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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누리는 축복 (민 26:6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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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는 축복(민26:63~65)

눅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다 아시죠?
악한 부자가 어려운 사람을 외면하고, 무시하면서 살았기에 죽어서 부자는 지옥엘 가고, 죽은 나사로는 천국에 갔다는 내용이 바로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시렵니까?
그랬더니 한 학생이 번쩍 손을 들면서 “선생님 저는요 살아서는 부자처럼 되구요, 죽어서는 나사로처럼 될래요.”

오늘 날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아이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살면서 복을 받으려 한다면 그건 잘못입니다.

이스라엘을 보세요!
“이스라엘아!
내가 너희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허락하여
너와 네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알처럼 번성할 것이며
네 발로 밟는 곳마다 다 허락하여 주리로다”
이 얼마나, 얼마나 엄청난 축복입니까?
그런데 오늘 민 26:64절을 보세요.
다 같이 읽겠습니다.
“모세와 제사장 아론이 시내 광야에서 계수한 이스라엘 자손은 한 사람도 들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반드시 광야에서 죽으리라 하셨음이니라 이러므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 외에는 한 사람도 남지 아니 하였더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갈렙과 여호수아만이 그 땅에 들어갔고 나머지 백성들은 다 광야에서 죽게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동행하시면서
우리를 지키시고,
도와주시고,
음부의 권세,
더러운 유혹,
지저분하고 추악한 유혹을 이기게 하시고,
이 땅에서 잠그면, 하늘에서도 잠거 주시고,
이 땅에서 풀면 태의 문까지도 열어 주시고,
세상에서 꾸어 줄지언정 꾸러 다니지 않게 하시고
머리가 되도록 복을 허락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하시기를 “이것을 빼앗을 자가없으며, 또 빼앗기지도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 특권을 누리질 못합니까?

하나님은 선한자나, 악한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구별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아니하십니다.
국가나, 민족도 차별하지 아니하십니다.

요즘은 입시철입니다.
앞으로 한 달 후에는 대학 입학을 위한 수능 시험이 치러집니다.
그러나 합격을 소유하는 것은 다가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는 11월 둘째주일을 전교인 전도주일로 지키려고 합니다.
여기에 차별이 있나요?
학력 제한이 있습니까?
그런데도 어떤 사람은 상을 받는 사람이 있고요,
다 허락이 되었는데도 그렇지를 못한 사람도 생깁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기쁨과 평안과
자유를 누리지만,
어떤 사람은 그만 교회에 갔다가 시험에 빠지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이 바로 여러분의 것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왜?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어떤 사람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갈 수 있었고,
어떤 사람은 왜? 건너지 못한 채 광야에서 죽어야만 했을까요?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는데도,
어떤 사람에게는 축복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저주가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먼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을 보겠습니다.
“우리는 가나안 백성을 이길 수 없다.
그 땅 거민은 강하고,
그 성읍은 견고하며,
우리들을 얼마나 가소롭게 여기는지, 우리를 메뚜기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 가고야만 갈렙과 여호수아를 보세요.
“가나안 땅을 취하자.
그 땅의 백성을 두려워 말라.
그 땅은 아름답도다.
그들이 강하나 이미 그들의 신은 떠났도다.
그러나 만군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노라”

축복은 하나님을 믿느냐, 의심하느냐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고, 원망하고, 불평을 하는 사람은 축복이 바뀌어, 저주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실 때에도, 그 상황은 똑같았습니다.
병자를 고쳐 주시면서,
하나님 나라,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합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삶의 방향을 고치므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이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
요즘으로 말하면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경제력으로는 부를 누리고,
지식에서 앞서 간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똑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앞에 두고서도
축복이냐, 무서운 징계냐로 구분이 되었습니다.
이건 누구의 책임입니까?

선택은 우리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거절할 것인가?

축복과 저주는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이제 선택은 나에게 달려있습니다.

오래는 유난히 감자가 풍년이랍니다.
이 얼마나 좋아요.
올해 풍년이죠. 얼마나 좋으세요? 하면
에휴!
풍년이면 뭐해,
값이 떨어지는 걸,
집사님! 좋아하지 마세요.
요거요, 날씨 좋다가도, 고추만 말리려면 비가 와요.
걱정뿐이죠.
옥수수가 잘되면, 그 옥수수가 땅의 기름을 다 빨아 먹기 때문에 땅이 거칠어져요. 땅이.
에휴!
그래서 요즘은 걱정과 염려뿐 이랍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도 불만과 불평을 고쳐야 합니다.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왜?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축복이 작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축복이 변질되었기 때문입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애굽의 종살이에서도,
홍해 앞에서도,
마라에서도,
르비딤에서도,

아침에는 만나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어둠과, 추위를 이기게 하시면서 이끌어 주셨고, 이기게 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 계신데, 감사보다도, 불평이 앞서고,
믿음보다도 의심이 앞서니

나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사람
주여 주여 난 어찌 하오리까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인지,
저주와 징계를 받을 사람인지.....

어려움을 당해도, 그 고난과 역경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믿음이냐, 아니면 의심인가?

지금 하나님의 약속을 앞에 두고서 믿음인가? 아니면 의심인가?

지금 한쪽에는 축복이라 써있고,
다른 한쪽에는 저주라고 써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것을 선택하시렵니까?

올해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보면서 감사를 드리십시다.
나의 믿음을 드리십시다.
의심 없는 나의 마음을 보여 드립시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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