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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창립] 한 사람이 천명을 돕는 사람 됩시다 (수 23: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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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써 우리교회는 교회설립 15주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말이던 그 말을 평면적으로 살펴 볼 때는 그저 단순한 것이지만, 그 말이 가지고 있는 여러 배경적인 의미와 편편히 갖추어진 사연들을 생각해 보면 입체적으로 생각해 볼 때 많은 뜻이 있음을 우리는 생각해 봅니다.
15주년이라는 것은 시간상으로 그냥 15년이 흘렀다라고 단편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입체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 뒤에는 수많은 성도들의 눈물어린 헌신이 있었고, 또 아픔 속에 기도하는 간절한 호소가 있었고, 또 아름다운 헌신과 수고로 애쓴 땀방울들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거룩한 축복의 역사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수고하고 애쓴다고 한들 하나님의 축복이 없었다면 이와 같은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지극한 헌신과, 애씀과, 수고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합하여져 우리는 오늘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15주년을 맞이해서 감사한 일들을 몇 가지 적어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역사와 사회를 의식하는 교회.
인물을 키워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
성도들의 영적 건강을 책임지는 교회
라는 3대 비전아래 이제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한길을 달려왔습니다. 분명한 비전이 없다면 이리저리 흔들렸을 텐데 확고한 비전을 주셔서 우리는 15주년 간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한길을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한번 시작한 것은 끝까지 진행하는 영적인 확신과 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기대하며, 황무지에서도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고 이제까지 진행해 오고 있었습니다. 결정까지가 길고 중요하고 고민하는 시간이지만 일단 결정이 된 이후에는 아무런 갈등 없이 끝까지 가는 일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역사와 사회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전체 속에서 우리를 볼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하나만을 보고 어떻게 무슨 일을 할까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이 보시는 원대한 역사의 세계 속에 이 시대와 역사를 함께 꾸며 그 가운데 우리의 위치를 조망함으로 말미암아 시대를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고 이 교회가 진행해 올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이 교회의 잘되고 못됨이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이루어짐 속에서 이 교회가 서야 할 모습이 무엇인가를 생각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하여 감사합니다.

네 번째는 교회의 모든 것이 다른 어떤 본질 외적인 요소에 지나친 관심 없이 오직 하나님의 주요 관심사인 인간의 구원과 양육, 그리고 헌신과 기여에 대해 집중해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을 감사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하나님과 그 나라를 위한 인물을 키우는 것에 중점을 둘 수 있는 것에 대하여 감사합니다.

다섯 번째는 교회가 인물양성, 구제, 선교라는 교회 본질적인 것에 한 눈 팔지 않고 말씀을 전파하며 예배를 드리는 것과 더불어서 이 세 가지에 대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이루어 가게 됨을 감사합니다.
이제 1기와 2기의 기초과정을 거쳐서 본격적인 3기의 기초완성의 과정에 와 있습니다.
이제 21년 3기 사역을 마치게 되면 이와 같은 기초사역의 완성을 통하여 우리가 전력하여 이루어야할 분명한 목표가 정해지게 될 것입니다.

여섯 번째는 모든 것이 계획 없이 대강 되어지는 대로 되지 않고 주어진 기초 20년에 시간표에 맞게 추진되고 진행되어 왔다 라는 것입니다.
이제까지는 별로 큰 차질 없이 20년간의 시간표에 맞추어져 왔습니다.

일곱 번째 항상 어떤 일정인 이나 슈퍼 성도에 의존하지 않고 영적 시스템에 의하여 지내 옴으로 교회의 기초 전반이 튼튼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정 개인에 의해 교회가 좌우되지 않고 모두가 일만 육천 분의 일로 중요히 여기고 존중받고, 어떤 성도도 교만해서는 발붙이지 못하고 다 겸손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아름답게 여기며 은혜의 역사를 이루며 지내왔다는 것입니다.

