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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수의 강 흐르다! (겔 47: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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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에스겔 47장 1절~12절
제  목 : 생수의 강 흐르다! 

1. 강의 발원지에 가 보셨습니까?

몇개월 전 강원도 영월의 수해 지역을 돌아보던 중, 지하수가 펑펑 솟아나오는 큰 샘을 보았습니다. 그 샘에서는 엄청난 양의 물이 솟아 나오고 있었는데요. 그 물은 한 여름에도 18도를 넘지 않고, 겨울에도 10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샘이라고 했습니다.

그 가까이 있는 강원도 태백시는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이름도 있지만, 우리 국토에서 아주 의미 깊은 동네입니다. 의미가 깊다는 것은 바로 이 태백에서 우리나라의 젖줄인 낙동강과 한강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태백시 한가운데 ‘황지못’이라는 연못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 연못과 다른 것이 하나도 없지만, 여기서 쉴 새 없이 솟아 나오는 물은 남해로 흘러 낙동강을 이룹니다. 525 Km의 낙동강보다 조금 짧은 한강 역시 태백에 있는 ‘검룡소’라는 자그마한 웅덩이에서 시작됩니다. 여기서 솟아나는 물이 정선의 골지천, 조양강, 영월의 동강, 단양, 충주, 여주로 흘러 경기도 양수리에서 북한강과 합쳐진 뒤 마지막에는 임진강과 섞여 서해로 흘러 들어갑니다.

황지못이나 검룡소는 보잘것없은 작은 연못에 불과하지만, 사시사철 쉬지 않고 솟아나는 물은 우리 국토와 국민들의 생명줄이 되고 있습니다. 만약 황지못과 검룡소의 물이 말라버린다면, 낙동강과 한강은 더 이상 강이 되지 못할 것이고, 그 주변의 농토와 산업시설과 대도시들도 생명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역시 강과 그 시작, 그리고 그 강으로 말미암아 주변에 일어나는 변화에 관한 말씀입니다.

2. 성전에서 솟아난 물이 큰 강을 이루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주신 환상입니다.

남의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 한숨과 눈물 가운데 살아가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장차 되어질 일’을 미리 계시해 주신 것은 기다리고 기다리던 희소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곧 이스라엘에 일어날 일들을 환상으로 보여주셨는데요. 그 구체적인 것들이 에스겔 37장 이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7장에는 골짜기에서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환상을 보여주셨니다. 40장에서는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이스라엘 땅으로 인도하여 성과 성전을 보여주시고, 구체적으로 그것을 척량하게 해 줍니다. 그리고 43, 44장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그 성전의 동편 문을 통해서 성전으로 들어가서 성전에 가득하게 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환상들은 이스라엘의 회복, 예루살렘의 회복, 그리고 성전 및 예배의 회복 관련된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고, 그들을 이스라엘로 다시 돌아가게 하셔서, 거기서 새로운 성을 쌓고 새로운 성전을 짓게 될 것을 미리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계시 이후에 주어졌다는 것, 즉 그 순서가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고, 예루살렘을 회복시키실 것이며, 거기에 성전이 다시 세워질 것이며, 그 성전에 임재하실 것을 보여주신 후, 그 다음에 벌어질 일을 보여주는 것이 오늘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1) 성전에서 시작된 강의 깊이와 폭

오늘 본문 1절은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내리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44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성전 동편 문을 통해 성전에 들어가셨고, 그리고 동편 문은 하나님이 들어오신 문이므로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도록 닫아두라고 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들어가셔서 임재하신 바로 성전 문지방 밑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에스겔이 보고 있습니다.

