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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 밖에 구원이 없습니다 (행 4: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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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밖에 구원이 없습니다.(사도행전 4:5-12)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말씀이 들려지고, 그래서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겁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하는 사람의 의도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듣는 자기의 의도대로 듣습니다. 같은 내용인데도 어떤 사람은 은혜 받았다고 기뻐하는데, 어떤 사람은 자기를 욕한다고 화를 냅니다. 더욱 큰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조차도 자기 생각으로 바뀐 상태로 들린다는 것입니다.
아침에 부부 싸움을 했습니다. 설교 시간에 “서로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하나, “그래, 사랑해야 하는데 잘못했구나.” 그러는가 하면, 또 하나, “사랑? 사랑은 무슨 사랑. 저 원수를 사랑하라고?” 라고 반응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 후자의 경우는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말로 바꾸어진 것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 사도께서 오후 3시에 기도하러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갑니다. 성전 미문에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인 사람이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이 앉은뱅이 걸인은 베드로와 요한을 보자 좀 얻을까 하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베드로가 그를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불쌍하고 측은한 마음이 생겨 베드로는 사랑과 연민에 찬 눈을 하고 손을 내밀어 그 앉은뱅이의 손을 잡았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하고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날 때부터 앉은뱅이였던 그 걸인은 일어났고,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찬미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사람들이 구름 같이 모여들자 베드로는 이때다 싶어 소리 높여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잡아 죽음에 넘겨준 유대 지도자들을 비난하면서, 이렇게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을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으며 우리가 바로 그 증인이라고 외쳤습니다.
이 사건 때문에 베드로와 요한은 관원에게 붙잡혀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하룻밤 옥에 갇혀 있었고 다음날 관청에 온 관리들에 의해 취조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물었습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그러자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해서 그들에게 말합니다.
“백성의 지도자들과 장로 여러분, 우리가 오늘 신문을 받는 것이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과 또 그가 누구의 힘으로 낫게 되었느냐 하는 문제 때문이라면, 여러분 모두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이 성한 몸으로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것은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서 된 것입니다. 이 예수는 너희들 집 짓는 사람들에게는 버림받은 돌이지만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입니다. 이 예수 밖에는 다른 아무에게도 구원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가 의지하여 구원을 얻어야 할 이름은 하늘 아래에 이 이름밖에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아멘.

분명 이 이름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다름 이름이 없습니다.
지금 딴 생각하시더라도 정신 차리십시오. 지금 졸다가도 정신 차리십시오.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외에는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무엇을 하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받을 먹어도 예수 그리스도구요. 노래를 불러도 예수 그리스도구요. 춤을 추어도 예수 그리스도구요. 병들어 누워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심지어 죽어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예수 그리스도 입니까?
보세요. 모든 종교는 다 기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도 응답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습니다.
불교는 “천 번을 절해야 부처가 한 눈 뜨고 본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천 번을 절합니다. 그것은 결국 기도하는 사람의 정성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기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의 역사는 기도하는 나의 능력이 아니라, 기도를 응답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에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내가 무엇이든 다 이루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서 다 이루어 주시다는 것입니다.

저는 교회의 부흥을 위해 기도합니다. 성도 여러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제 목회가 하나님의 복으로 충만한 목회가 되기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제 자신에게 능력이 있는 것 아닙니다. 제 자신에게 능력이 있다면 뭐 하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겠습니까? 능력은 주님께 있습니다.
다만 저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내가 무엇이든 다 이루어 주겠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저는 그 믿음으로 기도합니다. 기도하고 나면 그렇게 되리라 믿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당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자들에게 응답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기도가 무슨 은혜냐고 생각 하는 것 같습니다. 기도가 하나님의 은혜라면 기도하지 않을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찬송가 186장 4절, “큰 죄인 복 받아 빌 길을 얻었네. 한 없이 넓고 큰 은혜 베풀어 주소서.” 우린 괴인이기에 빌 길이 없었어요. 빌 방법이 없었어요.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빌 길을 얻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으로 한 없이 넓고 큰 은혜 베풀어 주소서 기도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운 것이다. 그것은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받게 하려는 것이다.” 아멘.

