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흔들리지 않는 나라 (히 12:25-29)

  • 잡초 잡초
  • 1183
  • 0

첨부 1


  우리는 지금 흔들리는 터 위에 서 있습니다. 이 세상은 온통 흔들리는 것들뿐입니다. 나라가 흔들리고, 경제가 흔들리고, 정치가 흔들리고, 특별히 직장과 가정이 흔들리는 시대에서 우리는 고군분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마음이 흔들리고 사람들의 영혼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어떤 학부모가 자식 때문에 속상해서 선생님을 찾아가 면담을 했답니다. "우리 아이는 학원을 몇군데 보내고 ............. 그런데도 성적이 늘 중간밖에 되지 않아서 마음이 안타깝다"고 했습니다. 그때 그 담임선생님이 학적부를 가지고와서 보여주는데 그 반에 많은 학생들이 정상적인 가정을 갖지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아이는 아버지가 다르고 어떤 아이는 어머니가 다른 아이들이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절반이 넘는 반도 있다고 합니다. 시골학교같은 경우는 친정과 외갓집으로 보내진 아이들이 차지 하는 비율이 상당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공부가 좀 시원치 않아도 이렇게 행복가정에서 자라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지 모릅니다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온통 흔들림뿐입니다. 그 흔들림 때문에 고통이요, 상처요, 소음이요, 공해입니다. 이 흔들림으로 인하여 불안함과 고통을 이기지 못해서 자살하는 수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OECD회원국 중에서 자살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물질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가장 많이 흔들리는 곳이란 반증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불안을 이겨보려고 이곳 저곳 피난처를 찾아나서는 사람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상의 땅이 되고 종교전시장이 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흔들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기자는 시편 46편에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그의 피난처가 되시기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피난처가 되시는 사람은 모든 것이 다 흔들리는 터전 위에 서 있을지라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히 12장 28절을 다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영원히 흔들리지도 무너지지도 않을 그 나라를 유업으로 받은 줄로 믿습니다. 아멘입니까?
  이세상은 변합니다(벧후3:7). 사람도 변합니다. 제도도 변합니다. 자연도 기후도 변합니다.  현존하는 세상의 모든 시스템은 흔들리고 무너질 것입니다.  세상이 점점 급변해 가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불확실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사는 곳 이나라는 세계 삼대 분쟁지역가운데 하나이며 유일하게 민족분단의 현실을 가지고 있습니다. 흔들리고 또 흔들리 한 중심 그 진앙지에서 우리는 지금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나라, 저 천국은 영원무궁토록 변함없는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 은혜로 천지는 없어져도 변함없는 천국의 시민이된 것입니다. 그의 보혈로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된 것입니다. 천국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백성답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모든 것이 흔들릴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흔들리는 나라에서 이기고 번영하는 비결과 그리고 흔들지 않는 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아서 그 영원한 나라에서 영광을 삶을 살고자 하는 성도들은

  1).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합니다. 
  25절에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자를 거역치  말라"고 했습니다. 곧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이스라엘백성들은 수 없이 많이 그들의 삶의 터전이 흔들리고 요동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 말씀은 어쩌면 이스라엘백성들이 몸소 경험한 가장 소중한 교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순종은 이해가 안되도 순종하는 것이요. 납득이 안되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유익이 없어도 순종하고 계산이 안되도 순종하는 것이 참된 순종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을 본받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갈데아 우르를 떠나라고 하실 때 갈바를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모리아산에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실 때도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순종했습니다.

  "복음에 순종하는" 자들은 주변 세계가 무너지고 있는 바로 그때 점점 더 빛나게 되고 점점 더 번성하게 될 것입니다.

  2). 은혜를 받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28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라고 했습니다. 
  원문의 뜻을 본다면 "은혜를 붙잡자"라고 하는 표현입니다. 출애굽기 33:19에 "은혜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히 여기신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표현을 보면 NIV성경은 "감사하자"고 했습니다. 은혜를 더욱  붙잡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사하는 생활을 하여야 할 줄 믿습니다. 모든 것을  은혜로 여기는 사람은 항상 감사할줄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로 여기지 않고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늘 원망과 불평이 많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말세의 사람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감사치 않은 것입니다. 딤후 3:1-5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않은다"고 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주신 은혜에 늘 감사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실 은혜를 더욱 붙잡는 생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28절 하반절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라고 했습니다.
  다른 성경에 보면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도록 경건한 마음과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립시다."고 했습니다. 예배는 아무나 드릴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허락된 특권인 것입니다. 요한복음 4:24에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우리는 형식적인 예배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예배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예배는 우리 인간이 하나님에게 드리는 최고의 봉사인 것입니다. (라뜨레이아)는 하나님께 굴복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께 굴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에 실패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셔서 모든 것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를 견고하게 지켜주실 것입니다. 모든 것이 흔들리는 것을 경험할 때 더욱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사모하고 흔들리지 않는 나라의 도리를 좇아 살아가야합니다.  우리에게 진동할 수 없는 나라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다. 우리의 삶을 진동할 수 없는 나라 위에 세웠다면 우리는 다가오는 시대에 반드시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이기고 번성하기까지 할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송기현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