여덟 번째 준비는 철저히, 훈련은 가혹히, 전투는 치열히, 그리고 무대 뒤로 조용히 사라지는 것을 교회 구호로 15년간 한결같이 강조함으로 기본적으로 헌신하고 그 헌신한 것은 잊어버리는 이와 같은 것이 우리의 기본이 됨을 감사합니다.
교회에서 자신의 의를 내세우고 흔드는 사람도 없어서 교회가 늘 평안하고 안정되며, 누구도 설치는 교인 없고 위축되는 교인도 없습니다. 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제자매,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교회의 본질중의 하나인 하나님 앞에 만인이 평등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하여 감사합니다.

아홉 번째 사람 앞에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고 자신 있는 교인들이 되기를 힘써 왔습니다. 하나님 앞 에서만 긍휼히 여김을 받는 영적인 가난한자의 심정을 가지도록 일관되게 말씀의 교육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는 불쌍히 여김을 받되 사람에게는 불쌍히 여김 받아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고 배려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실제가 된 것입니다. 또한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는 성도가 되도록 끝까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의 삶이 마음깊이 인식된 것을 감사합니다.

열 번째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끝까지 한번하면 능력이다. 황무지에서 꽃을 피우는 성도, 위기관리 능력과 복원력,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는 성도, 여호와를 기대합시다. 능력은 최고가 아니라도 노력만은 최고로 합시다. 노력도 성령 충만이다. 큰일도 없고 놀랄 일도 없다. 한 박자 빠르게, 한사람이 천명을 돕는 성도등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생활 속에 체화된 교회 특유의 언어들이 끊임없는 반복교육을 통해 성도들의 생활에 용해되어 중요한 순간 가슴과 생활 속에 그 몇 마디 단어들이 힘이 될 수 있었던 것에 대하여 감사합니다.

열한 번째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자신감과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는 소망과 기대가 우리 믿음의 근간이 되는 하나님을 기대하는 축복이 우리에게 있었던 것에 대하여 감사합니다.

열두 번째 하나님 앞에는 한없이 부족한 우리지만 적어도 이 세상에 대해서는 별로 두려움이 없고 위축될 것이 없습니다. 자신 있고 당당하고 날마다 새로운 날과 앞에 있는 시간에 대한 기대를 다지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적어도 세상에 대하여 부끄럽고 창피하지는 않은 교회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대하여도 당당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달려가며, 그것이 역사와 사회에 기여하고 공헌하는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또 이제까지 한 번도 우리가 어렵다 라고 생각해 본적도 없고 우리는 어려워 본적이 없습니다. 늘 풍성하고 감사하다고 생각해 왔다는 사실과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교회, 축복을 받은 성도로서 이 시대와 역사 속에 우리의 고유한 분깃의 사명을 감당해야한다는 마음의 각오를 가지고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눈에는 적어도 우리의 존립자체가 목적은 아니고 그것을 훨씬 넘어선 하나님의 사명에 교회와 성도들이 삶의 명운을 걸 수 있는 것입니다.
이상에 더 많은 것들이 있지만 일단 숫자를 12번까지 쓰고 차례대로 적어 보았습니다.

감사할일은 한두 가지가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는 부족했지만 하나님이 은혜와 축복으로 베풀어 주셨던 것입니다.
교회와 성도는 하나님 앞에 항상 최선을 다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합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 교회가 스스로 하나님 앞에 축복을 받았다고 믿고 있는 것 입니다.우리가 축복을 받았다고 믿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모든 것은 다시 말씀드리지만 자격 없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주시는 우리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과 그리고 눈물어린 성도들의 헌신에 의하여 아름다운 헌신이 이루어진 애씀의 결과였던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이러저러한 과정을 지나 몇 마디로 정리해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고, 그 은혜를 입은 성도들이 최선을 다하여 주의 교회를 세웠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기 소원하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이제 이와 같은 것을 생각해 보면서 오늘 말씀을 잠시 더 생각해 봅니다.
오늘 말씀은 가나안 정복의 제일 앞장에 섰던 여호수아가 그의 생명이 다해짐을 느끼며 마지막으로 고별적인 인사를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인사의 내용 중의 하나가 오늘 본문입니다.

