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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 (시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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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시편 23편 1절, 2절
제  목 :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

1. 시편 23편은 이상인가, 현실인가?

시편 23편은 성경에서 가장 아름답고 또한 널리 알려진 말씀 중 하나입니다. 불신자들까지도 이 말씀을 좋아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너 나 할 것 없이 23편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내용이 너무나 뛰어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히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 원수의 목전에서 베푸시는 상, 기름을 머리에 바르심, 내 잔이 넘치나이다 …”등과 같은 아름다운 시어(詩語)들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시편 23편이 정말 좋은 이유는 이것이 그냥 우리가 꿈꾸는 이상이나, 문학적인 표현으로만 끝나지 않는데 있습니다. 즉 시편 23편이 좋은 이유는 내용 그대로가 곧 성도의 현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 원수의 목전에서 베푸시는 상, 기름을 머리에 바르심, 내 잔이 넘치나이다”는 단순한 시적인 표현이 아니라, 성도의 삶의 실제적인 모습입니다. 그래서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모든 성도들이 이것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시편 23편을 좋아하는 이유 역시 실제로 경험해 보셨기 때문입니까? 오늘은 바로 이 질문과 관련하여 2절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2.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이 말씀은 여호와의 양, 즉 하나님의 돌보심과 인도 속에 살아가는 성도의 삶은 푸른 초장에 누워있고, 쉴만한 물가에 있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는 무슨 뜻일까요? 어느 이스라엘 사람이 성지순례 중이던 우리나라 사람을 향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당신들은 절대로 우리 이스라엘 사람처럼 성경을 읽을 수 없다.” 이 말은 성경에 나오는 여러 이야기들과 사건들을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이해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성경의 지리와 형편과 상황을 제대로 모르면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것이 주님의 말씀이자, 특히 오늘 본문의 “푸른 초장 … 쉴만한 물가” 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어떤 상황에서 나온 것이며, 이것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거진 숲이나 풀이 무성한 들판이 거의 없는 유대의 동부 광야지대의 낮 시간의 더위는 우리의 7,8월처럼 가히 살인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기는 열기로 인해 숨 막힐 듯하고, 모든 것은 불에 타들어가듯 시들어 갑니다. 이것은 양들에게는 정말 치명적인데요. 그들이 뜯던 풀은 금방 시들어버리고, 주위에는 피할 그늘이 없고, 주변에 있는 바위에 올라갔다가는 너무나 뜨거워서 깜짝 놀라 몸부림을 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양의 독특한 습성은 이런 상황에서 자신들을 더 어렵게 만듭니다. 양은 배가 고프면 눕지 않습니다. 어떤 장사도 배고픈 양을 억지로 눕게 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또한 양들은 불안하고 두려우면 눕지 않습니다. 주위에 사나운 짐승들이 있거나, 목자가 눈에 띄지 않거나, 뭔가 불안한 기미가 느껴지면 절대로 눕지 않는 것이지요.

이럴 때, 양이 스스로 그늘진 곳이나 물이 있는 곳을 찾아 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양들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불볕더위 속에서, 제대로 먹지도, 물을 마시지도 못하고, 피하거나 숨는 것조차 못하는 양들, 얼마나 불쌍하고 위험합니까?

이럴 때, 제일 바쁜 사람은 목자입니다. 목자는 주변에 몇 그루의 나무가 이룬 작은 숲, 큰 바위 밑의 작은 그늘, 해가 가려진 골짜기나 계곡을 찾아, 그곳으로 양떼를 이끌고 갑니다. 그곳에서 자기 양들을 풀을 뜯게 하고, 물을 마시게 합니다. 만약 목자가 피할 곳을 찾아 데려가지 않으면, 목초를 찾아주지 못하면, 시냇가로 데리고 가지 못하면, 양떼들을 금방 화를 입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목자가 양떼를 그늘지고, 맛있고 영양가 있는 풀이 있으며, 시냇물이 흐르는 곳으로 데려다 놓으면, 그때서야 양들은 마음을 놓고 풀을 실컷 먹은 후, 쉬거나 잠을 잔다고 합니다. 이때 그 예민하던 양들은 아무리 새들이 자기 등에 앉아 조잘대고, 벌들이 주위에서 윙윙 거려도 신경을 쓰지 않고 잠을 잔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는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나온 말입니다. “푸른 초장”은 맛있는 풀들이 넉넉하게 있으며, 안전하고 편안하고 자유롭게 먹을뿐더러, 또 푹신하게 누울 수 있는 곳입니다. “쉴만한 물가”는 졸졸졸 흘러가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시원한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곳입니다. 수평면을 흐르는 고요하고 맑은 물, 거기에는 산이 드리워져 있으며, 바닥에 있는 작은 돌까지도 뚜렷하게 보이고, 그 곁에는 나무와 풀들이 푸르고 무성한 곳. 바로 이런 곳이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가 흔할까요? 연간 1300㎜의 강수량과 4계절이 가져다주는 이 비옥한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흔하게 여겨질지 몰라도, 이스라엘에서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는 드문 것이고, 따라서 이것은 최상의 표현이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목자되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양은 이와 같이 최상의 상태에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양들은 조금 전까지 어디 있었습니까? 그리고 지금 있는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에서 조금만 밖으로 나가면, 그곳은 어떤 곳입니까? 그늘이 없어 뜨거운 태양빛을 그대로 받는 자리, 물이 없어 갈증이 나는 자리, 그리고 위험하고 어려운 자리였습니다. 목자가 그 견디기 힘든 상황을 피하게 해 주었고, 가장 풍성하고 안전하고 편한 곳으로 데리고 와 주었습니다. 즉 성도는 하나님에 의해 지금의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오게 된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3.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가 의미하는 것은?