내가 주님을 택한 것 아닙니다. 주님께서 나를 택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내가 의롭고, 내가 잘 나고, 그래서 기도하는 것 아닙니다. 내가 무슨 공로가 있어서 기도하는 거 아닙니다. 내가 의로우면 얼마나 의롭고, 내가 떳떳하면 얼마나 떳떳하겠습니까? 이것 가지고 하나님 앞에 자랑스럽게 기도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기도할 때 응답 받게 됩니다.

더욱이 우리의 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씻을 수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 후에 베드로가 나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유대인들의 죄라고 외칠 때에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이 마음에 찔려 몰려와서,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할 때 사도 베드로는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죄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남의 물건 훔쳤는데 그 대가의 벌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살인을 했는데 그 대가의 벌이 없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죄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런데 어디서 이 죄의 대가를 치르는 문제에 대한 대답이 있습니까?

유교사상을 연구하신 분 계십니까? 거기 어디 죄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까? 불교사상을 연구하신 분 계십니까? 거기 어디에도 죄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까? 있다면 죄 짓지 말라는 겁니다. 그리곤 지은 죄에 대해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스스로 자기의 죄에 대해 어떻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제 그제, 여러분 중 누가 남의 가게에서 빵 하나 훔쳐 왔어요. 어떻게 하면 그 죄가 없어지겠습니까? 빵 값 가져다주면 됩니까? 물론 그렇게 해야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훔쳤다”라는 죄가 사라집니까? 벌금내면 그 죄가 없어집니까?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그 죄가 없어집니까?
좀 크게, 사람을 죽였어요. 그래서 감옥에 들어갔다가 나왔습니다. 그렇다고 그 죽은 사람이 살아납니까?
여기서 우리는 죄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보게 됩니다.
하나는, 벌 받으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벌금을 내든 뭐 하든 대가를 지불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되었다는 겁니다. 죄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여전히 그 죄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죄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닙니다. 둘 다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지 않는 한, 그 죄는 영원히 남아있습니다. 또한 세상의 법이 용서해 주었다고 하나님으로부터도 용서함 받는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셔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입니다.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하여 당신의 생명으로 내어놓으시므로 우리의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오직 기독교에만 죄 씻김 받는 길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인간의 죄를 씻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없이는 죄 사함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권능은 한이 없어서 우리가 지은 어떠한 죄라도 용서해 주십니다. 회개하기만 하면, 그리고 우리 주님께 자비를 간구하기만 하면 무슨 죄도 사해 주십니다.

그리스의 철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신도 과거를 변화시킬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인간이 저지른 과거의 오점은 영원히 지울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과거를 지워버릴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뿐이다. 고린도전서 6:11,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사울은 예수 믿는 사람을 박해했습니다. 감옥에 가두고 심지어 죽음에 넘기기까지 하였습니다. 그가 또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고 있을 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아마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이라는 율법을 따른다면 예수님은 사울을 그 자리에서 죽여야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오히려 사울에게 주님의 말씀을 증거 하는 제자의 직임을 맡겨 주셨습니다.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를 용서해 주신 주님은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던 사울도 용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어떠한 죄도 용서하십니다. 도둑질한 것도, 살인한 것도, 간음한 것도, 남을 속인 것도, 남을 욕하고 모함한 것도, 충성 못한 것도, 심지어 하나님의 교회의 물건을 도둑질한 것도, 진심으로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어떤 죄든지 다 용서해 주십니다. 그렇기에 지금 당장 회개 하십시오. 나중으로 미루지 마십시오. 죄 사함은 나의 어떤 속죄를 위한 노력이나 수고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죄 씻음 받습니다.

찬송가 184장,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 밖에 없네. 다시 성케 하기도 예수의 피 밖에 없네. 예수의 흘린 피 날 희게 하오니 귀하고 귀하다 예수의 피 밖에 없네.”
그렇기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구원을 얻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하고 외쳤습니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이 예수 밖에는, 다른 아무에게도 구원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가 의지하여 구원을 얻어야 할 이름은, 하늘 아래에 이 이름 밖에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외에는 우리를 구원할 이름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외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이름을 주신 일이 없습니다.
“종교는 다 똑 같다”고들 합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불교에 구원이라는 것 있습니까? 108가지의 번뇌에서 해방 되는 것을 종교의 목적으로 삼는데, 어떻게 108가지의 번뇌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찾아낸 방법이 “없다”(無)는 것입니다. 태어남도, 병드는 것도, 늙고 죽는 것도 다 없다는 것입니다. 있는 것을 없다고 깨달아지게 되고, 그래서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있는 것을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또, 그게 가능하다고 합시다. 가끔 유명한 스님들의 죽음이야기 있으니……. 그런데 그게 몇 명이나 되는가 말입니다. 출가해서 득도 즉 도를 터득한 사람이나 그런 경지에 이르는 거라면 몇 명이나 부처 될 수 있습니까?

