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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명품신앙 (삼하 16: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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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와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하니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지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다윗과 그의 추종자들이 길을 갈 때에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그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먼지를 날리더라”

제가 어제 인터넷을 보니까 ‘월요병’이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주말에 쉬고 월요일에 출근을 하면 몸이 개운한 것 보다 피곤하고 몸이 지치는 증상이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월요병이라고 합니다. 그 원인은 주말에 너무 잠을 많이 자서 생체리듬이 깨쳐서 생기는 증상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마치 장시간 비행기를 타서 시차를 적응하는 증세와 똑같다고 합니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모릅니다. 리듬을 타는 것입니다. 얼마나 건강하고 좋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축복받은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케나다 벤쿠버에서 들은 조크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여자 분들이 들고 다니는 핸드백의 명품과 짝퉁을 구분하는 방법을 아는지를 물어 보셨습니다. 명품과 짝퉁이 구별이 됩니까? 저는 모르겠습디다.
그런데 그 구별방법은 비오는 날 알 수가 있답니다. 갑자기 비가 오면 명품은 가슴에 품고 가지만, 짝퉁은 우산대용으로 머리에 쓰고 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그런 행동이 나오는지 잘 아십니다. 명품과 짝퉁의 가치는 본인이 압니다. 값에 따라서 대우가 달라집니다. 소위 명품! 이것은 사치품입니다. 값이 비쌉니다. 유명한 디자이너가 만든거죠, 장인정신이 있어요. 프로 정신이 있습니다. 100년, 200년의 전통이 있습니다. 그래서 비쌉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명품, 명품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짝퉁은 모조품입니다. 값이 쌉니다. 모양은 그럴듯합니다만, 그 속에는 장인정신은 없습니다. 흉내만 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신앙생활도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신앙생활에도 명품이 있고, 짝퉁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에도 그렇습니다. 가정생활이나 직장생활에도 명품이 있고 짝퉁이 있습니다. 모양만 내는 사람이 있고, 정신이 깃든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생활을 단순화 시킬수록 새로운 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꼭 필요한 것만 남기시고 필요 없는 것들은 다 버리세요. 그래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세요.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이런 염려 하지 마세요. 그러면 삶의 목적이 생기고 목표가 커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슈바이처가 되고 이런 사람이 주기철 목사님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나 교회생활을 복잡하게 하는 사람은 피곤합니다. 복잡할 것이 없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것 세 가지만 철저하게 하시면 됩니다.

첫 번째는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냐 하는 것, 그것이 진리입니다. 그 말씀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그 말씀 속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안에 사는냐 하는 것,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의 피로 구원받은 그 은혜의 감격이 있느냐?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크리스찬입니다.

세 번째는 성령의 거룩하심을 믿고 그 성령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가 부자되기 위해서 믿는 것이 아니잖아요. 우리가 거룩해져야 합니다. 의로워져야 합니다. 주님 오시는 그 날에 우리가 흰 세마포를 입고 주님 만나실 준비를 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지요. 말씀안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 안에 감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안에 거룩하게 하시는 성화의 변화가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입니다. 이것만 할 수 있고 이것만 가르치고 이것만 있으면 그 교회는 진짜고 그 사람은 진짜 신앙인입니다. 그곳에 직분, 제가 왜 목사가 됐지는 누누이 말씀을 드려서 여러분들도 잘 아시잖아요. 제가 목사라는 직분이 없으면 이런 신앙생활을 할 수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직분을 주신 것입니다. 제가 누구보다 잘나서 똑똑하고 말잘 해서 목사가 된 것이 아닙니다. 저는 5살때까지 말 못하는 반벙어리였습니다. 제가 말이 참 어눌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쓰시려고 하니까 쓰시는 것입니다. 제가 똑똑해서 목사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똑똑해서 장로, 권사, 집사 됐다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그 직분이 있으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주신 것입니다.

