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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선물 (엡 2: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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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이 시작되었습니다. 10월은 계절적으로 가을이 무르익어 가는 좋은 시기입니다. 요즘은 이상적인 기온현상으로 밤낮의 일교차가 심하긴 합니다만 전통적으로 10월, 특히 한국의 10월은 일년 중에 가장 아름다운 계절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또한 10월은 열매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이제 결실을 봅니다. 수고하고 땀흘린 보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풍성한 곡식과 과일로 우리 삶을 더 풍요롭고 아름답게 하는 계절입니다.

10월은 또한 우리의 고유명절인 추석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이제 곧 추석이 다가옵니다. 이번 추석은 황금연휴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더 여유 있고, 편안하게 고향을 찾게 될 것입니다. 이번 추석도 따뜻한 고향에서 몸도 마음도 쉬고 충전하며 지치고 힘든 육신과 영혼이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좋은 계절 10월에, 우리 교회는 새 생명 축제의 행사를 갖습니다. 우리가 평상시에도 복음전하는 일을 감당해야 하겠지만, 집중적으로 전도하는 기회입니다. 한 사람이 주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기쁨이고, 교회의 즐거움이며, 우리의 기쁨입니다. 그래서 이 일은 축제와 같습니다. 한 영혼이 주께 돌아오면 하늘에서는 잔치가 벌어진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번 새생명축제의 주제를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선물’이라고 정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선물을 많이 주고받습니다. 특히 요즘과 같은 추석기간에는 더욱 선물이 오고갑니다. 인간 삶에 선물이 이렇게 우리를 즐겁게 하는 때에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선물이 있음을 알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구원’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의 선물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세상 모든 민족과 열방이 구원 얻기까지 쉬지 않고 일하시고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 구원의 선물을 전하는 것이 바로 ‘새 생명 축제’입니다.
본문은 바로 구원에 대하여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과연 성경은 구원에 대하여 무엇이라 말할까요? 본문을 통해 몇 가지의 귀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첫째,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8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에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여기에서 분명하게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구원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면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요, 하나님이 시작하신 것이요, 하나님이 근원이요, 출발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큰 특징입니다. 세상 종교는 모두가 우리에게서, 인간에게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얻기 위해 얼마나 인간이 노력하고 힘쓰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구원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리에게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는 것에서 우리는 두 가지의 귀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먼저, 인간에게는 능력 밖의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위대한 존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 능력으로 만물을 다스리고, 세계를 발전시키고,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만든 세계 안에 인간은 가장 큰 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무한한 능력을 가진 존재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능력에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인간이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의식을 버리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어리석다고 말하고, 교만하다고 진단합니다. 실제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인간은 능력이 있지만, 그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다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간 삶에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것들은 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태양을 뜨고 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비를 내리고 바람을 불게 하지도 못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공기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인간 삶에는 우리 능력의 밖의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빨리 깨닫는 게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인간능력의 한계를 알아야 제대로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구원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는 것에서 우리는 불가항력적이라는 것이 있음을 배웁니다. 구원이 그런 것입니다. 구원은 내가 받고 싶어서 받는 게 아닙니다. 내가 거부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건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요, 강력한 하나님의 주권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면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면 무조건 받아야 합니다. 오직 우리가 구원에 대해 가질 자세는 감사뿐입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이 고백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본문을 기록한 바울이 바로 그런 구원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못되고, 교만하고, 가장 비열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고, 그들을 지구 끝까지 따라가 반드시 착출하여 옥에 가두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동일하게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이 강권적으로 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하시며 구원의 손길을 뻗어주셨습니다. 당시 바울에게 임한 구원은 불가항력적인 일이었습니다. 바울의 의지와는 관계가 없었습니다. 바울이 받은 구원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의지 밖의 일이고, 불가항력적인 일이었음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본문을 포함한 성경의 기록을 통해 모든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나에게서 출발된 것이 아니고, 결코 내가 원인이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에게서 시작된 것이고, 하나님의 역사요, 뜻입니다. 우리 능력 밖의 일이요, 불가항력적인 일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구원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에 그렇게 역사 하실 것입니다.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시고, 세우기도 하시고, 허물게도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큰 역사를 바라보며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나에게 역사 하실 능력을 기대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성경적인 구원의 특징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서 출발한 것도 아니지만 내 노력이나 행위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 행위가 아니라는 말에서 우리는 다시 두 가지의 귀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선, 우리에게는 행위가 아니고도 얻어지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행위가 아니라면 무엇이겠습니까? 믿음입니다. 우리 삶에는 믿음으로 얻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 믿음은 행위의 반대개념으로서의 믿음을 말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구원을 얻는데 필요한 믿음조차도 넓게 보면 행위라고 보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의 믿음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 것에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 여기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라고 말함으로써 쐐기를 박고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로 시작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습니다.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있어서, 인간이 내세울 수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 어떤 결과에 있어서 자기노력으로 성공하고, 자기 행동과 수고를 통해 얻어지는 결과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얻어지면 사람들은 그것이 자기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것을 쥐고 잘 놓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 모습을 우리가 세상에서 많이 봅니다. 그런데 구원은 결코 그렇지가 않습니다. 구원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얻는 것이요, 은혜로 출발한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10장에서 이렇게 강조합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것이 우리의 구원입니다. 구원은 행위가 아닙니다. 우리의 수고나 노력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울어도 안되고, 힘써도 안되고, 참아도 안되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 행위가 아니라는 말에서 얻는 또 다른 교훈은 그래서 자랑치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자랑하거나 판단하거나 심지어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을 포함합니다. 구원은 나의 행위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가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나도 받고 다른 사람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되고, 다른 사람은 안 된다고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종종 그런 성급한 진단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하다가 낙심하거나 포기할 수 있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어떤 경우에도 포기해서는 안되겠지만, 특히 구원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십자가상에서 구원받은 강도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평생 악하게 살던 사람입니다. 모두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던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은 다 되어도 그 강도는 안될 것이라고 모두가 생각했습니다. 십자가에서 달려 마지막으로 죽는 순간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다른 강도와 함께 예수님을 비난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죽음 직전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두에게 가능성은 있습니다. 살인마도 구원받고, 모두가 안 된다고 말하여도 될 수 있는 구원이요, 신앙의 세계입니다.

