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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 응하였더라 (수 21: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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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할렐루야!
잘 쉬셨습니까? 많이 드셨나요? 한국 사람들은 명절에 유난히 많이 먹습니다.
그리고 명절에 모이면 싸우고 헤어집니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도 있는데 … 답답한 마음을 가진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본향에 우리가 가야 되는 사람이고, 가는 사람임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옆의 분과 인사합니다. "건강하게 뵐 수 있어 감사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 되시고, 알파와 오메가되시는 분이십니다.
시작과 끝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들 중에는 어떤 일을 시작했다가 끝을 내지 못하고 인생을 끝내는 이들이 많습니다.
어떤 분은 열심히 계획은 했지만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인생을 끝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처음도 되시고 나중도 되시고,
시작도 되시고 끝도 되셔서 모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한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45절 함께 봉독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수 21:45)

오늘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아니라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도 여전히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에 감사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모두 이루어진데 대한 짧은 회고입니다.

7년 간의 가나안 정복 전쟁(1~12장)과
12지파에 대한 땅 분배 과정(13~19)을 무사히 마치고
도피성과 제사장의 성읍까지 모두 결정되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서 마음놓고 살게 되었습니다.
43, 44, 45절, 이 3절밖에 안 되는 짧은 말씀 속에는 중요한 가르침들이 있는데,
오늘 그 말씀을 통해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누가 - 여호와께서

오늘 말씀의 각 절 첫머리에 나오는 단어가 "여호와께서"입니다.

43절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 "
44절에 "여호와께서 그들의 사방에 안식을 주셨으되 … "
45절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 "

오늘 본문 세 절에,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약속하시고 모든 일을 이루신 분이
"여호와",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선포한 것입니다.

세상의 역사는 모두 하나님의 주권에/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이란 여호와만이 하나님이라는 절대적 신앙에서만 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주권이 든든하면 국가가 견고하듯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이 든든하면 믿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견고합니다.
흔들림 없는 견고한 믿음의 사람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는 확신만 분명히 있다면 절대로 흔들릴 일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
모든 만물의 조물주가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조물주 = 천지만물을 만드시고 주재하시는 神, 하나님, the creator)
온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모든 주권을 행하신 첫 번 째 일이 세상을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대로, 하나님의 뜻하신 대로, 하나님의 방법에 하나님은 세상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는 통일되어 있습니다.
'코스모스(cosmos)'란 말은 '우주'로 번역되는데 통일을 이루고 있다는 뜻입니다.
모든 우주는 질서 있게 조화를 이루며 존재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창조자이시며, 지배자이시며, 섭리자이시며
우리가 경배할 유일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역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공간을 주관하실 뿐만 아니라 흘러가는 시간까지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역사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기 원하시고 방법을 내신 분 이십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피 흘림으로 사람들의 죄 값을 치루게 하시고(롬6:23)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는 구원의 길(요14:6)이 예수님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총의 날개 아래 산다면 … 그 인생은, 그 삶은 진정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
역경 속에서도, 고난 속에서도, 어려움 속에서도 담대하고 담담하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입니다.

요셉의 어머니 이름은 '라헬'입니다.
요셉의 어머니 라헬은 동생 베냐민을 낳다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창35:18)
그래서 요셉과 베냐민은 이복 형제들 틈에서 성장하였습니다.
야곱의 12아들 중에 11번째였던 요셉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한 양치는 사람이었습니다(창37:2).
아버지 야곱은 요셉을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채색옷을 만들어 입혔습니다.

채색옷(Richly ornamented robe)은
왕족이나(삼하13:18), 족장, 족장의 후계자만 입는 옷이었습니다.
야곱이 요셉에게 채색옷을 만들어 입힌 것은
요셉을 후계자로 생각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창37:3).
- 도서출판 두란노 발행 [비전성경사전] 참조 -

왜 야곱이 11번째인 요셉을 특별히 사랑했는 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정황으로 봐서 요셉이 아버지인 야곱의 마음에 들었던 것은 틀림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12명의 아들 중에 11번째 아들만 사랑했으니 다른 아들들이 시기했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열 두 아들 모두에게 채색옷을 입혔다면 문제가 없는데
한 아들에게만 채색옷을 입혔으니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자식을 기르는 분들은 잘 들으십시오. 편애하면 형제들끼리 상처받고 싸우게 됩니다.
똑같이 사랑하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형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었습니다.(창37:4)
그리고 요셉이 꾼 꿈마다 형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꿈이었습니다.
요셉은 결국 형들에 의해 노예상에게 팔려 이집트, 곧 애굽을 가게 되었습니다.
채색옷을 입고 살던 요셉이 노예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아무리 어려워도, 노예가 되었어도 …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져도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하신다는 것, 하나님이 자기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
전혀 의심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았습니다.