성전은 동쪽을 향하여 있었고, 오늘 본문이 말하는 “동편 문”은 성전의 지성소로 들어가는 문을 말합니다. 이 문의 문지방, 혹 문턱에서 물이 흘러나왔는데, 성소가 성전 뜰보다 약간 높게 있기 때문에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물은 자연스럽게 동으로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동쪽으로 흐르던 물은 방향을 바꾸어 남쪽에 있는 번제단을 경유, 다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성전의 바깥뜰을 지난 후, 성전 주변 벽 아래로 스며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물은 바깥뜰을 지나고, 다시 길과 동쪽 벽 아래를 지나 들판으로 흘러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이 거하신 성전에서 시작되어 들판으로 흐르던 물은 엄청나게 불어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에스겔을 인도해서 성전 벽에서부터 정면인 동쪽으로, 즉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일천 척, 약 500m 정도의 거리를 간 지점에서 물의 깊이를 척량하게 했습니다. 성전 문지방에서 아주 적은 양으로 나오던 물은 약 500여 미터 흐른 지점에서 제법 발목에 찰 정도가 되어 있었습니다. 다시 거기서 일천 척을 더 가서 물의 깊이를 척량했더니, 물은 에스겔의 무릎까지 차올랐습니다. 또 다시 거기서부터 일천 척을 더 가서 물의 깊이를 척량했더니 그때 물의 깊이는 허리에 차올랐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지점으로부터 다시 일천 척을 더 가게 하여 척량하라고 했습니다. 네 번째 척량을 했을 때는 헤엄을 쳐야 건너지 그냥은 건널 수 없는 깊은 강이 되어 있었습니다. 여름철 집중호우로 불어난 강물처럼 성전에서 시작된 강물은 그렇게 엄청난 양으로 증가하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성전에서부터 시작된 물은 불과 2 Km 지점에 가서는 아주 깊고 큰 강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측정하는 것을 포기해버렸습니다.

2) 성전에서 시작된 강 주변의 변화

성전에서 4천척 거리만큼 갔던 에스겔은 다시 강물을 따라 성전으로 되돌아왔습니다(6).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보니, 물이 흐르는 강의 양쪽 가에 아주 많은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무의 종류도 다양했고, 그리고 각 나무들마다 그 잎이 아주 무성하게 우거진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물이 동방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얻고 있었습니다(8). 여기서 말하는 ‘아라바’는 요단강과 사해 근처의 광야 지역을 말합니다. 즉 성전에서 시작된 강물이 메마른 아라바 광야를 통과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아무리 매마른 사막일지라도 강이 흐르면 그곳은 더 이상 사막이 아닙니다. 사시사철 강물이 흐르면 생태계과 주변 환경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사막이 옥토가 되는 것이죠.

그리고 “바다에 이르리니” 라고 하는데, 이 바다는 사해를 가리킵니다. 사해는 말 그대로 죽음의 바다입니다. 이 사해는 일반적인 바다보다도 소금 농도가 훨씬 짙어서 아무 생명체도 살지 못하는 죽음의 호수였습니다. 그리고 그 주변 역시 생명체라고는 거의 없는 죽음의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성전에서 흘러내린 물이 큰 강물을 이루어서 아라바 광야를 지나 사해로 흘러 들어가자, 죽음의 바다인 사해가 물고기가 살 수 있는 생명의 바다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변은 옥토로 변했습니다.

그래서 9절은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라고 말합니다. 10절에는 물 한 방울 구하기 힘든 황무지에 이 강물이 흘러, 그 강물에 다양한 물고기들, 마치 지중해 바다의 물고기같이 심히 많은 종류의 물고기가 살게 된다는 것과, 이로 인해 황무지에 살던 사람들이 그곳에서 그물을 던지는 어부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강변의 나무들은 각종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다양한 종류의 유실수들이었습니다. 그 잎은 시들지 아니하고 무성하며, 과일이 끊이지 않고 열려, 달마다 새로운 실과를 맺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과일만이 아니라 그 과일 나무의 잎사귀까지도 약재로 사용될 정도로 좋은 것들이었습니다.

3. 세상으로, 사람들 속으로 흐르는 복음의 강!

1) 세상에 흐르는 복음의 강

이상이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주신 환상의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이 환상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물론 우선적인 의미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회복된 이스라엘이 이와 같이 여호와로 인하여 놀랍고도 풍성한 축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무엇을 뜻하느냐?’와 과련된 것입니다.