이제까지 하나님이 우리의 진한했던 여정을 지켜주셨고 승리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믿기는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은혜를 우리들에게 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어떠한 난관과 장벽도 극복했기에 우리는 한사람이 천명을 쫓는 민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싸우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와 같은 백성이 되게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따라서 우리의 할일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인 것입니다.

이제 이와 같은 여호수아의 고별적인 인사의 내용을 생각해 보면서 이제 설립 15주년을 맞은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앞으로 어떤 역사가 하나님 앞에 우리의 일인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내용은 사람은 언제 강해질까? 그리고 어떤 모임은 언제 강해질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고 앞으로도 나와 함께 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강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여호수아 23장9절과 10절>을 보면
'대저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셨으므로 오늘까지 너희를 당한 자가 하나도 없었느니라'
10절에 이릅니다. '너희 한사람이 천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라고 말씀합니다.
과거의 사실을 회상해 볼 때 하나님이 우리의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셨고 또 승리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을 때는 우리에게 즐거웠던 때와 하나님이 승리케 하셨던 것이 우리들에게 기억납니다. 인간관계에서도 좋은 관계라는 것은 상대에 대해서 기쁜 일 좋은 점이 생각날 때입니다. 관계가 깨지면 상대에 대해서 나쁜 일만 생각나고, 또 상대에 대해서 나쁜 점만 생각나면 그것은 관계가 깨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에 즐거운 것은 항상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좋은 면이 눈에 확대되어져 오고 항상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기쁜 점 좋은 것들이 우리 가슴속에 새겨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어두운 부분이 왜 없겠습니까 우리 인생에 눈물의 골짜기가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셨고 은혜를 주셨고 능력을 베풀어 주셨던 그 시기를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더 큰 은혜를 주실 것을 기대하며 사는 것이 믿음의 백성의 삶의 모습입니다.
앞으로도 그 하나님이 나를 승리케 하실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대하고 소망해야 합니다.
우리 한번 따라서 합시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우리는 현실을 능가하는 힘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기대
함으로 말미암아 주의 역사를 이루어야 합니다. 더우기 하나님이 과거와 함께 하셨다면 하나님은 앞으로도 나와 함께 하심이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 능력이나 내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내게 축복을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나를 긍휼히 여기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축복받을 만한 사람이어야 축복을 받는다면 이 가운데 축복받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이 가운데 있는 몇 명을 위하여 축복을 준비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될 수 있으면 더 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은 보다 많은 사람에게 주의 은혜와 능력을 주시기 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자비를 구함과 우리의 교만을 버리고 겸손함으로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내게 능력이 없지만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셨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니 우리는 무슨 일이 잘되어도 교만할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겸손할 뿐입니다. 늘 말씀드립니다. 우리에게는 탁월함과 겸손이라는 두 가지가 겸비되어야 합니다. 탁월하지 못하고 겸손하면 우리는 많을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탁월한데도 불구하고 겸손치 못하면 우리는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끼치고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탁월함과 겸손함이라는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출 때 우리는 은 쟁반에 금 사과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 37편4절>은 말씀합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내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기뻐하면 우리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기를 기원하면 하나님이 함께하기를 간절히 소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축복과 기쁨과 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능력과 은총과 영광을 주시는 분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심정을 압니다. 자식이 효도를 해야만 그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때때로 우리가 하나님께 불충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근본적인 생각은 우리를 위한 축복입니다.
에덴동산을 만드셨을 때 인간을 시험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 에덴동산의 모든 축복을 누리게 하기위하여 만드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와 진리와 거룩 이라는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우리 인간들을 만드셨고, 우리를 보시고 아름답게 여기셨던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범죄 하였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것이지 하나님이 우리를 어렵게 만들려고 하셨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여 승리케 하신다는 것은 내 삶의 상황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삶의 상황 때문에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보고 우리는 어떤 순간에도 일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 한사람이 천명을 돕는 성도가 되고 교회가 되자는 것은 우리 힘의 능력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에서 입니다.