교회는 그릇이지 우리의 양식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릇에 밥을 담아 먹는 것뿐입니다. 신앙생활 이 속에 우리의 밥이 무엇입니까?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고, 예수안에 있는 것이고 성령이 거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 따라 순종하고 감사하고 변화되고 성화되는 삶을 살면 이건 다 된 것입니다. ‘뭐 큰교회 가면 잘 될 것이다. 프로그램에 잘 참석하면 다 잘될 것이다’라는 생각을 버리세요. 여러분 프로그램을 잘 참석해서 제대로 된 크리스찬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우리조상들은 프로그램 아무것도 안해도 교회만 나오고 믿음생활 해도 그 속에 순교자들이 얼마나 많이 나왔는지 잘 모릅니다. 한국교회 100년을 이끌어 나오는 헌신자들이 나온 것입니다. 뭐가 그렇게 여러분들에게 불만을 만들고 섭섭해 하시는 것입니까? 그런 것들 다 생각하시지 마세요. 세 가지만 가지세요. 그러면 눈이 뜨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가운데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이방인들이 다 구하는 것이느니라.” 그리고 그 다음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식주를 잠재하고 그 다음을 보시기바랍니다. 그러면 항상 하나님의 나라가 보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물밀듯 밀려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10억을 줘도 감사를 못하는데 어떤 사람은 100원을 가지고도 감사할 줄 압니다. 이것은 깨달음입니다. 고로 신앙은 깨달음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런 축복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명품과 짝퉁의 차이는 모양의 차이가 아닙니다. 명품과 짝퉁의 차이는 장인정신, 프로정신의 차이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 속에는 이런 장인정신이 깃들어 있습니까?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너희 속에 성령이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우리 속에 성령님이 역사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계십니까?

교회역사상 고린도 교회처럼 은사를 많이 받은 교회는 없습니다. 병고치는 은사, 예언하는 은사, 방언하는 은사, 통역하는 은사 등, 은사 받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다 고린도 교회에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의 문제는 싸움이 잦았습니다. 네가 옳으냐? 내가 옳으냐?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자기가 옳다고 얘기 합니다. 그리고 자가가 받은 은사가 크다고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항상 분열이 생기고, 다툼이 생기니까 시끄러운 것입니다. 한 마디로 경건의 모양은 있는데 경건의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경건의 능력이라는 것을 착각하지 마세요. 병고치는 은사가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병고치는 은사를 통해서 그의 신앙의 인격을 만들어 가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왜요? 그 사람에게는 방언하는 은사를 줘야만 그 사람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것 같으니까 그렇습니다. 방언하는 은사, 병고치는 은사, 예언하는 은사를 안받아도 얼마든지 신앙생활을 잘하고 귀한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것이 여러분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까? 한마디로 모양만 있는 신앙, 이것이 짝퉁신앙이라는 것입니다. 겉모양은 신앙인인데 속은 비어있습니다. 예수정신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습니다. 너희 속에 성령이 있음을 알지 못하느뇨?
성령이 있으면 너희가 어떻게 싸우고 분파하고 자기주장 하고 내 말이 옳다고 하고....

10년만 지나면 다 틀릴 말을 가지고 옳은 것처럼 말을 합니다. 그리고 자기가 잘못한 것을 모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영이 역사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마음이 그 속에 있어야, 하나님이 다스리셔야 그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명품입니까? 모양 뿐만 아니라 장인정신이 우리 속에 있습니까?

