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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관장헌신예배] 영적수준 높은 기관장이 됩시다 (눅 1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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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영적수준 높은 기관장이 됩시다(눅19:1-10절)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수 없어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삭개오'에게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 사건을 다루는 본 기사의 시간적 배경은 수난주간 전 목요일쯤으로 짐작됩니다. 저는 이 시간 "영적수준이 높은 기관장이 됩시다."의 제목 그대로 오늘 헌신예베를 드리는 우리 모두가 이런 믿음을 소유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어쩌면 단도직입적인 질문일지는 모르나 오늘 헌신예배에 참석한 기관장 여러분들과 성도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질문하고자 합니다. 여러분의 영적수준은 어느 정도가 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정확한 기준을 정한 것이 없어서 영적 수준을 어떤 단계라고 표현은 못하겠지만 단순한 대답으로 높은지 낮은지는 스스로는 진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체험하셔서 아시겠지만 신앙이란 연조도 중요하지만 꼭 신앙의 영적 수준이 세월이나 연조만큼이나 성숙하게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아마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처음 된 자가 나중 될 자도 있고, 나중 된 자가 처음 될 자도 있다."고 말씀 하신것 같습니다. 오늘 헌신예배로 영적 성장을 위한 결단의 계기가 되어야 헌신예배의 의미가 있을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 처음 나와 메시야로 믿게 되었지만 신앙수준이 대단히 높아진 사람이 나옵니다. 그 이름은 바로 '삭개오'였습니다. '삭개오'는 여러 면에서 우리에게 영적인 수준이 예수님을 만난 뒤 높아진 모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로 부터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오늘 네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는 축복과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 시간 기관장 헌신예배를 드리는 우리도 영적 수준을 주님께서 평가하실 때 인정해 주시는 성숙한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삭개오'는 네 가지 면에서 대단히 수준이 높은 사람이었습니다.??'삭개오'처럼 어떤 자세가 되어야 합니까?

1. 회개의 수준이 높아야 합니다.

본문 3절에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라고 하였는데 삭개오가 예수를 보려고 한 이유는 분명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아마 호기심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삭개오'도 이미 예수께 관한 소문을 듣지 못할 수가 없었고, 특히 여리고 성 가까이에서 일어났던 소경 치유 기적과 그를 따르는 군중(18:35-43)에 대해서 듣고 보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삭개오'는 예수님께서 어떤 분인지 확인하고, 또 어떤 분이신지 만나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기위해 그가 계신 근처에 갔으나 볼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이 많아서 앞을 가려 예수가 보이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키가 작아서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일행이 걸어갈 때 그 주위에 많은 군중들이 둘러싸고 함께 걸어가고 있음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삭개오의 호기심은 더욱 고조되어 예수님이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을 것이 분명합니다.

특별히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라는 구절에서 여기서 나타난 장면 묘사에서 상징적인 두 가지 의미를 읽을 수 있는데 하나는 예수를 만나는데 있어서 장애가 되는 외적 요인 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방해되었다.'는 점이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미 예수를 만나려고 모여든 무리가 예수를 가리고 있기 때문에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에서도 먼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왜곡된 특권 의식이나 이기심 때문에 새롭게 교회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을 외면하고 도리어 문을 막고 있는 위치에 있음으로써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는데 가로막아 다른 사람의 구원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내용을 암시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예수를 만날 수 없는 내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카가 작은 점이 장애요인이었습니다. "키가 작다."는 말은 '볼 수 있는 위치에 못 미친다.'는 말인데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가 자신의 영적 결핍에 있다는 말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기적 교만, 세상적 욕심, 진리에 대한 경멸심 등이 다 여기에 포함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이 두 가지의 장애를 극복하는 일을 선결 과제(先決課題)로 삼아야 하는데 이를 우리는 '회개라고 하는 과정'으로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실 때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삭개오처럼 회개의 수준이 높아지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삭개오'의 회개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즉각적인 회개'를 했다는 점입니다. 6절에서 "급히 내려와...영접하거늘"이러고 하였는데 예수님의 인격적 초청에 대한 삭개오의 응답은 전격적인 것이었습니다. 즉 '급히 내려와'라는 단어와 '즐거워하며'라는 단어, 그리고 '영접하거늘'이라는 단어는 예수님의 제안을 더할 나위 없는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표현입니다. 이는 매우 감동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예수님의 인격적 부르심과 삭개오의 전격적인 영접은 구원의 눈부신 접촉점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자 말자 즉시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지금 당장 회개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삭개오의 회개의 두 번째 특징은 “확실한 회개”에 있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자 말자 거부영ㅆ던 그가 신앙때문에 회개의 열매를 맺기위해 거지가 되었습니다. 우선 재산의 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반도 세리장이 일을 하면서 불법으로 더 받은 것 있으면 4배씩 갚겠다고 하였습니다.

