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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는 양식 (출 16: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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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백성들이 불기둥, 구름기둥을 앞세우고 광야 40년을 오는 동안에 먹을 것이 없었다면 그들은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광야생활 동안 그들에게 외부에서 공급되는 식량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다른 부족들과 싸워서 얻은 전리품으로 생활한 것도 아닙니다. 또 스스로 농사를 지을 수도 없는 처지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200만으로 추산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굶어죽은 사람 없이 40년 동안이나 배불리 먹었습니다.
한편 본문은 민수기의 병행기사(민 11:4-35)와는 달리 메추라기에 대해서는 간단히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만나에 대해서는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에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만나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광야를 행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특별양식이었습니다. 이 특별양식을 가리켜

Ⅰ. 그 이름이 만나라고 했습니다.

본문 16장 31절에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고도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라고 했습니다.
이 "만나"(만후, )는 무엇이냐(What)라는 히브리어 '만'( )을 70인역이 헬라어로 만나( )라고 번역한데서 유래되었습니다.
느헤미야 9장 20절에는 "주의 만나"라고 했습니다. 시편 78편 25절에는 "권세있는 자의 떡" 곧 천사의 떡이라고 했습니다.
시편 105편 40절에는 "하늘 양식"이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6장 31절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절에는 "신령한 식물"이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8장 3절에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라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신명기 8장 16절에는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라고 했습니다. 본문 16장 4절에는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라고 했습니다.
민수기 11장 9절에는 "밤에 이슬이 진에 내릴 때 만나도 같이 내렸더라"고 했습니다.
만나는 하늘에서 내리는 신비한 양식입니다. 고요하게 내리는 신비한 양식입니다. 이것은 먹는 양식입니다. 이것을 먹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나는 인간의 과학지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문학지식이나 철학지식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직 만나는 하나님의 지식으로만 설명이 가능합니다.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도 같은 것입니다(삿 13:18 ; 사 9:6).
바로 이것은 밤의 고요와 함께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도성인신을 의미합니다. 예수는 우리의 신령한 떡으로 예표되어 있습니다.

1) 만나는 작다고 했습니다.
본문 16장 14절에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같이 세미한 것이 있는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작다고 해서 부족하거나 결핍되지 아니했습니다. 광야를 행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에너지를 공급하기에 충분했습니다.

2) 만나는 둥글다고 했습니다.
본문 16장 14절에 "…둥글며…"라고 했습니다. 둥글기 때문에 취급하기 쉽고 누구나 부담이 없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끝도 없고 시작도 없으신 영원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3) 만나는 서리같이 세미하다고 했습니다.
본문 16장 14절에 "…서리같이 세미하며…"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세미하다"는 의미는 '연하다'는 뜻입니다. 마치 이사야 53장 2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할 때 연한 순 같다고 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표현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연하고 작은 떡은 200만의 군중을 포식시키기에 충분했으니 실상은 약하거나 보잘 것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4) 만나의 빛은 흰색이었습니다.
본문 16장 31절에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고도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결하신 예수를 상징하는 말씀입니다.
솔로몬은 예수 그리스도를 희고도 붉다고 했습니다(아 5:10). 밧모섬에 유배되었던 사도 요한도 같은 말을 했습니다(계 1:14).

5) 만나의 맛은 달다고 했습니다.
본문 16장 31절에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고 했습니다. 민수기 11장 8절에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라"고 했습니다.
이 모두가 맛이 있다는 것인 동시에 그 맛에 미련과 매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는 예수 믿는 맛을 압니다. 그 맛에 매력을 느낍니다.
그래서 예수를 맛본 자들은 그 예수의 오묘한 맛 때문에 그를 붙잡고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6) 만나는 진주와 같다고 했습니다.
민수기 11장 7절에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진주 같이 귀하고 보배로운 예수를 상징합니다. 불순물이 섞이지 아니한 진주처럼 죄를 알지 못 하는 무죄 성결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Ⅱ. 만나는 하늘로부터 온 먹는 양식입니다.

만나는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하신 하늘의 양식입니다. 가나안을 향해 광야 행진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40년 동안이나 그들이 행진하는 곳마다 내려졌던 것입니다. 그것도 일정한 시간에 제한된 장소에서만 내렸습니다.
200만으로 추산되는 사람들에게 부족함이 없이 주어졌던 신령한 양식입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영양이 함유되어 있는 마치 종합영양제와 같은 특별양식이었습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엿새 동안 내려오고 안식일 전날에는 안식일 것을 미리 준비하도록 평일의 갑절이 내려졌습니다. 안식일 전날을 제외한 다른 날에는 다음 날 것까지 미리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평일 날 미리 거두어 놓으면 벌레가 생기고 썩어서 냄새가 나고 못 먹게 되었던 것입니다.

