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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십일조를 드려야 할 일곱 가지 이유 (민 18: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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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십일조를 드려야 할 일곱 가지 이유
본문 : 민수기 18장 21-29절

제임스 윌리엄스라는 목사님이 1994년 크리스천 투데이(Christianity Today)에 다음과 같은 글을 기고했습니다. “오늘날 십일조를 실천하는 세대는 세 곳에서 살고 있다. 첫째는 은퇴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 둘째는 노환의 어른들을 돌보는 Nursing Home, 셋째는 공동묘지다.” 이 글은 미국의 기독교에서도 십일조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이라는 사실을 풍자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미국의 젊은 세대들은 십일조를 왜 해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잘 실천하지도 않습니다. 이들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세대들은 십일조를 왜 해야 하는지 잘 알았고 실천했습니다. 또한 이
들의 부모님 세대들은 십일조를 왜 해야 하는지 잘 모르지만 실천하기는 했습니다. 부모님이 하는 것을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젊은 세대들은 십일조에 대한 이론도 잘 모르고 실천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미국 기독교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흐름을 볼 때, 미국 기독교의 방식은 언젠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십일조에 관한 말씀을 먼저 믿고 실천해야 함은 물론이고, 우리의 자녀들에게 어떻게 하면 물질 축복을 받는 원리를 가르칠 것인지, 어떻게 십일조를 실천하게 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녀들이 돈을 많이 번다는 것도 기쁜 일이겠습니다만, 자녀가 열심히 번 돈으로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믿음을 볼 수 있는 것도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릅니다. 지난달에 새벽기도 강단에 약 500만원 되는 헌금을 한분이 하였습니다. 비닐봉투에 현금으로 담아진 헌금이었습니다. 한 권사님의 아들이 직장생활을 하는데 직장이 바빠서 교회에 잘 나오지 못했는데 직장에 다니면서 2~3년 드리지 못했던 십일조를 계산해 보니 500만 원 정도가 되었기에 그것을 현금으로 비닐봉투에 넣어서 권사님을 통해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그러니 그 권사님의 마음에 얼마나 기쁨이 있었겠습니까? 비록 아들이 바빠서 교회는 잘 출석하지 못해도 그 마음 중심에는 믿음과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 대단히 기뻐하셨습니다.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는 수입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우리나 우리의 자녀들이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가 가진 모든 재물
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리고 그 이상도 드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일곱 가지 이유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일군들의 필요를 채워주심

십일조는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일군들에 대한 경제적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일군들의 보수를 주는 재원이 바로 십일조입니다. 민수기 18장 20~2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의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레위 자손들에게 십일조를 주셔서 회막에서 하는 일의 보수를 받게 하셨습니다. 레위 자손들은 땅의 기업도 없고 다른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초 자원도 없기 때문에 십일조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땅을 주시지 않고, 오로지 회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만 하라고 지정해 주셨기 때문에 나머지 지파의 십일조를 가지고 먹고 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십일조를 ‘주의 십일조(Lord's tithe)’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레위인들이 이 십일조를 사용할지라도 이 십일조는 레위인에게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레위인들도 십일조의 십일조를 또 드렸습니다. 본문 26절을 보니 “너는 레위인에게 고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취하여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취할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릴 때, 이 십일조는 목사나 교회에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받으신 이 십일조를 주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보수로 먼저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십일조를 가리켜서 아름다운 것이며 거룩하게 한 부분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본문 29절을 보니 “너희의 받은 모든 예물 중에서 너희는 그 아름다운 것 곧 거룩하게 한 부분을 취하여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찌니라”고 했습니다. 거제는 제물의 종류가 아니라 제물을 드리는 방식을 말합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아름다운 것이며 거룩하게 한 부분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십일조란 구약 시대에나 있는 원리지, 신약 시대의 원리는 아니라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도 예수님께서 십일조의 행습을 인정하셨으며 칭찬하셨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에서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와 인과 신도 중요하지만 십일조를 드리는 행습도 무시해서는 안된다 사실을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9장 13~14절에서 신약시대에 복음전하는 사람들의 생계원리를 지정했습니다.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구약시대에 레위인들이 십일조를 의존해서 먹고 살았듯이, 신약시대에 복음 전하는 자들도 마찬가지 이런 원리를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원리를 존중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날에 와서는 여러분이 드리는 십일조를 통해 교역자들과 교회의 직원들이 생계를 꾸려가게 된다 원리와 동일하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이것이 주의 십일조(Lord's tithe)입니다.

