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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포가 웃으면 인생이 웃습니다 (느 5: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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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가 웃으면 인생이 웃습니다.
느헤미야5:1-13

“길에서 만난 세상”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소외된 계층들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봉제 노동자, 외국인 이주 노동자, 한국인과 결혼한 아시아 이주 여성, 거리에서 방황하는 도시의 노인들, 미성년 미혼모 등 다양한 소외계층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첫 이야기가 “노동은 있으나 노동자가 아닌 사람들”입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월급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이 일하지만 정규직은 간식도 제과점 빵이 나오는데 비정규직은 구멍가게 빵이 나온다“고 적어 놓고 있습니다. 가족들한테조차 자신의 직업에 대해 말할 수 없을 때 가장 힘들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중간쯤에 ”세월의 막장에 갇힌 사람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탄광 막장에서 일하다 진폐증 환자가 되었고 아내는 병든 남편을 돌 볼 수 없다고 자식들을 남겨 놓고 떠나버렸다고 합니다. 큰 아들이 자라 실직한 아버지를 대신하여 공장에 나갔는데 손가락 네 개가 잘려 장애 4급 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막내딸은 신부전증으로 앓으며 죽음을 바라보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은 병든 몸으로 네 벽에 갇혀 하루 하루를 보내야 하는데 교회에 나가고 싶어도 숨이 차서 나갈 수 없다고 써 놓고 있었습니다. 눈물 나오는 삶의 현실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 민국은 지난 27년 동안 세계8위 성장률을 보여 잘 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성장하는데는 그들의 눈물과 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곳곳에 아직도 그 발전의 혜택을 입지 못하고 그늘에서 시들어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960년대 초 인도, 필리핀, 인도네시아는 아시아에서 부국(富國)에 속했습니다. 당시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80달러 수준으로 세계 최빈국에 포함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한국을 가리켜 영국 언론은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꽃피기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비아냥거렸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들 중에서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룩한 나라는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신생국들 중에 없습니다. 6․25전쟁 직후였던 1955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65달러로 세계 최하위권이었던 나라가 이제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외국 교과서들도 "한국은 경제 선진국"을 극찬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문화교류센터가 세계 34개국 276종의 역사․지리․사회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36.2%인 100종의 교과서가 한국의 빠른 경제 성장을 언급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함영준씨가 쓴 “나의 심장은 코리아로 벅차오른다”라는 책을 보면 “한국인으로 태어난 게 자랑스러운 10가지 이유”를 쓰고 있습니다. 첫째, 중국 옆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나라이고, 둘째, 일본을 우습게 아는 지구상 유일한 나라이며, 셋째,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고, 넷째,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루었으며, 다섯째, 세계를 리드하는 IT 강국이고, 여섯째, 교육열이 세계 최고이며, 일곱째, 세계 제일의 우수한 두뇌가 있고, 여덟째, 한국인은 정이 넘치고, 아홉째, 할리우드 영화가 지배하지 못하는 유일한 나라이며, 열 번째, 축구와 야구에서 세계 4강을 성취한 유일한 나라라는 점입니다. D램 반도체, TFT-LCD, CDMA, 셋톱박스, 초고속 인터넷, LNG선, 냉연강판, 폴리에스터 섬유, 인삼, 여자골프 등이 세계를 석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풀어야 할 숙제는 많이 있습니다. 40대 남성 사망률 세계 1위입니다. 한국여성 지구촌 `불명예 1위` 싹쓸이하고 있습니다. 低 출산, 제왕절개, 이혼율, 흡연, 성형 수술, 낙태율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경제 발전 만큼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한국 행복지수 178개국 가운데 102위로 발표가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 시대에 풀어야 할 숙제가 힘있는 자들이 힘을 바르게 사용하면 많이 풀릴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권력있는 자가 권력을 바르게 사용해야 합니다. 재력있는 자, 지력있는 자가 그 힘을 정당하게 사용하여야 합니다. 힘을 잘 못 사용하기 때문에 정치가 국민에게 행복을 주지 못하고 보수와 진보의 대립으로 늘 긴장을 조성하고 있고 경제의 불균형이 심각하며 나라의 도덕 질서가 사행적이며 폭력적이고 퇴폐적으로 흘러갑니다. 힘이 잘 못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사회 그늘에서 울부짖는 눈물을 닦아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권력이든 재력이든 지력이든 미력이든 영력이든 힘을 잘 못 사용하는 방법은 주로 세 가지입니다. 첫째가 오용입니다. 힘을 잘못 사용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힘의 남용입니다. 권리나 권한 따위를 본디의 목적에서 벗어나 함부로 행사하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힘의 사유화입니다. 힘을 이용한 사리 사욕 추구하며 독재 권력처럼 자기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세포가 건강해야 인생이 건강하고 세포가 웃어야 인생이 웃으며 세포가 행복해야 인생이 행복해 지듯 백성 하나 하나가 웃어야 나라 전체가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백성 한 명 한 명이 건강해져야 나라가 건강해 지는 것입니다. 힘이 정당하고 바르게 사용될 때 백성이 웃고 백성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힘이 오용되거나 남용되거나 사유화되어 울부짖는 백성들이 나옵니다.
1절을 보십시오. 백성들이 그 아내와 함께 원망하며 부르짖습니다.
다섯 가지 문제입니다. 첫째가 식량난입니다(2). 이주민의 증가로 심각한 식량난을 겪었습니다. 둘째가 흉년입니다(3).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연적인 재해를 맞아 경제란이 더 심각해진 것입니다. 세 번째는 과중한 세금입니다(4). 네 번째는 빚에 의한 인신 매매입니다.(5) 다섯째 고리대금입니다(7). 한 마디로 말하면 다 경제 문제입니다. 흉년으로 인한 절대 빈곤, 정부의 과도한 세금 징수, 부자들의 경제적 착취, 돈으로 인한 인권유린, 노토 상실로 인한 실직 등 다 돈과 관계된 문제입니다. 흉년과 같은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문제도 있지만 힘이 잘 못 사용되어짐으로 나타난 현상입니다.

