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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위해 지음 받았다 (엡 2: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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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위해 지음 받았다.
본  문 : 에베소서 2:6-10

다 같이 따라해 보겠습니다.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나는 우연도 아니고 제품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목적을 가지고 만드신 걸작품이다!” 옆 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당신을 보니 하나님을 본 것 같습니다. 당신을 보니 예수님을 본 것 같습니다.”  그 인사는 빈말로 하는 인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를 닮았습니까?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누구를 닮았습니까?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모습 속에서는 예수님의 모습과 하나님의 모습이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사에서 “당신을 보니까 하나님을 만난 것 같습니다. 당신의 모습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런 인사가 정상적인 인사인줄로 믿고 이와 같은 좋은 인사들을 많이 개발해서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당신을 보니 하나님을 본 것 같습니다. 라고 인사를 하니까 기분이 좋으십니까? 늘 이런 인사를 해서 다른 사람도 “아, 나도 예수님을 닮아야되겠구나!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되겠구나!” 하는 마음의 자극을 주어서 날마다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목적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목적 대문에 우리가 이 땅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목적 주간에 암송할 말씀을 다 같이 한번 외워보겠습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이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다섯 가지 목적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첫 번째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창조되었다!” 두 번째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다!” 세 번째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다!” 네 번째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지음 받았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습니까?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까?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가족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습니까? 훈련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사용하기 위해서 지으셨습니까? 사역, 섬기기 위해서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이제 앞으로 사역, 사명 주간으로 한주간이 남았습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렇게 다섯 가지의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첫 번째 목적은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창조되었다고 했습니다. 예배를 잘 드려서 하나님을 미소 짓게 하고 기쁘시게 하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평생에서 예배생활은 실패하지 아니하리라!” 고 결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앙생활의 생명은 예배에 있습니다. 예배를 잘 드려야 신앙이 살고 신앙이 살아야 우리의 삶이 성공적인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예배생활에 있어서 되는대로 하지 말고 비가 오나 바람이부나 눈이오나 벼락이치나 언제든지 하나님 앞에 예배에 생명을 걸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어떤 마음이 드셨습니까?
몇주전에 우리가 예배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비를 통해 예배시험을 보는 날입니다. “예배는 절대로 빠져서는 안된다! 내 평생 예배는 절대로 빠지지 아니하리라!” 그렇게 결심하고 배웠는데 오늘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이 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예배드리러 나가는지 아니면 포기하고 나가지 않는지 시험을 친 것입니다. 평상시에 확인해 본 바로는 비가 오는 주일예배는 100명 이상 예배를 드리지 않는 것으로 확인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들은 시험을 잘 쳤습니다. 합격했습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 “내 평생에 있어서 예배에 빠지지 아니하리라!” 굳게 다짐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 어떠한 자세로 드려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이렇게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것처럼 우리는 신앙생활을 할 때 우리의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서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두 번째 목적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습니다.” 암송구절을 외워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하나님의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가족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 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여러 명의 전직 대통령들이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다소 부끄러운 대통령도 있지만, 매우 존경을 받는 대통령도 있습니다. 존경을 받는 대통령의 자녀라면 당연히 떳떳하고 당당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삶에서 보장받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자녀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이보다 더 크고 놀라운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가족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최고의 축복으로 생각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혈통을 타고나야 하는 것처럼 우리는 예수님의 보배롭고 보배로운 생명을 지불하고 그 보혈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서로 교제하고 사랑하고 격려하고 도와주고 위로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하며,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 우리의 마음을 두고 생활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목적을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다!” 성경말씀을 외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우리 마음속에 예수님을 품고 예수님처럼 살아가기 위해서 노력하면 우리도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의 성품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하나님도 가지고 계시지만 우리에게도 그 성품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주신 성품은 첫 번째로 “거룩하신 하나님!” 두 번째로 “공의로우신 하나님!”  세 번째로 “사랑의 하나님!” 네 번째로 “진실하신 하나님!”  다섯 번째로 “선하신 하나님!” 