1) 만나는 개개인의 양식입니다.
본문 16장 16절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시기를 너희 각 사람의 식량대로 이것을 거둘지니 곧 너희 인수대로 매 명에 한 오멜씩 취하되 각 사람이 그 장막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취할지니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본문 16장 21절에 "무리가 아침마다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고 해가 뜨겁게 쪼이면 그것이 스러졌더라"고 했습니다.
이 만나는 각자가 먹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대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이야말로 집합이 아닌 개인의 것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2) 만나는 매일 매일의 양식입니다.
본문 16장 4절에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고 했습니다.
만나는 아침마다 각기 식량대로 거둔다고 했습니다(16:21).
본문 16장 7절에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라"고 했습니다. 본문 16장 12절에도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하루 분의 양식입니다. 이것은 일용할 양식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침마다 만나를 거두러 나가야만 했습니다. 만나는 꼭 정한 시간에, 정한 장소에 내렸습니다.

더 많이 거둔 자나 적게 거둔 자도 똑같이 자기 식량대로 거두어야 하는 하루 분의 양식입니다. 만약에 욕심을 부려서 더 많이 거두어 모아둔 자는 벌레가 생겨 썩게 되고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출 16:20).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매일매일 필요로 합니다. 오늘 흡족히 받았다고 해서 내일은 주의 은혜가 필요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아무리 흡족히 은혜를 받았다고 해도 그것은 오늘에 흡족한 은혜입니다. 내일이 오면 또 다시 내일의 은혜와 축복을 받아야 됩니다. 주님의 은혜는 잉여(剩餘)된 은혜가 없습니다. 그때그때 필요한 은혜입니다.

3) 만나는 모든 사람이 먹기에 흡족한 양식입니다.
본문 16장 8절에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라고 했습니다. 본문 16장 12절에도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라고 했습니다.
본문 16장 18절에는 "…부족함이 없이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더라"고 했습니다.
40년 광야 생활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남녀노유 할 것 없이 배가 고팠거나 굶어 죽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본문 16장 35절에 "이스라엘 자손이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사십년 동안 만나를 먹되 곧 가나안 지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도착하여 그 땅의 소산을 먹자 그 다음날부터 만나가 그쳤습니다(수 5:10-12). 이 때가 출애굽 41년 1월 16일이었습니다.
만나를 처음으로 먹은 날이 출애굽 원년 2월 15일이었습니다(출 16:1).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먹은 정확한 기간은 39년 11개월이었습니다.

Ⅲ. 만나는 창조질서를 교육하기 위함입니다.

1) 엿새 동안은 거두었습니다.
본문 16장 4절에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날마다"는 엿새 동안으로 제한됩니다. 이것은 엿새 동안 일하는 생존의 질서를 교육하기 위함입니다.

2) 이레 되는 날은 그쳤습니다.
본문 16장 5절에 "제 육일에는 그들이 그 거둔 것을 예비할지니 날마다 거두던 것의 갑절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본문 16장 23-30절에 "…내일은 휴식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고 그 나머지는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그들이 모세의 명대로 아침까지 간수하였으나 냄새도 나지 아니하고 벌레도 생기지 아니한지라 모세가 가로되 오늘은 그것을 먹으라 오늘은 여호와께 안식일인즉 오늘은 너희가 그것을 들에서 얻지 못하리라 육일 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제 칠일은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없으리라 하였으나 제 칠일에 백성 중 더러가 거두러 나갔다가 얻지 못하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제 육일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제 칠일에는 아무도 그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그러므로 백성이 제 칠일에 안식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이레 되는 날은 쉬셨습니다. 따라서 주일은 쉬는 날입니다. 주일은 평일과는 전혀 다른 일을 합니다. 주일에는 인간의 생존의 가장 기본적인 먹는 것까지도 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먹지 말라는 말이 아니고 미리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날은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입니다. 엿새와 주일 하루는 다같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날들입니다. 그런데 주일 하루는 구별하여 예배하는 날로 하나님께서 정하셨습니다.

Ⅳ.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48-51절에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① 만나는 하늘로부터 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도 하늘로부터 왔습니다. ② 만나는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양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하신 어린양입니다. ③ 만나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향해 가는 자들에게 주신 떡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에서 해방 받은 자들에게 생명의 떡이 되었습니다. ④ 만나가 각 개인의 생명을 보존하는 양식이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각 개개인의 생명의 구주이십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신령한 양식입니다. 모든 양식보다 더 나은 양식입니다. 유일한 양식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영생하는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을 견강부회(牽强附會)격으로 해석한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성경을 모독하는 죄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만나는 말씀과 성령을 상징합니다. 광야 40년의 생활은 오늘의 신약교회 운동의 예표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만나는 오늘 성령으로 충만한 신약교회 운동의 예표입니다. 교회운동의 주관자는 말씀과 성령입니다. 기독교의 상징물이 십자가라는 데는 아무도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독교를 상징하는 상징물로서의 십자가이지 기독교의 내용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기독교의 상징은 주께서 제정하신 성찬식 때 제자들과 나누었던 주의 살(떡), 주의 언약의 피(포도주)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우리의 영생하는 양식입니다. 예수는 다시 목마르지 아니하는 영생하는 음료입니다. 예수를 먹고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신다는 말은 그를 믿는다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결코 약하거나 힘없으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에게 속한 자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능력 바로 그것을 소유하신 분이십니다.

오늘의 지상교회 운동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힘입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 살과 피가 우리 몸속에 식음작용을 하여 우리의 에너지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를 주장하도록 해야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 무엇이냐? 그것은 바로 지금도 역사(work)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 멘 -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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