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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피차 사랑의 빚을 집시다 (롬 1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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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피차 사랑의 빚을 집시다
본문- 로마서 13: 8- 10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유치부와 영아부는 새싹교회로, 아동 1, 2, 3부는 어린이교회로, 중.고등부는 꿈지기교회로, 청년.대학부는 젊은이교회로 활발하게 사역을 하고 있는 평안의 공동체가 오늘은 어린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도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1년에 한 번 추수감사주일 때에는 이렇게 한 자리에 모여서 자리는 조금 불편하지만 우리가 함께 온 가족이 모여서 예배하는 그런 시간을 가지기를 우리가 원하고 있습니다. 오늘 추수감사주일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그런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고백의 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내가 그 동안 이렇게 살아왔음을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마치 시집 장가를 갔던 아들 딸들이 명절이면 아름다운 옷을 입고, 손에 선물을 들고, 부모님을 찾아와서 큰절을 하면서 어머님, 아버님 걱정하신 것처럼 그 이상으로 우리가 행복하게 건강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부모님의 덕분입니다라고 감사하면서 인사를 드리는 그런 장면을 연상하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사도께서는 하나님을 아바아버지라고 우리가 부를 수 있다고 그랬습니다. 우리가 이방인이었고, 외인이었을 때에는 그렇게 부를 수가 없었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아들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그랬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어른들, 어린이들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나 못하는 것예요. 여러분 친구들이라도 교회에 다니지 않는 친구들은, 또 교회를 다녀도 하나님을 마음에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는 거예요.

지나가는 사람을 아버지처럼 나이가 많다고, 아버지라고 불렀어요. 그럼 쟤 바본가? 이상한 애인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어요? 아무리 지나가는 여자를 보고 어머니 그러면, 쟤 이상하다, 돌았나? 그럴 거예요.

아버지나 어머니라고 부를 때에는 그 부를 수 있는 조건이 있어요. 그것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곧 주님을 우리의 구주로 영접하였을 때 그 하나님을 부르신 주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 모였습니다. 오늘은 할 수 있으면 가장 예쁘고, 멋있고, 가장 정성된 모습으로 예배를 오셔야 합니다. 오늘 여성분들 오실 때 미장원을 들렸다 오셨으면 참 잘하신 일입니다. 집에서 파마기라도 손을 대셨으면 참 고마운 일입니다.

집에서 오신 길이라도 옷을 정성껏 골라 입으셨으면 무얼 입을까? 고민하다가 그래, 이거야. 그러면서 선택해서 오셨으면 정말 잘 하신 것입니다. 아무 것이나 손에 닥치는 대로 입고, 아무렇게나 빗질하고, 생각없이 오셨다면 여러분들은 번지수를 잘 못 찾으신 거예요. 정말 오늘은 하나님 앞에서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께 지난 일년동안의 삶을 감사로 예배하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하는 시간인 줄 믿습니다.

이제 며칠 후면 저 시골에 있는 부모님에게도 찾아가야 하고 또 어른들에게도 인사를 가야 하는데, 갈 때 어떻게 가야 합니까? 보통은 부산을 4시간이면 가던 길을 수요일, 목요일쯤 되면 열시간정도 걸려야 될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제가 볼 때에 참 감동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열시간씩 가게 되면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나 같이 타고 가는 사람이나 얼마나 지치고 피곤해요. 그런데 부모님을 찾아 뵙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열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떠날 때 전 날 미장원에 가서 머리 다 하고, 남자 같으면 머리 다 깎고, 양복입고, 가장 정성된 옷을 입고 간단 말이예요.

이게 열시간 정도 가다보면 자다 깨다 의자에서 누웠다 일어났다 하면 머리도 망가질 수 있고, 옷도 구겨질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발할 때에는 정성된 모습으로 출발하다는 말이예요. 그게 우리의 마음이예요.

