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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막으시는 하나님의 뜻 (살전 3: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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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하는 말

어느 대학 총장이었던 한 고위층이 노 대통령을 욕하는 택시 기사의 쌍소리를 듣고 그대로 노 대통령에게 전했습니다. 그리고는 화를 내는 노 대통령에게 “그런 말을 들려 달라고 절 불러들인 것이 아닙니까?”라고 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겨우 걷는 어린아이도 낭떠러지에 가는 것을 막는 사람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막무가내로 앙탈합니다. 철이 덜 난 소년이나 청년들도 죄악을 향해 가는 길을 막는 사람을 싫어하고, 심지어 미워하며 반항하기까지 합니다. 어른들 역시 인생 길을 막는 사람들을 싫어하고 멀리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자기의 뜻이나 계획이나 인생 길이 막히는 것을 괴로워하고 속상해합니다.

그러나, 인생살이에는 우리를 막는, 인생 경험이 풍부한 노인들의 언행을 고맙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학문이나 예술, 사업이나 기술, 정치나 행정 등의 각 분야에서는 우리를 막는 선진들의 언행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인 바울 사도도 막히는 경험을 하곤 했습니다.

2. 심방할 길을 막으시는 하나님의 뜻

바울 사도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직행하게 하옵시며”라고 기도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를 방문할 길을 열어 달라는 기도는 처음으로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7 이하를 보면, 몇 번 가려고 시도하기까지 했지만, 그 때마다 막히곤 했습니다.

바울 사도로서는 어린 그 교회를 돌보기 위해 심방하려고 하는 것을 사단이 막는 것은 이해가 됐지만,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려고 하는 것을 막는 사단을 막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우리 역시 위험한 길을 가거나, 그릇된 일을 하는 우리를 하나님께서 막으시는 것은 얼마든지 이해가 되지만, 하나님의 일을 하거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하는 일이 막히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라면 형통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벽에 막히듯 막히거나 불통하면,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 정말 하나님이 전능하신가?’ 하는 회의까지 들지 않습니까?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로 직행하게 해 달라고, 즉 모든 장애물을 치워 목표를 향해 곧게 나아가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7장을 보면, 바울 일행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 선교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을 때, 이를 시기한 유대인들이 폭력배들을 선동하여 함께 바울 일행을 잡아 족치려고 소동을 벌였습니다. 이에 교인들이 밤에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피신시켰는데, 바울과 실라는 베뢰아에서도 복음을 전파하여 많은 결실을 얻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베뢰아에까지 쫓아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을 벌이게 하므로, 바울의 신변에 위협을 느낀 교인들이 그를 아덴까지 안내해 주었습니다. 그때 바울은 안내해 준 교인들에게 디모데와 실라를 속히 오도록 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오라는 전언을 들은 디모데와 실라는 즉시 고린도로 옮겨간 바울을 찾아가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핍박과 환난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 어린 교회가 어려움을 당한다는 소식에 초조해진 바울은 직접 그 교회를 방문하고 싶어했으나 길이 막혔습니다. 바울 사도는 심방할 길을 열어 주시지 않는 하나님의 처사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머지 않아서, 막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지 못하는 대신에 제자인 디모데를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냈는데, 고린도로 찾아온 디모데에게서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내용은 바울 사도가 염려한 것과 달리, 그 교인들의 믿음과 사랑이 잘 성장하고 있고, 또한 바울 일행을 생각하는 그들의 마음이 간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걱정거리도 적지 않았습니다. 첫째, 바울 사도가 떠난 후 수삼 개월밖에 안 된 때였지만, 유대인들은 그의 사명과 인격에 대하여 악평과 중상을 여지없이 퍼뜨리고 있었습니다. 둘째, 그 교회는 핍박받는 중이라서 성도들의 인격과 재산까지도 위협받고 있었습니다. 셋째, 이교도 출신인 교인들 중에는 여전히 옛날의 부도덕한 생활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넷째, 바울의 전도를 듣고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것으로 단정하여 일을 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는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주님의 재림 전에 죽은 자들 때문에 몹시 슬퍼하는 교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목자로서 그 양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돌보기 위해 방문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계속 방문할 길을 열어 달라고 기도했고, 가려고 시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번번이 막히는 겁니다.