그렇다면 오늘 본문이 말하는 “푸른 초장 … 쉴만한 물가”가 성도 여러분들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떤 분들은 “푸른 초장 … 쉴만한 물가”를 마치 “열심히 일한 당신은 떠나라”고 유혹하는 광고 문구처럼, 성도가 열심히 살다가 잠시 짬을 내어 쉬는 장소나 시간이나 상황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주일이 바로 그런 시간이요, 교회와 예배가 바로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 원어로 “푸른 초장”에 눕는 것과, “쉴만한 물가”에서 물을 마시는 것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즉 푸른 초장에 눕고 잔잔한 시냇가에서 지내는 것은 어쩌다 한 번 있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양된 성도의 일상적인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또 어떤 분들은 “푸른 초장 … 쉴만한 물가”를 단지 영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현실은 여전히 어렵고 힘들지만, 영적으로나마 이러한 것을 맛보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비록 생활은 어렵고 육신은 고달프지만 마음만은 편하다는 말과 같은 뜻이라고 것이죠.
그러나 사람의 영혼과 육신은 따로 있지 않습니다.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에 있다는 것은 영혼이 만족스러울 뿐 아니라, 우리의 육신 역시 충분히 먹고, 흡족히 마시고, 거기에서 안정과 평안과 위로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떻게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육신이 세상에서 수고하고 배고프고 목마르게 살도록 버려두시고서 “나는 너의 목자다” “네가 있는 곳은 푸른 초장이요 쉴만한 물가이다”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아주 오래 전에 Tom Jones라는 미국 가수가 부른 “Green Green Grass Of Home”이라는 노래가 있었습니다.

“The old home town looks the same. As I step down from the train. And there to meet me is my Mama and Papa. And down the road I look and there runs Mary, Hair of gold and lips like cherries. It's good to touch the green green grass of home ….”

우리말로 옮겨 보면, “열차에서 내려서 보니 고향 마을의 모습은 예전 그대로인 듯 하구나. 그곳엔 나를 마중 나오신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시고, 길 아래쪽에선 금발 머리와 앵두빛 입술의 메리가 뛰어오고 있네. 고향의 푸른 잔디의 느낌은 이렇게 좋은 걸….”이라는 뜻입니다.

이 노래를 조영남씨가 “고향의 푸른 잔디”라는 가사로 번안하여 불렀습니다. “꿈속에 그려보는 머나먼 고향아/ 옛 모습 변치 않고 지금도 잘 있느냐/ 사랑하는 부모형제 어릴 때 같이 놀던 친구/ 푸르고 푸른 고향의 잔디야 ….”

그런데 여러분 이 노래의 결말이 뭔지 아십니까? 이게 현실이 아니고 꿈이라는 겁니다. 게다가 꿈에서 깨어난 그의 현실은 교도소 안이고, 더 심한 것은 그가 사형을 앞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득 정신이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은 4개의 회색 담장뿐. 그제서야 나는 내가 단지 꿈을 꾸고 있었음을 깨달았다네. 왜냐하면 그곳엔 간수와 슬픈 얼굴의 신부가 서 있었기 때문이라오….” 사형을 집행하기 전 간수와 캐톨릭 신부가 그의 곁에 서 있는 것이 그의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이 노래를 소개하는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시편 23편은 이 노래처럼, 꿈에서나 될지, 거저 이상향으로 소원만 하다 마는 차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푸른 초장 … 쉴만한 물가”는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는 성도의 삶의 현재적인 형편을 노래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고 할 때, 이 말은 여러분의 영혼뿐 아니라 육신까지도 인도하신다는 말입니다.