오늘 성경말씀 속에는 여러분에게 소개하고 싶은 명품 신앙인이 있습니다. 바로 다윗입니다. 그는 가난한 가정의 목동의 자리에서 한 나라를 다스리는 큰 임금의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한마디로 축복받았습니다. 누구보다 권력이 있었고 재산이 많았고 나라가 부강했습니다. 누가 봐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하는 것에 부인할 사람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모양이 좋습니다. 그래서 명품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돈이 많아서 출세를 해서 부자라서, 명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역대 왕 가운데 이 다윗만큼이나 부자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아합입니다. 가장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앞에서는 아주 포악한사람이었습니다. 내가 남이 갖지 못한 것을 가졌다고 해서 명품인척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다윗에게는 겉모양만 좋은 것이 아니라 그 속에는 장인정신, 신앙정신, 프로로써 그 마음과 정신 속에 경건에 능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명품신앙인이었습니다. 이 시간에 다윗왕은 매우 불행했습니다. 아들 압살롬에게 반역에 쫓겨나 피난을 다니고 있으니 말입니다. 사람들은 다윗의 시대는 끝나고 압살롬의 시대가 왔다고 했습니다. 그 중에 시므이라고 하는 사람은 노골적으로 다윗을 내 버렸습니다. 저주했습니다. 돌을 던졌습니다. 다윗의 부하들이 죽이겠다고 할 때 다윗의 대응 태도입니다. 여기에서 명품신앙인의 가치가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은 어려울 때 알아볼 수가 있습니다. 어려울 때, 이 사람이 명품인지, 짝퉁인지 구분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명품신앙인으로써 다윗은 어떻습니까?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너그러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9-11절 말씀을 같이 보시겠습니다.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하건대 내가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하니 왕이 이르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지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또 다윗이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

여기에 명언이 있습니다. 살면서 깨닫는 것입니다. ‘내 속으로 난 자식도 내 맘대로 안된다.’는 것입니다. 내속으로 낳은 자식도 내 맘대로 안 되는 것이 세상일입니다. 그런데 누가 내 말을 듣고, 누가 내 편이 되어 주겠습니까? 여러분 착각하지 마세요. 다윗은 자기를 향해서 저주하는 사람을 보고 뭐라고 말을 했느냐? 하나님이 내게 저주를 하라고 명령하셨다고 말을 합니다. 다윗은 저주하는 시므이를 내버려두라, 자기를 내쫓은 압살롬도 내버려두라.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울 임금도 내버려두라고 합니다. 그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그냥 내버려 뒀습니다. 그는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이런 어려움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주어진 삶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가난, 이 아픔도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감각이 있습니다, 돌 하나 떨어지는 것도, 돌 하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고 하는데 내 인생에 있는 모든 일들이 어찌 하나님의 손에 있지 않겠습니까? 주어진 상황을 그대로 내버려두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내 생각대로,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습니다. 왜? 내 속에서 난 자식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까... 내버려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내버려두라는 말씀 속에는 무슨 마음이 있습니까? 여러분 12절을 같이 보겠습니다.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아멘. 여러분 어려운 일 당할 때 다윗은 사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봅니다. 여기 이렇게 나와 왔습니다.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여러분 원통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원통은 강원도 인제 다음에 원통이 있습니다. 교통이 불편하던 산골시절에 인제가면 언제 오나 해서 원통에서 못 살겠네 하는 그 원통, 그러나 여기 원통은 그 원통이 아닙니다. 이 원통은 분하고 억울한 마음입니다. 이 시간 다윗은 분하고 원통합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자기에게 저주하고 돌을 던지는데 헤헤거리며 웃을 바보가 어디 있습니까? 인간적인 마음이야 부하들을 시켜서 죽이고 싶겠지요. ‘내가 아직 살아있다.’ 마지막 끝까지 자기의 자존감을 지키면서 자기를 헤하려고 하고 돌을 던지는 시므이를 향해서 갚아주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습니까? 이 시간, 자기에게 저주하고 던지는 돌을 맞은 다윗의 얼굴의 모습이 어떤 모습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참자 참자하며 내버려두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서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여기서 감찰이라는 말을 보고 계시다는 말입니다. 그것도 그냥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거수일투족으로 이 상황을 보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고 계시지요. 하나님 아시지요. 하나님 해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문제의 교인 때문에 기도를 하다가 그만 잠이 드셨답니다. 그런데 꿈을 꾸는데 커다란 배를 타고 가는데 커다란 암초가 있더랍니다. 조금만 더 가면 이 배가 바위에 부딪혀 배가 부서질 것만 같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를 살려주세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 큰 바위를 들어서 저쪽으로 휙던지는 것이 아니고 갑자기 어디선가 물이 모여들기 시작하는데 작은 강이 큰 강이 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 배가 그 바위를 지나가는데 좀 전에는 그렇게 크게 보이던 바위요, 암초는 저 물 깊숙한 곳에 있고 배는 그 큰 강물을 따라 그 암초 위를 지나가더랍니다. 그때 이 목사님이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잠에서 깨어나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 잘 못했습니다. 내가 어려울 때 그 문제만 보고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지 못한 것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못사는 것은 문제 때문에 못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해서 못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려움을 통해서 암초를 통해서 내 마음에 믿음의 그릇을 크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태평양처럼 더 큰 마음, 늘 깊은 마음! 예수님의 마음이 그렇지 않습니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그 예수님, 간음한 여인을 데리고 와서 돌로 치리이까 하는 짝퉁 신앙인을 향해서 말하시기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하셨습니다. 명품신앙입니다. 마음이 넓은 것입니다. 집나간 탕자가 돌아오니까 집나갔다 돌아온 사람에게 무슨 잔치냐고 불평하고 원망하던 그 큰아들의 짝퉁 신앙인을 향해서 아버지가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돌아온 내 아들이라’ 얼싸안고 씻기고 잔치를 벌었던 그 명품신앙인의 아버지를 보세요.

