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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 (마 8: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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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목사님, 믿음의 종류를 3가지로 분류했다.
1)구원에 이르는 믿음 - 하나님의 선물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2)행함으로 이어지는 믿음
- 살아 있는 믿음, 살아 있는 믿음의 반대는 행함이 없는 믿음을 가르키는데 그 믿음을 야고보 선생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다.
(약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고전 3: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고전 3:13)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고전 3: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고전 3:15)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3)역사하는 믿음
- 지난 주의 두 소경의 믿음, 기적을 일으키는 믿음.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 당기는 믿음. 엘리야처럼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을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도록 역사하는 믿음. 삶이 변화되고 능력이 나타나는 믿음, 이런 믿음을 역사하는 믿음이라 한다.

오늘 본문에서 등장하고 있는 백부장의 믿음도 역사하는 믿음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칭찬하셨다.
(마 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도대체 이 이방인인 백부장의 믿음이 어떤 믿음이였기에 예수님께서도 감탄하시며 칭찬을 하셨는가? 그의 믿음의 태도를 살펴 보기로 하자.

1.그는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6절,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

로마제국시대의 저술가 바로,
“농사 짓는 도구가 3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언어를 가진 도구로 종과 노예가 있고, 둘째 언어가 없는 도구로 가축이 있고, 셋째 소리 없는 도구로 수레와 쟁기가 있다.”
“늙은 노예, 병든 노예는 불필요한 농구들과 함께 팔아버려라!”
노예나 종의 신분에 대한 인격이 완전히 무시되었던 시대였다. 그러나 이 백부장은 병든 하인을 인격적으로 대하여 줬을 뿐만 아니라 그의 병을 심히 안타까워하며 고쳐주려고 노력했다.

인정 있는 주인이라면 자기 집 하인이 병들어서 괴로워할 때 돌봐 줄 것이다. 이 백부장 역시 인정 있는 주인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하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백방 노력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고치질 못했다.

그 때 백부장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 분이 오시면 자기 하인의 병을 고쳐주실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확신을 갖게 된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오시길 누구보다 더 기다렸던 사람이 바로 백부장이었다.

(마 8:5)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한 백부장이 나아와 간구하여...

제일 먼저 뛰어나와 예수님을 환영하고 그 앞에 엎드린 사람이 바로 백부장이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께 나가기까지는 대단한 결단이 필요했다. 두 가지 장애가 가로 막고 있었는데,
첫째는 자신이 이방인인데다가 점령국의 중견 장교라는 신분 때문이었고, 둘째는 자기 자신의 문제가 아닌 하인의 병을 고쳐달라고 나간다는 것이 명분 서는 일이 아니었다라는 것이다.

하인을 물건이나 농기구 취급했던 시대에 하인의 병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백부장은 그렇지 못했다. 인정의 차원을 넘어서 그 하인을 불쌍히 여기고 끔직히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명분과 체면을 뛰어 넘을 수 있었다.

그는 예수님을 전혀 만나 본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소자 한 사람이라도 무시하지 않는 주님의 마음을 가진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이었다. 진정한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는다. 의무감으로 행하지도 않는다. 진정한 사랑은 신분과 종족과 종교를 초월하는 능력이 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기도의 응답을 속히 바란다면 먼저 사랑의 마음을 가지라.
예)현신애권사 - “환자를 보면 자신의 마음뿐 아니라 몸까지도 아팠다.”

그의 사랑의 마음이 주님의 마음을 움직였고 기도의 응답이 이뤄졌던 것이다. 사랑이 식어지고 메말라 가는 시대에 너무나 돋보이는 모습이었다.

2, 겸손한 사람이었다.

백부장의 청원에 대하여 예수께서,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선뜻 앞장 서셨다. 복음서 중에서 백부장에게만 특별한 대우를 하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15장에 보면, 예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가셨을 때 수로보니게 여인이 자신의 딸을 고쳐 달라고 와서 엎드렸지만 야멸차게 외면하셨다.

(마 15:24)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마 15:26)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세상에서 잊혀진 불쌍한 존재인 하인, 그것도 그가 병들었을 때 그것으로 인해 안타까움 마음을 가지고 자신에게도 찾아나온 백부장의 행동에 예수님께서 이미 감동을 하셨을 것이라 생각된다. 사람들이 무시하고 외면하기 쉬운 소자 한 사람에게 관심을 쏟을 때 예수님께서도 그 사람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신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기쁜 마음으로 백부장의 집을 향하여 가시고자 할 때 백부장이 극구 사양했다.

(마 8:8)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덩실덩실 춤추면서 앞장서서 달려감이 자연스러운 모습인데 오시지 말라고 사양하는 그의 태도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이 백부장은 예수님이 자신의 집에 오려고 하는 것을 사양했는가?

19세기 성경학자, 네안데르, “그리스도의 높으심과 자신의 무가치성에 대한 자각”이라고 설명했다. 비록 백부장이 예수님에 대하여 소문으로만 들었지만 그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자신을 종으로 생각했다.