아유, 열시간이면 옷도, 머리도 엉망진창이니까 아무거나 입고 청바지나 입고 가자. 그러면 이건 이미 자세가 안 되어있는 거예요. 아버지 앞에 왔을 때, 어머니 앞에 왔을 때는 머리가 다 헝클어지고 있고, 옷이 주름져 있어도 이미 부모는 그들이 출발할 때 어떤 모습으로 출발했는가를 짐작하면서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 예배라고 하는 것은 외형적인, 외식적인 것으로 우리 이 몸뚱아리가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완성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중심이, 여러분의 마음이 이 자리에 올 때에 진정으로 하나님 예배를 받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한 번 따라해 보실까요? 빚지고 삽니다. 이왕이면 많이 빚집시다. 세상에 빚지고 살자니, 아니 오늘 교회 갔더니 목사님이 이왕이면 빚을 많이 지고 살자는데 내가 빚 때문에 내가 지금 죽게 생겼는데 무슨 소리 하시는 건가?

여러분들의 오해와 의문이 풀리려면 끝까지 설교를 경청하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오늘 말씀은 빚을 좀 지고 살자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중요한 내용은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완성이라고 하는 말은 헬라어로 플레로마라는 말인데, 그 플레로마 뜻의 의미는 충만하다고 하는 말입니다.

충만하다, 이 컵의 물이 85%정도 담겨져 있어요. 이것은 충만한 것이 아닙니다. 충만하다고 말하려면 물을 조금 더 부어서 차고 넘칠정도로 만들어야 해요. 그게 충만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충만이니라. 이 말은 율법을 채우는 유일한 내용은 바로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고, 그 사랑이 가득 차서 차고 넘칠 때 비로소 사랑이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에 우리 부모님을 섬기는 분들, 이런 이야기 자주 들으셨을 거예요. 야, 뭐 너희들 우리한테 신경 좀 써라. 너희들도 우리한테 잘 좀 해야 된다. 부모님들이 그런 얘기들을 하실 거예요. 나이가 많은 부모님들은 그런 이야기들을 서슴없이 하실 것입니다.

아니, 어머님 아버님 무슨 소리입니까? 때마다 옷 사드리지요. 때마다 먹을 것 해 드리지요. 매달 용돈 보내 드리지요. 뭐가 부족해서 그러세요? 그러면서 막 짜증이 나서 화가 나서 그런 이야기들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럼 매달 부모님에게 부모님 통장에 돈을 보내 드릴 거예요. 10만원씩 보내 드리는 분도 있고, 15만원 보내 드리는 분도 있고, 그 일본에 사는 청년은 보니까 열심히 돈을 버니까 한 달에 200만원씩 용돈을 보낸대요. 얼마나 효자입니까?

여러분들, 여러분이 버는대로 열심히 부모님에게 돈을 보내드리는데 잘 하는 것입니다. 어려우셔도 정기적으로 보내드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IMF 됐다고 부모님에게 드리는 용돈을 깎는 사람이 있는데, 참 아름답지 못 한 일이지요. 부모님 용돈을 매달 드리는 성도들은 꼭 그렇게 하시면 좋겠습니다. 잘하고 계실 거예요.

매달 용돈 보내 드리고, 철마다 옷 사드리고, 때때로 맛있는 음식 사 드리고, 그리고 그러는데 부모님들이 가끔씩 그래요. 야, 우리한테 조금 신경좀 써다오. 부모님 입장에서 그렇게 이야기하며 우리는 섭섭하지요. 용돈 보내드리지, 옷 사드리지, 음식 해 드리지 다 해 드리는데 그런데 정말 부모님이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부모님이 원하는 건 돈을 보내드리거나 옷을 사드려도 좋아하시지만 정말 부모님이 원하는 것은 우리 자녀들의 사랑과 관심인 줄로 믿습니다. 이번에도 추석이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긴 추석이 되어요. 지난 금요일 오후부터 사실상 추석의 연휴가 시작이 되어서 9일동안 추석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추석이 되고나서 저 인천공항 보니까 7,8월 여름휴가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인천공항에서 해외여행을 위해서 나갔다고 그러고, 지금 전국에 있는 콘도라던지 호텔이라던지 다 매진이 되었다고 그러고요.