<23장10절>을 보면 ‘너희 한사람이 천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에게
말씀 하신 것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능력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제까지도 우리를 도우셨습니다.
<23장9절>을 보니 ‘대저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 너희 앞에 내어 쫓으셨으므로 오늘날까지 너희를 당한 자가 하나도 없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도움 없이 이제까지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성도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이 믿음이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인정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출애굽 때, 광야 때, 정복의 전쟁 때,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승리케 하셨습니다. 내가 안 된 것 생각해 낙심하지 말고, 내가 잘 된 것 기뻐하고, 내가 안 되었다면 내가 왜 안됐는가를 영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고 돌이키면 됩니다. 우리 삶에는 안 된 것도 많지만 된 일도 많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가 다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15주년이 돼서 이제까지 어떤 분은 1년 2년 5년 10년 15년 다 나오셨을 거예요 제가 오늘 여러분께 이렇게 말씀 드릴께요.
여러분 15년 동안도 이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더 충성하고 헌신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아멘 안하는 사람은 15년 내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자 15년 동안 건강하셔서 주님 앞에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자 제가 다시 한 번 기회를 드릴께요. 아멘 안하면 15년 내에 어떻게 될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 여러분! 15년 동안 더 봉사하고 충성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여러분 얼마나 감사해요. 여러분 이 세상에 살면서 얼마나 감사합니까. 여러분 제가 한번 여러분께 여쭤볼께요.
“ 여러분! 지금 목사가 빨간 넥타이 한 것 보입니까? 안 보여요? 여러분 점심 먹어서 졸리신가보네요. 아니면 눈감고 주무시는지요? 여러분 아 목사님이 빨간 넥타이 맸구나“ 라고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 이예요. 제가 오늘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오늘
15주년 기념이라서 일부러 빨간 넥타이를 하고 왔습니다. 그런데 말이예요 여러분 목사가 빨간 넥타이를 했는데 ‘아 우리 목사님이 붉은 넥타이를 했구나’ 라고 인식하고 있고, 인식한 것을 그렇구나 라고 표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상적인 인지작용과 인지한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이와 같은 과정을 겪을 수 있는 사람은 정상적인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여러분! 목사가 어떤 색 넥타이를 맸는지 구별이 안 되는 사람이 있어요. 생각이 안 되는 사람이 있고 내 생각을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이 있어요. 세상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지극히 당연한 일 조차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여러분 병원에 입원하려고 해도 때로는 병실이 없어서 응급실에서 며칠을 기다려야 되는 때도 있지 않습니까? 세상 에는요 우리가 생각하는 아주 기본적이라는 것이 그의 삶의 목표가 되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몸이 아파서 환자가 되는 것 보니까요 아주 간단하더라 구요. 어제까지 멀쩡했는데 오늘 갑자기 환자가 되서 그것으로 시름시름하다 이 세상을 떠나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제방에 이와 같은 타일에 우리성도들 중에 이제 우리 성도들이 많으니까 아프신 분들도 여럿 되잖아요. 여기 이렇게 중환자들의 명단이 올라와요. 거기에다 이제 카드까지, 사진 있는 카드까지 같이 와서 제가 늘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카드에서 이름이 빠지게 해 주십시오. 건강하게 완쾌 되서 이카드에서 이름이 빠지게 해 주십시오. 아픈 분들은 인제 매일 같이 올라오고요 또 새로이 추가되는 분이 있고 또 빠지는 분들도 있게 되는 것이겠지요. 날마다 그런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명단에서 건강해져서 빠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몰라요. 저는 아침에 눈 뜰 때마다 하나님께 너무 감사해요.