본래 모세 율법은 남의 것을 토색한 것이 있으면 원금과 함께 5분의 1을 더 주라고 하였습니다(민5:7). 만일 10만원을 더 받았으면 오분의 일이니 12만원을 보상하면 됩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사 배나 갚았습니다. 삭개오의 회개는 확실한 회개였습니다. 회개는 빠를수록 좋고 온전할수록 좋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즉각적이고도 확실한 회개를 하기 원하십니다. 따라서 삭개오보다 더 좋은 회개의 자세는 모델이 없을 것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나의 회심>이라는 글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5년 전 나는 예수를 나의 그리스도로 받아 드렸다. 그러자 나의 생애가 바뀌었다. 이전에 욕망하던 것을 욕망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오히려 이전에 바라지 않던 것을 바라게 되었다. 이전에 좋게 보이던 것이 좋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전에 재미있던 것이 재미없어 지고 말았다. 전에 대수롭지 않던 것들이 중요하여 졌다. 인생관과 가치관이 달라지고 말았다.” '톨스토이'의 회개는 '삭개오'와 같이 자신의 탐욕을 버린 수준 높은 회개였는데 즉각적이고, 철저한 회개의 열매를 맺는 귀한 회개를 우리 교회의 모든 기관장 여러분들이 본 받을 수 있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삭개오'처럼

2. 헌금의 수준이 높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한 '삭개오'는 불과 5분 정도 지난 뒤 자신의 재산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기로 결단하고 실천하였습니다. 자신이 소유한 재산의 반은 가난한 자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내 소유의 절반을...주겠사오며"라고 한 삭개오는 당시 랍비들에 의해 제시된 구제비 곧 소유 혹은 수입의 20%보다 훨씬 많은 파격적 액수를 제시하였습니다.

이러한 헌신적인 태도는, 영생을 사모하여 예수께로 나아왔으면서도 '네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는 예수의 말씀을 듣고서 근심하여 집으로 돌아갔던 부자 청년의 모습과 너무도 대조적입니다(18:18-23).

"만일 뉘 것을...사 배나 갚겠나이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만일'로 시작되는 가정문은 삭개오가 '부당하게 다른 사람들로부터 갈취한 사실이 없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가정문을 이끌고 있는 '에이'라는 단어를 '...하는 무엇이든지'라는 의미의 관계 접속사(everythint that...)로 해석하여 '토색한 것은 무엇이나'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또한 '에이'는 '멘'이라는 단어와 같이 사용되어 '확실히' 또는 '틀림없이'라는 뜻으로 <서약문에 사용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삭개오의 진술은 자신이 부당하게 취한 모든 것은 본래의 주인에게 확실하게 그리고 무엇이나 돌려준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습니다.

여기서 삭개오는 '부당하게 빼앗긴 사람에게 본래의 것의 4배를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는데 율법에 의하면 부정으로 취한 것을 돌려 줄때에는 레 6:5절과 민 5:7절에는 1/5을 덧붙여 상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또 남의 것을 도적질한 것은 출 22:1절과 삼하 12:6절에 4배로 갚아야 한다는 규정도 있습니다만 그것을 초월하여 실천하였습니다.

따라서 삭개오의 이 같은 선언은 '당시 율법이 정하는 도적질에 상당하는 배상을 하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삭개오 자신이 그 같은 정도의 죄를 범하였음을 고백하는 셈입니다.??삭개오의 파격적(破格的)인 행위는 자기중심적 삶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새로이 방향을 바꾸는 전격적인 회개의 표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그러므로 회개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회개는 죄에 대한 참회나 죄에 대한 단순한 고백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전격적으로 삶의 방향을 바꾸는 실천적 행동을 동반해야 합니다.

이처럼 삭개오는 토색한 것에 대해서는 절반의 재산 중??나머지로 사 배로 갚는 데 사용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재산이 거의 없어지는 것입니다. 정말로 '삭개오'의 봉헌 생활을 보면 큰 헌금, 헌신적인 헌금, 화끈한 헌금생활을 한 것입니다.

