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이 반석 위에 세운 교회 (마 16:13-20)

  • 잡초 잡초
  • 809
  • 0

첨부 1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백점짜리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 신앙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가지 선물을 주셨습니다. 첫째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네 아버지시니라.”

이것이 어떤 복입니까? 베드로의 깨달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택하심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베드로를 택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바르게 깨달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바르게 고백하고 구원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고 고백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복입니다. 그것은 돈보다도, 명예보다도, 귀합니다. 영혼 구원보다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두 번째 선물에 대해서입니다. 18 절에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이 성경구절은 교회의 역사에 아주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겠다는 비전을 품고 계셨습니다. 복음서에서 교회라는 단어는 본문과 마태복음 18 장에 딱 두 번 나옵니다. 당시에는 교회가 아직 생기기 전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뭔지, 교회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을 때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이후에 생겼습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성도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시면서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교회는 지난 2 천 동안 복음을 전한 곳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구원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만난 사람은 제한적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았고 직접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한계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근처의 사람들뿐만 그 혜택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전 세계를 다닐 수는 없습니다. 또 새로 태어날 후대를 전도하기 위해서 언제까지나 남아 있을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단지 복음을 완성시키러 오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제자들의 몫입니다.

제자들도 그 역할을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3 년 동안 전도하셨습니다. 그 기간에 제자들을 훈련시켰습니다. 이제 교회를 세워 제자들의 수를 더해가고, 복음을 전하게 해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공장에서는 물건을 잘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판로가 열리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물건도 소용이 없습니다. 창고에서 썩습니다. 그래서 제품을 잘 만드는 것만큼 시장을 확보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원의 은혜를 이루셨습니다. 그런데 단지 십자가 사건이 일어났다고 해서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 십자가의 은혜를 이해하고 믿어야 구원 받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그 도리를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복음을 전할 도구로 교회를 세우려고 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십자가보다 더 궁극적인 예수님의 비전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합니다. 그래서 예수님 구원의 은혜가 은혜답도록 만듭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교회를 마음에 품고 일하셨습니다. 때가 되면 교회를 세우리란 목표를 정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 속에서 예수님의 교회에 대한 비전이 밝혀졌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듣자마자 교회가 세워질 것에 대해서 예언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처음 듣는 교회란 단어가 생소했을 것입니다. 교회란 무엇일까요?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모여 예배를 드립니다. 그래서 교회를 예배당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예배당은 건물을 뜻합니다. 교회는 눈에 보이는 건물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성도들의 모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두 세 사람 이상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다면 그 모임은 서슴없이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모이면 다섯 가지를 합니다. 예배, 선교, 봉사, 교육, 친교입니다. 이 다섯 가지 가운데 한 가지만 빠져도 교회를 이루지 못합니다. 선교단체나 동호회 같은 모임이 될 뿐입니다.)

자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어디에 세우는가가 중요합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이 반석 위에 세우겠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이름의 뜻은 반석입니다. 그러니까 얼핏 들으면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씀 같습니다. 가톨릭에서는 이 구절을 베드로란 사람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씀으로 봅니다. 그래서 가톨릭은 지금까지 교황 제도를 두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1 대 교황입니다. 지금은 베네딕토 16 세가 265 대 교황을 잇고 있습니다. 교황은 베드로가 가진 교회의 최고 수위권을 잇는 사람입니다. 교황은 하나님의 대언자로 그의 말은 성경 말씀과 동일한 권위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톨릭의 교회 정의는 개신교와 다릅니다. 개신교는 두 세 사람 이상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모임을 교회라고 합니다. 가톨릭은 사제가 있는 곳을 교회라고 합니다.