"하나님! 오늘도 이렇게 하루를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주의 뜻을 위하여 무엇인가 하라고 하루를 주셨는데 참 감사하게 잘 일어나 활용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여러분 제가 한번 말씀 드릴께요. "오늘 아침이나 혹은 점심은 드셨을 수도 있고 안 드셨을 수도 있는데, 여러분 오늘 식사하고 오셨습니까?" 네 그래요. 그런데 식사 안하고 오신 분들도 있죠? 그런데 집에 쌀이 없어서 식사 못하고 오신 분이 있으세요? 아마 제가 보니까 아마 그런 분도 물론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집에서 쌀이 있어서 오늘 식사하고 오셨을 겁니다. 식사 안한 분은 다른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 이유를 제가 강단에서 설명은 못하겠습니다. 여러분 나름대로 뭐 이러저러한 이유가 있어서 식사를 안 하셨을 것이고, 또 식사를 하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엇인가 먹을 것이 있다는 것, 남에게 빌리러 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보니까 다들 깨끗하게 옷들 입으셨네요. 옆의 사람이 혐오스럽게 냄새나는 사람 없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세상에는 우리와 같지 않은 사람이 너무 많아요. 우리는 늘 번듯한 사람을 보니까 사람이 다 그런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세상에는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이렇게 정상적으로 있다 라는 것은 너무나 큰 축복입니다.
저는 오늘도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하나님 앞에 큰 축복을 받은 것을 누리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우리는 한 가지 마음에 슬픈 것이 있으면 다른 것이 다 슬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냉철히 보면 전혀 그렇지는 않아요. 내게 슬픈 것도 있고 기쁜 것도 있는데 내가 슬픔에 집착하고 있을 뿐 이예요.
내가 슬픔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서 기쁜 면을 바라보면, 우리는 내게 전혀 변화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얼마든지 기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과 기대는 이제까지 도우신 하나님이 앞으로도 도울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이제까지 베푸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은혜 주실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은 또 다른 사랑을 기대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믿음대로 되는 것을 봅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2절 3절>에 문둥병 환자가 예수님께 옵니다. 예수님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기만 하면 내가 날수 있다는 거예요. 그랬더니 예수님이 무어라고 하셨죠?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그 시로 나았습니다. 무엇인가 예수님께 대한 간절한 믿음을 가지고 왔어요. <8장 13절> 이하를 보면 백부장이 하인을 위해서 이야기합니다. <8절>에 말씀만 하옵소서. 그리하면 내 하인이 낫겠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그 믿음을 깊이 보시고 가라 네 믿음대로 될 찌어다' 그러니 그 시로 하인이 나았습니다.
자 따라서 합시다. “네 믿음대로 될 찌어다" 네 믿음대로 된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네가 병에서 나와 건강할 찌어다. 네 죄가 사함 받았다 그리고 네가 병상을 들고 일어나 걸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우리들에게 무엇이죠? 즉 믿음의 선결 그리고 생활의 후결 이예요. 항상 우리의 믿음이 선결되면 그 뒤에 생활의 후결이 따라오게 된다. 이말 입니다.
<마가복음 9장 22절>이하를 보면 우리는 더 선명히 보게 됩니다.
뭐냐 하면 귀신들려서 불에도 던져지고 거품 내며 구르는 아들가진 아버지가 예수님께 왔어요. 예수님 하실 수 있거든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나를 좀 도와주세요. 그러니 예수님이 무어라 말씀하셨느냐하면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그랬더니 아버지가 문득 깨달았어요. “내가 믿나이다. 내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정말 내가 믿음이 없어서 그렇게 예수님께 할 수 있거든 좀 무엇을 해 주십시오“ 라고 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고 내가 그렇게 연약한 믿음가지고 구했습니다. 내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내가 믿나이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킵니다. 즉 그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심으로 그 아이의 귀신을 쫒아주셨던 것을 우리는 봅니다.