모세가 일을 못해서 하나님이 네 사명 끝났다고 그러는 것 아닙니다. 그 마음이 이미 떠났습니다. ‘네 사명 끝난 것 같다.’ 우리 신앙의 경력이 많아지고 부가 많이 수용되면 그 마음이 넓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버려 둬라.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거다.”라고 하는 것에 그 신앙에 그릇을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명품신앙에는 너그러운 마음이 있습니다. 왜? 문제를 보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을 보기 때문인 줄로 믿습니다. 제가 소이 선진국이라고 하는 유럽이나 미국에 가서 참 부러운 것은 너그러운 마음들입니다. 어느 정도냐면 슈퍼마켓에 가서 물건을 사러갔습니다. 물건을 사는 것은 얼만 안 걸립니다. 그런데 계산하는데 얼마나 힘듭니다. 돈을 세는 방법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한 장씩 내면서 계산을 합니다. 동전도 마찬가지이구요. 제 차례가 되어서 돈을 내는데 잔돈을 내려고 봉지를 꺼내서 동전을 찾는데 눈에 잘 안 들어옵니다. 그래서 오래 걸려서 뒤에 계신 분께 죄송하다고 하니까 괜찮다고 하면서 여유를 보이더라구요. 세상에 그렇게 너그러운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화장실이든 버스정류장이든 다들 줄을 섭니다. 병원에서도 마찬가지 이구요. 세치기를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누가 먼저 가겠다고 하면 흔쾌히 허락을 해줍니다. 얼마나 너그러우면 기다리는 마음이 있는지 정말 굉장히 부러웠습니다. 그러니까 괜히 행복해 지더라구요. 어느 정도 기다리는 것을 잘하느냐, 병원에 가서 줄을 서는데 오늘 가면 바로 진료를 해주는 것이 아니고 보름이나 한 달 있다, 두 달 있다가 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조크도 있다고 합니다. 병원가려고 기다리다가 둘 중에 하나가 된다고 합니다. 하나는 죽든지, 아니면 그냥 병이 낫든지 그렇다고 합니다. 여러분 선진국이라고 해서 물건이 좋고 넉넉해서 그 나라 가서 살겠다고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들 사는 것이 별거 아닙니다. 먹는 것, 입는 것 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소위 명품 찾는 것은 한국 사람들이 그렇지 외국사람들은 별로 안 찾습니다.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너그러움입니다.