주인은 하인의 방에 들어 가지 않는다. 만약 들어 온다해도 감당할 수 없는 것처럼 예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은 종이나 하인보다 못한 존재요 가장 추한 존재인 것을 알았다. 진실로 그 자신을 낮추는 그의 겸손이 이유였다.

믿음의 깊이는 자신의 부족함과 일치한다.
(고전 15: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고전 15:9)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딤전 1:15)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사람이 넘어지는 이유는 교만함 때문이다.
박윤선 목사, “왕으로 겸손한 자가 드물며, 부자로서 방탕치 않은 자가 별로 없으며, 군인으로서 포학하지 않는 자가 많지 않다.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교만의 처지에서 겸손할 수 있는 것은 특수한 경우이다.”

그는 점령국의 백부장이었다. 로마 군대의 중추적 역할을 감당하는 장교로서 가장 교만 방자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진정한 겸손은 교만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신을 낮추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어떤 분인지 알 때 겸손해질 수 있다.

겸손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최대의 덕목이다. 그 덕목은 자신을 알고, 그리스도를 바르게 알 때 생기는 것이다. 조금 가졌다고, 지식이 있다고 교만 떠는 사람들이 꽤 많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

(약 4:6)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3. 예수님의 능력을 신뢰한 자였다.

8절하,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백부장의 이 한 마디가 너무 충격적이다. 어떻게 이방인 백부장에게 이와 같은 믿음이 있을 수 있었는가? 사실 신앙생활하기에 가장 불편한 환경 중에 있는 부류가 군인이다. 그리고 본문의 백부장은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다. 단지 소문만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재미 있는 사실을 한 가지 발견하게 되는데,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든 사람들, 기적을 경험한 사람들은 한결 같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정상적인 사람은 별로 없다 - 소경, 문둥병자, 이방인 여인등.

그런데 정작 유대인들, 성한 사람들, 말씀을 많이 알고 있는 바리새인들,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그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별로 신통치 않게 생각했다. - 제자들도 그렇고, 예수님의 동네 나사렛 사람들도 그렇고, 가버나움 사람들도 그랬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 8:11)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마 8:12)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정작 말씀은 많이 듣고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외면하고 능력을 신뢰하지도 않았다. 결국 메시야로 오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어처구니 없는 악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인 내 삶 속에서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 생각해 보았는가? 우리는 주일 마다 말씀을 듣고 있지 않은가? 소문만으로도 능력이 나타나는데 말씀을 가지고 있고, 듣고 있는 나에게서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내 마음 속에 믿음으로 포장된 불신이 있기 때문이다. 믿지만 안 믿는 것이다. 입으로는 아멘하지만 머리는 흔들고 있는 것이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총사령관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군대식으로 생각한 것이 그에게는 더 큰 유익이 된 것이다.

(마 8: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군대의 속성상 상관의 명령은 하나님의 말씀처럼 받아야 한다. 백부장은 예수님의 명령 한 마디는 모든 질병을 치료하고 다스리시는 능력이 있음을 믿었다. 예수님을 전 우주의 총 사령관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직접 집에까지 오시지 않아도 명령 (말씀) 한 마디로 하인의 병이 치료될 것을 믿었다.

말씀에 대한 신뢰, 그리고 말씀에 대한 순종은 능력으로 나타난다. 지난 주에 소개된 두 소경의 믿음,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한 신뢰,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케 하는 통로가 된 것이다.

(마 8:10)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백부장의 이와 같은 태도를 보시고, 예수님께서 다시 한 번 감동을 받으셨다.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사람들 앞에서 칭찬을 아끼지 아니하셨다.

소외된 연약한 병든 종에 대한 사랑의 마음, 주님을 알고 그 앞에 자신을 종처럼 낮추는 겸손함, 주님의 말씀에 대하여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신뢰와 순종의 자세가 주님의 관심을 끌었고, 기적의 역사를 이뤄냈다.

13절, 가라,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

예수님의 말씀이 떨어지자 마자 그 시로 하인의 병이 나았다.

50% 믿으면 50% 만큼 역사가 나타난다. 100% 믿으면 100% 역사가 나타난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기를 원하는가? 기도의 응답을 받기 원하는가? 오늘 본문에서 소개된 백부장의 태도를 다시 한 번 깊이 묵상해 보라.

그는 유대인들 보다 예수님께로부터 훨씬 더 멀리 떨어져 있었던 사람, 이방인이었다. 그러나 가까이 있던 유대인들 보다 먼저 더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 되었다.

이 말씀은 양면적으로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다. 유대인들의 혈통, 가문, 국적을 자랑하다가 영원한 저주를 자초하게 되었다. 우리의 영적 나태함과 둔감함이 예수님의 말씀을 가벼히 취급하고, 그의 능력도 믿지 않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백부장처럼 뜨거운 사랑의 마음과 겸손함과 주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로 내 삶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역사하는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길 바란다. (원영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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