그래서 나온 것이 보시라는 것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선한 일 하는 것입니다. “착한 일 하면 천당 간다.” 엄격히 따진다면 이건 불교사상입니다. 기독교는 “착한일 하면 천국 간다.”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예수 믿어야 천국 간다.”입니다. 기독교는 예수 믿기에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착한 일 하는 것입니다.

유교에 구원관이 있습니까? 유교는 누구를 믿는다는 것이 없습니다. 착하게 살자는 것입니다. 선하게 살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착하게 살 수 있습니까? 선하게 살 수 있습니까? 그것이 가능 하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실 이유가 없습니다. 죄 안 짓고 살 수 있다면 제물인 어린양은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누가 죄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의인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깨닫는 사람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없다. 모두가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한 사람도 없다.”
법을 어기지 않았으니 의인인 줄 아십니까? 감옥에 가지 않았다고 죄 없는 줄 아십니까?

다이아몬드의 가치는 네 개의 C로 결정한다고 합니다. 캐럿(Carat), 컷(Cut), 컬러(Color), 클래리티(Clarity)입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도 이 네 개의 C로 한답니다. 캐럿은 크기니까 그 사람의 주머니 크기.
컷은 모양이니까 생김생김, 옷, 주택, 자동차 등. 컬러는 색깔이니까 피부의 색깔 등 외형적 모습. 클래리티는 순결도 즉 도덕적인 행실입니다. 그러나 이 네 가지 면에서 사람들에게 그럴듯한 점수를 받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모두가 다 죄인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용서하시지 않으시면 그 죄는 사라지지 않고 하나님께서 용서하시면 죄는 사함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셔야만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구원은 어디 있습니까?

요한복음 1:12, “그러나 그들 맞아들인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이 예수 밖에는 다른 아무에게도 구원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가 의지하여 구원을 얻어야 할 이름은 하늘 아래에 이 이름 밖에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아멘

구원은 무엇입니까?
로마서 8:1,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2절,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아멘.
이제 여러분을 죄 있다고 하시지 않는 것이 구원입니다.
여러분을 죄와 죽음에서 해방하여 주신 것이 구원입니다.
“나는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러 간다. 내가 가서 너희가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나에게로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함께 있게 하겠다.”(요14:2-3)라고 말씀하신,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련하신 그곳으로 가는 것이 구원입니다.

동시에 구원은 오늘, 여기, 매 순간순간의 삶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무엇으로 고쳤습니까? 누가 그들 일으켜 세웠습니까? 누가 그를 뛰게 하였습니까?
“백성의 지도자들과 장로 여러분, 우리가 오늘 신문을 받는 것이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과 또 그가 누구의 힘으로 낫게 되었느냐 하는 문제 때문이라면, 여러분 모두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이 성한 몸으로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것은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었으나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서 된 것입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났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되어진 능력의 역사된 은혜가 여러분과 저에게도 있어지기를 축원합니다.
“먼 훗날 죽으면 천당 간다.” 그것만이 구원의 의미 전부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것도 구원입니다.
그렇기에 구원은 병에서 고침 받는 것입니다. 아멘?
그렇기에 구원은 고통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구원은 죄로 인한 번민과 고민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구원은 나의 가슴을 꽉 채우고 있는 증오심에서 해방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구원은 한도 끝도 없는 욕심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구원은 허무감 무의미 권태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기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증거 하시기 바랍니다.
병이 있습니까? 고쳐주심을 믿고 기도하십시오.
염려와 근심의 고통이 있습니까? 해결해 주심을 믿고 기도 하십시오.
죄로 인해 번민하고 고민 하십니까? 주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 주심을 믿고 기도하십시오.
미운 사람 있습니까? 주님의 사랑으로 그를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 하십시오.
한도 끝도 없는 욕심이 있습니까? 해방시켜 달라고 기도 하십시오.
산다는 것이 허무 합니까? 아무의미가 없습니까? 짜증납니까? 기도하십시오. 주님의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이영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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