이 물에 대한 많은 해석이 있지만, 가장 정확한 이론은 이 물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신 구원 역사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어느 누구도 들어갈 수는 거룩한 성소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 물이 온 세상을 살리는 것이라고 한다면, 사람과 세상을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역사 외에는 달리 답이 없습니다.

물이 없으면 세상 모든 것은 말라 버립니다. 어떤 생명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동물은 물론이고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사람과 온 세상에 참 생명을 주는 것으로, 이 일은 하나님의 일이며, 예수님의 십자가로 이뤄진 일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만이 세상의 죽은 자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하고 과학이 발달하여도, 그것이 인간에게 편리함을 줄지는 몰라도 참된 생명은 주지 못합니다. 구원은 오직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나옵니다. 이와같이 성소에서 흘러나와 온 세상을 살리는 강물은 장차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실 복음을 통한 위대한 역사를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정말 별볼일 없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복받아 크게 된 것을 많이 보지 않습니까? 한 가정이 복을 받고, 한 사회나 한 국가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불모지와 같던 그들이 옥토로 변하는 것을 얼마나 많이 보았습니까?

올초에도 한 번 소개를 해드렸습니다만, 최근 중국정부가 차세대 지도자들을 모아놓고서는 중국이 발전하기 위해서 택할 방법은 ‘한국의 새마을운동과 한국의 개신교 정책’이라고 입을 모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중국의 현대화를 위해서 새마을운동을 모델로 삼고, 그 운동의 정신적 바탕으로 한국 개신교를 삼아야 한다는 것이죠. 이렇게 새마을운동과 개신교가 짝을 이룬 이유가 있습니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즉 새마을운동은 새벽기도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 운동이기 때문이죠. 이와 같이 우리 주님의 복음은 영원한 생명을 줄 뿐만 아니라 죽음의 땅을 나무와 과일과 사람들로 붐비는 생명의 땅이 되게 하고, 죽음의 바다를 물고기들이 펄펄 뛰는 생명의 바다로 만듭니다.

지금도 많은 교회들과 헌신된 주님의 사람들이 이러한 생명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많은 선교사들은 자신의 전 생명을 바쳐 가면서 지구촌의 오지에서 거기에 사는 사람들과 그 땅을 살리는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이 생명의 복음의 일군이 되어서 가정과 이웃과 사회와 국가를 살리는 생명의 역사에 헌신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입니다. 온 세상이 우리 주님으로부터 흘러나온 생명으로 충만하고 아름다워지는 일에 부름을 받은 것은 저와 여러분이 받은 축복 가운데 가장 큰 것입니다. 마치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가에 숲이 무성해지고 어부들이 고기를 잡는 기적을 보는 에스겔처럼 말입니다.

2) 성도 속에 흐르는 강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시작된 복음의 강, 생명의 강, 은혜의 강이 죽음의 땅을 생명의 땅으로 바꾸어 온 세상이 생기가 넘치는 곳으로 만들었다는 말씀은 성도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향한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도 여러분들 속에도 복음의 강, 생명의 강, 성령의 강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7장 38절에서 예수님은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 자, 그 속에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강이 흐른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생수의 근원이신 우리 주님께서 내시는 강물입니다! 에스겔의 강이 광야를 지나 사해를 생명바다로 바꾸었듯이 이 강물은 오늘 성도들 속에서도 그와 같은 역사를 일으킨다는 사실입니다.