더구나 성형수술하는 병원들이 매진이랍니다. 이번 휴가 때 코 좀 올리고, 광대뼈 좀 깎고, 이러자고 성형수술하는 병원들이 만원사례랍니다. 이번 휴가 끝나고 얼굴이 달라졌으면 한 번 의심해 볼 필요가 있어요.

이렇게 긴 휴가를 주는데도 부모님댁에 찾아가지 않고, 엉뚱한 데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식이기를 포기한 사람이지요. 물론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한 가운데 있고,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 한 사람도 있고, 부모님을 넉넉하게 선물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추석에는 이 긴 추석기간에는 반드시 대한민국의 부모가 어디 계시든지 꼭 찾아 뵈야 할 줄로 믿습니다.

큰 아들이 잘 살아서 갈비짝을 들고서 수십만원짜리 선물을 들고 오는 큰 아들보다 패가망신해서 먹고 살기 어려운 막내 아들이 빈 손으로 오더라도 부모는 막내아들 오는 것을 기다린다는 거예요. 그게 부모의 심정입니다.

또 우리 자식의 입장에서는 오늘은 내가 이번 명절에는 잘 해 드리지는 못해도, 건강한 모습, 우리 가정의 단란한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만으로도 우리 부모에게 효도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찾아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부모님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관심이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 성도들에게 요구하는 게 뭐예요? 나는 너희의 상한 심령, 너희 마음을 원한다는 것예요. 정말 너희들의 마음이 성전에 있고, 정말 마음이 예배에 있느냐는 거지요. 정말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고, 형식적인 그런 모습이라면 우리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보시면서 슬퍼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시설에 있는 어린이들 여러분 보셨나요? 고아원이나 유아원이나 여러 시설에 있는 여러분들 보면 옛날 같지 않아서 요즘 옷을 다 잘 입고 살아요. 옛날처럼 입던 옷 가져다 주면 받지 않습니다.

이제는 가져다 주어도 새 것 가져다 주어야 해고, 싸구려 가져다 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좋은 것 가져다 주어야 되고, 요즘은 정부 지원도 좋아서 먹는 것도 잘 먹어요.

그러니까 먹고 입고 하는 것은 이제 우리들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 방문을 해 보면 한 가지 차이 나는 것이 있어요. 그 어린이들은 얼굴이 어두워요. 여러분들처럼 보면 얼굴이 아주 달덩어리처럼 생기가 넘치고, 환하고, 그런 모습이 아니고, 얼굴에 그림자가 있어요.

왜 그렇습니까? 이제는 정부의 지원도 많고, 시설도 좋아져서 먹고 입고 마시는 것은 이제 우리와 비슷해 졌지만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를 못 했어요. 여러분들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엄마 하고 뛰어가면 문 열어주고, 여러분들 맛있는 음식 해 주고, 엄마 아빠와 같이 외식도 하고, 영화도 보고, 여행도 가고 하는 것이 이것이 얼마나 행복된 일인 줄 몰라요.

그런 사랑을 받지 못한 그런 친구들은 얼굴에 그림자가 있는 거예요. 어두워요. 그런 것을 우리가 볼 때에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먹고 입고 하는 외형적인 것보다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우리가 잘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청년들은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면 뭐예요? 이뻐졌어? 그러면서 막 이뻐졌다고 그래요. 예뻐졌다고 하는데 예뻐졌다고 하는 것은 뭐라고 그래요? 성형수술해서 이뻐졌다는 것이 아니지요? 야, 너 사귀니? 너 이뻐졌어. 사랑을 하면 예뻐지잖아요. 사랑을 하면 이뻐집니다.

