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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디디야 (삼하 12: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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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디디야 (삼하 12:15-25)

이 시간에 여러분과 함께 “여디디야”라는 제목으로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여디디야”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붙여주신 다른 이름으로 ‘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입다니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은 것도 귀한데 하나님의 사랑까지 받았듯이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사랑 크게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다윗이 또 다시 그 큰 사랑을 입게 되었을까요? 그가 밧세바와 범죄하여 불륜의 열매인 아들을 가졌지만 하나님이 치셔서 불러 가실 때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솔로몬을 주셨고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이름을 여디디야라고 부르게 하셨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여디디아가 될까요?

1. 진실하게 회개하는 것입니다.

다윗을 보세요. 12:13에 다윗이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회개하면 사랑을 입혀주십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 허랑방탕하고 굶주려 죽게 되어 회개하며 아버지께 돌아올 때 어떻게 했습니까?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잔치하지 않았습니까?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하나님의 기쁨이 됩니다(눅15:7).

이스라엘의 원수 니느웨도 요나의 외침을 듣고 회개하니까 살려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회개치 아니하면 흉악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에 빌라도가 폭정을 하여 죽이고 또 실로암의 망대가 무너져 많은 사람들이 죽는 일들 앞에 주님께서는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13:2-3)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북한 핵문제와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참으로 어려운 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러자니 우방이 멀어지고 저러자니 북한을 자극하고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제가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해법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푸는 열쇠는 회개하는 길입니다. 우리부터라도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것입니다. 무너진 기도의 제단 일으키고 꺼진 성령의 불 다시 붙여야 합니다. 서울에서는 어제 십만이 넘는 성도들이 모여 나라를 위해 기도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 선교하는 나라로 쓰고 계시기에 하나님께서 타락하도록 그대로 두시지 않아요. 특별 관리 대상이란 말입니다. 결코 적당히 믿도록 하지 않아요. 지금 가톨릭이 날로 번성하는 것은 적당주의 신앙이 만연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진실로 회개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 민족에게도 긍휼을 입혀 주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또 다윗을 보세요. 다윗은 자신의 범죄로 인하여 아들이 죽어 갈 때에 어떻게 했습니까? 본문 16절에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다고 했습니다. 비록 범죄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 것입니다. 너무 애절하게 기도하니까 왕을 염려해 신하들이 다윗을 일으키려고 하지만 다윗은 듣지 않고 식음을 전폐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했습니다. 그 결과 그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이 그 모습을 기뻐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은혜를 끼치거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을 가장 귀히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기쁘시게 하려고 무엇을 할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이 더 기쁘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은혜 받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께 효도고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다윗과 같은 심정으로 골방에 들어가야 합니다. 다윗이 그랬듯 죄악으로 죽어가는 내 심령을 위해 금식하며 부르짖어야 합니다. 예배에 최선을 다하고, 전도에 최선을 다하고, 봉사에 최선을 다하고, 겸손에 최선을 다하고, 기도에 최선을 다하고, 사랑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은혜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혜보다 하나님 자신을 더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하나님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래서 잠8:17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을 다윗만의 이야기로 받지 말고 죽어가는 우리 심령을 내어놓고 부르짖는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야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크신 사랑을 입혀 주실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뜻 앞에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의 다윗 보세요. 그처럼 간절히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를 불러가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본문 20절을 보면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게 하고 먹은지라.”

이처럼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이 자기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사람도 순종하는 자식이 좋듯이 하나님도 순종하는 자식을 좋아하십니다. 인간의 생각은 하나님의 원수가 되지만 반대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하나님의 친구가 됩니다. 성경을 읽고 그 말씀에 순복하시기 바랍니다.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을 한없이 입게 됩니다.

4. 이웃에게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24절에 “다윗이 그 처 밧세바를 위로하고 저에게 들어가 동침하였더니 저가 아들을 낳으매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다윗은 자기보다 더 마음의 상처 받은 밧세바를 위로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그 모습을 보시고 솔로몬이란 귀한 자녀를 새로 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지만 또 다른 상처 받은 이웃에게 하나님의 손길 되어 사랑을 전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습니다. 그래서 요일4:11-12에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했습니다.

그리고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도 남을 대접하라 하셨어요. 이웃을 사랑하면 우리도 이웃의 사랑을 받습니다. 이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도 받습니다. 내가 사랑이 넘쳐서가 아닙니다. 그러나 순종하면 내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넘칩니다. 그러므로 이 사랑에 우리와 교회와 우리 기독교가 사는 모든 것이 다 달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죄인입니다. 그러나 바른 믿음 가지면 하나님의 사랑을 입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늘 은혜 받으며 그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 받는 여디디아가 다 되시기 바랍니다. (한성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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