2.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믿음의 행위

두 번째로 십일조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만물의 소유권자이심을 인정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시편 24편 1절 말씀에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고 했습니다. 온 세상의 주인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내가 가진 모든 재물의 주인도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사람들은 100%가 하나님의 것이라면서 왜 도리어 10%만 드리라고 하느냐는 식으로 이 말씀을 악용해서 십일조를 반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장은 어불성설입니다. 어떤 아내가 남편에게 불평을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여보, 나에게도 시간을 좀 내주세요. 당신이 직장 생활하느라고 바빠서 나와 함께 보낼 시간을 내주지 않으니 집이 마치 호텔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자 남편은 능글맞게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여보, 내가 직장에서 일하는 것이 나를 위한 것 인줄 아시오? 당
신과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니, 내가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이 다 당신 시간이 아니겠소?” 그러나 이런 대답은 아내에게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아내가 원하는 것은 일주일에 한 두 번이라도 식사를 같이 나누면서 대화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모두 우리에게 주셨지만 하나님과의 특별한 시간을 원하셨기 때문에 주일을 정하신 것입니다. 일주일 중의 하루만큼은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는 시간으로 사용하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십일조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모든 수익도 100%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주시면 1원도 벌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주신 것이지만 십일조를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100% 소유주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특별한 방식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이 만물의 주인이시며 창조주가 되신다는 원리를 존중하는 사람입니다.

3. 탐심을 경계하는 방편

세 번째로 십일조는 탐심을 경계하는 최고의 방편입니다. 성경은 탐심을 죄로 여깁니다. 십계명 가운데 제일 마지막 계명이 바로 “탐내지 말라”입니다. 누가복음 12장 15절에도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탐심을 경계합니다. 뿐만 아니라 탐심은 우상숭배와 같은 죄로 여겨집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은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탐심은 우리가 우상을 경계하듯이 경계해야 하는 죄입니다.

십일조는 정상적인 소유욕과 탐심을 구별하는 좋은 방법이 됩니다. 수입이 조금 났어도 그것을 다 차지하는 사람은 탐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많이 벌어도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은 탐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21절에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사람은 십일조와 함께 그 마음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러나 십일조까지 모두 차지하는 사람은 물질에 마음을 빼앗겨 우상 섬기듯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일조를 드림으로써 물질에 대한 탐심을 극복해야 합니다.

어떤 가난한 청년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성공을 다짐하며 평생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자고 언약을 맺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두 청년 중 한 사람은 목사가 되었고, 한 사람은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사업가 친구의 사업이 번창하자 처음에는 맹세한대로 십일조를 꼬박꼬박 하나님 앞에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수십억이 넘는 돈을 벌게 되면서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친구 목사를 찾아갔습니다. “여보게 친구 목사님. 내가 젊은 시절에 자네와 맺은 언약을 취소하고 싶네. 내가 십만 원씩 십일조를 드릴 때는 조금도 아깝지가 않았는데 이제 몇 억을 십일조로 드려야 하니 아까운 마음이 든다네.” 그러자 그 목사님은 잠시 기도하고 오겠다고 하며 구석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친구가 수십억을 버니까 탐심이 생겨서 십일조를 안 하려고 합니다. 도로 십 만원 십일조 하는 사람 되게 하여 주옵소서.”
십일조를 많이 하게 되는 것은 참 감사한 일입니다. 십일조를 많이 하게 되었다는 것은 소득이 많아졌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십일조를 깎을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마시고, “하나님. 올해는 십일조를 더 많이 드리도록 해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십일조를 많이 드리면 소득도 더욱 많아지고, 탐심도 경계하는 성도가 될 줄로 믿습니다.