우리 어린이들 잘 모르지요? 아니 요즘은 2-3학년 어린이들도 사귄다며? 그래서 너 나하고 결혼해야 된다고 점찍어 놓는데요. 침 발라 놓는대요. 너 딴 데 가지마. 나 너하고 결혼할거야. 그런데 2-3학년이 그런다고 그래서 깜짝 놀랐어요. 무슨 이야기인가 하니까 속으로 ‘맞아. 나는 누군데?’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사랑을 하면 사람이 이뻐지는 거예요. 왜냐하면 마음이 기뻐지기 때문에 그 기쁨이 얼굴로 표현되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성도가 교회 들어올 때 참 보면 우리 아내와 함께 들어오는 거, 나가는 거 인사하는데, 예배를 마치면 우리 식사할 때 그럽니다. 이번에 아무개 권사님, 집사님 보니까 얼마나 얼굴이 환하고, 생기가 넘치는지 너무 보는 우리도 너무 좋더라.

교회를 들어올 때 아주 얼굴이 환하고, 생기가 넘쳐서 씩씩하게 들어오는 분이 있고, 아주 인상을 쓰면서 얼굴이 어두워가지고, 인사하는 사람이 쑥스러울 정도로 그러는 사람도 있어요. 안타까운 일이지요.

여러분, 주님의 제단에 오실 때에는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으로 얼굴의 행복과 생기가 넘치는 마음으로 주님의 제단에, 주님의 교회를 찾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사람이 이렇게 이뻐지고 생기가 넘치고, 자신감이 넘치는 것은 사랑할 때입니다. 사랑을 받을 때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두가지예요. 사랑을 받을 때와 할 때 생기가 넘치고, 자신감이 생깁니다. 우리 엄마, 아빠들 집에서 남편들이 회사에 출근할 때 아내들이 여보, 당신이 최고야! 그렇게 이야기하고 식사준비해 주고, 옷 가져다 주고, 넥타이 걸어주면 남편이 으쓱해 져가지고, 출근하면서 회사에 가서 비록 야단을 맞을 지언정 아주 으쓱하게 나간다는 말이예요.

그런데 출근하는 남편들을 보면서 ‘돈도 못 벌어오면서 말이야. 맨날 회사만 다녀가지고 무슨 소용이 있냐고. 교통비가 아깝다고’ 그러면 남편이 얼마나 속상하겠어요. 야, 나 까짓거 돈도 못 벌어서 부인한테도 인정 못 받는 내가 무슨 재미로 사나. 그리고 실망해서 에이, 버스 밑에 뛰어 들어갈까? 이렇게 되는 거예요. 자살하는 것입니다.

인정 못 받으면 살 의욕을 잃는다 그 말이예요. 우리 아내들은 끊임없이 세워야 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격려를 먹고 살아요. 아내는 남편의 사랑을 먹고사는 줄 믿습니다. 여보, 사랑해. 당신이 최고야. 당신 안 맡았으면 정말 당신 만난 게 행운이야. 이야기 하면 맨날 하는 이야기지만 아내가 굉장히 엔돌핀이 돌거든요. 의욕이 생기고, 용기가 생겨서 윗사람에게 결재서류 던짐을 받으면서 이놈의 회사 그만 다녀야지. 그렇게 생각했다가도 또 오늘 용기를 가지고 가방을 들고 출근하는 거거든요. 그렇게 20년, 30년 사는 거예요.

그 용기 어디서 나오는 거예요? 그 살 맛이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우리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80점 밖에 못 받아 왔어도 다음에는 너도 90점 받을 수 있어. 그렇게 부모가 격려해 주면 그 용기를 가지고 학교를 가는데, 으이구 80점 밖에 못 맞아 가지고, 옆집의 아무개는 90점 맞았더라. 그러면 얼마나 사기가 떨어져요. 학교 다닐 맛이 안 나잖아요.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사랑을 줄 때와 받을 때 다를 줄로 믿습니다. 어거스틴이 우리에게 말합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다음은 마음대로 하십시오. 굉장히 충격적인 이야기예요.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한다면 진정으로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다음은 마음대로 하십시오. 무슨 이야기입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까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이것이 굉장히 큰 것 같고, 어려운 것 같아도 사랑하면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살인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도둑질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남의 것을 탐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자기의 배우자를 떠나서 간음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어거스틴은 정말 하나님을 제대로 사랑한다면 그 다음은 마음 놓고 행동해도 괜찮다라고 신뢰를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들이 늘 염려가 되요. 우리 남편이 너무 잘 생겼어. 그래서 출근할 때마다 아내는 걱정이야. 그냥 나가기만 하면 뭐가 그렇게 많아요? 유혹하는 여자들이 많아. 그거 신문에서 보니까 꽃뱀이라 그러데요.

