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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때 (에 7: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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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 한 척이 거친 풍랑을 이기지 못하고 파선했습니다. 그런데 침몰한 그 배의 선원 한 명이 극적으로 살아서 무인도에 상륙했습니다. 그는 그 섬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거의 한 달 동안 죽을 힘을 다해서 기거할 조그마한 오두막 한 채를 지었습니다. 그 오두막은 비록 초라하고 또 협소했지만 그가 거기서 의지할 유일한 피난처였습니다. 하루는 그가 먹을 양식을 구하기 위하여 숲 속 깊은 곳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그는 자신의 오두막이 불길에 휩싸인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고독한 섬에서 그가 의지할 유일한 피난처가 불타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가 얼마나 낙심되었겠습니까? 다 타고 재만 남은 그 자리에 그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이윽고 밤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대충 누울 자리를 마련하고 억지로 잠을 청했습니다.

  오두막을 잃고 상심한 채 잠들었던 그가 새벽녘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사람들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니 멀리서 사람들이 탄 보트 한 척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아무도 없는 섬에서 영원히 혼자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절망했던 그는 보트를 향해서 정신없이 달려갔습니다. 그렇게 구조된 후 도대체 어떻게 자기를 찾게 되었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 섬 앞을 지나가는데 활활 불타고 있는 집을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구조를 요청하고 있구나 생각하고 배를 돌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야말로 반전 드라마 중 가장 극적인 반전 드라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생 역전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오두막이 불타버린 것은 물론 불행한 일이지만 그 불행한 일 배후에는 그를 살리시려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던 것입니다.

  페르시아 제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학살하라는 무서운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모두들 이제 그 명령의 집행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고통스러운 역사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 대학살에 앞서서 하나님께서는 조용히 한 가지 일을 진행시키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아하수에로 왕의 잠 못 이루는 밤에 구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왕의 입장에서는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으면 궁녀들을 부를 수도 있었고 아니면 파티를 열어 그 밤을 즐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을 물리치고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읽게 했습니다. 조선 왕조로 치면 승정원 일기 같은 궁중의 역사를 가져다가 읽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연히 읽게 했던 그 일기가 유대 민족 모두를 살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잠 못 이루는 밤에 역대 일기를 읽는 것에도 하나님의 계획이 담겨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과연 우리 인간의 사고를 뛰어넘는 방법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을 발견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하여간 그 일기를 읽고 모르드개의 큰 공로를 알게 된 아하수에로 왕을 보더라도 가장 정확한 때를 맞춰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존재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르드개의 공로가 숨겨져 있다가 그 때 비로소 드러나게 된 것도 참 신비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약 모르드개가 일찍이 그 공로에 대한 상을 받았더라면 그것은 그냥 지나간 하나의 사건에 불과했을 것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주 정확한 때, 즉 정확한 하나님의 때에 아하수에로 왕으로 하여금 모르드개를 생각나게 해 주셨고 왕의 목숨을 구해 준 모르드개에게 큰 상을 내리게 하셨던 것입니다.

  1916년 2월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 출신의 한 교수가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가 책을 한 권 고르게 되었습니다. 별로 인기 있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조지 맥도널드라는 사람이 쓴 『환타페스』라는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책을 읽는 가운데 그는 갑자기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그 책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대학 교수 한 사람의 회심, 그 사건은 금세기 최대의 사건이 되었습니다. 특히 지성인들에게 기독교를 소개하는 일에 있어서 그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없을 것입니다. 그가 바로 C. S. 루이스입니다. 그는 그 후 옥스퍼드 대학과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교수를 하면서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읽을 수 있는 많은 책을 썼습니다. 그리하여 기독교 신앙과 복음을 변증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우연히 집어든 책 한 권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꿨고 또한 역사를 바꿨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신하 중 하만이 가장 높은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하만 때문에 유대 민족이 몰살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 하만이 왕을 뵙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에게 왕이 물었습니다.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냐?”(에 7:6) 왕은 모르드개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하만은 자기 말고는 누가 이런 상을 받을 수 있겠는가 착각했습니다. 때문에 그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최고의 상급을 내려야 한다고 왕께 아뢰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경솔했습니다. 자기가 왕에게 한 말 때문에 자기가 죽이려고 하는 모르드개는 높이게 되었고 오히려 자기는 궁지에 몰리게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 인간은 대체로 혀를 잘 다스리기가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과연 우리의 혀는 매우 파괴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가 입술과 혀로 얼마나 많은 상처를 입혔는지 모릅니다. 말 한 마디 잘못하면 애꿎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선지자 이사야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사 50:4) 학자들의 혀를 달라는 것은 잘 훈련된 혀를 달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쓰는 말이 우리 모두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쓰는 말까지도 간섭하시는 하나님께 우리의 입술과 혀를 완전히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하여간 하만이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교수대를 세우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쉬고 계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에스더로 하여금 왕비로 택함을 받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역사요 모르드개로 하여금 왕의 목숨을 구하게 하신 것도 또한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는 각오로 에스더가 왕에게 나아갔을 때 규례를 어긴 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노라는 왕의 은총을 입을 수 있었던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소원을 묻는 왕에게 에스더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참았습니다. 과연 에스더는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여인이었습니다. 어렵게 얻은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의 때에 정확하게 맞춰 동족인 유대 민족을 살려 줄 것을 왕에게 간청했던 것입니다.

  “주님의 시간에 그의 뜻 이루어지리 기다려 하루 하루 살 동안 주님 인도하시니 주 뜻 이룰 때까지 기다려” 이 노래의 영어 제목은 “In His Time"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그분이 모든 것을 아름답게 하실 것입니다. 믿고 기다리면 고통스럽게 보이는 오늘의 현실, 오늘의 아픔, 오늘의 시련도 마침내 아름답게 바뀔 것입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는 마지막 순간에 왔습니다. 드디어 하만이 처형을 당합니다. 이것이 심판의 절정입니다.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했던 하만, 결국은 자기가 그 교수대에 달려 죽고 맙니다. 종말론적인 믿음의 핵심은 심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행한 모든 일은 반드시 심판을 받을 때가 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심판이라는 것이 장차 하나님 보좌 앞에서 받게 되는 심판도 있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 경험하는 심판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심판의 날은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때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때와 하나님의 때가 다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 근심과 걱정과 염려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 시련과 역경이 그치지 않고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믿고 의지하는 주님은 침묵하고 계신 것 같습니까? 아니 전혀 여러분의 형편과 처지를 주님이 모르고 계신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주님이 침묵하고 계신 것처럼 생각하는 바로 그 때에도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일하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때문에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그 주님을 기다리는 믿음뿐입니다. 마침내 그 주님은 우리를 통해서 아름다운 주님의 뜻을 이루시고야 말 것입니다. 오직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모든 어려움을 이기는 참으로 복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강석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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