4. 물질의 복을 주시는 원리

네 번째로 십일조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물질의 복을 내려주시는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통해서 성도들에게 물질의 복을 주십니다. 고린도후서 9장 6절에 보면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고 복을 받는 원리는, 마치 농사를 짓고 수확하는 원리와 같습니다. 농사지을 때에 조금 뿌린 사람이 많이 거두기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많이 뿌린 사람이 많이 거두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헌금을 드리고 하나님께 복을 받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많이 드린 사람이 많은 복을 받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8절에는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헌금을 드린 결과입니다. 항상 모든 것을 넉넉하게 채워주시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은 풍성하게 드리는 사람에게 모든 것이 넉넉해서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부자인 스탠다드 오일 트러스트를 결성한 석유왕 록펠러(John. D. Rockefeller)는 어려서 부자가 아니었습니다. 가정도 넉넉하지 못했고 공부도 잘 못했습니다. 머리 좋다는 소리도 듣지 못했던 극히 평범한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좋은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이 어머니는 록펠러에게 단 한 가지만을 가르쳤습니다. “너는 십일조를 해라, 네가 십일조를 하면 물질의 축복을 받는 아들이 된다.”

그래서 록펠러는 어려서부터 십 원을 벌더라도 일 원을 헌금하는 십일조 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록펠러가 청년 시절에 교회 재무를 담당하였는데, 교회 형편이 어려워져서 빚이 많아지는 것을 보고 ‘하나님. 나는 말씀 전하는 목사가 될 은사는 가지고 있지 않으니, 돈을 많이 벌어서 하나님의 교회를 크게 세우는 종이 되겠습니다. 물질에 축복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고 결심했습니다. 그 후에 록펠러가 여러 가지 사업을 시도했는데, 한번은 탄광을 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탄광이 이미 폐광이 된 상태였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사기를 당한 것입니다. 사업이 진행되지 않으니 인부들이 몰려와서 임금을 달라고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록펠러는 혼비백산하여 굴에 들어가서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어려서부터 십일조를 드리면 물질의 복을 주신다더니 이렇게 망하게 되었으니 어떡합니까?” 그 때, 하나님의 음성이 록펠러에게 들려왔습니다. “조금 더 깊이 파라.” 록펠러는 그 음성을 주의 음성으로 믿고 인부들을 설득해서 탄광을 더 깊이 파나갔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서 시커먼 물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석유를 발견한 것입니다.

석유정유회사를 세워가면서 결성한 것이 바로 스탠다드 오일 트러스트입니다. 1882년에는 이 회사가 미국 석유 사업의 90%를 차지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어마어마한 부자가 되었습니다. 후에 록펠러는 교회를 세우고, 재단과 병원과 학교를 세우는 등 사회사업에도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노벨상 수상자를 80명이나 배출한 시카고 대학이 바로 록펠러가 세운 대학입니다. 록펠러가 이룬 큰일들을 통해 그는 십일조 축복의 산 증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주의 종이 되겠다고 결심한 이후에 신학교만 8년을 다녔습니다. 한국에서 3년, 미국에서 5년 동안 신학교를 다녔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어떻게 돈을 벌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먹고, 살고, 입을 것을 모두 채워주셔서 지금까지 굶지 않고 살았습니다. 저는 어려운 중에서도 신학교 다닐 때부터 십일조 드리는 일을 빼먹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물질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으십니까? 그러면 십일조를 시작하십시오. 지금도 어려운데 무엇을 더 드릴 수 있겠느냐고 생각될 때, 더욱 십일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물질의 복을 채워 주십니다. 자녀들이 물질의 복을 받기 원하십니까? 자녀들에게 십일조를 가르치세요. 그러면 자녀들이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말라기서 3장 10-11절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고 했습니다. 십일조를 드리면 황충을 금하시고 축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에 미완성 되는 것이 없이 넘치는 축복으로 채워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런 축복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십일조를 실천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 믿음을 강화하는 방편

다섯 번째로 십일조는 믿음을 강화하는 방편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물질의 복을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게 됩니다. 이처럼 십일조를 통해 물질의 복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강화되는 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일조(Tithing)라고 하는 유명한 책을 쓰신 아더 핑크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십일조는 믿음을 양육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이 제정하신 시금석이다.”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내 호주머니를 하나님께 맡겨드릴 수 없다는 말과 같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영혼과 장래와 내세를 모두 주님께 맡긴다고 하면서도 내 호주머니를 맡길 수 없다고 고백하는 것은, 내가 마음과 눈과 입으로는 믿을 수 있지만 내 호주머니로는 못 믿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진실된 믿음이 아닙니다. 십일조는 믿음의 시금석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영혼과 내세를 하나님께 의지한다면 물질도 하나님께 의지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십일조를 통해 물질의 복도 주시고, 영혼의 복도 주시고 더 나아가 우리 믿음을 강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6. 예배를 풍성하게 하는 재원