  여러분, 구원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은혜로 얻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믿음으로 얻는 것이 가장 귀한 것입니다. 구원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기에 자랑하지 못합니다. 성급히 판단하거나 포기할 게 아닙니다. 내가 받은 구원을 남도 받을 수 있습니다.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고 기다리면서, 목표하는 사람에게 구원이 임하도록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구원받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문은 8절과 9절로 끝나지 않습니다. 구원을 설명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본문의 결론은 10절까지 갑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본문의 결론이고, 구원에 대한 설명의 결론입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구원은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곧 시작입니다. 무엇을 위한 시작이라고 말합니까? 선한 일을 위한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선한 일을 위하여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한 이후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강권적인 역사로 구원하신 것은 이제 잃어버린 형상을 찾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가 구원받은 것입니다.

  구원이 끝이 아니라는 것에서 역시 두 가지의 교훈을 얻습니다. 우선, 내가 하나님이 만드신 처음으로 되돌아가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숙’이라고 말합니다. 구원받았으면 이제 성숙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신 불가항력적인 은혜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성숙은 나의 의지가 아주 중요합니다. 내가 얼마큼 하느냐에 따라 성숙의 정도가 달라집니다. 이것에 따라 늦게 믿어도 나중 되고, 나중에 믿어도 먼저 될 수도 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법칙이듯이, 내 의지를 따라 수고한대로 거두는 것이 신앙법칙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끊임없이 우리의 의지를 굳게 세워 행하도록 도전하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영혼이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느슨했던 마음이 조여지고, 꺼져 가는 신앙에 불을 지펴야 합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은 영혼에 영적 각성과 깨달음이 임해야 합니다. 그래서 행동하고, 움직여야 합니다. 바로 거기에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구원이 끝이 아니라는 것에서 얻는 두 번째 교훈은 그래서 우리가 선한 일에 헌신하며 수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하나님이 세운 교회의 확정과 발전을 위해 우리에게 원하시는 지극히 선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두말 날 나위도 없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요, 전도에 힘을 쓰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해야 합니다. 때를 얻던지 못 얻던지 힘써야 합니다. 바울은 이 일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하나님께서 엄하게 주어진 강력한 명령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신앙과 삶에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가장 귀중한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가장 기쁘게 하는 일입니다.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신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만 합니다.

  먼저, 우리의 가족을 구원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의외로 힘들어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즐거워야 할 추석이 오히려 부담이 되고, 힘이 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사문제로 인해 고향에 가기가 무서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싸워야 할 영적 전쟁입니다. 약해지지 말아야 하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편이시고, 나를 붙잡고 계십니다. 잘 싸워야 하고, 지혜롭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욱 가족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분명 내가 믿기에 나를 통해 구원이 우리 가정에, 집안에 임할 것을 믿어야 합니다. 모든 두려운 것, 무서운 것, 악한 것이 끊어지고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셔서 우리 가정에도 고귀한 선물인 구원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이번 새생명축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나만 구원받아 행복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만 천국 가는 것으로 끝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나의 이웃, 친구가,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지옥으로 가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길은 영혼을 사랑하는 길입니다. 그들에게 많은 선물을 주더라도, 가장 고귀한 선물을 주어야 합니다. 이 일을 거룩한 부담을 갖고 감당해야 합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선물은 구원입니다. 구원은 나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구원은 끝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고, 믿음 안에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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