이 때 힘을 가지고 있는 느헤미야가 그 힘으로 어떻게 이 문제를 풀고 있습니까?

1.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으로 힘을 사용하게 합니다.(9, 14-15)
힘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으로 사용될 때 모두가 행복해지고 기쁨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백성의 부르짖음을 귀를 열어 듣고 크게 노하였습니다(6). 그리고 중심에 계획하고 귀인과 민장을 꾸짖었습니다. 잘못을 지적합니다. 지도자들이며 기득권자들입니다. 그들이 이자놀이를 한 것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네가 만일 너와 함께 한 나의 백성 중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이거든 너는 그에게 채주같이 하지 말며 변리를 받지 말 것이며 (출 22:25)”라고 하신 말씀을 어긴 것입니다. 이방 사람들에게 팔려서 애써 몸값을 치르고 데려왔는데 또 동포를 팔아먹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더러 다시 그들을 사오라는 말이냐?”라는 말로 야단을 쳤습니다(8). 9절을 보십시오. 옳지 않는 것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방인 원수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려거든 하나님을 경외(두려워)하면서 살아야할 것”을 말씀합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방법으로 힘을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힘있다고 오용하고 남용하지 말고 하나님 두려워할 줄 알아라는 말입니다. 힘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하나님 마음에 맞게 사용하라는 말입니다. 권력자들이 권력을 잡으면 백성을 의식하지 않고 힘을 남용하고 오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래 가지 못합니다.