예수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그의 믿음을 키워 주시고 그 믿음의 고백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귀한 역사를 이루는 자리까지 나아가게 된 것을 봅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앞에 나아가 싸우시고 우리를 위하여 모든 일을 대행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주의 백성으로 세우기를 소원하시니 우리는 그 하나님 때문에 한사람이 천명을 돕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히 보세요. 여러분 이 교회도 어느새 벌써15년이 지났어요. 이제 5년 더 있으면 20년이 되는데요. 20년이 됐을 때 정말 엄청난 차이가 있을 거예요. 여러분 앞으로 삶도 마찬가지 일 겁니다. 지금 여러분이 내가 한사람이 천명을 돕는 사람이 되겠다. 라고 마음먹고 어떤 일을 진행 하는 것 하고, 내가 이제 뭘 해 이제 인생 다 끝났는데... 그렇게 생각 하는 것 하고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믿고 실행해 보세요. 믿고 실행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이룰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능력이 없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 할 때 하나님께 기대하고 소망 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그 일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는 우리 마음을 보이는 것이고 하나님이 그 능력과 역사를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 우리의 할일은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그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고 그 뜻대로 살아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말씀을 지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어떻게 사랑 하는가? 박수쳐드리고 하나님께 밥 한 그릇 떠드리고 물 한 대접 대접합니까? 하나님께 무엇을 어떻게 대접 할 수 있겠어요? 우리가 하나님을 대접한다는 것은 내 이웃에 있는 작은 소자에게 어려운 이에게 내 주변 사람에게 대접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너는 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두 가지 계명을 주셨는데 두 가지가 한가지라고 말씀드렸지요?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의 표현이 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복음과 함께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하십니다. 용서하십니다. 기쁨을 주십니다. 은혜를 주십니다. 후덕함을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 믿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 우린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의 성품들이 우리에게 있어야 돼요.
우리 옆의 사람한테 한번 얘기해 봅시다. 당신만 생각하면 참 마음이 편안해지고 후덕해집니다. 상당히 조소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지 말구요 여러분 이렇게 이야기 해 봅시다. 당신만 보면 시한폭탄 같아요. 언제 터질지 몰라요. 좋을 땐 좋은데 이거 언제 돌아버릴지 몰라요? 시한폭탄 같으면 어떡하겠어요. 아 살아가면서 조마조마 지금은 좋지만 언제 또 어느 한순간에 돌아버릴지 몰라 그럼 이거 아주 정말 참 어려운 얘기란 말 이예요. 우리예수 믿는 사람은 그러면 안돼요. 끊임없이 푸근하고 용서해주고 배려해주고 또 애틋하게 따뜻하게 대하고 모든 일을 이룰 수 있어야 해요.
여러분! 자 따라서 합시다. “좀 더 긴 호흡을 가집시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다 죽여 버리고 못 사는 세상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가 정말 주님 앞에 구원받은 백성이여 영원히 죽을 그 백성이 하나님 앞에 구원받았는데 이 세상에 그렇게 죽여 버릴 일이 못 된 것이 뭐가 그리 있겠습니까? 뭐가 그렇게 있겠어요. 우리는 용서하고 사랑하고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주의 뜻을 이루어야 되요. 우리는 이 세상에 정의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베푸는 사랑도 중요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주의 역사를 이루시는 겁니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주변에 많은 사람들을 사랑하여 그 사랑을 나눔과 베풂으로 나타나야 해요
<전도서 11장1절>을 보면 물위에 뿌려라 라는 말이 나오지요
‘너는 식물을 물위에 던지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여러분 물위에 식물을 뿌리면 그냥 다 떠내려가요 남는 것 아무것도 없어요. 그렇지만 떠 내려가다 떠내려가다 어느 곳에 정착해서 거기서 싹이 트고 줄기가 잎이 나고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나와는 관계없이 멀리 흘러가 버린 것 같지만 거기서 결국 열매가 맺혀지고 시간이 지나고 쌓이고 쌓이면 결국 그것이 가다가 내 곁 까지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한 가지 말씀 드릴께요. 제가 15년 전에 처음 교회를 개척하면서 첫 번째 한 생각이 무엇이냐 하면 교회가 어떤 일을 할 때 외곽투자부터 시작해야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교회가 어떤 일을 시작하는데 외곽 투자부터 시작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짧게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것부터 바라보지 말고 먼 시야를 가지고 멀리부터 투자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이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결국 다 거두어들이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 했어요.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데 정말 눈앞에 있는 것만 보고 하면 우리는 그저 눈에 유익이 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결국은 모든 것이 이루려면 외곽에서 결국 모든 원군들이 와야 돼요. 그럼 우린 저 외곽부터 모든 일을 시작해야 결국은 모든 일들이 하나님 앞에 최종적으로 이 앞에 시간이 되면 조합되고 구성되어 한순간에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저희 성도들이 아주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제가 참 감사한데요 외국으로 이사도 가고 멀리 지방으로 이사 가고 그런 경우겠죠? 근데 내가 한자리 빠졌다고 생각하면 꼭 그 한자리를 채워 줘야한다고 생각하시나 봐요. 가면 거기서도 분당에 들어가면 다녀야된다고 해서 그래서 온 성도들이 굉장히 많아요. 상당히 많더라구요.