우리 어린이들도 그런 이야기 들어봤지요? 우리 엄마 아빠들이 걱정이 많은 거예요. 아빠가 잘 생겨서 무슨 탈렌트 같으면 아내는 출근하는 남편을 볼 때마다 걱정이예요. 잘 돌아와야 할 텐데. 너무 아내가 이쁘면 아내가 출근할 때 남편이 걱정합니다. 요즘에 제비가 많다던데, 걱정이예요. 저녁에 잘 들어와야 할텐데.

여러분, 그렇게 걱정한다고 해서 남편 우리의 아내들이 우리 엄마, 아빠들이 건강할 수 있습니까? 온전할 수 있나요? 한 가지입니다. 정말 그들 부부가 사랑한다면, 정말 그들이 이상이 없다면 어떤 세상의 유혹도 거들떠보지 않을 정도로 믿습니다. 바로 그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저 천로역정에 존 볼론, 믿음이라는 주인공이 세상을 향해서 가는데 얼마나 유혹하는 게 많은지 몰라요. 그래서 너무 좋아서 가다 보면 그게 시험이고, 그게 막다른 골목이고, 낭떠러지고 그래요. 잘 못 왔구나. 돌아옵니다.

또 가다가 유혹받고, 또 가다가 잘 못 되면 실족하고,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그렇게 유혹하는 일들이 많아요. 그러나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결국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갈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가장 먼저 찾아가신 사람, 베드로를 찾아가서 우리 주님께서 제일 먼저 물어보신 것이 뭔줄 아십니까? 우리 어린이교회 제일 태도가 좋고, 훌륭한 어린이들만 모아놓았는데, 혹시 대답이 나오려나 모르겠어요.

예수님께서 갈릴리 디베랴바다에 가시고 나서 제일 찾아가셔서 베드로를 만났잖아요. 예수님께서 물어보신 것이 뭔 줄 아세요? 혹시 대답이 나오면 우리 선생님들이 점수 따는 날인데,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친구들이 잘 맞췄어요.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가서 부활 후에 첫 번째 물어보신 것이 뭐냐 하면 네가 아직도 나를 사랑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확인하신 거예요. 때때로 우리가 베드로처럼 주님을 떠나서 세상길로 갈 수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주님을 떠나서 먼 길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가 중요한 것은 찾아오셔서 확인하고 싶은 게 한 가지입니다. 네가 아직도 나를 사랑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어린 친구들 만나면 그렇게 물어요. 아무개야, 목사님 사랑하고 있죠? 그럼요! 그럴 때 제가 정말 기분이 좋거든요.

그런데 엉뚱한 소리하면 얼마나 물어본 게 미안한지 몰라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듣고 싶은 대답은 바로 그것입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 주님이 아십니다. 주님께서 내가 사랑하는 것을 아시는 줄 아십니까?

그렇지요. 제가 성도들을 보면 눈을 쳐다보면 그 성도가 교회를 사랑하는지, 목사가 존경하는지, 교회에서 관심이 떠났는지 금방 알거든요. 제가 목회 시작한지 벌써 30년이 넘었잖아요. 그러니 눈만 딱 보면 저 성도가 교회에 관심이 있는지, 관심이 식고 있는지, 이미 식어버렸는지 금방 알거든요.