이렇게 다섯 가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집에서 자녀들과 손자들에게 가르쳐주시면서 반복해서 복습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섯 가지의 성품을 가진 하나님께서 자신의 성품을 우리에게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도 거룩하고, 공의롭고, 사랑하고, 진실하고, 선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범죄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성품들을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형상과 똑같은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예수님을 닮아 가면 하나님을 닮게 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쉽게 이야기 한다면 온유하시고, 겸손하시고, 섬기시며,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성품으로 우리에게는 더 가깝고 설명하기 쉽게 와 닿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것이 예수님을 닮는 것이고, 이 예수님을 닮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을 닮아서 작은 예수로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 힘으로는 예수님을 닮아갈 수 없습니다. 내 힘으로는 나의 작은 습관 하나도 고칠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그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인해서 예수님의 성품을 하나씩 하나씩 닮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서 내가 노력하면 예수님의 모습을 하나씩 하나씩 닮아가게 될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닮아갈 수 있는 도구를 주셨습니다. 그 도구는 말씀입니다. 온 천지만물이 말씀으로 창조되어졌습니다. 이런 능력 있는 말씀이 우리의 마음속에 와 닿아서 우리가 말씀대로 살게 되면 말씀이 우리를 예수님의 성품으로 바꿔 주실 줄 믿습니다. 이렇게 능력 있는 말씀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자녀들이 부모님의 말을 잘 듣지 않으면 “말로 할 때 들어! 좋은 말로 타이를 때 들어!”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좋은 말로 타이를 때 듣지 않으면 매를 맞는다는 말 아닙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변화시켜 나가시는데 말씀으로 안되면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주십니다.  그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시킬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실 때 변화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난을 통해서 변화되지 말고 말씀으로 변화될 수 있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험을 주셔서 예수님의 성품을 닮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치르는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기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을 올려놓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시험을 통해서 우리를 성장시킬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시험은 인내를 통해서 이길 수가 있습니다. 마귀로부터 오는 유혹은 피해야 합니다. 요셉처럼 도망갈 수 있어야 합니다. 마귀가 직접 달려들 때는 대적해야 합니다. 사탄보다 더 험상궂은 얼굴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가라!” 하고 물리치면 예수님 이름 앞에 사탄은 물러가게 됩니다. 이떤 준비를 하고 물리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물리쳐야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가 무엇입니까? 구원의 투구, 의의 흉배, 진리의 띠, 복음의 신발, 왼손에는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오른손에는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마귀를 대적할 때 물러가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시험이 오든지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시험을 이겨야만 한 단계 성장하고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갈 수가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을 닮도록 승리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하루아침에 닮아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믿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성품과 습관이 형성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면 습관이 되어집니다. 이렇게 습관화 된 행동이 바로 성품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온유한 성품을 닮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또 양보하고 끊임없이 반복해서 양보의 연습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남편이 아내에게 양보하고, 자녀에게 양보하고, 부모에게 양보하고, 성도들끼리 양보하고, 내가 조금 더 수고하는 행동을 계속해서 할 때, 그 행동이 쌓여서 습관이 되어서 우리의 성품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섬기는 삶을 본받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섬겨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조금 더 수고하고, 내가 조금 더 손해보고, 내가 먼저 배려하는 마음을 계속해서 연습해야 합니다. 지속적인 연습으로 계속해서 쌓여지면 나도 모르게 성품이 만들어집니다. 예수님의 용서하는 성품을 닮기 위해서 우리는 늘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고 단번에 화를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화를 내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도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누군가가 내 속을 뒤집어 놓거나 운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끼어들어온다면 “그럴 수도 있다!” 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해하게 되면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내게 부당한 일을 하는 경우가 생겨도 “아, 그럴 수 있다!”  하는 마음으로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날의 우리는 빨리 빨리가 상식화되어진 문화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닮아 가는데 있어서도 빨리 닮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래서 내가 내 자신을 바라볼 때 “나는 1년 전부터 예수를 믿었는데 나는 왜 예수님의 성품을 못 따라 가는가?” 하면서 자신을 향해서 낙심할 수도 있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바라보면 “아니, 예수 믿은 지가 1년이 넘는데 아직까지도 저모양이야?” 하면서 다른 사람을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 믿어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매우 순간적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도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바로 믿어서 구원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은 시간이 걸립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기 위해서 훈련하고, 또 훈련하고,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게 될 때에 조금씩조금씩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성품을 닮은 부모와 그 밑에 있는 자녀가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예수님을 닮은 자녀를 둔 부모는 또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예수님을 닮은 남편과 아내가 함께 살면 그 가정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직장에 가면 그 사람 때문에 직장 안의 분위기는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성도들이 모인 교회라면 얼마나 행복한 교회겠습니까?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은 예수님을 닮아서 가정에서는 아름다운 가정을 회복하고, 직장에서는 직장의 분위기를 회복하고, 교회 안에서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영락의 온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 다가와서 “혹시, 당신 예수님을 믿습니까? 당신에게서는 예수님의 냄새가 납니다.” 하면서 물어볼 수 있는 작은 예수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기까지의 말씀이 지난주까지 살펴보았던 내용이었습니다.