한 경직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이북에서 피난 나온 이들이 세운 교회가 바로 '영락교회'입니다. 교회 건축을 하여야 할 때 한 목사님 말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삭개오는 예수를 믿자 말자 뽕나무 아래에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이것이 삭개오 헌금입니다. 여러분의 재산 중에 반을 교회 건축헌금으로 드릴 사람만 내일 교회 기공예배에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34명이 참석하였습니다. 그들의 헌금으로 오늘 날 대 교회 영락교회가 지어지고 탄생되었습니다. 그 후 이야기입니다. 30년 지나서 보니 34명이 모두 한국 500대 재벌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믿음으로 헌금을 드렸더니 절대 공짜가 아니라 "심은 것을 거두게 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소문난 갑부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중병에 걸려 의사도 치료를 포기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온 교인들이 합심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이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은 부자 아들을 고쳐주셨습니다. 부자는 너무 기뻐 기도하여 준 사람들을 호텔로 초청하여 식사 대접을 하고 10만원씩 감사의 봉투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에 하나님께도 감사의 헌금을 드렸습니다. 그 봉투 안에는 2만원이 들어있었습니다. 의사도 못 고친 병을 고쳐 주신 하나님께 고작 2만원이었습니다. 사람에게는 감사할 줄 알았으나 하나님에게는 형식적인 것이 그 부자의 헌금 수준이었습니다.

저는 성도여러분들에게 "무엇을 하든지 충성하고 돈 벌어서 봉사하라."고 권합니다. 저도 목사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로 섬김과 봉사의 일을 하고 싶습니다. 성도여러분! 삭개오처럼 말로만 하나님의 일 하지 말고 정말 봉현생활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모두 자기 수준대로 헌금하지만 이왕이면 삭개오 같은 수준으로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삭개오는 초 신자지만 누구보다 헌금생활에는 수준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형편에 최선을 다한 정성이라면 그 액수가 많든 적든 하나님이 보실 때는 클 것입니다. 이런 봉헌생활에 귀감이 되는 기관장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삭개오처럼

3. 예수님을 사랑하는 수준이 높아야 합니다.

6절에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했다고 했습니다. 이같이 누구에게든 향하고 있는 예수님의 초청을(요 6:35;7:37)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고 영접하는 사람에게 구원의 문은 활짝 열리게 됩니다. 삭개오가 이같이 기쁜 마음으로 승낙한 것은 이미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잘 알고 있었고, 그 명성에 대한 권위를 인정함을 뜻합니다.

또한 삭개오는 평소에 자신의 '세리장이라는 직책'과 '정당하지 못한 세금 징수' 때문에 주민들로부터 원성을 샀을 것이 분명하며, 따라서 소외된 아픈 심정을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 자신의 '정당하지 못한 행위에 대한 자책감으로 고민'하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부름은 삭개오에게 있어서 어둠 속에 비추어지는 빛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을 그 명성 높으신 예수가 초청했다는 것은 감격스러운 일이었고 또 자신을 초청했다는 사실은 7절에 언급된 바처럼 모든 사람이 자신을 죄인이라고 배척하는 지옥 같은 상황으로부터 구원해주는 생생한 용서의 선언으로 이해됐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5절에서 언급한 '오늘'은 <구원의 즉각성(卽刻性)을 뜻하는 말>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 단어는 '급히 내려와'라는 말과 맛물려 구원이 주저할 수 없는 결단성을 요청한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또 9절에서 다시 '오늘'이라는 말이 언급되어 구원의 즉각성(卽刻性)을 재삼 강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삭개오는 마지못해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도 그를 수준 높게 사랑해 주셨습니다.

복음서에 예수님께서 머물러 주무신 곳은 두 집뿐입니다. 한 집은 나사로 베다니 마리아의 집이요, 또 하나는 삭개오의 집입니다. 두 집 모두 다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주님을 향한 헌신이 컸다."는 점입니다. 마리아는 옥합을 깨뜨려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삭개오도 주의 이름으로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 뜻대로 사용하는 커다란 헌신을 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마7:12절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고 한 이 말씀은 사람에게 대한 계명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도 적용 되는 말씀입니다.

