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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안식(1) : 그침 (창 2:1~3; 빌 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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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1)-그침
창2:1~3; 빌4:4~9

한 젊은이가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굉장히 번화한 곳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습니다.  그러나 개업한지 이틀이 지나도록 찾아오는 소송 의뢰인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3일째 되는 날 드디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드디어 고객이 나타났다고 생각하니 변호사는 너무나 기쁘고 흥분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바쁜 인상을 보여주어야 고객이 자신을 유능한 변호사로 보아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받는 척하면서 문을 두드린 사람을 들어오게 했습니다.  잠시 기다리라고 말한 뒤, 변호사는 전화기에 대고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아, 네네.  제가 그 사건을 맡아드리면 참 좋겠지만 어떻하죠.  워낙 많은 사건이 제게 밀려 있어서.  다음 주말쯤 전화를 다시 주시죠.  그때 도울 수 있으면 돕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기다리고 있던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워낙 바빠서.  그런데 어떻게 오셨습니까?”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머뭇거리며 말했습니다.  “실은 선생님께서 신청하신 전화를 놓아 드리려고 왔는데요.”

지난 한 주 바쁘셨죠?  여기서 바쁘지 않은 분이 있다면 은근히 위축감을 느낄 것입니다.  저는 지난 1년 8개월을 백수로 있어 봐서 이 맛을 잘 압니다.

요즘 우리에는 바쁨이 큰 미덕처럼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실제로 바쁘고 또 바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5살 유치원 꼬마들까지 엄청나게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바쁘지 않으면,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닌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쁘지 않을 때 우리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사회에서 낙오되는 것 같고, 뭔가 무능한 사람처럼 되어, 존재감을 잃어버립니다.  그러니까 현대 사회는 바쁨이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말해 주는 바로메타입니다.  그런데 그 스트레스 받는 바쁨이 왜 미덕이 될까요?  그것은 바쁨이 곧 성취를 말하고, 성취는 자신에게 존재감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바쁘게 돌아가는 삶 속에서, 진정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느껴 보고자 바쁘게 살고 있는 삶 속에서 우리는 아이러니 하게도 자신을 잃어버립니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보면 어느 사이에 나는 없어집니다.  그렇다고 한가하게 사는 백수들은 자신을 찾고 사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바쁘지 않은 것에 큰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바쁘지 않은 것 때문에 고통을 받습니다.  이렇게 바쁘게 살면서, 또는 바쁘지 않게 살면서 우리는 나 자신을 잃어버릴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잃어버립니다.

일주일 동안 진정으로 자신과 접촉하는 시간을 거의 갖지 못하고, 그러니 하나님과 진정으로 접촉하는 시간도 거의 갖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주일날 교회에 옵니다.  신앙 좋은 분들의 주일 하루는 보통 이렇습니다.  아침도 먹지 못하고 아침 8시에 주일학교부터 시작합니다.  마치면 정신없이 성가대 연습하고 성가대로 섭니다.  끝나자마자 식사당번이라서 부리나케 주방으로 달려갑니다.  오늘따라 여전도회 헌신예배라서 그것 준비하느라고 정신없습니다.  끝나면 여러 모임이 기다립니다.  교사회, 성가대 모임, 선교회 모임...  모임을 다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늦은 저녁입니다.  피곤해서 애들 밥도 못 먹이고 널브러집니다.  여기에다가 일하면서 생기는 인간관계의 스트레스는 또 어떻습니까?  이런 신앙생활하면서 진정으로 깊이 있게 하나님과 접촉할 수 있겠습니까?  일로 자신을 증명하려고 할 뿐이지, 자신과의 접촉도, 하나님과의 접촉도 가질 수 없습니다.

저는 오늘 희망교회의 첫 예배 말씀으로 안식에 관한 설교를 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우리가 일상을 잘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일상을 잘 살기 위해서는 진정한 안식, 진정한 쉼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쉼은 나 자신을 깊이 보듬어 주는 시간이고, 그래서 하나님과 깊이 있게 만나는 시간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주일의 안식에 대해서 여러 가지 면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주제는 리전트 신학교 영성학 교수로 있는 마르바 던의 <안식>이라는 책을 중심으로 보았습니다.  이 마르바 던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는 언젠가 한번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에서 진정한 안식을 연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이 나 자신과 하나님과의 깊은 접촉 가운데 살아가며 그럼으로써 우리를 만나는 사람과도 깊은 접촉을 갖고 우리가 하는 일에도 깊은 접촉을 가지는 삶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쉼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쉬지 못하는 습성에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구약 말씀에 보면 “이렛날에 하나님이 창조하시던 모든 일에서 손을 떼고 쉬셨으므로, 하나님은 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손을 떼고 쉬셨다’는 말은 일차적인 의미는 ‘그쳤다’는 말입니다.  안식일이라는 말 샤받트가 여기에서 나온 말입니다.  또한 출애굽기 31:16~17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신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 하였음이니라”고 말합니다.  히브리 학자들은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는 부분을 “그쳐 회복하였음이니라”라고 번역합니다.  그러므로 주일에 진정한 영적 쉼을 가짐으로써 우리는 상처 난 부분들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안식의 첫 번 의미는 그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그칠까요?

안식일에 그침은 단지 일 자체만의 그침이 아니라 성취와 생산의 필요데 대한 그침,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성공의 기준으로 인한 염려와 긴장에 대한 그침, 마치 우리가 하나님인양 자신의 삶을 통제하려는 노력에 대한 그침, 소유욕과 문화에 대한 그침,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두지 않고 살아갈 때 생겨나는 단조로움과 무의미에 대한 그침.

이 모든 면에서, 우리는 자신의 필요를 채우고 세상에서 자신의 길을 가려는 모든 노력을 칠일마다 중단하는 리듬에 젖을 때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놀라운 치유를 발견하기 원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빈둥대라는 의미가 아닌 것을 잘 압니다.  주일에 참된 쉼을 누리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게시 하는 법을 배울 수가 있습니다.  그것도 수동적이 되거나 게을러짐으로써가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는 미약한 시도를 포기하는 자유 가운데서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게 하는 법, 즉 하나님의 임재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이것보다 더 큰 목적은 없고, 이것보다 더 큰 능력은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바쁘게 일을 함으로써, 엄청난 업적을 세움으로써, 네 자신을 증명해 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대신 주님은 네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네가 어떻게 하나님과 연결됨으로써 네 자신이 되는지를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인간이란 “노동하는 인간”이라고 말합니다.  일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발견하고, 우리의 존재를 깨닫습니다.  주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일이란 곧 내가 이루는 성취를 뜻하는 것은 아니라 하나님과의 깊은 연결 가운데 자신의 본성을 알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때 그 일은 성취로 나를 증명하려고 하기 보다는 나의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땅에 와서 배울 일입니다.

주님께서는 피고하고 지친 사람들을 향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다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이 땅의 사역을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마지막 당부를 하면서도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바로 복음입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살아가고 경험해야 합니다.

오늘 신약성경의 말씀을 잘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주일 동안 음미할 말씀입니다.

『[4]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5]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7]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8] 마지막으로, 형제자매 여러분, 무엇이든지 참된 것과, 무엇이든지 경건한 것과, 무엇이든지 옳은 것과, 무엇이든 순결한 것과, 무엇이든 사랑스러운 것과, 무엇이든지 명예로운 것과, 또 덕이 되고 칭찬할 만한 것이면, 이 모든 것을 생각하십시오. [9] 그리고 여러분은 나에게서 배운 것과 받은 것과 듣고 본 것들을 실천하십시오. 그리하면 평화의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희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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