여섯 번째로 십일조는 교회의 예배를 풍성하게 하는 재원입니다. 구약에는 주의 십일조(Lord's tithe)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약에는 세 가지 종류의 십일조가 나타나는데, 첫째는 레위인들의 생계수단이 되는 주의 십일조(Lord's tithe)이고, 둘째는 절기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필요한 경비로 사용하는 절기 십일조(Festival tithe)입니다. 신명기 12장 17-18절을 보면 “너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와 네 우양의 처음 낳은 것과 너의 서원을 갚는 예물과 너의 낙헌 예물과 네 손의 거제물은 너의 각 성에서 먹지 말고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는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먹고 또 네 손으로 수고한 모든 일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되”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절기에는 일곱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 세 번은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때 함께 모인 사람들이 먹고 예배드리기 위해 필요한 경비가 바로 절기 십일조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강화하고 풍성하게 하도록 쓰이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는 저절로 준비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가대와 오케스트라도 준비해야 하고, 사역자들의 준비도 필요하고, 예배당 시설도 준비해야 합니다. 십일조는 이런 일들에 사용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배당에 올 때에 부족하고 낡은 부분을 발견하신다면 불평만 하지 마시고 그것을 위해서 헌금을 하시기 바랍니다. 남이 할 거라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헌금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교회의 예배가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십일조를 통해서 예배가 더 풍성하고 강화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7. 구제와 선교의 재원

마지막으로 십일조는 교회의 구제와 선교와 봉사를 강화하는 재원이 됩니다. 구약에 나타난 첫 번째 십일조가 주의 십일조이고, 두 번째는 절기 십일조이며, 세 번째 십일조가 바로 구제 십일조(poor tithe)입니다. 신명기 14장 28-29절을 보면 구제의 십일조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구제 십일조는 객과 고아와 과부들을 위해서 쓰였는데, 오늘날의 교회도 역시 구제를 많이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도 어려운 분들이 많이 있는 줄로 압니다. 교구 사역자들이나 다른 성도님들을 통해 어려운 처지에 있는 성도님들을 발견하게 되면, 교회는 사회복지위원회와 다양한 구제 프로그램들을 통해 충분하지는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 이 분들을 돕습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가 구제활동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하기도 하는데, 광고를 하지 않아서 그렇지 위원회와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통해 왕성하게 구제와 선교사역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일들이 다 우리가 드린 십일조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약속처럼, 올해 우리 교회가 구제와 선교 사업에 더욱 힘써 범사에 복을 받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결 론

어떤 두 사람이 무인도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이제 죽었구나 생각하며 걱정이 태산 같은데, 다른 한 사람은 느긋하였습니다. 그래서 걱정이 많은 사람이 느긋한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왜 그렇게 느긋하고 태평합니까? 우리가 이 무인도에서 죽을지도 모르는데 두렵지 않습니까?” 그러자 느긋한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십일조를 얼마나 많이 드리는 줄 아세요? 우리 목사님께서 꼭 심방 오실테니 난 걱정 없습니다.” 우스개 소리지만 십일조를 많이 드리는 교인은 교회에서도 귀히 여김을 받는다는 풍자입니다.

십일조는 오래 생각할 필요가 없이 그저 실천하면 되는 일입니다. 아브라함과 야곱도 십일조를 드렸고, 구약의 율법도 십일조의 실천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일조를 인정하시고 칭찬하셨으며, 사도 바울도 십일조를 통해 복음 전하는 자들을 돕게 하라고 명하였습니다. 이처럼 십일조는 신구약을 통틀어 제정된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십일조를 실천하고, 우리 자녀들도 실천하도록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실천할 때, 가정도 부강하고, 교회도 부강하고, 국가도 부강해질 것입니다. 십일조를 통해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 교회와 우리 국가가 축복을 받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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