솔로몬에게 일천 궁녀가 있었습니다. 아가서를 보면 그에게 왕후가 육십이요. 비빈이 팔십이요 시녀가 무수했지만 '술람미와 같은 여자는 없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신부로서 지금 어느 수준입니까? 오직 하나밖에 없는 왕후 중의 왕후 술람미와 같은 성도와 기관장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도 더욱 사랑해 주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3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5:10절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과 기관장 여러분들께서는 주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하여 사랑한 사개온의 신앙르 본 받아 예수님의 사랑을 최고로 받는 수준 높은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삭개오'처럼

4. 주님뿐만 아니라 이웃도 사랑하는 수준이 높아야 합니다.

본문 8절에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삭개오'가 본래 이웃 사랑이 그의 꿈이었을까요? 그의 꿈은 백성의 혈세를 받아 챙겨 더 부자 되고 더 부자 되는 것이 그의 꿈이었습니다. 그러던 '삭개오'가 예수님 만나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삭개오'가 가난한 자들을 사랑하는 주님의 마음을 이해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중심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하셨습니다. 우리들도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해야 합니다. 사랑보다 더 좋은 것도, 사랑보다 더 좋은 길도, 사랑보다 더 좋은 목적도, 사랑보다 더 좋은 지혜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 나타내는 길은 사랑밖엔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이기느냐? 그것은 사랑의 싸움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이깁니다. 주님은 삭개오 같이 되길 바라십니다.

그러면, '삭개오'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에 대하여 궁금증이 생길 것입니다. 여기에 오늘 본문의 말씀의 비밀이 나타납니다. 2절에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그랬습니다. 성경이 이름을 강조할 때는 '반드시 이름의 뜻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삭개오'라는 뜻은 "재카이오스"로 이 이름은 전통적 유대인의 이름으로서 본래의 뜻은 '청결한 사람' 또는 '의로운 사람이다.'라는 뜻입니다.

누가의 소개에 따르면 삭개오는 세리장(稅吏長)의 직책을 맡은 사람이었습니다. '세리장'이란 곧 '세관장'을 의미하는데 여리고는 '베레아' 지방으로 부터 요단강을 건너가는 통상인들의 길목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세관이 있었을 것이고, 그 세관에서는 주로 '길르앗' 지방으로부터 유입되는 '향유' 등 여러 상품에 대해 통관세를 징수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지방은 '발삼'나무의 산지였기 때문에 특산물에 대한 세금까지도 징수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삭개오는 이 세관의 우두머리로서 세금 징수를 지휘했던 인물로 보입니다. 당시 세리장은 로마의 막강한 공권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의도에 따라 자율적으로 세금을 부과하여 징수할 수 있었고, 따라서 자신을 위해 얼마든지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삭개오'를 소개할 때에 '부자'라는 말을 첨가시켰습니다.

이는 당시의 문화적 배경을 보면 '세리'에게도 '허가 낸 도둑'이라는 별명이 붙여졌는데 하물며 '세리장이 받고 있는 원성'은 더 높았을 것이고, 또한 그가 누리는 '부'의 원천이 '부당한 착취'에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래서 삭개오에 대한 이와 같은 배경은 그의 직책이 관료라는 점과, 부자라는 점과 함께 18:18-30의 이야기 즉 부자의 구원에 대한 질문과 연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세리들이 유대 사회에서 '죄인' 취급을 받았던 사실에서 그는 단점 많은 사람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삭개오의 마음만은 솔직하였고, 구원과 하나님의 은총을 사모하며 신앙은 순수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진정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만 갖는다면 삭개오와 같이 수준 높은 신앙이 되지 못할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신앙의 순수함'이란 하나님 편에서 보면 '성령의 감동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믿음의 대장이 되게 하십니다.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을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거역하고, 불순종하고, 버리니까 문제지 성령의 감동을 버리지 않고, 순종한다면 순식간에 '삭개오'와 같은 수준 높은 신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이웃을 보니까 그들의 고통이 보였고,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이 보이기 시작하자 성령께서 감동해 주시는 이웃을 사랑하는 결단으로 생명과 같은 착취한 돈을 하난의 뜻대로 사용하기로 결단하여 내어 놓은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기관장 여러분들과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 우리 모두는 영적 수준이 높아진 삭개오의 신앙자세를 본받아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이끄심 받아 '삭개오'처럼 회개의 수준이 높아지시기 바랍니다. 헌금의 수준이 높아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사랑의 수준이 높아지시기 바랍니다.  이웃 사랑의 수준이 더 높아져 하나님께 인정받고, 삶의 방향이 바뀌고, 이 땅에서 간증거리를 남기는 복되고 아름다운 삶의 흔적을 남기며, 살아갈 수 있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황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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