1. 우리는 섬기기위해서 지음 받았습니다.

오늘은 네 번째 목적을 가지고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지음 받았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우리는 우연도 아니고 제품도 아니고 하나님의 위대한 걸작품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위대한 작가인 하나님께서 우리라고 하는 작품을 만들 때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만드셨습니다. 분명한 목적 중에서 네 번째의 목적이 유식한 말로는 “사역”이라고 표현하고, 일상적인 말로는 “섬김”이라는 말로 표현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다 같이 한번 따라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라고 지음 받고 구원받고 부름 받고 명령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지었느냐? 우리를 왜 구원했느냐? 왜 우리를 불렀느냐?  우리를 향한 명령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섬김”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라고 지으셨고 구원해주셨고 불러주셨고 명령 하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 말씀을 다시 한번 더 외워보겠습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다는 사실이 확실히 믿어지십니까? 이 사실을 믿어야 성경 안으로 첫 발자국을 들여놓을 수 있습니다. 만드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선한 일을 위하여서 만드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선하다는 것은 예수님의 성품과 관계된 말입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한마디로 함축한다면 “섬김”이고 “주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친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삶은 “섬김”이며 “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한일이라고 하는 말은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을 본받아서 섬기는 일을 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섬기기 위해서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음 받은 목적이고 살아가는 목적인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언제 계획되어졌습니까? “이 일은 전에 예비하사” 라고 말씀하셨듯이 만세 전에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한 그때부터 계획되어졌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서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섬기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한 그때에 다 계획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만들 때 만세전에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인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목적이 섬김이라는 것을 확신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섬겼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섬기라고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다 같이 한번 따라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에 구원해주신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섬기라고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이 말은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우리가 착하고 진실하게 살고 하나님을 섬기며 다른 사람을 구제하며 예수님을 잘 믿으며 살 것 같아서 구원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 받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착하고 진실하게 살고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며 살아가도록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관계를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착하기 때문에 택한 것이 아니라 섬기며, 착하게 살아가도록 우리를 택해주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은 모든 것이 이 원리에 해당됩니다.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은 구원해주신 하나님을 섬기고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을 구원하라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건강을 주신 것은 장애우나 병든 사람을 무시하고 죄를 지으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건강한 몸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을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을 앓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주시니까 즉시 일어나 예수님께 수종을 들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건강을 주신 이유는 건강하지 못한 사람을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물질을 주신 것은 나 혼자 잘 먹고 잘살며 사치하라고 준 것이 아닙니다. 물질적인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을 도우며 섬기라고 우리에게 물질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재능을 주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재능을 활용해 돈 많이 벌고 좋은 직장에 취직만 하라고 준 것이 아니라 그 재능을 가지고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라고 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그 사랑을 본받아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고 먼저 우리를 사랑해주신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뜻이 이런 뜻이 아니라 천국에 데리고 가는 그것이 하나님의 근본적인 목적이었다고 한다면 우리가 예수를 믿는 대로 그 즉시 다 천국으로 데리고 갔을 것입니다. 