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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소원 (요 17: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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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소원 (요17:6-11)

(요약)
대속의 죽음을 앞두시고 기도하신 주님의 간구는 지금도 아버지 우편에서 계속 되는 대제사장의 기도이다. 그 기도는 하나 되게 해 달라는 기도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 됨에 순종해야 한다. 그 기도는 지켜 달라는 기도였다. 그러므로 악과 이단의 미혹에 빠지지 말자. 그 기도는 기쁨으로 충만케 해 달라는 기도였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항상 기쁘게 살자. 그리고 그 기도는 악에 빠지지 말고 거룩하게 해 달라는 기도였다. 그러므로 초보에 만족하지 말고 우리 주님 닮은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설교)

이 시간에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소원”이라는 제목입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에 기도하신 우리 주님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님의 기도를 미리 제자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귀한 사실은 이 기도는 그 때로서 끝나지 않고 지금도 주님께서 하늘 보좌 우편에서 이 기도를 계속하시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주님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소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럼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소원은 무엇일까요?

1. 주님의 소원은 우리가 하나 되는 것입니다.

11절에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은 모이면 서로 비판하고 다투고 편 가르는 것이 죄악 된 인간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도 가장 두려운 것이 모이는 것입니다. 잘 모이면 그렇지 않지만 잘못 모이면 꼭 무슨 문제가 생겨도 꼭 생겨납니다. 사탄은 인간의 모임을 타고 들어와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회의가 필요하지만 회의를 너무 좋아하는 교회 치고 평안한 교회가 없습니다.

이번 명절에 자녀들이 하나 되어 화목할 때 보기 좋지요. 하나님 아버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이 서로 반목하고 갈라지고 싸울 때 가장 마음 아파하십니다. 그래서 화평과 거룩함이 없이는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그럼 인간은 왜 반목할까요? 그것은 천사가 아니라 마음에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가 말씀으로 사랑으로 성령으로 하나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만큼 하나 됨이 우리 하나님의 소원인 것입니다.

2. 주님의 소원은 우리의 믿음이 온전하는 것입니다.

즉 주님의 기도는 보호하고 지켜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와 지키었나이다 그 중에 하나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을 응하게 함이니이다.” 이처럼 한 사람도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 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믿음 없어 연약한 사람을 아주 마음 아파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지금 마귀는 우리 믿음을 밀 까부르듯 하려고 키질하는 중입니다. 베드로도 그런 시험을 당했습니다. 눅22:3134에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그러나 베드로는 여전히 자신감에 넘쳐서 말합니다.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셨습니다. 주님 부인치 않을 것이라고 큰 소리 치지 마세요. 주님이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넘어지지 않을 사람 없어요.

하나님께서 불신앙과 죄악 그리고 모든 이단과 사단의 위험에서 지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도 예수 믿는 집을 가가호호 방문하며 미혹하는 무리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이 얼마나 세뇌시키는지 그들에게서 돌이켜도 기성교회를 나오지 않고 또 다른 이단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주님의 마음 얼마나 아프실까요?

그래서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위해서 얼마나 권면하고 기도했습니까? 행20:29-31에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의 기도대로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견고한 믿음의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주님의 소원은 우리가 기쁨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본문의 주님의 기도에서 볼 수 있습니다. 13절에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저희로 내 기쁨을 저희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기독교의 교리 중에 독특한 것은 기쁨입니다. 빌4:4에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씀합니다. 감옥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이 감옥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기뻐하라고 권면할 수 있는 것이 기독교입니다.

우리가 어두운 마음 가지고 사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아닙니다. 밝은 마음 밝은 얼굴로 사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에요. 하나님의 사랑 받은 것을 생각하면 춤을 추며 살아도 모자랄 사람들이 근심 걱정하며 불평불만 품고 산다면 아버지께서 얼마나 안타까워하실까요? 그것은 우리 아버지의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살전5:16~18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했습니다.

오늘 주보 토막상식 란에 올린 글입니다. [웃음의 10대 효과] 1. 마인드컨트롤 효과 (감정이 순화되고 기분이 좋아 진다.) 2. 대화효과 (웃는 자체가 대화효과를 준다.) 3. 전염효과 (타인의 기분까지 좋게 한다.) 3. 건강증진 효과 (웃으며 살면 건강하고 10년은 젊어진다.) 5. 신바람 효과 (활력을 준다.) 6. 호감효과 (상대방에게 호감과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7. 실적 향상효과 (하는 일이 술술 잘 풀리게 한다.) 8. 이미지 메이킹 효과 (트레이드마크처럼 좋은 이미지를 형성하게 한다.) 9. 행동 컨트롤 효과 (더욱 상냥하고 친절한 행동을 하게 한다.) 10. 젊음 유지 효과 (얼굴 전체에 활력을 주어 젊게 만들어 준다.) 그런데 억지로 웃어도 동일한 효과가 온다고 합니다. 우리 모두 기뻐하며 삽시다. 그러면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그 믿음대로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 주님의 간절한 소원이십니다.

4. 주님의 소원은 악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14, 15절입니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우리 같았으면 육신을 위해서 한참 구했을 텐데 주님의 기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죄 짓지 않도록 믿음을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만큼 우리 주님은 우리가 세속에 물든 것을 슬퍼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도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탁인데 어떤 순간에도 주님 기도 생각하면서 시험 들지 마세요. 시험이 와도 이기세요. 가만 보면 시험 드는 사람이 또 시험 들고 주기가 있어요.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에 마귀가 가지고 노는 것이에요. 그래서 주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악에 빠져 있을 때 우리 하나님의 마음 가장 아프십니다.

5. 주님의 소원은 우리가 거룩한 것입니다.

16-19절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님 닮은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복음의 진리를 붙드세요. 절대적인 진리로 거룩해져야지 절대적인 것 아닌 것 가지고 목숨 걸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즘에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 하여 아예 절대적인 것마저도 부정하는 풍조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귀의 소리입니다. 우리에게는 절대자가 계시고 절대적인 진리가 있습니다.

제정 러시아 교회가 절대적인 것도 아닌 것 가지고 다투고 싸우고 갈라질 때 지하에서는 공산주의자들이 혁명을 일으켜 모조리 망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별거 아닌 것 가지고 다투지 마십시다. 누가 대표로 나가느냐? 건물은 어떻게 짓느냐? 누가 무엇을 하느냐? 무엇을 먹느냐? 무슨 대접을 받느냐? 얼마를 받느냐? 이런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날마다 몰려다니며 패 가르고 싸우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 보시고 무척 마음 아파하십니다.

반면 우리 성도들이 날마다 관심 가지고 기도해야 할 것은 거룩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진실로 관심 가져야 할 것이 신앙운동 영성운동입니다. 얼마나 나를 내려놓고 주님의 뜻대로 변화될 것인가? 그리고 우리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될 것인가? 얼마나 진리를 알고 또 아버지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될 것인가? 어떻게 주의 사명에 감당할 것인가에 관심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위해 몸부림치며 기도하는 성도를 찾고 계십니다. 비본질적인 면에 목숨 걸고 싸우고 다투며 믿음을 범하는 어리석은 성도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도 주님의 기도를 통해 주님 중심의 소원을 아세요. 하늘 보좌에서 드리고 계시는 주님의 소원이 이러하다면 우리의 기도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더 이상 주님의 마음 아프게 해 드리지 마십시다. 주님의 소원이 우리 소원이요, 주님의 기도가 우리의 기도가 되어 우리 하나님의 소원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한성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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