교황은 모든 주교들의 머리가 됩니다. 주교들은 머리가 된 교황의 권위로부터 이탈할 수 없는 지체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황은 단순한 교회의 최고 지도자 그 이상입니다. 교황은 신적 권위에 버금가는 권위를 부여받고 있습니다. 교황과 그에 연결된 주교들이 곧 교회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성당과 수천 명의 성도들이 있어도 거기 교황으로부터 파송 받은 주교가 없으면 그곳은 교회가 되지 못합니다. 또 사제가 집례 하는 예배라야 미사가 됩니다. 사제 없이 드리는 예배는 기도회에 불과합니다. 또 사제는 고해성사를 통해 성도들의 죄를 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황은 어떤 경우에도 잘못이 없다는 교황 무류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교황과 가톨릭은 94 번이나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가톨릭에서 오늘 본문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들입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란 한 인간 위에 미래의 엄청난 비전인 교회를 세우셨겠습니까? 베드로가 비록 멋진 신앙고백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그는 성숙하지 못한 어눌한 제자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체포당하실 때 도망을 쳤습니다. 계집 종 앞에서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가 제자들 중에 연장자여서 수제자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모습에서 베드로가 최고 지도자라고 보기 어려운 내용들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5 장에 나오는 예루살렘에서의 총회를 보면, 회의를 주도하는 의장은 베드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입니다. 베드로가 이방인과 식사를 하다가 유대인들이 오자 자리를 피하는 장면도 있습니다. 이는 이방인 전도에 대한 소신은 가졌으나 확신은 부족한 모습입니다. 이방 선교의 주도권은 오히려 바울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이런 장면들은 베드로가 초대교회의 수장 자리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증거들입니다. 오히려 초대교회부터 교회의 수장 자리는 아예 없었다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베드로란 한 개인의 리더십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라 성령을 충만히 받은 제자들의 협력과 연합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개신교는 이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본문의 말씀을 가톨릭과 달리 해석합니다.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것은 기초를 튼튼히 하겠다는 뜻입니다. 이 반석이란 베드로 개인을 두고 한 말씀이 아닙니다. 이 반석은 앞서 소개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뜻하는 것입니다. 즉 교회란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라는 고백 위에 세우겠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이든지 처음 기초가 중요합니다. 기초가 부실한 집은 완공된 후에 심각한 문제가 생깁니다. 결국 기초를 잘못하고 지은 집은 헐어야 합니다.

교회의 기초도 중요합니다. 기초가 잘못된 교회는 이내 무너집니다.

우리 멋진교회는 어떻게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모이면 무엇을 합니까? 만약 모여서 세상 이야기로 웃고 떠들기만 한다면 어찌 될까요? 사람들이 모이면 세상 이야기를 안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교회에 모이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교회는 소그룹 모임을 둥지라고 부릅니다. 주일예배를 마치면 점심을 먹고 둥지 모임을 갖습니다. 그런데 이 둥지 모임에서 세상 이야기만 하고 헤어지면 어찌 될까요? 말씀을 나눔도 없고, 기도도 없고, 눈물도 없다면 어찌 될까요? 그 둥지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번식은커녕 이내 소멸됩니다. 둥지 모임도 작은 교회입니다. 교회 구실을 하라고 모임을 만들어 줬습니다. 그런데 모임이 영적이지 못하고, 진지하지 못하면 그 둥지는 힘을 잃게 됩니다.

성경에 교회의 기초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교회의 기초는 모두 세 가지입니다.

첫째 교회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먼저 고린도전서 3:11 말씀입니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교회의 터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터는 베드로가 될 수 없습니다. 베드로 외에 어떤 성인도 역시 교회의 기초가 될 수는 없습니다. 교회의 기초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 뿐이어야만 합니다. 교회라는 간판을 걸어두었는데 거기서 예수님이 빠지면 그것은 가짜 교회입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사람이나, 교주를 두어도 가짜 교회입니다.

우리 개신교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어떤 것도 교회의 기초로 두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훌륭한 의인이 나타난다고 해도 그를 예수님과 같은 반열에 두지도 않습니다.


둘째 교회의 기초는 오늘 본문대로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앙고백입니다.

교회는 바르게 신앙고백 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교회를 다니면 교인이라고 합니다. 교인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처음 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사람을 원입교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다 도리를 깨닫고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면 교회는 그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세례를 받은 교인을 세례교인이라고 합니다.

교회를 다니면 꼭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깨닫고 고백해야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세례는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한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여 이 땅에 세례를 받는 사람들을 늘리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래서 세례식은 교회에서 가장 복되고 기쁜 예식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셋째 교회의 기초는 믿음의 선조들입니다.

에베소서 2:20 말씀입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교회는 예수님과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앙고백을 기초로 합니다. 여기에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도 교회의 기초가 된다고 했습니다. 교회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이후에 이천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만큼 교회의 역사도 오래 되었습니다. 그동안 교회는 세월이 말해주는 대로 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특히 중세기까지 교회는 세상 군왕보다도 더 위에서 군림해 왔습니다. 왕들은 교회의 권위 아래서 통치권을 행사했습니다. 교회는 세계 문명을 주도해 왔으며 철학과 정신세계를 이끌었습니다. 모든 법 정신의 도덕과 가치관에 기독교는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특히 교회의 역사 속에서 기독교는 이단과 치열한 싸움을 벌였습니다. 이것은 진리를 왜곡하는 자들과의 싸움입니다. 교회는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많은 희생의 대가를 치렀습니다. 이단의 위협에서 교회와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전통입니다.