그 위대한 하나님의 귀한 걸작품이고 하나님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자녀들을 무엇 때문에 죄 많고 눈물 많은 이 세상 속에서 살도록 하겠습니까?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우리를 이 땅에 살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을 섬기고 다른 사람을 섬기라고 이 땅에 살게 하신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고 이것이 우리가 지음 받은 목적임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목적대로 우리가 살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 손에 들고 있는 마이크가 자신의 목적대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쉽게 말하고 듣고 계신 여러분들도 쉽게 듣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마이크가 제대로 작동이 안 된다면 몇 번 수리하다가 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몸에는 많은 장기가 있는데 이 장기들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가정을 해 봅시다. 어느 날 간이 너무 피곤하다면서 제 기능을 못하겠다고 말합니다. 단 하루도 쉬는 날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은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으니 딱 하루만 쉬겠다고 말을 한다면 우리의 몸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심장은 1분에 60번에서 80번까지도 뛰고 있는데 하루 24시간 중에서 9시간을 일을 하고 15시간은 쉽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심장이 내가 오늘은 전혀 일하지 않고 하루종일 좀 쉬어야겠다고 말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에게 있는 손과 발이 파업을 해서 말을 듣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은 교회에 나오지도 못하셨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사지백체가 있지만 모든 육체가 다 병이 들어야만 그 사람이 죽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육체 속에서 하나의 장기만 병이 들어도 몸 천체가 죽게 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의 한 지체들입니다. 지난 교제주간에 암송했던 말씀을 다시 한번 암송해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고 지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되고 지체가 된 내가 오늘은 너무 피곤하다, 너무 바쁘다, 귀찮다는 이유로 섬기지 않고 쉬게 된다면 몸인 교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내게 주신 생명과 건강과 재능과 물질과 지식을 가지고 섬기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피곤해서 안된다, 바빠서 안된다고 하면서 핑계대고 섬기지 않으면 몸된 교회는 지탱하지 못하게 됩니다.

2. 섬기는 것이 축복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섬기고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 축복입니다. 사도행전 20장 30절에 보면 “주 예수께서 가라사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주는 자가 복이 있겠습니까? 받는 자가 복이 있겠습니까?
주는 자와 받는 자 중에서 어느 쪽이 복이 있겠느냐? 라는 질문에 어느 권투선수의 아들은 주는자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다시 되물었더니 우리 아버지는 한방 날리면 그때마다 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 모른다는 답변을 하더랍니다.

여러분은 주면서 살고 싶습니까? 받으면서 살고 싶습니까? 주면서 살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줄 수 있는 환경을 주십니다. 받으면서 살고자 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받기만 합니다. 개척교회를 할 때 보면 처음 시작할 때부터 남을 도와주고 자신은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은 빨리 일어섭니다. 그런데 늘 남에게 손을 내밀며 도움을 받기를 원하는 교회는 계속해서 도움만 받을 뿐이지 일어서지 못합니다. 성도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을 도와주기를 원하고 자신은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은 빨리 일어설 수 있지만 도움받기만을 원하는 사람은 빨리 회복하지를 못합니다. 우리 영락의 모든 성도들은 이제 내가 주면서 살아가리라! 도와주면서 섬기며 살아가리라고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모두 주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섬기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갈릴리 바다는 헬몬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다 받습니다. 갈릴리 바다의 크기는 여기서 동래까지 정도의 길이가 될 정도로 제법 큽니다. 갈릴리 바다는 언제나 물이 푸르고 맑습니다. 왜냐하면 바다의 물을 요단강을 통해서 사해로 내려 보냅니다. 그 안에는 언제나 많은 물고기들이 살게 됩니다. 성지순례를 가면 그곳에서 베드로 물고기라고 하면서 구워서주는데 향어와 비슷한 생선인데 살이 좀 얇고 참 맛있습니다. 많은 순례객들에게 이 고기를 한 마리씩 먹게 하는데 그곳이 바로 갈릴리 바다입니다. 그런데 사해바다는 갈릴리 바다로부터 물을 계속 받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사해바다는 물이 계속해서 불어나고 갈릴리 바다보다 더 아름다운 바다가 될것 같은데 사해바다는 점점 죽음의 바다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받고 받으면 수위가 더 올라갈 것 같은데 오히려 더 줄어들고 있습니다. 