태평양처럼 넒은 마음이 이 예수님의 마음이고 명품신앙인의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너무나도 결과를 중시합니다. 공부를 해도 몇 등인지, 몇 점을 맞았는지를 가리니까 차별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열심히 했다, 수고했다, 과정을 중시합니다. 돈을 얼마나 가졌는지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행복한지를 더 중시합니다. 네가 그 일을 해도 행복한지.... 대통령이 되어야 만이 행복한 것이 아니고 아무리 하찮은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본인이 행복하다면 이것은 만족하는 것 아닙니까? 측정의 기준이 다릅니다. 결과만보고 다 판단을 합니다. 부자는 행복할 것이다. 공부 잘하면 출세를 할 것이다. 영어 잘하면 대단할 것이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그런 얘기가 어디 있습니까? 맞는 말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 가난해도 행복해 할 수 있고 병들어도 기뻐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행복해 지면됩니다. 너그러운 마음입니다. 명품신앙인은 너그러운 마음을 갖은 사람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 섭섭한 일을 당하고 속상한 일을 당해서 대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상황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축복이 있을 줄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 명품신앙인은 하나님의 축복을 믿는 믿음이 있습니다.

현재의 상황보다 하나님이 주실 축복이 있음을 바라보시는 것입니다. 12절 말씀다시 한번 보시겠습니다.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명품신앙은 다릅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해 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냥 너그러운 마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에 악한 마음을 하나님이 합력해서 선을 이루실 줄로 믿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하십니다. 압살롬이 죽지요, 다시 귀환을 하지요. 나이가 많아 끝까지 왕의 자리에 있다가 솔로몬에게 왕위를 맡기고 세상을 끝냅니다. 하나님이 갚아 주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요셉도 그렇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버렸어도 하나님은 요셉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도 조카 롯이 떠났어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떠나지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

여러분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리빙스턴 선교사가 아프리카 오지의 선교를 하면서 사나운 맹수를 만나고 문맹, 무지한 원주민들을 만나도 그의 목숨을 살려주시고 건져 주셨던 것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믿는 그 신앙 때문에 살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크게 응답하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에 놀라운 응답으로 축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오늘의 상황이 어렵습니까? 술 취한 아버지 밑에 두 아들이 있습니다. 한아들은 이 아버지를 원망하고 불평하고 살다가 아버지와 똑같이 술 취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고 작은 아들은 이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그래 나에게는 좋은 본보기야, 아는 이렇게 살지 말아야지.’ 결심하고 결심해서 그는 술을 먹지 않고 아버지와는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똑같은 상황과 처지 속에서도 그 사람의 선택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그의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저는 이교회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무엇을 기대하겠습니까?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 못지않게 저에게는 여러분을 향한 큰 기대와 간절한 축복의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이교회를 통해서 이들이 하나님 앞에 명품신앙인의 축복을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모양도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것에는 관심을 버리세요. 나머지 없어도 될 만한 것은 무시해도 됩니다. 여러분 그까짓 명품핸드백을 못 들었다고 해서 못사는 것이 아닙니다. 커다란 아파트에 살지 못했다고 우리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에 진정한 축복이 어디 있느냐? 먹고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내가 그 사랑 안에 그 믿음 안에 사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신앙에 필요한 모양은 말씀대로 사는 것이고 예수님 안에 사는 것, 성령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의 정신은 장인정신은, 프로의 정신은 너그러운 마음과 하나님의 축복을 믿는 마음입니다. 짝퉁 자녀들은 부모에게 해준 것이 뭐가 있냐고 결과만 보고 말을 하지만 명품자녀는 없어도 부모에게 감사하고 부모를 모시려고 하는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짝퉁 신앙은 한국 기독교가 몇 퍼센트인지 숫자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명품신앙은 그 숫자를 보면서 과연 이 시대에 남은 자가 몇 사람이며 엘리야 시대에 하나님이 숨겨놓은 7천명이 어디에 있으며 바로 제가 그런 사람이기를 원합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결과가 아닙니다. 교회는 과정입니다. 때가되면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우리 모두를 일으켜 세워 주실 줄로 믿습니다. 세계의 최장수로 기네스북에 오른 부부는 딱 두말만 하고 살았다고 합니다. “사랑해요. 미안해요” 이것이 이 세상을 오래 사는 사람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마지막대에 우리는 다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가 부한 자 같으나 가난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책망이 아니라 네가 가난한 자 같으나 부한 자니라. 주님 앞에 이런 칭찬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에 명품 자랑을 하지 말고 너그러운 마음과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자들의 명품신앙인으로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오창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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