나에게 하늘의 상속자로 선언을 해주시는 행위인 것입니다.

진정한 세례를 사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정한 의미의 세례를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죄에 대하여는 죽고 의에 대하여 사는 사람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의를 이루려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온전한 구원을 이루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땅에 살면서도 천국을 살며 항상 기뻐하고 늘 감사하며 구원의 감격을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례는 성도가 받을 위대한 복입니다. 이미 세례를 받은 분들도 이 놀라운 복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세례를  받으실 분들은 세례의 중요성을 인식하시고 경건된 마음으로 이 복에 이르도록 애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강성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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