일전에 사해바다를 가보니까 지도에 나와 있는 사해바다의 모습과 실제의 모습이 많이 달라서 가이드에게 모양이 다른 것 같다고 물어보았더니, 사해바다의 물이 점점 줄어들어서 모양이 달라지고 두 개로 갈라지게까지 되었다는 답변을 듣게 되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갈릴리 바다처럼 주면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해바다처럼 받기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해바다처럼 받기만 한다면 결국 죽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주라, 그러면 너에게도 줄 것이니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고 넘치도록 하여 너에게 안겨 주리라.” 라고 하신 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주면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섬기면서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살게 될 때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넘치도록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3. 어떻게 섬겼는가 평가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장차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어떻게 섬기며 살았느냐?” 여기에 따라서 평가 받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2절에서는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 마지막 심판대에 섰을 때 내가 이렇게, 이렇게 살았습니다. 하면서 보고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보고할 것 같습니까?  대학에서 시험을 볼 때는 범위가 많으면 학생들이 교수님께 범위가 너무 많아서 공부하기 너무 힘드니까 예제를 달라고 조릅니다. 그러면 마음약한 교수님이 다섯 가지 정도의 예제를 주면서 이중에서 세 가지의 문제를 낼터이니 열심히 공부를 하라고 말합니다. 지혜로운 교수는 전부 예제를 통해서 시험을 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우리에게 예제를 주셨습니다. 장차 심판대에서 내가 어떤 것을 물어볼 것이라는 예제를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서 말씀하시기를 양과 염소를 갈라서 양과 같은 사람에게 이야기 합니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왜 그런가 하면 “내가 줄일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마를 때 마시게 하였고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 돌아보았고 옥에 같혀 있을 때 와서 돌아보았느니라!” 그러니까 의인들이 “주님이시여 언제 우리가 주님에게 그렇게 했습니까?” 그러니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여기 내 형제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 대접할 수 있는 하나님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이제 하나님의 사람을 섬기는 것에 따라서 평가받게 될 날이 우리에게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하나님의 사람을 많이 섬겨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이렇게 축복받는 성도들이 모두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국에 스텐리 텔 이라고 하는 실업인이 있습니다. 1940년부터 지금까지 90여개의 선교기관에 250억원을 지원했습니다. 1974년부터 322개의 개척교회를 건축하고 지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1976년에 제3기 척추암의 진단을 받게된 상황에서 방송에 나가서 “내가 척추 암 3기에 걸렸습니다. 이제는 나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하니까 그에게 도움을 받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합심해서 “하나님 스텐리 텔의 척추암을 고쳐주십시오!” 라고 다같이 기도했습니다.  마치 옛날에 다비다가 죽으니까 다비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와서 “베드로선생님 다비다는 선행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도 다비다가 만들어준 옷입니다.” 이렇게 다비다의 선행을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니까 베드로가 다비다를 살리지 않습니까?  마치 다비다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이 했던 것처럼, 스텐리 텔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도 그 방송을 듣고 집중적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암세포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기적이 나타났습니다. 의사도 놀라게 됩니다. 그 일은 화제의 사건으로 지금까지도 남게 되었습니다. 그는 생전에 다섯 가지의 삶의 좌우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첫째, 어떤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 앞에 감사한다. 둘째, 누구에게든 상처 주는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셋째, 어떤 희생이 따른다고 해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한다. 넷째, 결코 성내지 아니하며 사랑으로 대한다. 다섯째,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매일 세 가지 이상 실천한다. 이런 그의 삶이 척추 암 3기에 있는 그를 완치할 수 있게 되었고 경제적으로도 축복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그와 같이 하루에 세 가지 이상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 남을 섬기는 일들을 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을 섬기고 남을 섬기는 일을 실천으로 옮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그대로 복으로 다가오게 될줄 믿습니다.