요즈음 힘있는 자들이 힘을 사용하는 방법들을 보십시오. 바다 이야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힘있는 자들이 어떻게 처리하고 있습니까? 정치인들이 “우리 당에 불리한가 유리한가”를 기준으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작통권 인수 문제가 있습니다. 힘있는 자들이 “우리 당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로 접근합니다. 힘을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정략적 처리, 정치적인 처리라고 합니다. 정치인들이 쓰는 방법이고 정치적 성향이 있는 언론이나 사람들이 쓰는 방법입니다. 늘 자신들에게 불리한가 유리한가를 따져 불리한 것은 꼬리를 내리고 유리하면 확대 재생합니다. 요즈음 힘있는 사람들이 우리 시대에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사학법, 작통권 인수, 북한 핵문제 등을 처리하는 방법들을 주의 깊게 보십시오. 얼마나 정략적으로 접근을 하고 있습니까? 진정 나라와 국민에게 무엇이 유익한가를 생각하여야 하는데 백성의 유익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 정권을 잡기 위한 이용물에 불과합니다. 모든 초점은 정권을 잡기 위한 것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더 큰 힘, 지속적인 힘을 갖겠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도덕적 처리입니다. 법적 처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법대로 하는 것입니다. 정략적 처리보다 좋은 방법입니다. 세 번째는 공익적 처리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 어려운 사람들의 형편을 헤아려서 처리하는 방법입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 내 편뿐 아니라 상대에게도 유리하도록, 우리 모두에게 유익하도록 처리하는 방법입니다. 이것이 힘을 바르게 사용하는 성숙한 방법이고 이렇게 처리하면 문제는 서로 양보하면 쉽게 처리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처리입니다. 이것이 힘을 하나님으로 부여받은 신앙인의 처리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생각하며 사람을 의식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우선 의식하며 처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한다는 말입니다. 코람데오 정신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원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힘이 주어지면 그 힘이 나의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힘을 주신 분을 잊는 것입니다. 자기 잘나서 성공하고 자기 잘라 권력을 받았고 자기 잘라 아름답고 자기 잘라 출세한 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힘을 오용하고 남용하며 사유화합니다. 그 힘으로 부당하게 통제하려 들고 심지어는 힘을 주신 분까지 통제하려고 합니다.상대의 마음까지 통제하려고 합니다. 그 힘은 주신 분이 거두어 가버리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힘을 거두어 가는 것 중의 최악의 것은 생명을 거두어 가버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초대왕 사울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을 제것인양 교만하게 사용합니다. 결과는 왕권도 잃고 그 힘 때문에 생명도 잃게 되었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12년 동안 이스라엘의 총독으로 지내었던 느헤미야를 보십시오.(14절) 권력이 주어졌습니다. 그는 이 힘을 어떻게 사용하였습니까? 이전 총독은 지나치게 세금을 거두었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이전 총독들은 백성을 토색하였습니다. 돈이나 물건을 억지로 빼앗아 갔다는 말입니다. 양식과 포도주와 은 사십 세겔을 세금으로 취하였습니다. 그의 직원들도 백성을 압제하였습니다. 그러니 부자들은 이자 놀이하고 호화 호식하였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 집과 자녀를 저당 잡혔습니다.(느5:1,2,10) 총독과 관리들은 부패하여 힘을 남용하고 오용하고 그 힘으로 자기 사리 사욕만 채우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14절 하반절에 보니까 총독의 녹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것도 한 해가 아니었습니다. 12년 동안입니다.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형제 하나니도 마찬가지였습니다(1:2; 7:2). 자신은 선한 채하며 동생들을 통하여 몇 억씩 챙기는 것 아니었습니다. 그가 힘이 있는데도 그렇게 살았던 원동력은 어디에 있었던 것 같습니까? 오늘 성경은 그 원동력에 대하여 분명하게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15절 하반절을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이같이 행치 아니하고" 이것이 느헤미야가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자신을 그 지위에 놓으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예루살렘에 보내신 분도, 자신을 총독의 지위에 올려놓으신 분도, 자신에게 책임을 주신 분도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자신의 지위에 대하여 열쇠를 가지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무서워할 줄 아는 지도자였습니다. 하나님이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는 하나님인 줄 알았습니다. 힘이 주어지면 그 힘을 남용하거나 오용하거나 내 것으로 알고 잘못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사용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때 권력을 남용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을 때 자기 마음대로 상대를 통제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힘을 오용하고 사유화합니다.

2. 사람을 사랑하는데 힘을 사용해야 합니다(5,7,16-18).