일본의 관서학원(關西學院)의 이와하시 다께오(岩橋武夫)라는 교수가 있었습니다. 이 분은 와세다 대학 이공학부를 다니던 중 눈에 문제가 생겨 완전한 시각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장애인이 된 후,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이 분이 어렵게 대학을 졸업하자, 한 유명 인사의 학비 지원 약속을 믿고 영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배를 타고 영국으로 가던 다께오씨는 선상에서 전보를 한 장 받았는데요, 그것은 지원해 주기로 했던 그 분이 사정상 학비를 지원해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분만 믿고 배를 탔던 다께오씨 부부는 그 밤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고, 밤을 새며 기도만 했습니다. 영국에 도착해서 스코트랜드의 에딘버러 대학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학비 지원도 없는 장애인 유학생이 낯선 영국 땅에서 공부하는 것은 고사하고 살아가는 것 역시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막막했겠습니까? 그런데 그곳에 도착한 그날, 이들 부부는 정말 놀라운 일을 듣게 됩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익명의 독지가가 이들 부부를 지원하기로 했다면서 바로 그 자리에서 장학금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분이 지원해 주겠다는 장학금이 일본의 한 유력인사가 지원해 주겠다고 했던 것과 똑 같은 액수였습니다. 이 일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다께오 교수는 ‘하나님께서 오늘도 살아 계셔서 자기 양들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가는 곳마다 간증했으며, 우리나라에 와서도 같은 간증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영국 고아들의 아버지, George Müller는 어떻습니까? 수중에 돈 한 푼 없는 그는 도대체 무엇으로 수 만 명의 고아들을 먹이고 입혔을까요? 그는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여, 자신만이 아니라 고아들을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성도들과, 세계에 흩어진 선교사들은 하나님께서 육신적인 일로, 물질적인 일로, 대인관계를 통하여, 구체적인 사건으로, 자신들을 인도하심을 경험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 역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에 있다는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목자 되신 하나님이 아니었다면, 지금 여러분은 어디에 있을까요? 여러분의 과거의 삶의 자리는 어떤 곳이었습니까? 그늘이 없어 뜨거운 태양빛을 그대로 받으며 그 열기에 헉헉 거리던 자리, 물이 없어 갈증으로 몸부림치던 자리, 그리고 위험한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목자가 이끄셔서 뜨거운 땡볕을 피할 수 있는 곳, 먹고도 남을 양식이 있는 곳, 맑고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곳, 눈만 들면 목자가 보이는 곳, 안전하고 평안한 곳에 오게 된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계신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뜨거운 땡볕이, 태양에 말라버린 풀들이, 마실 물이 없고 사나운 짐승들의 위협을 받는 자리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이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에 있다”는 것은, 만족과 안전과 풍요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요, 그 만족은 육신적인 만족, 물질적인 만족,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조건들이 채워지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현실입니다.

4. 여러분의 삶의 자리가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가 되어야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목자이시고 여러분은 하나님의 양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있는 곳은 두 말할 여지 없이 물이 흐르는 푸른 초장입니다. 이것은 사실이고, 실제로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경험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정말 여러분의 삶의 자리가 푸른 초장이요 잔잔한 시냇물가인지, 정말 그러한지를 확인해 보십시오. 만약 여러분은 홀로 거센 모래바람이 이는 사막에 있거나, 풍랑이 이는 바다에 있다고 한다면, 주위에 사나운 짐승들로 인하여 불안하고 두려운 자리에 있다면, 거기는 여러분이 있을 곳이 아닙니다.

만약 지금 여러분의 삶의 자리가 어렵고 힘들다면, “주님, 주님께서 정말 저의 목자시라면 저를 푸른 초장, 잔잔한 물가로 인도해 주시옵소서. 지금 제가 있는 곳은 저의 처지는 먹을 것이 없는 사막과 같고, 거기는 물줄기 하나 찾아볼 수 없는 곳입니다.” 라고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말씀대로 되게 해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이 말씀대로 되어야 합니다. 시편 23편 2절은 기록된 말씀으로 끝나지 않고, 바로 여러분의 현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이끌어 주실 것을 기도하시고, 하나님은 여러분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여러분의 삶이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들 어렵고 힘든 세상이지만, 여러분만은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의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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