여기에 인간의 생각과 다른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습니다. 가긴 가야겠는데 길이 막히니 바울 사도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그는 투덜거리며 포기하는 대신에, 그들과 그들의 문제를 위해 성령의 감동을 받아 편지를 썼습니다. 그 편지가 바로 성령의 영감이 충만한 하나님의 말씀인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만약에 그때 방문할 길이 열려서 직접 찾아갔었다면, 말로 위로하고 격려하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왔을 것입니다. 그 귀한 말씀이 그때 그 교인들에게 국한되었을 것이고, 세월이 흘러가면서 가감되고, 왜곡되다가 사라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길이 막혔기 때문에 쓰게 된 데살로니가전서는 20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우리들의 손에 있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구원의 말씀, 특히 종말론적 교훈이 담긴 경전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오고 오는 세대, 더 나아가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세상 끝 날까지 은혜를 끼칠 것입니다. 그것도 가감되거나 왜곡됨이 없이 구원의 진리로 작용할 것입니다.

그 때 바울 사도의 기도대로 방문 길이 열렸으면 큰 일 날 뻔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바울 사도의 방문 시도가 막힌 것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이게 자녀들을 막으시는 주님의 뜻입니다. 우리의 일이 막힙니까? 숨막힐 정도로 답답합니까? 사방 벽으로 막혀 눈앞이 캄캄합니까? 막으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단이 막도록 내버려두시는 주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과 대구에 사는 학생이 애인 관계로 지냈습니다. 너무 멀어서 자주 만나지 못하면 헤어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총각이 만나서 청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긴장한 애인이 심각한 표정으로 연신 주스를 마시고, 총각의 주스마저 마셔 대는 것입니다. 총각의 채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연신 물을 마셔 댔습니다. 그러더니 지금 결혼할 수 없으니 헤어지자고 했습니다. 그런 후에, 괴로운 심정으로 고속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만감이 오고 가는 착잡한 심정으로 창 밖을 내다보고 가는데 문득 ‘소변을 보고 탈 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닌게아니라, 얼마쯤 가고 난 다음에 신호가 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포화 상태가 되니까 헤어진 아픔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온몸에 힘을 주고, 앞 의자를 움켜쥐고, 기를 쓰면서 휴게소만 기다렸습니다. 가도 가도 휴게소가 안 보여서 참다 못한 아가씨가 가까스로 참으면서 기사님에게 갔습니다. “아저씨, 휴게소까지 얼마나 남았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기사님이 “왜요? 배고프신가 보죠? 한 시간 가면 돼요.”

소리 죽여 한숨을 몰아쉰 아가씨가 자리에 돌아왔는데, 그 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더 죽겠는 겁니다. 얼마 있다가 또 기사님한테 갔습니다. 차마 오줌 마렵다는 말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정말 극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 또다시 기사님한테 가서는 하는 수 없이 소변이 급하다고 말했습니다. 다행히 기사님이 갓길에 차를 세웠는데, 손님들이 야단하는 바람에 마이크를 들고, 앞에 엉거주춤 서 있는 아가씨를 가리키며 상황 설명을 했습니다. “와!” 하고 웃는 소리를 뒤로 한 채, 한쪽에서 일을 보고 일어나는데 버스에 달린 블록 거울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니, 세상에! 손님들이 커튼을 제치고 쳐다보고 있는 겁니다.

부끄러워서 도저히 그 버스에 탈 용기가 나지 않은 아가씨는 붙잡는 기사님을 뿌리치고, 버스를 그냥 가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헨드폰을 꺼내 애인에게 전화를 걸고는 “오빠, 내가 잘못했어. 용서해 줘.”라고 빌었습니다. 한 시간쯤 후에, 친구의 차를 빌려 손수 운전해 온 총각, 아니 오빠를 만날 수 있었고, 부부의 연을 맺어 잘 살고 있습니다.

그 후, 그 아줌마는 먼 길을 갈 때는 버스를 타기 전에 반드시 일을 보거나, 기차를 탄다고 합니다.

3. 맺음말

오늘의 막힘과 내일의 일을 다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또 목자가 교인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서로간은 물론 모든 사람을 더욱 많이 사랑할 수 있도록 영의 복과 재물의 복과 은사와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힘써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때 막힌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고 고백할 날이 반드시 옵니다. 그때 내 뜻대로 열렸으면, 불의한 재물이나 권력과 함께 지옥에 떨어질 것을 아신 주님께서 막으신 것이 정말 은혜였다고 고백할 날이 반드시 옵니다. 전화위복을 이루어 살다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굳센 마음으로 흠 없는 거룩함으로 서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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