민장들과 귀인들은 주어진 힘으로 무엇을 하였습니까? 착취하였습니다(5,7). 착취형 인간들입니다. 주어진 힘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간은 착취형 인간, 거래형 인간, 사랑형 인간으로 나누어 볼 수가 있습니다. 착취형 인간은 힘이 주어지면 그 힘으로 다른 사람을 착취하여 이용하는데 사용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자신만 이익이 있으면 됩니다. 힘이 주어지면 자신의 이익만 챙기는데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심지어는 힘이 주어지면 다른 사람을 매장하고 죽이는데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요즈음 우리 시대에 힘있는 자들이 그 힘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십시오. 상대를 비난하고 매장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의 약점을 찾아내어 언론 재판하고 마녀 사냥하는 모습을 봅니다. 대기업은 중소 기업을 이용하고 힘있는 자는 끝없이 약자를 짓밟고 비대해지려고 합니다. 무한 경쟁 시대에 살아 남기 위해 어쩔 수 없다하지만 그렇게 하면 공멸하기 쉽습니다. 거래형 인간(공생형 인간)은 힘이 주어지면 그 힘으로 한 개 주고 한 개 받고 사는 인간입니다. 양심있는 인간들을 대부분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사랑형 인간, 희생형 인간은 이 차원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을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힘이 주어지면 그것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자연질서를 지배하시는 힘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바다를 꾸짖어 잔잔케 하신 분이십니다.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힘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히시기까지 하였습니다. 비난하는 자 용서합니다. 채찍을 때리는 자 용서합니다. 배신하고 저주하는 자 이해하고 사랑합니다. 힘이 주어졌지만 그 힘으로 끝까지 사랑을 사랑하는데 사용하십니다. 생명을 내어놓기까지 사랑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 하나님의 사랑받은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의 말할 수 없는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힘이 주어지면 그 힘으로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 확장시키는데 힘을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를 보십시오. 백성들의 말을 귀담아 듣습니다. 5절을 보십시오. 백성들이 “우리의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저희 자녀와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이라고 해서, 유다인 동포들의 몸과 무엇이 다르냐 ? 우리의 자식이라고 해서 그들의 자식과 무엇이 다르단 말이냐 ?“는 것입니다. 힘있는 자식이나 힘없는 자식이나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입니다. 이말을 듣고 느헤미야는 의분을 가지고 그들을 향하여 이자받는 것을 그치라고 말합니다(10). 부당하게 받은 것을 돌려보내라고 합니다(11). 착취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모두가 느헤미야의 말을 듣고 그대로 행했습니다.

힘을 가진 느헤미야 전 총독들의 관심은 무엇이었습니까? 백성을 이용하여 돈을 버는 것이었습니다. 착취형 인간입니다. 기생충같은 인간들입니다. 백성은 단지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착취형 인간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백성은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어 자신의 자녀들을 종으로 팔 지경이 되어도 그것에는 관심이 없고 고리대금업을 하고 오직 자신들의 부 축적에만 관심을 가졌습니다(5).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성 역사에 힘을 다하여 수고하였습니다. 땅을 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부동산 투기를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는 계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기 전에 미리 땅을 사놓고 다 건축한 후 값이 오르면 팔면 얼마든지 계발 이득을 챙길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권력을 가지고 그의 힘을 가지고 오용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위해 권력을 부당하게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실패자는 자기에게 주어진 힘으로 무엇을 얻을까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러나 지도자는 자신에게 있은 힘으로 무엇을 줄 것인가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그 일을 같이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합니까? 사랑하는 것입니다. 동정하는 것입니다. 배려하는 것입니다. 부당하게 착취하지 않는 것입니다. 관대함을 배푸는 것입니다. 17절 18절을 보십시오.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열흘에 한번씩 잔치를 베풀어 줍니다. 그러면서도 총독의 녹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18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백성의 부역이 중함이니라"입니다. 백성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지도자였습니다. 힘을 무자비하게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부당하게 착취하지 않습니다. 권력을 남용하는 사람은 결코 사람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힘이 주어지면 사랑하는데 사용하여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백성들을 부당하게 착취당함을 알고 어떻게 합니까?(5:6) 분노합니다. 백성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내 기분에 내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분노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만 힘이 주어지면 자기 기분에 따라 분노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힘이 있습니까? 사람을 사랑하는데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알량한 힘으로 사람 죽이고 스트레스 받게 만들고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데 사용해서는 안되겠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힘으로 얼마나 백성들을 사랑하였습니까? 자신이 저주를 받는다 할 지라도 골육 친척 형제를 구원해 달라고 합니다. 모세는 자신에게 주어진 힘으로 얼마나 백성을 사랑하였습니까?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는다해도 백성을 살려달라고 간구합니다. 이 모습이 우리 의 모습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한 평생 멋지게 힘을 사랑으로 사용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건강의 힘, 지식의 힘, 물질의 힘, 신앙의 힘, 권력의 힘, 마음의 힘을 주었습니다.