이사 가시는 분들도 자기 집에 이사 온 사람들에게 교패 안 떼고 꼭 이 교회 다녀야된다고 하는 그런 분들이 꽤 많더라고요. 제가 그걸 보면서 ‘성도들이 교회를 참 사랑하는구나!’ 하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뭐 인물양성을 해도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을 이렇게 다 지원하잖아요. 우리교회와 관련 없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다 곳곳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고 그와 같이 그 모든 일을 이루어져 가다보면 결국 가장 가까이 우리 눈앞에서 그 모든 일이 가장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여러분 정말 여러분께 아무 상관없는 사람 돕고, 돕고, 도와줘 보세요.
어느 순간, 우리가 어떤 결정적인 어려움을 당할 때 나도 모르게 언젠가 내가 산 작은일 하나라도 도와주었던 그 사람이 그것을 기억하여서 우리의 어려움을 모면케 해 주는 경우가 생긴다구요.
전혀 예측치 못한 순간, 내가 물위에 뿌렸던, 물위에 던졌던 그것이 나도 모르게 내 앞에서 가장 나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것들이 될 수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당장 눈앞에만 보면 안돼요. 멀리 바라보고 우리는 뿌리고, 뿌리고, 또 뿌려야 해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뿌리고, 뿌리고, 흐르는 물에 곡식을 던지듯이, 뿌리고 뿌릴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당장 내 눈앞에 결실을 기대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나눔과 구제와 인물양성의 기쁨을 주셨어요. 나눔의 방편 이게 뭐죠? 저는 늘 그런 생각을 하는데 믿음의 인물하나 세워서 세상에 진출시켜 그가 많은 사람에 유익을 끼치면 그것이 우리가 세상에 기여하고 공헌하는 겁니다. 또 뭔지 아세요? 그냥 놔두면 범죄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와 같은 어려운 여건에 있는 사람 하나 세워서 건전한 시민으로 바로 설수 있는 건전한 시민으로 만들면 그것이 이 세상에 크게 기여하는 겁니다. 많은 사람에게 어려움이 끼칠 사람이 건실하게 자기 자신의 일을 지켜가고 살아갈 때 그게 얼마나 큰 도움을 주는 것입니까?

우리는 따라서 진정한 나눔과 구제와 기쁨과 은혜의 백성들을 세우는 일에 주력해야 합니다.
세상과 사람에 대한 진정한 승리는 사랑으로 승리하는 겁니다. 복수나 앙갚음이나 내 정서적인 만족감을 위해서 내가 그냥 한번 내지르는 것은 결국 우리에게 기쁨을 주지 못해요.
우리는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선을 베풀면, 내가 선을 받지 못하면 그 후손에라도 100배, 60배, 30배라도 선을 받을 겁니다. ‘내가 잘못하면 그것이 후손에라도 100배, 60배, 30배 되서 돌아온다.’ 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저는 계절의 변화에 대하여 너무너무 감격스러운 것 같아요. 여러분 봄이 되면요 그 나무에 새싹 나죠?
