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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죄에서 자유를 얻으라 (요 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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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서 자유를 얻으라 (요8:1-11)

이 시간에 여러분과 함께 “죄에서 자유를 얻으라”라는 제목입니다. 인간은 죄인이기에 죄에 대한 갈등은 누구나 있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그 위대한 사도 바울도 율법 아래 있을 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라”(롬7:24)하며 방황하며 절규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사망이라는 말을 쓴 것은 율법이 끝없이 정죄하여 자기 심령을 죽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율법이 인간을 정죄하여 심령을 죽입니까?

우리는 그 사실을 본문에서 봅니다. 본문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데리고 온 장면입니다. 레20:10 등 율법에 의하면 간음하면 돌로 쳐서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그 여자는 꼼짝없이 죽게 되었습니다. 물론 유대인들이 간음하던 여자를 붙잡아 온 것은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것이지만 여기서 위기를 모면하실 뿐 아니라 그 여자를 구출해 내신 주님의 지혜가 놀랍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죽을 수밖에 없는 여자가 바로 우리들 자신들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예수님 만나 구원을 얻은 것처럼 온전히 죄와 그 결과에서 자유함을 얻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죄에서 자유롭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죄에서 자유로우려면 무엇보다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3절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예수님께 끌고 왔다고 했습니다. 이미 말씀했듯 율법에 보면 간음하는 여자는 끌어내어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런데 장로들의 유전인 「미쉬나」에는 더 극악한 처벌이 기록 되어 있었습니다. 가령 간음한 여자는 사람들이 인분 통에다가 집어넣어 끌고 다니다가 죽이라는 등의 기록입니다. 그러니까 여자는 율법과 유전에 의해 꼼짝할 수 없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현장에서 처형되지 않고 예수님 앞에 왔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예수님께서 잡아온 유대인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고 하셨습니다. 여기 "죄가 없는 자"의 원문의 뜻은 "죄에 대한 욕망이 없는 자"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너희들의 마음속에는 죄가 없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세상에 마음으로 죄 짓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경 롬3:10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남을 정죄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은 자기가 의로운 줄 아는 외식 때문입니다. 이 예수 만남이 그 여자를 살렸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죄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자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와 합니다.

2. 지혜로울 때 죄에서 더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젊은이보다는 나이든 사람들이 더 지혜로웠습니다. 9절에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갔다고 했습니다. 지식에 있어서는 모르지만 지혜에 있어서는 노인들이 더 낫습니다. 그만큼 경험해 보았고 시행착오도 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상 12장을 보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노인들이 교도하는 말을 버리고 자기와 함께 자란 소년들의 말을 듣고 백성들을 더욱 압제하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두 지파만 남고 다 떠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청년들의 지혜 부족이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본질과 지혜를 혼동하면 안 됩니다. 잠언에서는 지혜가 어떤 것인지 잘 가르쳐줍니다. 본질적으로 죄는 아니어도 지혜로 보면 잘못인 것이 많습니다. 물가에서 노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지혜로 보면 그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어떤 것은 보는 것 자체로는 죄가 아니지만 지혜로 보면 보는 것조차도 잘못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유혹의 골목을 지나갔다고 죄는 아니지만 지혜로 보면 잘한 일은 아닙니다. 이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단과 악수했다고 죄는 아니지만 지혜롭지 못한 것입니다. 이단이 자꾸만 찾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5:8에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하라 그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했습니다.

그러므로 죄에서 자유로우려면 더 지혜로우시기 바랍니다. 죄를 멀리하십시오. 죄의 환경을 떠나십시오. 신앙의 환경을 가지십시오. 모든 것을 신앙생활하기 좋도록 만들어 가십시오. 좋은 습관을 가지십시오. 좋은 친구를 사귀십시오. 늘 성경과 교회와 복음 서적과 방송을 가까이 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람들을 가까이하십시오. 자신이 신앙의 사람임을 선언하십시오. 소돔을 가까이한 롯과 그 가족은 죄악으로 만신창이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신앙의 환경을 택한 아브라함은 승리했습니다. 지혜가 우리를 더 자유롭게 합니다.

3. 죄에서 자유로우려면 정죄하지 않는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11절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죄인을 정죄하지 않는 주님의 복음이 담겨있습니다. 우리가 죄인이지만 주님은 우리의 죄를 십자가로 다 지셨기 때문에 우리를 죄 있다 정죄하거나 심판하지 않습니다. 죄인을 죄 있다 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십자가 보혈공로 의지하여 자기를 정죄하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에게도 정죄의 돌은 날아오려고 합니다. “너는 죄인이다.”라는 양심의 율법이 던지는 돌입니다. 이 돌을 막지 못하면 우리 심령은 만신창이가 됩니다. 이것이 내가 나를 치는 비극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은 우리가 죄인이지만 정죄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대해 성경은 아브라함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었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롬4:5)신다고 말씀합니다. 이 정죄하지 않는 진리를 붙드셔야 합니다. 보혈의 공로를 믿고 담대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4. 그러나 좀 더 나아가야 합니다.

한 가지만 알면 하나님의 영광 가리는 범죄를 하고도 죄 없는 자가 나를 치라고 교만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회개만이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다음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11절에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주님은 그녀의 죄를 정죄하지 않으셨지만 다시는 범죄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주님의 사랑으로 용납된다 할지라도 죄는 회개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고칠 것은 고쳐져야 합니다. 정죄하지 않는 진리에서 끝나지 않고 진실로 회개하여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정죄하지 않는 진리는 대체로 잘 전파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성령으로 체험하여 온전히 처리함을 받아야 합니다. 성화의 은총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말씀 충만하고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서 범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예수 닮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때 죄에서 진정한 자유로움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5. 주님은 지금도 우리 심령에 쓰시고 계십니다.

유대인들 앞에서 땅에 글씨를 쓰신 주님은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마음에 회개의 영으로 쓰시고 계십니다. 우리 마음에 말씀으로 충만하고 우리 영혼 속에 생명과 능력으로 써주시고 계십니다. 즉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고 성령으로 뉘우치는 회개의 영을 부어주시고 하나님 닮은 예수의 사람으로 쓰시고 계십니다. 사랑이라는 글자에 머물지 않고 사랑의 열매로 써주십니다. 절제의 말이 아니라 절제의 열매로 써주십니다. 충성의 열매로 온유의 열매로 변화의 열매로 써주십니다.

그래서 고후3:3에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속에 이 쓰심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더욱 말씀과 성령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과 소원이 심령을 주장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잠1:20-21에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훤화하는 길머리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한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속에서 ‘그렇게 살아서는 안 돼 이렇게 살아야 돼’하는 양심의 큰 소리가 들려와야 합니다. 이 소리가 죽으면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잘못될 때 우리 안의 지혜가 소리치고 이것이 정로라고 외치는 성령의 감동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에도 율법의 정죄하는 돌멩이가 날아오고 있습니까?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정죄하지 않으시는 진리에 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변화의 은총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좀 더 지혜로우시고 더 충만하셔서 주님의 주장하심이 더 크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의 은혜로 죄를 온전히 이기고 자유함을 받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한성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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