4. 섬김에 핑계는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라는 목적을 가지고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라고 구워 받고 부름 받고 명령받았습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 말씀을 다시 한번 암송해보겠습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왜 우리를 만세전에 목적을 가지고 만드셨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이유는 선한일, 섬기는 일을 행하게 하려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목적을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일을 행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앞으로는 섬겨봅시다! 라고하면 “시간이 없습니다. 피곤합니다. 몸이 아파서 안되겠습니다.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습니다.” 하면서 하나님 앞에 이런, 저런 핑계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런 핑계하지 말고 남은 삶은 하나님을 섬기고 사람을 섬기는 목적에 맞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이가 많이 들어서 못한다고 하셨습니까? 모세는 80세에 부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부름 받았습니다. 몸이 아파서 못한다고 하셨습니까? 바울은 간질과 더불어 많은 질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얼마나 열정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했는지 모릅니다. 말을 잘 못해서 안된다고 하셨습니까? 모세는 말 더듬이였습니다. 말을 잘 못해서 대변자로 아론이 그를 도왔습니다. 돈이 없어서 못한다고 하셨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전세 반세겔도 바칠 돈도 없었습니다. 죄를 지어서 못하겠다고 하셨습니까? 다말과 라합과 사마리아 여인은 죄인중의 죄인이었습니다. 키가 작아서 못하겠다고 하셨습니까? 삭개오 보다 키가 작은 사람이 또 있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 앞에서는 어떤 핑계도 있을수가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그에 따른 능력과 자원은 하나님께서 다 허락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나귀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여러분의 입을 통해서 왜 말씀을 못하시겠습니까? 내가 하겠다고 하면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고 하신 말씀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생명, 건강, 재능, 물질과 시간을 드려서 하나님과 사람을 섬길 수 있는 성도들이 될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를 지으신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섬김을 받으려고 하지 말고 내가 먼저 섬기려고 작정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디서부터 섬기면 되겠습니까? 바로 내 가정입니다.  오늘은 집에 들어가시면 내가 우리 가정을 위해서 섬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고민하고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부모로서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자식으로서 내가 먼저 섬기기 위해 찾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그 가정이 얼마나 아름다운 가정이 되겠습니까?  직장에서도 땡 하면 출근하고 땡 하면 퇴근하지 말고, 일찍 출근하고 조금 늦게 퇴근해서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쓸고 닦아가며 대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일 아침에 출근해서 자판기 커피 한잔씩만 돌려도 사무실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먼저 섬기면 더 아껴주고 더 사랑해주고 좋아해줍시다. 섬김의 직장을 여러분들이 먼저 만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면 다른 사람이 그것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교회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다 섬김을 실천한다면 정말 즐겁고 행복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예배당에 들어와서도 앞자리부터 차례차례 앉아서 정돈된 모습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식당에 가서도 식사를 마치면 테이블을 정리하고 의자를 안으로 밀어 넣어 놓고 교회에 와서는 무엇이든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모두가 노력한다면 정말 아름다운 교회가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일은 내가 앞장서서 실천해보리라고 다짐해보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 더 많은 일을 실천해보리라고 다짐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몸이 이만큼 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뜁니다.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조용히 있어보면 마치 큰 배가 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몸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장기들이 뛰고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앉아 있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얼마나 존귀합니까? 우리 몸에서 보이는 부분에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천대받는 것은 발입니다. 하루 종일 우리 몸의 하중을 다 견디어냅니다. 그리고 또 어디에 집어넣습니까? 냄새나고 컴컴한 신발 안에다가 집어넣습니다. 발이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장기들이 얼마나 귀한지 모릅니다. 

우리는 남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곳에서 먼저 실천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나는 하나님의 목적대로 섬기는 삶을 살아가리라고 다짐하고, 내 가정에서부터 섬기기 시작해서 가정을 회복시키고, 직장에서도 섬겨서 직장을 회복시키고, 교회를 섬겨서 더 아름다운 교회, 건강한 교회, 세상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교회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목적대로 살아서 하나님 앞에 사랑받고 쓰임 받는 우리 영락의 온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윤성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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