여러분 봄에 새싹 나는 것 꽃피는 것보다 더 예뻐요. 제가 늘 산에 가까운데도 가고 멀리도 가는 데요 매일 아침에 가보면 어떻게 매일 매일 달라져요. 눈에 띈다니까요. 며칠 지나면 갑자기 색깔이 다 달라져요. 그냥 겨우내 마른 가지가 있어서 그 마른가지가 하늘 면을 그물같이 쳐져 있던 것에서 그 조그만 잎들이 자라서 마침내 그것이 자라서 하늘 면을 덮어요. 그럼 여름이 되는 거예요. 조금 지나면 나뭇잎이 물들고 잎이 떨어지고 마른가지만 남게 되죠? 거기에 눈이 오면 흰 산이 되게 되죠. 그리고 그것이 녹으면 또다시 녹음이 무르익어가는 이와 같은 시기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가운데 하나가 무엇이냐 하면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변화가 없는 삶의 가장 큰 어려움이 뭔지 아세요? 권태입니다.
권태라는 것은 어떤 일이 아무리 잘 되도 우리에게 오는 거예요.
권태라는 것은 우리 삶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삶에 대해서 지루하고 아무런 흥미와 재미가 없게 만들어요.
권태를 느끼게 되면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좋은 것도 아무것도 없어요.
권태를 느끼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세상에서부터 이탈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변화에 너무나 큰 은혜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요 15년 동안 목회랄 것 도 없고요 그냥 왜 일하면서 교회에 있다가 보니까요 정말 아주 깊이 느낀 것이 있습니다. 뭔가 하면 사람은 정말 지긋지긋하게 안 바뀌어요. 죄송합니다. 목사가 이런 표현해서요. 아주 지독하게 안 바뀌어요. 여러분 제가 일 년에 몇 번 설교하는지 아세요? 주일만 설교해도 한 50번 설교 합니다.
10년이면 몇 번 설교 듣겠어요? 500번 듣죠?
15년이면 750번이예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같은 말을 750번 대고 막 얘기하면 그게 생각이 안 바뀌겠어요?
근데 안 바뀌어요. 근데 거기다가요 주일 낮 예배, 저녁예배, 수요예배, 금요 기도회, 또 구역예배, 혹은 새벽 기도에 한번 왔다고 생각해봐요 어쨌든 한주에 다섯 번만 예배드리면 15년
예배드리면 그것이 몇 번인지 아세요? 3750번이요. 제가 다 계산해 놨어요. 계산하지 마세요. 근데도 안 바뀌어요. 안 바뀌어요. 제가 그걸 보고 참 인간이 지긋지긋하게 안 바뀌는구나. 제가 또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니까요.
그런데도 우리 주님은 그 사람을 바꾼다니까요. 제가 그 두 번째 깨달음이 없었으면요 정말 제가 이 설교 못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바꾸시더라구요. 이것은 사람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사람은 지긋지긋하게 안 바뀌어요. 사람의 그 죄악의 본성이 얼마나 끈질긴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또 까먹고 또 받으면 씻어내고 또 떨궈 내고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이제까지 평생 먹은 음식이 얼마나 되요? 평생 동안 먹은 음식의 양이 얼마나 되냐구요? 그 음식이 그 안에 다 들어있으면 얼마나 커졌겠어요. 정말 우리 인간은 너무너무 안 바뀌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바꾸시는 거예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정말 성령의 충만한 역사,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 우리에게 조금 씩 조금 씩 쌓아가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 우리도 모르게 조금 씩 조금 씩 조금 씩 바뀐 것이 다른 사람이 오래간만에 보면 하늘과 땅 차이예요. 어느 순간에 우리도 충격적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바뀔지 나도 모른 거예요.
우리 삶이 바로 이와 같이 바꿔진다 이 말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이와 같은 변화의 능력을 믿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이와 같이 변화할 수 없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변화시켜 주실 것 을 믿습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인간의 생각 속에 빠져 살겠습니까? 언제까지 내 정서의 만족을 위하여 살겠습니까? 이제 우리는 다시 마음을 가지고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여러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한사람이 천명을 돕는 주의 백성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믿고 소원하고 애쓴 이들은 반드시 이루어 질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제가 이 말씀드립니다. 10년 금세 가고 20년 금세 갑니다.
근데 그냥 산사람하고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살은 사람하고는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한사람이 천명을 돕는 성도들이 되는 목표를 가지고 주님 앞에 귀한 역사를 이루는 성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최종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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