창세기 39장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다'는 말이 2절, 3절, 21절, 23절에 네 번이나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창39:2)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창39: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창39:21)
"…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창39:23)

우리는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다"는 성경의 표현을 관심가지고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 와
'요셉이 여호와와 함께 하므로' … 는 전혀 다른 표현입니다.

성경에 보면 요셉이 여호와와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말은 …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표현입니다.
즉 그 주체가, 그 주도권이 요셉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다는 말은
그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표현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러분이 하나님을 붙잡고 사십니까? 여러분이 하나님께 붙잡혀 사십니까?

물론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고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붙잡고 사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계속해서 좋은 일이 있고, 건강하고, 승진하고, 합격하고, 잘되면
보통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니 잘되는구나, 계속 기도해야겠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안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고 기도해도 건강이 회복되지 않고, 일도 잘 안되고, 승진도 되지 않을 때는
'하나님께 기도해도 별 소용이 없네. 계속 믿어야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요셉처럼 점점 어려운 일만 반복하여 생기게 되면
보통 사람은 자기가 붙잡았던 하나님을 놓아 버리고 맙니다.

참된 신앙은 손만 내밀어 하나님을 붙잡는 삶이 아니라 온 몸을 맡긴 삶이어야 합니다.
온 마음을 맡긴 삶이어야 하고, 모든 인생을 하나님께 맡길 때
그 사람의 인생이 하나님께 맡긴 삶이 되는 것입니다.
- 사나 죽으나, 살든지 죽든지 (빌1:20)
- 먹든지 마시든지 다 (고전10:31)
- 말에나 일에나 다 (골3:17)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며 사는 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참된 신앙은 성공과 실패 상관이 없습니다. 건강과 아픔에 상관이 없습니다.
그래서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대하며, 기도하고, 기다리며 살아갑니다.
그런 삶의 결국을 가리켜서 … 본문에서는 …
'형통', '다 응하였더라' 고 표현했습니다.
수많은 어려움, 수많은 싸움, 오랜 세월이 걸렸으나
결국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다 이루어졌다'고 간증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편 127편을 보면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우리의 범사가 허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정을 세우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시 127:1)
여러분이 집을 세우려고 하면 안됩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나라를 세우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 127:1)

사업을 세우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시127:2)
하나님이 세우지 아니하시면 헛것이고, 허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범사의 삶이 하나님께 완전히 맡긴 삶,
하나님께 붙잡힌 삶,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매일 매일, 매 순간 순간 세상이 줄 수 없고 세상이 알 수도 없는 평안과 안식,
형통함의 축복을 누리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무엇을 - 말씀하신 선한 일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이 '선한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4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일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수21:45) 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 하나님의 일이 '모두 선한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여호수아가
문제덩어리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오랜 세월동안 이끌고, 길을 인도하고, 가나안을 정복하고,
그 사람들에게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나누어주었습니다.
성경에 보세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합지졸 같은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여호수아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은 선한 것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속회강사, 심방자로 봉사하는 분들 … 속도원들이 말을 잘 듣습니까?
남선교회, 여선교회 회장하는 분들 …
선교회원들이 찬양제 연습한다고 모이자고 하면 잘 모입니까?
어떤 분이 "전, 목사님 속 안 썩이려고 결심하고 사는 사람인데,
찬양제는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셨는데 … 그런 말이 속썩이는 것입니다.
교회학교 교사들, 어린이들이 말 잘 듣던가요?
찬양대의 각 파트장들, 찬양대원들이 말 잘 듣던가요?
말 안들을 때마다 제 생각 좀 해 주세요.
여호수아는 어떠했을까요?
사사건건 말이 많고, 불평하고 원망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데리고
끝까지 최선을 다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집어 치웠을 것입니다. 사람만 바라보았다면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신 모든 일이 선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끝까지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이, 교회에서 맡은 일이 선하다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힘이 들고 어려워도 최선을 다하되 끝까지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선하게 이루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 고 고백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선한 일'이란
- 43절 말씀대로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한 모든 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아브라함(창 12:1, 2),
이삭(창 26:2, 3), 야곱(창 28:13) 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계속해서 이스라엘과 약속해 오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 12:1)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창 12:2)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창 26:2)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창 26: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가라사대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너 누운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창 28:13)

그 약속은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의 끊임없는 불순종과 불평에도 불구하고,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잊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피 흘리게 하시기까지
하나니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요일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요일 4:10)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 수많은 약속,
곧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항상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20)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들이시겠다는 약속(요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14:3)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하시겠다는 약속(계 22:20) … 등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계22:20)