교회의 전통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교회의 전통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습니다. 교회의 전통은 역사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라는 말씀은 바로 믿음의 선조들이 역사 속에서 물려준 신앙 전통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즘 시대가 변하면서 예배도 많이 변했습니다. 예배에서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이 찬양일 것입니다. 요즘은 열린예배란 말로 예배 순서가 자유로워졌습니다.

가장 좋은 예배순서는 회중이 하나님의 임재를 가장 잘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장로교의 예배는 종교개혁자 깔뱅과 쯔빙글리 이후로 500 년 가까이 다듬어져 왔습니다. 경건하고 깊이 있는 장로교의 예배 순서는 어떤 예배순서보다도 검증된 예배입니다. 우리는 선조들이 물려준 좋은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즘 인기 있는 찬양과 예배순서가 있다고 하지만, 쉽게 장로교 전통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저는 전통과 신세대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전통만 고집하면 시대에 뒤떨어지고 젊은이들을 잃어버립니다. 그렇다고 신세대에 맞추다보면 기성세대들이 힘들어 합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젊은이들에게 부탁합니다. 장로교 전통의 클레식한 예배순서의 가치를 높이 보십시오. 찬송을 부를 때 아랫배에 힘을 주고 발성을 하면서 부르는 찬송가도 즐겨 부르시기 바랍니다. 요즘에는 R&B 스타일의 발성이 아니면 노래가 안 되는 줄 알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듣기에는 너무 가벼운 노래들입니다. 클래식을 먼저 익히고 나서 시대의 흐름을 좇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어른들에게도 부탁합니다. 요즘 찬양곡들이 따라 부르기 어렵습니다. 싱코페이션이라는 당김음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박자 맞추기가 어렵습니다. 드럼을 쓰면서 비트가 강한 노래가 많다보니 시끄럽게 들릴 뿐입니다. 그런데 요즘 노래가 다 저급한 것이 아닙니다. 관심을 가지고 배워보면 의미가 있습니다. 또 요즘 것을 모르면 고리타분해집니다. 젊은이들과 대화가 단절됩니다.

요즘 교회들은 이런 세대 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젊은이들을 위한 예배를 따로 두고 있습니다. 주로 주일 오후에 청년들 위주의 예배시간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음악과 악기를 쓰느냐가 아닙니다. 예배는 여러 세대가 한 자리에서 함께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은 선조들의 전승을 물려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간세대예배(Inter-generation Worship)라고 합니다.

예배는 역사 이야기를 하는 곳입니다. 출애굽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찬양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신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었습니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 역사 이야기를 배웠습니다. 유월절을 지키면서 애굽을 떠난 마지막 날 밤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초막절을 지키면서 광야에서 천막을 치고 40 년 동안 지난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성찬식을 거행합니다. 우리는 떡을 떼고 잔을 들면서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상을 베푸신 이야기를 합니다. 십자가에서 흘린 피와 찢긴 살이 오늘 떡과 잔으로 재현됩니다. 예배는 이렇게 지나간 역사를 다음 세대에게 들려주면서 신앙 전승을 이어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세대 간에 어울릴 수 없는 문화로 따로 예배를 드린다면 이것은 교회와 신앙 전승의 비극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이런 식으로 십 년을 보내면 세대 간의 단절로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될 것입니다.

멋진교회는 고리타분해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면서도 장로교의 좋은 전통들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겪입니다. 예배 순서를 디자인하면서 더 많은 고민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세대 간에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해 주십시오. 나와 다른 모습을 인정해 주십시오. 젊은이들은 고전은 고리타분한 것이 아니라 성공이 검증된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클래식의 가치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어른들은 마음을 열고 젊은이들의 세계를 배우려고 하십시오. 시대가 너무 빨리 변하고 있습니다. 서태지를 쫓던 아이들은 벌써 고리타분한 세대가 되었습니다. 모르는 찬양이 나오면 포기하지 말고 더듬어 따라 부르십시오. 입을 닫고 있으면 다음 세대에 우리의 신앙을 물려주지 못합니다.

이렇게 교회는 세 가지 기초 위에 세워졌습니다. 우리 멋진교회를 성경 말씀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에 대한 신앙고백위에, 그리고 선조들의 신앙전통 위에 세워 가십시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사단은 기초가 잘 된 교회를 어찌하지 못합니다. 교회는 사단의 권세 위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 두 명 이상이면 교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뭉치면 사단은 우리를 어찌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성도들이 모여 기도하는 곳에 귀신은 꼼짝하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고백되는 곳에 사단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선포되는 곳에 사단은 쫓겨 도망합니다.

여러분! 사단은 권세가 없습니다. 교회가 권세 있는 곳입니다. 우리가 저보다 더 강합니다. 우리는 사단을 결박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하십시다.(황금성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