우리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시는 것은 내가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이 그렇게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뭐라고 대답합니까?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십니다. 주님께서 사랑을 확인하신 다음에 뭐라고 하셨습니까?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명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줄 수 없어요. 선교회장님들 선교회 회장님들, 속장님들, 각 팀장님들, 선교회를 사랑하지 않으면 사명을 줄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한 후에 사명을 주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그러셨습니다.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교회에서 사명을 주신 것은 그 자격이 유일하게 하나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고 있는가? 그것이 사명을 받을 수 있는가? 없는가? 가장 중요한 조건이 된다는 것이지요.

이제는 빚을 져도 되겠습니다. 바울사도는 자기 자신을 고백하기를 나는 빚진자입니다. 나는 많은 이방인들에게 빚진 자입니다. 빚진 자라고 이야기해요. 세상에서 빚진 자는 빚쟁이를 만나면 도망갑니다. 기분이 막 좋고, 막 이야기 하더라도 갑자기 채권자가 나타나면 얼굴이 굳어 버리고 기분이 다 사라져 버려요.

세상에서의 빚진자의 생활은 이렇게 고달프고 힘들어요. 여러분, 그러나 바울사도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무슨 빚입니까? 사랑의 빚입니다. 나는 할 수만 있으면 이 빚을 많이 지고 싶습니다. 사랑의 빚을 지면서 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어요, 사랑을 받지도 않고 주지도 않겠다는 사람이 있구요. 또 한 가지는 사랑을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사람이 있어요. 어떤 사람은 목사님 저는요. 사랑 받기도 원치 않습니다. 사랑 하기도 원치 않습니다. 나 혼자 해결하겠습니다. 그러는 사람들이 있어요. 혹시 이 가운데 그런 가치관을 가지신 분들이 계신가요? 전 도움 받는 것도 싫고, 도움을 받는 것도 싫고, 저는 저 혼자 해결하고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런 유형의 사람은 가장 교만한 사람입니다. 이런 유형의 사람은 하나님 보실 때 가장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어느 날 열두명의 제자를 앉혀 놓으시고는 세숫대야의 물을 떠 놓으시고, 허리에다가 수건을 차시고, 와서 제자들에게 발을 씻겨 주셨어요.

선생님의 제자의 발을 씻기시고, 수건을 닦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 차례가 되어서 베드로 발 내놓아라. 베드로가 뭐라고 그랬어요? 절대로 저는 못 합니다. 가끔씩 살다보면 베드로 같은 유형을 만날 수 있어요. 저는 절대로 도움 안 받습니다. 저는 절대로 도움 받을 수 없습니다. 저는 스스로 해결합니다.

베드로의 발을 닦이시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주님에게 한 이야기입니다. 절대로 저의 발을 닦을 수 없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셨습니까? 내가 너의 발을 닦지 아니하면,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상관이 없느니라. 우리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관계를 통해서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내가 너와 상관이 없느니라. 내가 너에게 사랑을 베풀때 넌 사랑을 베풀 줄 알아야 한다. 사랑을 줄 줄도 알지만, 사랑을 받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내가 너에게 주는 사랑을 네가 받아라. 그래야 너도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안다는 거예요. 사랑 받는 사람이 줄 줄도 알고, 사랑을 주는 사람이 받을 줄도 아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실 때 누리시고, 또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랑할 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할 때 사랑하는 성도와 이웃을 사랑할 때 그 사랑이 넘치고도 넘쳐서 이 사랑이 모든 사람들에게 빚이 되어서 저 사람들에게 받은 빚을 어찌하면 갚을꼬. 여러분들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빚을 지어가는 사랑을 나누어주는 사랑의 공급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 사랑의 빚진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진정으로 우리의 사랑을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표현하는 시간입니다. 주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우리의 손길이 되게하여 주시고, 주님께 열납되어지는 귀중한 성도의 손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평안의 성도들이 만방에 사랑을 공급하는 사랑의 공급자가 되게 하시고, 사랑의 통로가 되게 하셔서 이 땅에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에 빚진 자로써 살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황요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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