모든 성경 속에 담긴 약속들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때로 우리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약속이 무산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 주신 약속을 반드시 이루실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선한 일이란
- 44절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당시 가나안 족속이 그 땅에서 완전히 축출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족속도 감히 이스라엘에게 대항하지 못했기에
이스라엘은 더 이상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지 않는 안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안식'이란 무엇입니까?
돈이 많아서 풍요롭고 편안하게 사는 것이 안식입니까.
아니면 높은 권력과 지위를 얻어 사는 것이 안식입니까.
아니면 아무런 염려, 근심 없이 환각 상태에 빠진 것처럼 그렇게 지내는 것이 안식이겠습니까.
진정한 안식은 요한복음 4장에서 볼 수 있는 우물가의 여인처럼
그리스도와의 만남 속에서만 가능합니다(요 4:29, 30).
진정한 안식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영역 안에 머무를 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며 살 때 (ruling power of God - 눅 10:9, 11:20)
세상의 그 어떤 위협도 침범치 못하는 절대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16:33)

어린아이가 마음대로 지내는 것 같지만 엄마의 눈 안에 있을 때,
엄마의 통치 아래 있을 때 안전하고 편안한 것입니다.
그곳이 안전한 곳이고 그때가 제일 행복한 것입니다.
'안돼, 못 먹어.' 아무리 먹으려 해도 안줄 때, 그때가 완전한 평안인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뜻 안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사는 사람이
참 평안을 누리며 사는 사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선한 일'이란
- 44절 말씀대로 하나님은 대적이 없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모든 대적을 그들의 손에 붙이셨다"(44절)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대적이 없게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고 이기게 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을 끊지 않으십니다.
로마서 8장 35~37절에 보면 바울은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36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롬 8:35~37) 라고 고백했습니다.
"넉넉히 이기느니라" 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결국 믿음이 이기게 하십니다.
믿음의 사람이 승리하게 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 다 응 하였더라

우리가 살아가는 약속에 의해 질서가 유지되고 움직여 갑니다.
그 약속이 강제성을 띤 법일 수도 있고,
양심의 판단에 호소하는 윤리일 수도 있고, 오랫동안 이어온 전통적 규범이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들이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약속이 잘 지켜지는 사회가 안정된 사회이고, 좋은 사회라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약속을 믿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도장을 많이 찍고 보증서를 작성해도, 믿을 만한 근거를 아무리 많이 제시해도 …
그런 것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고 신뢰할 수도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제가 미국에 가서 공부하기 위해 준비하던 때였습니다.
학교에서 성적 증명서를 발급 받아 영어로 번역해서 첨부하여 내면 되는데
미국 학교에서는 제가 들고 가는 성적증명서는 믿을 수 없다고,
학교에서 성적증명서를 발급하여 봉투를 뜯을 수 없게 인봉하여 우편으로 보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들이 직접 봉투를 뜯어 확인해 봅니다.
한국 사람들이 성적을 위조해서 제출했던 적이 많이 있어서
한국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그런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대통령을 비롯해 모든 정치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큰소리 쳐도 믿지 않습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믿지 않습니다.
하도 거짓말을 많이 했기 때문에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성경의 본래 이름은 약속, 계약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해 약속해 주신 것을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 입장에서, 우리 생각으로, 우리 판단으로 속단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지금 어렵다고, 괴롭다고, 한숨쉬고 눈물 흘린다고 답답해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절망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문제는 우리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것을, 내 마음에 드는 때에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안되면 하나님을 향해 원망합니다.
하나님께 붙잡혀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세상 방법에 관심이 많은 우리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보다 조급한 우리의 마음을 따르려는 우리가 문제입니다.
찬양은 잘합니다.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 , 지나온 모든 세월들 돌아보아도,
그 어느 것 하나 주의 손길 안 미친 것 전혀 없네"라고 찬양은 잘합니다.

♬ 오 신실하신 주♬
하나님 한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 신실하신 주 오 신실하신 주 /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 내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그냥 악보대로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은 변함 없이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백성들입니다.
우리에게 약속을 주신 그분이 변함이 없으신 데 우리가 무엇을 걱정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크신 일을 이루신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향해서도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기대하며, 기도하고, 기다릴 줄 아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변함이 없으심에 감사합니다. 약속을 다 이루심에 감사합니다.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그 크신 일을 이루셨음에 감사합니다.
우리에게도 변함 없으심에 감사합니다.
그러므로 기대하며 기도하고 기다리며 사는 성숙한 성도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고신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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