3. 주어진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며 충성하는데 힘을 사용하여야 합니다.(16, 19)

사람이 조금만 힘이 생기면 그 권력을 남용하고 오용하여 자기 특권을 이용하여 부를 축적하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기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힘을 주신 분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힘을 본래의 목적에 사용하지 않고 다른데 사용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자신이 왜 총독이 되었는지를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준 사명을 잊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고 하나님의 백성 유다 공동체를 신앙 공동체로 회복하는 것이라는 것을 망각하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이일에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이전 총독들이 어떻게 했든 상관없이 “도리어 이 성 역사에 힘을 다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힘을 땅 사는데 사용하지 않았다는 고백합니다. 자신의 측근들도 모여서 이 일에 충성을 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는 궁중에서 편안하게 살수도 있었지만 오직 민족의 어려움을 보고 민족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고국에 돌아 와 성벽 건축에 최선을 다해 충성하였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는 오직 그일 밖에 없었습니다. 1장 3절을 보십시오. 이 일 때문에 수색이 가득찼습니다.(2:2) 그래서 그 일을 하기 위해 전심을 다했습니다. 왕을 설득하였습니다.(2장) 반대하는 자들의 유혹을 뿌리쳤습니다.(2:10, 4:1,7,8) 방관자들에게 동조하지 않았습니다.(3:5) 흉년으로 백성들이 원망합니다.(5:1)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힘으로 백성을 끝없이 사랑합니다. 조정하며(1-13) 이 일을 완공할 수 있도록 충성을 다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이 일에 매달려 충성을 다합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 4:2)”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 (시 101:6)”
예수님께서 비유로 1달란트 2달란트 다섯 달란트 맡은 자를 이야기했습니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것을 가지고 충성을 다한 2달란트 5달란트 맡은 자에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 25:21)”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언젠가는 우리에게 주신 힘에 대하여 평가받을 날이 올 것입니다. 영원한 하늘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에 가서 진정한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그 때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닙니다. 충성이냐 불충성이냐가 문제입니다. 우리는 작은 일에도 충성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힘이 주어지면 그 힘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힘으로 사람을 사랑하며 그 힘으로 일에 대하여 충성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힘으로 하나님이 맡겨 주신 것에 충성하는 것이야 말로 힘을 가치 있게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느헤미야는 이제 마지막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19절을 보십시오.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생각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충성한 후에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건강의 힘이 주어졌을 때, 재물의 힘이 주어졌을 때, 지식의 힘이 주어졌을 때, 권력의 힘이 주어졌을 때 시간의 힘이 주어졌을 때, 아무런 쓸모없는 것으로 변하기 전에 주님을 위해 충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힘을 잘못 사용하다가 가을 낙엽처럼 떨어지는 사람들을 보고 있습니다. 그들만 비난할 것이 아닙니다. 역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교훈의 장입니다. 우리 자신들은 지금 크던 작던 주어진 힘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세상은 홀로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세포가 춤을 추어야 몸이 춤을 추고 인생이 춤을 춥니다. 우리에게는 부모로서 직분자로서 직장인으로 이미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힘이 주어져 있습니다. 남용하고 오용하고 사유화하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힘을 (1)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사용해야 합니다.(14-15) (2) 사랑으로 사용해야 합니다(16-18) (3) 하나님께서 맡겨 준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16,19) 그리고 느헤미야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생각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느 5:19)” 아멘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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