이전에 영국 런던의 테임즈 강변에 재판소가 있는데, 그 재판소의 뜰에는 포도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포도나무에서 열리는 포도는 영국에서 가장 맛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식물학자들이 이 포도나무를 번식시켜 널리 보급하기 위하여 조사를 해 보니 다른 포도나무와 다른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학자들은 어떻게 하여 이 포도나무가 다른 포도나무보다 맛있는 열매를 맺는지 자세히 연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 포도나무의 뿌리가 강 밑바닥에까지 뻗어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뿌리가 강 밑바닥까지 뻗어 있으니 웬만한 가뭄에도 충분한 수분을 빨아들일 수 있었고, 다른 곳보다 더 많은 영양을 강바닥에서 섭취할 수 있어서 영국에서 가장 맛있는 포도를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강에 그 뿌리를 내린 식물도 이와 같이 풍성하고 맛있는 과일을 낸다면, 생수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모신 성도의 삶을 어떠할까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속에 이와 같이 우리 주님으로 말미암는 생명의 강, 은혜의 강, 축복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것을 믿으십니까?

그러나 만약 지금 여러분의 삶이 매말라 있고, 활기도 없으며, 여러분의 주변 상황도 모두 모두 엉망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샘솟게 하신 강물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분 자신이 뭔가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은혜의 강을 가로 막고 있는 그 무엇이 반드시 있기 때문입니다. 강은 강인데 강바닥이 물이 잘 빠지는 돌 뿐이라 물을 흡수하여 강물이 흐르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의 돌짝밭 비유와 같은 것입니다. 즉 주님의 복음을 받았으나 세상살이와 환난이나 여러 가지 어려움 때문에 말씀을 붙들지 못하고 놓쳐버렸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죄, 불순종, 성령이 하라고 하시는 것을 무시하거나 거절함으로서 강물이 말라버린 경우들이 있을 것입니다.

미국 볼티모어에 있는 명문 의대인 존 홉킨스 대학의 외과 의사요 교수로서 독실한 신앙을 가지고 전도에 열심이었던 켈리 박사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켈리 박사는 언제든지 그의 양복에다 아름다운 장미꽃을 꽂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 분이 꽂고 다니는 장미는 시들지를 않았고 금방 꺾어서 꽂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한 학생이 물었습니다. “선생님의 꽃은 언제나 시들지 않는데 무슨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그랬더니 그 교수는 미소를 지으면서 양복 앞섶을 보여주면서 그 안에 넣고 다니는 물병을 보여주었습니다. 꽃이 물에 꽂혀 있기 때문에 시들지 아니하고 언제나 청청하게 보였던 것입니다.
켈리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다니면서 언제나 신선하고 아름답고, 항상 향기를 나타내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우리 생활의 뿌리가 이 장미꽃과 같이 그리스도의 생수 속에 담겨져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들의 삶과 신앙의 뿌리가 주님께 닿아 있다면, 말씀과 기도와 예배에 닿아 있다면, 여러분들의 삶도 이와 같이 언제나 새롭고, 싱싱하며, 언제나 향기 나고, 언제나 풍성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정말 주님께서 여러분 속에 흐르게 하신 생명의 강물이 오늘 본문에 기록된 것보다 더 놀랍도록 여러분의 삶을 복되게 하기를 소원합니다.

4. 지금도 흐르는 생명의 강!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은 거칠고 척박한 황무지를 옥토로 변화시켰습니다. 그곳에 풍성한 과일들과 약초들이 무성해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물은 그 강에 온갖 물고기들이 뛰어놀게 만들었으며, 죽음의 바다를 생명의 바다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이 세상에 일어난 일이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강이 세상으로 흘러 세상을 옥토로 변화시키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생명의 강이 여러분들의 심령 속에서도 크고 강한 물줄기가 되어 흘러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강이 생명으로 넘치고, 그 주변이 옥토가 되고, 강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역사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듯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죠. 어떻습니까? 여러분 속에 이러한 강을 가지고 계십니까? 여러분 속으로 위대한 생명의 강, 우리 주님의 복음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이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여러분 속에 생명의 강이 흘러 여러분의 삶을 풍성하게 해야, 그것으로 여러분의 주변과 세상을 축복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척량할 수 없는 크고 놀라운 강물이 흘러 여러분의 삶이 복되고, 여러분의 가정과 일터가 복되며, 그것으로 온 세상을 복되게 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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